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갈릴리에서 만나자... 하광영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4. 21. 00:26

 

 

 

하광영목사3
2025.04.21 월


오늘 성경 같이 볼 말씀은 마가복음 16장 1절부터 8절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절부터 8절까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안식일

지난해 마리아와 로고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주었다.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 해 돋을 때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물을 굴려주리오 하더니 눈을 들어본 즉 벌써 불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힘이 크노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에 성령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아세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가 그를 부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가게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배우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노라.
아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 부활절이죠. 우리 이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제 죽으셨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그의 시신에다가 향유를 좀 부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간 것이죠.
그런데 너무 놀랍게도 그 예수님 무덤을 막은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놀라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청년의 모습을 한 천사가 나타난 거죠. 그 청년이 놀라는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한번 보아라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와 사상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하고 말을 하지만 기독교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지 사흘 만에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도 그와 함께 그와 같은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놀라운 소식을 선포한 다음에 이 천사 이 청년으로 나타난 천사는 이 여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합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배우리라고 말해라.
여러분도 그러셨을지 모르는데 저는 처음 이 성경을 읽으면서 어 이렇게 장엄한 부활의 선포를 말한 다음에 뭐 이렇게 시시한 말을 하나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봐라. 여기에 그가 누우셨던 자리가 아니냐 부활 뭐 뭐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듣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한 부활의 놀라운 선포를 한 다음에는 대개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들죠.

이 부활의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질 것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뭐 이런 장엄한 미래에 대해서 선포할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데 하시는 말씀은 굉장히 사소한 것 우리 아주 시시한 그런 말씀 같아 보여요.
뭐라고 그랬냐면 말씀하죠.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배우리라 이렇게 말씀하셔서 이게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체포되기 전에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14장에 보면 14장 20

14장 28절이죠. 27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세요.
제자들이 다 다 도망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내가 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지만 다시 살아날 것이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죠. 마태복음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물론 마태복음에도 예수님께서 이미 전에 하신 말씀도 기록 하셨는데 마태복음 28장 7절에 보면 천사가 여자들에게 한 말을 다시금 우리 살펴보면 이렇게 말씀하세요.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라. 그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배우리라 하라고 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갈릴리로 가라 하는 말씀을 마태복음에서도 그렇고 마가복음에서도 그렇고 말씀을 하시고요.

또 이제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그렇게 말을 전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이 여자들이 막 불이 나게 제자들에게 막 달려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십니다.
만나셔서 9절에서 평안하냐 하면서 안부를 전하실 때 여자들이 나아가 그 팔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이 이런 말씀을 다시 하세요.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해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마태복음에서도 그렇고 마가복음에서도 그렇고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는 말씀을 마태복음에서도 세 번, 예수님 이제 죽으시기 전에 또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세 번 하시고요.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히시기 전에도 하시고 그리고 천사들이 또 우리 여자들에게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말도 그렇게 하세요.
그러니까 총 5번이 나오는 거죠.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자고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어떻게 저는 이제 이게 무슨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성경이 이렇게 다섯 번이나 강조해서 기록하는 것을 보면 중요한 사건임에 분명하죠.
그러면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자고 하실까?
갈릴리는 우리 예수님을 처음 제자들이 만난 곳입니다.
그렇죠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 예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온 겁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낳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실 때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조금 더 가시다가 요한과 야고보가, 야고보가 아버지와 하인들과 함께 금을 깁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동일하게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럴 때 요한과 야고보가 아버지와 하인들과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을 만난 것도 갈릴리에서였습니다.

세리 마태를 부르신 곳도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주로 갈릴리에서 부르셨고, 이 예수님의 12 제자의 거인은 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죠.
그 놀라운 예수님 신선한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이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겠다 하면서 따르던 제자들.
그러나 이제 3년 정도 지나면서 우리 제자들의 마음 속에 다른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며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이 골고다로 십자가로 나아가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제자들의 관심은 뭐였어요?
누가 크냐 하는 것이었어요. 저 사람보다 내가 큰 거 아닌가 저 사람 왜 예수님이 더 총애하시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인데 내가 더 큰 사람인데 이렇게 하면서 서로 다툴 정도가 되었어요.

처음 예수님을 만나서 아무 사심 없이 예수님을 따르고 정말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그들의 마음 속에는 그런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세상 욕심이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 세상 욕심이 자리할 때 그들은 예수님을 기꺼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도망했고요. 한 제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 부활하신 소식을 듣고 그들은 여전히 두려워하면서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방에 숨어 있었는데, 아마도 제가 생각할 때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 같은 사람 나 같은 실패한 제자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죠.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죠.
이 말은 한마디로 말하면 새롭게 시작하자는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이제 처음 사랑 다시 회복하자 내가 너희를 부를 때 처 처음 주었던 그 사명 다시 확인하고 그 사명 가지고 다시 일어나자 하는 메시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16장 7절에 보면 이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배우리라 하고 전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그의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이죠. 근데 베드로의 이름을 유독 콕 집어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는 베드로는 예수님 제자잖아요. 그렇죠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근데 베드로라고 하는 이름을 유독 거명하면서 베드로도 오라고 해라 한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 아까 말이죠.
마태복음 28장에서는 우리 천사들이 그냥 제자들에게 오라고 그래요.

28장 7절에 보면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
거기서 너희가 배우리라 그냥 제자들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여기 마가복음 16장에는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라고 베드로를 아주 유독 호칭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설명을 해요.
마태복음은 이제 마태가 기록한 거잖아요. 마가복음은 누가 기록한 거죠?
마가복음은 누가 기록한 거죠? 마가가 기록한 거죠?
마가 요한 마가 요한은 이제 나중에 이제 이제 성경에 보면 베드로의 수행자였어요.
베드로가 아들처럼 여기는 그런 아주 영적인 그런 아주 후계자였고요.
베드로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학자들이 이렇게 얘기 하기도 합니다.

마가 요한이 베드로가 수제자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일 훌륭한 제자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유독 자기 아버지 영적인 아버지의 이름을 거기 쓴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라고 한 것이다.
근데 그거는 제가 생각할 때는 안 맞는 것 같아요. 베드로가 수제자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여기 적은 것이 아니고요.
베드로가 가장 실패한 제자이기 때문에 여기 베드로의 이름을 유독 적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잡히는 것을 보고 다 도망갔잖아요.
그런데 베드로는 도망도 갔지만 나중에 따라가 가지고 예수님이 어떤 고난을 받으시는가 이렇게 보다가요.
대제사장 집 안에 들어갔는데 예수님이 신문을 받으시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런 강을 건너시는 것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엄습하고 있었는데 한 여종이 이 베드로에게 묻잖아요.
너도 그의 제자이지 너도 그와 함께한 사람이지 너도 그 당이지 하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라고 시치미를 대니다.
또 묻습니다. 그리고 또 묻습니다. 세 번씩이나 물을 때 이 베드로는 아니라고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라고 나는 그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부인하는데 어떻게까지 부인하냐면 마태복음에 보면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고 하는 건 우리도 3 세 번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세 번 부인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고요.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깊은 죄책감으로 자리 잡았을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도 이 베드로는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만나기는 했지만 내가 예수님의 제자일 수 있겠나 나는 예수님을 다시는 배울 면목이 없다 하는 그런 자책감으로 시달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베드로가 제자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우리 물고기나 잡으러 가자.

내가 어떻게 나를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 불림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면목이 없어 이제 옛날처럼 다 예수님 만난 거 다 잊어버리고 물고기나 잡으며 여생을 보내야지 하면서 갈릴리로 물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베드로의 마음 속에 있는 자책감, 면목 없음 죄송함 이런 거 다 아시는 주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그의 이름을 분명히 호명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라.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너를 만나자고 하신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아마도 베드로가 이 말씀을 안 들었으면 베드로는 갈릴리로 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나도 분명히 나도 오라고 하셨다는 거지 하고 베드로는 다시 물었을 것입니다.
그래 여자들이 말했습니다. 맞아 제자들과 베드로도 오라고 하셨어.

이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하는 이 말씀 말이죠.
이 말씀이 없었다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 한 구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여러분도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뭐 많은 말씀을 가지고 힘을 얻어서 다시 일어나서 주님을 섬길 때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한 절 어떨 때는 한 단어 가지고도 힘을 얻어서 일어나서 다시 주님을 섬길 그런 경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어 목회하다가 힘들 때 어느 날 시편 4편에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이런 말씀 들으면서 한 절도 안 되거든요.
아 그래 내가 이렇게 힘들 때 우리 주님은 너그럽게 하시는 분이야.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은 힘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주님은 내 영혼을 넉넉하게 하시는 분이죠 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일어나서 다시 목회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하는 요 베드로에게라고 하는 이 말씀 그거 가지고 베드로는 붙들고 주님께로 가서 아마 그러지 않으면 그도 가롯 유다처럼 이제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다시 배울까?
나는 저 가롯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스스로 목매어 죽인 저 사람처럼 나도 버림 받은 인생일지 몰라 하고 자기 인생을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갈릴리로 가자 주님이 거기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씀 듣고 그도 일어서서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베드로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을 상기시키시면서 갈릴리에서 그를 만나십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때를 다시 상기시켜 주세요.
예수님 처음 만날 때 갈릴리 바다에서 만났잖아요.
예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 한마디로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피곤하고 그리고 허한 마음을 가지고 이제 바닷가에 왔는데 예수님께서 잠깐 네 배를 빌리자 하고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셔서 해변에 가까이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그래서 이 베드로가 그 말씀을 의지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배에 물고기가 가득 차서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거 보면서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그를 자기의 주자로 부르십니다.
이후부터는 내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 만난 처음 그때의 경험을 상기시키면서 예수님 이 요한복음 20 1장에 보면 갈릴리에서 베드로를 찾아오시는 것이죠.
베드로가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왔습니다.
21장 3절에 보면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처럼 그들은 이 베드로는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가는 어둑어둑한 때에 해변에서 어떤 사람이 이 베드로를 향해서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이 답변합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그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서 그물을 돌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만날 때 그 사건을 똑같이 재현하시는 것입니다.
거의 유사한 사건이죠. 예수님은 처음에도 이 때에도 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하셨어요.
밤새도록 잡았는데 잡지 못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단하고 피곤한 이 주자들에게 배 오른편에다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고 그 말씀 한마디 순종해서 던졌더니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겠죠.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를 다시 처음처럼 부르시는 것입니다.

너 나 처음 만날 때 모든 거 다 버리고 나를 따르지 않았니 그런데 이제 3년 반 동안 나를 따라다니면서 마음속에 여러 가지 잡된 생각, 그리고 형식으로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너는 나를 따라오지 못한 거야.
이제 다시 나를 따라오거라 하면서 베드로를 찾아 가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베드로의 인생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추웠기 때문에 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불을 쬐면서 여 종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똑같은 거의 유사한 상황을 연출하신다.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와 보니까 예수님께서 떡과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시장 한 그들을 위해서 음식 조찬을 준비하신 것이죠.

그리고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시고 그것을 구우셔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아침 식사를 대접하십니다.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시잖아요.
21장 15절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16절 예수님께서 또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7절 세 번째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모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면목 없어서 주님이 다 아시오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하고 고백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고백을 받으시고 예수님께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하고 세 번 자신의 양을 칠 것을 당부하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세 번 아까 말씀한 것처럼 완전한 수로 고백을 받으시기 위해서 또 하나 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에 세 번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으심으로 그의 마음속에 꽈리를 깨들고 있었던 죄송함, 면목 없음 꺼름직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이제 다 제거하시고 아 그래 내가 주님 사랑하는다는 고백 주님이 아시고 받으셨지 내가 예수님 세 번 부인한 거 이제 그거 얽매여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할까 봐 예수님께서 세 번 사랑한다는 고백을 이끌어내셨지 그래 나 이제 거기에 올무 잡히지 않고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께서 맡겨주신 양떼들 참 잘 돌봐야지 이렇게 하면서 나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처음 주님을 만난 때처럼 새 마음을 가지고 주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과거를 다 용서받고 이제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먹이는 일을 감당 했습니다.
설교를 제가 시작할 때 그런 말씀드렸잖아요. 왜 부활 선포 후에 이렇게 장엄한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어찌 보면 매우 사소하고 시시할 정도의 이런 당부를 하셨을까 제자들이 그리고 베드로가 갈릴리에서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처음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시 확인하고 나아가는 일은 우리 세상에 부활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고요.
아니 세상에 부활의 복음이 전해지려면 사람들이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가졌던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되고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시 확인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베드로와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 초대 교회가 생겨난 것이고요.

그리고 이 부활 복음이 로마를 정복하고 지금 전 세계로 확장되어 나가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는 말씀은 결코 사소하거나 시시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이 실패하는지 모릅니다.
말로는 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기는 하는데, 혹시 속으로는 제자들처럼 세상 욕심, 세상 영광을 구하는 것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지는 않을까요?
내가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지 세상을 따르는 것인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닌가

예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면서 사는 적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드러내기보다 신자인 거 숨기고 그냥 적당하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거 타협하면서 사는 거 많지 않습니까?
이 부활절에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가서 갈릴리로 예수님을 만나러 가라 하는 그 말씀 우리가 듣고 우리의 관리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저도 이제 예수님 처음 만날 때 성경 복음 특히 이제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체포 당하시고 조롱과 희롱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광경을 보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렇게 오셔서 내 대신 고난을 받으시다니 하면서 감사해서 울었고요.
그리고 예수님 믿지 말라고 압박을 가하는 우리 예수님 모르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울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다른 것 뭐 바랄 것이 있겠나 이렇게 생각했고요.

내가 신학교 갈 때 조금 그때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상한 그런 행동인데 제가 이제 학원을 할 때요.
그 학원을 인수하는 사람이 전화기도 좀 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신학교 가는데 전화기가 뭐가 필요 있냐고 그것도 그냥 줬어요.
그렇게 아무 사심 없이 예수님을 위해서 살리라 하고 이 길로 들어섰는데 이게 목회를 하면서 이런저런 상황에 적응하다가 보니까 내 마음속에 때 먼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를 발견해요.
겉으로는 목사고 주일이 되면 말씀 준비해서 전하고 그리고 성도들 권면하고 그럴듯한 목사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 하는데, 내 속마음으로부터 정말 사심 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있나 내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정말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저 세상에서 받을 영광 정말 크고 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 살고 있나 이렇게 되돌아보면 자신이 없을 때가 많아요.
어느새 이런저런 상황에 적응하다가요. 때도 많이 묻고요.
먼지도 많이 끼었어요.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를 향해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는 것이죠.
너 예수님 처음 만날 때 그 예수님 만난 감사와 감격으로 살았잖아 그래 하나님 나라 세워야 되겠다 하는 그냥 일편단심으로 모든 거 다 뒤로 하고 이 길 들어왔잖아 너 지금 어디 있는 거니 하고 물으시는 주님의 물으심 앞에 우리 자신을 거울처럼 되돌아보면서 주님 그래요.
제 안에 있는 때와 먼지들을 다 벗겨주시고 순전한 마음으로 주를 사랑하고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아니하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만을 소원합니다.
저 그렇게 가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가다가 주님 만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이 부활절에 여러분들의 갈리에게로 가셔서 우리 주님께서 너 처음 사랑 잊어버리지 않았니?

예수님을 향해서 다른 어떤 것 바라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그 소명 하나로 일어섰던 그때 너 그거 기억하니 우리 주님의 말씀 들으면서 처음 사랑 회복하시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기를 참으로 원하시는 처음 사명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그 주님 앞에 복된 사명 감당하면서 사시는 그런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사랑도 다시 일으키시려고 처음 예수님을 만날 때 했던 고백 다시금 부활하게 하시려고, 처음 예수님을 사심 없이 위해서 살겠다고 했던 그 사명의 고백 다시금 일으켜 주시려고 갈릴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자리에서 거울처럼 우리 영적인 형편을 우리 살펴보게 하시고 그릇된 것, 먼지 묻은 것, 떼 묻은 것, 흠과 뒤 다 내어버리고 그래요.
내게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아무런 사심 없이 믿고 사랑하고 따르렵니다.

내 영광 아니라 우리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렵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새롭게 예수님과 함께 믿음 생활을 시작하는 성도들 다 되도록 주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