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다윗을 닮지 않은 아비새… 삼하 19장 16-23절 …하광영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11. 10. 20:34
하광영 목사

 

 
251109말씀 다윗을 닮지 않은 아비새… 삼하 19장 16-23절 …하광영 목사

하나님 말씀 사무엘하 19장,

사무엘하 19장 16절부터 23절입니다. 자 우리 찾으셨으면 16절부터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앞에 엎드려 왕께 아르되 내 주여 원하건데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수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리라

고향에 온 것 같아요. 아 우리 오늘 저 서 장로님께서 아 자꾸 이렇게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익숙한 게 좋은 건데 신앙생활에서는 이게 위험한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아요.
그렇죠 예배 시간에 와 있어도 주일이 되니까 주일날 예배당에 나서려고 발걸음해서 가는 거 그게 이제 습관이 되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인데 그런데 습관적으로 예배드리다 보면 기대감 사모함도 없이 그냥 뭐 주일이 됐으니까 예배 시간이니까 와서 아무런 생각 없이 예배 드리다 보면 이 매너리즘에 빠지고요.
그러다 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도 듣지 못할 때가 많고 사모하는 마음 없이 그냥 예배 시간 때우고 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우리 장로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주일은 이건 하나님의 날이야 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오지만 그러나 마음은 이 익숙해지지 않도록 그래서 매일 새로운 은혜로 저를 치워주십시오.

오늘도 우리 이 목사님 통해서 저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설교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제 사무엘 상하 읽으면서 어 아비새 라고 하는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뚝 들어왔어요.
그래서 이 아비새 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하고 이제 성경을 쭉 찾아보니까요.
이 다윗에게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에요. 다윗의 혈통적으로는요.
조카예요. 역대상 2장에 보면 이새가 아들을 낳았는데 일곱째가 다윗이고요.
그리고 두 딸을 낳았는데 딸 하나가 스루야이고 그다음에 아비가일이라고 하는 딸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스루야의 아들이 셋인데 하나는 요압 아비새 아사엘 세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다윗에게는요. 누나의 이 아들들이니까 조카죠.
조카예요. 굉장히 가까운 그런 친척입니다. 혈통적으로만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요.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왕이 된 후에도 매우 가까이서 다윗과 함께 한 사람이었어요.

여러분 왕이 혹은 어떤 지도자가 막 오랜 기간 동안 어떤 사람을 자기 곁에 둔다 이렇게 할 때 그 사람이 믿을 만하기 때문에 두는 거죠.
실력이 있고 믿을 만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곁에 둡니다.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비새 였어요. 근데 이 사람이요.
성경을 찾아보니까 굉장한 장수였어요. 사무엘하 23장 13절에 보면 창을 가지고 혼자서 블레셋 군인 300명을 죽일 정도로 굉장한 장수였어요.
싸움을 너무 잘했어요. 근데 이게 혼자 싸움만 잘한 것이 아니라 군대를 잘 통설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잘 감당했어요.
군대를 이끄는 일에도 탁월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암몬하고 아람이라고 하는 두 군대가 이렇게 침공했을 때 요압이요.
군대를 둘로 나눠서 하나는 자기 휘하에 두고 하나는 아비새의 휘하에 두고, 두 군대가 암몬과 요압 따로따로 나가서 전쟁을 벌입니다.
그 정도로 이 아비새는 탁월한 장군이었죠.

압살롬 군대와 전쟁을 할 때에도 군대를 셋으로 나눴는데 하나는 요압이고 하나는 잇대라고 하는 사람이 또 하나는 아비새가 각각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을 벌일 정도로 이 사람은 탁월한 장군이었습니다.
이렇게 혼자도 굉장히 싸움을 잘하고 이 장군으로서의 역량도 탁월했는데, 그런데 이 사람이 늘 다윗 편에 서 있었어요.
여러분 사무엘 상 26장에 보면 다윗이 이제 이 다윗을 찾으려고 사울과 군대가 이제 막 왔는데, 사울하고 군대의 군인들이 이제 잠을 자고 있었어요.
다윗이 그 적진의 한가운데로 갈 때 사람들한테 누가 나하고 가겠느냐 하고 제안을 할 때 아비새가 제가 가겠습니다.
다윗하고 아비새가 가가지고 사울이 있는 곳까지 갑니다.
굉장히 용감한 장수고요. 그리고 다윗의 어떤 면에서는 경호대장이라고 할 정도로 다윗을 위해서는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사무엘하 21장 17절에 보면 블레셋의 거인 이스비브놉 이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이 아비새가 나가서 블레셋 장수를 쳐 죽이고 다윗을 구해냈습니다.
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이제 반란을 일으켜 가지고 그리고 이제 다윗이 이제 도망을 가잖아요.
그럴 때 다윗을 떠나서 압살롬 편으로 간 아히도벨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이 요압이나 아비새는 끝까지 다윗 편에 남았습니다.
이 아비새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도 왕이 된 후에도 그의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그를 위해서 싸우고 그를 보호하고 그를 도와서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는 데 아주 충성스러운 신하였고 장군이었고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비새를 보면서 이렇게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를 볼 수 있고요.
또 하나 야 이 아비새가 다윗 굉장히 가까운 지근거리의 최측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 할 정도로 다윗의 어떤 생각 어떤 사상 그의 하나님 경외에는 정말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성경 좀 읽을 텐데 사무엘 상 24장에 보면 우리가 이제 잘 아는 요새 이제 사무엘상도 읽고 사무엘 하도 읽잖아요.
24장에 보면 이 다윗하고 이제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굴 속에 숨어 있을 때 사울이 그를 추격하다가 아 굴 속으로 들어와서 아마 낮잠을 아마 청했던 것 같아요.
어떤 뭐 성경에는 뭐 뒤를 본다고 그러는데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되고 아마 이 너무 이렇게 뜨거운 대낮이니까 일사병도 참 위험이 있고 하니까 이제 굴 속으로 들어와서 잠시 쉬어야 되겠다 하고 이제 낮잠을 청했을 텐데 그때 이제 그 굴 안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숨어 있는 그곳으로 들어온 거죠.
그럴 때 24장 4절에 보면 다윗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입니다.
사울이 우리 손안에 왔습니다.

아 그랬는데 그 다윗이 그때 뭐 했냐 하면 살금살금 다가가서 사울의 옷자락을 겉옷자락을 조금 베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그리고는 6절에 보면 자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면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치지 못하게 합니다.
아마 이때도 이 다윗의 가까이에 요압이나 아비새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죠? 그리고 나서 말이에요. 사울이 갔습니다.
굴 밖으로 나갔어요. 다윗이 자기를 밝힙니다.
그리고 사울의 옷자락을 들어보이면서 여호와께서 당신을 내 손에 붙이셨지만 나는 내 손으로 당신을 해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여기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셔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보복하시겠지만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말씀드리죠.
사울이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감동했어요. 16절에 보면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7절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구나.
그러면서 뜻밖에 이런 이야기까지 해요. 20절에 보면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안다 이렇게까지 말해요.
그 이야기를 말이죠. 아비새도 그 옆에서 들었을 거예요.
야 사울을 직접 죽이지 않는데 이 겉옷자락만 밴 그것을 보고 저 원수 같은 사울이 마음에 감동을 해 가지고 소리를 높여 울면서 다윗을 축복하고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될 것, 그리고 그의 나라가 견고히 설 것까지 실토하는 그런 사울의 음성을 그가 들으면서 말이죠.

뭐 그 아비새만 그랬겠어요 그 옆에 있는 다윗의 사람들이 다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았을 거고 그렇죠.
두 번째 사무엘 상 26장 그런데 말이죠.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이 사울이 추격을 했어요.
군인들과 함께. 근데 추격하다가 이제 밤이 되어서 예 진을 치고 거기에 잠을 자고 있습니다.
누가 나하고 같이 내려가려냐 그랬더니 아비새가 같이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과 아비새가 그 진중으로 내려갔습니다.
사울과 아브넬과 군인들이 아주 곤히 잠자고 있었어요.
그때 아비새가 뭐라고 다윗에게 말하냐면 8절입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다.
뭐 창 휘두르는 일에는 대가잖아요. 한 번이면 끝납니다.
내가 그냥 사울 한 번에 땅에 박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 다윗이 아비새에게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10절.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오자.
그렇게 갑니다. 그리고 나서 저 산꼭대기 위로 올라가서 다윗이 또 사울에게 말하죠.
왜 나를 이렇게 추격하십니까? 그렇게 말하죠. 그렇게 말할 때 사울이 또 이렇게 대답합니다.
21절입니다.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 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야기를 다윗도 아비새도 다 들었습니다.
이걸 이렇게 보면 말이죠. 첫 번째, 이 사울이 이 굴에 들어왔을 때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잖아요.

그렇게 하면서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것, 그리고 멀리 가는 사울을 불러서 실상을 이야기하고, 사울이 그 다윗의 이야기를 듣고 소리를 높여 울면서 네가 나보다 의롭다 너는 이제 장차 왕이 될 것이다 하고 말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다 보고 들었으면서도 아비새는 깨달은 것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이제 또 아주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사울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죠.

세 번째 본문입니다. 사무엘하 16장 9절입니다.
사무엘하 16장 9절. 다윗이 왕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이 너무 황급해서 지금 신하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버려두고 도망을 갑니다.
도망을 갈 때 시무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다윗을 저주합니다.
이 16장 8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죠. 17절에 보면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면서 티끌을 날리면서 먼지를 날리면서 다윗을 저주합니다.
그럴 때 나선 사람이 또 누구예요? 아비새였어요.
여기 9절에 보면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이렇게 말합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주 왕을 저주하리까 청하건데,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내가 저거 단칼에 죽이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거죠.
그랬더니 다윗 왕이 이 아비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수루야의 아들들아 아마 아비새도 요압도 똑같이 씩씩대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시이니 내가 어찌 그리 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면서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렇게 다시 말합니다.
내 몸에서 낳은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피신을 갑니다. 그리고 이제 압살롬이 전사를 하죠.

그리고 이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합니다.
그것이 이제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19장 16절이에요.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옵니다.
와 가지고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서 이렇게 간청합니다.
19절 내 주여 원하건데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면서 자신을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럴 때 또 나선 사람이 누구예요? 아비새요 아비새는 잘 나서요.
이 저 자를 내가 단칼에 베어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거죠.
21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나이까 하고 씩씩대면서 죽이고 오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럴 때 다윗이 수루야의 아들들아 여기 이 아비새하고 똑같이 그런 이제 생각을 하고 말한 거죠.
네 앞장선 사람은 항상 아비새 에요.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오.
그러면서 시므이에게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를 돌려보냅니다.
근데 말이죠. 여기 굉장히 참 특이한 말이 있어요.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하고 시므이를 향해서 나의 원수라고 말하지 않고요.
아비새를 향해서 너희가 어찌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하고 책망하고 있는 거에요.
근데 우리 말은 말이죠. 원수라고 번역을 했지만 여러분 거기 1번 이렇게 돼 있어요.
그리고 제일 밑에 보면 뭐라고 돼 있죠? 성경 밑에 보면 사탄이라고 돼 있어요요  다윗이 한 말은 이런 거예요.
오늘 너희가 어찌 나의 사탄이 되느냐 하고 굉장히 엄중하게 책망한 거예요.

너무 너무 세니까 우리 말로 번역할 때 야 이거 그 정도로 번역해도 되나 해 가지고 그냥 원수라고 번역을 한 거예요.
근데 원래는 히브리 말로는 네가 어찌하여 오늘 나의 사탄이 되느냐 하고 말한 거죠.
우리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그랬잖아요.
베드로가 그러지 마십시오 하고 만류할 때 사탄아 책망하시면서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꼭 비슷해요.
다윗은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지금 압살롬의 군대는 패하고 다윗 자신이 이제 왕위로 다시 복귀하는 이런 복된 날 이럴 때 나를 저주하던 저 시므이를 죽임으로 이 나라를 다시 갈라서게 하는 거 그거 사탄이 하는 일이라는 거죠.
그는 비록 나를 저주했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서 나를 저주하신 것이니 나는 이 원통함 이 저주를 그냥 다 다 맞겠다 하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서 피신을 간 것이고요.
그것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에요.

자기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인 그 사건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므이를 통해서 책망하신 것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요.
시므이가 밉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이렇게 이스라엘을 하나로 봉합하고 갈라진 민심을 다시 하나로 묶는 이 복된 날 시므이를 죽여서 이스라엘을 다시 갈라서게 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이라고 그가 본 것이에요.
그래서 시므이는 그냥 살려두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다윗이 너무 정치적인 사람이어서 이때는 시므이를 용서했고, 정치적으로 입지를 위해서 나중에는 솔로몬 아들 솔로몬에게 시므이가 한 일을 잊지 말라고 하면서 그를 처단하라고 부탁한 것은 다윗이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건 성경을 좀 잘못 보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므이는 여기 이제 우리 19장에 본 것처럼 이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러 나올 때도 누구하고 같이 나왔냐 하면 베냐민 지파 천 명과 함께 나왔어요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런 영향이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이어서 아들 솔로몬이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때 이 하나님의 나라를 분열시키는 이 원인 중에 하나가 시므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그냥 평안히 백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한 것이죠.
여하간 이 아비새를 볼 때 그는 육신적으로 혈통적으로 보면 다윗의 최측근이었어요.
다윗을 위해서라면 생명도 아끼지 않고 위험을 감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도 왕이 된 후에도 반역이 일어난 와중에도 다윗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호위했던 가까운 사람이었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충성스러운 부하였고 동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에게 이렇게 세 번씩이나 책망을 들은 것을 보면 이 아비새는 다윗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이 사는 방식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고요.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는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비새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알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다윗은 다윗대로 있었고, 아비새는 계속 아비새대로 있었던 거죠.
가장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다윗의 하나님 경외 사람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세워가야 될지 하는 그런 사상과 생각들을 그는 거의 영향을 받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에게 충성은 했지만, 다윗의 마음이나 성품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를 닮아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던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아비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예수님을 40 몇 년 동안 이제 믿고 따라오는데 나는 그런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사상 잘 이해하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많이 닮아가는 사람인가 우리가 어떤 사람과 오래 살면요.
닮아가게 돼 있어요.

그렇죠 저하고 아내하고 지금 37년 함께 살았는데 사람들이 저하고 아내하고 굉장히 닮았다고 그래요.
얼굴도 닮고 말 제가 제가 보면 말투도 닮아가고요.
또 생각하는 거 이런 게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그러시죠?
닮아가요?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이죠.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그리스도를 우리가 그만큼 이해하고 있나 그리고 닮아가고 있나 이런 거 생각할 때 자신 있게 말을 못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그렇죠 나도 혹시 나는 나대로 있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계신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예수님의 사상이 내 사상이 되고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을 내가 인격 가운데 그대로 담아내는 그런 사람으로 점점 자라가고 있나 이런 거 생각하면 죄송스러울 때가 많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건 말이 안 되는 말이고요.
이상한 말이고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안 닮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모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 이 설교를 이렇게 마감하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크게 한 세 가지 얘기를 좀 하려고 그러는데 예수님은요.
하나님을 참 마음 다해 기뻐하고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하고 이렇게 사마리아에 가셔가지고 어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수가 무엇인지를 그에게 알려주시고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이제 제자들이 이렇게 양식을 사러 갔다 오잖아요.
그래서 여기 양식을 사 왔습니다. 예수님 이거 드십시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그 제자들이 놀랐어요.
무슨 양식을 누가 갖다 드렸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분은 하나님을 온 마음 다음에 기뻐하셨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의 일을 행하는 것, 그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분의 양식이었고 그분의 기쁨이었어요.

그러면 나는 예수님을 믿는 나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나는 예수님처럼 정말 그렇게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을 행하는 거 그의 일을 이루는 것을 정말 마음으로 좋아하고 그렇게 행하고 있나 나는 내 뜻, 내 계획, 내 비전을 이루는 거 그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 번째, 예수님은 마음 다 해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일생 3년을 기록해 주셨는데 이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마음 다해서 사랑하셨는지를 뭐 다양한 사건과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죠.
예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되 누구까지 원수까지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정말 원수까지 사랑하셨어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실 때 이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인과 하석들이 와서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가지고 막 휘두르는데 그러다가 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 사람 이름은 뭐죠? 말고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죠 말고 말고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을 보면 아마 이 사람이 나중에 초대교회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러지 않겠어요? 여러분 자기 귀가 떨어져 가지고요.

피는 철철 나고 귀는 떨어져 있는데 막 아파서 죽을 지경인데 예수님께서 칼을 휘두르는 베드로에게요.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고요.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하리라 하고 책망을 하시고는 그분이 친히 엎드려서 그 귀를 손으로 줏으셨겠죠.
그리고 그 피가 나는 그거 닦아주시고 그 귀를 맞춰주셨는데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 떨어진 귀를 맞히시니까요.
마치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고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말고라는 사람이 집에 돌아가서 아이 잘 됐다 하고 그냥 잤을까요?
가족들 다 모아놓고 야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아마 뭐 그 밤 꼬박 샜을지도 몰라요.
얘기하느냐고 그리고 잠잘 때 말이죠.

잠자다가 자기 귀를 막 만지면서 아 이 귀 그러면서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아 저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자기를 잡으러 온 원수 같은 나 그런데 귀 떨어진 거 그냥 지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귀를 다 만져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아마 이 사람은 그 예수님의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평생 잊지 못 했을거예요.
제가 대학 신학교 1학년 때 이렇게 합신에 들어갔어요.
이제 우리 지금이야. 아주 그 학교 앞으로 막 대로가 뚫려 가지고 곧바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날 예전에는 차에서 내려가지고 한 10분은 좀 걸어갔어요.
제가 이제 내려가지고 이제 걸어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이렇게 서더라고요.
우리 정말 우리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박윤선 목사님 그분이 그 당시에 이제 우리 학장이셨어요.
차를 세우시더니 아 타라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이제 탔어요.
그분이 차에 탔어요. 뒤에 탔더니 그분이 제 손을 이렇게 꼭 잡으시는데 전도사님 참 공부하느냐고 고생이 많으시죠?

이렇게 손을 잡는데요. 그 이 따뜻한 손길이 지금도 생각나는 것 같아요.
말고가 말이죠. 자기 귀를 붙여주시면서 자기 이 피 나는 그곳을 쓰다듬어 주시고 귀를 붙여주시던 예수님의 그 손길을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대적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저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고 원수 사랑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정말 원수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런 사랑 받은 원수 같은 사람이 변화됩니다.

마음 다해 사람을 사랑하셨던 예수님 나는 그 예수님 40년 동안 믿고 따른다고 하는데, 나는 사람 사랑하나 조그만 거 마음에 걸리는 거, 내 눈에 거슬리는 거 그것 때문에 저 사람 아예 내 시야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상종도 안 하고 그리고 마음속으로부터 아예 내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내 가까운 사람도 포용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거 얼마나 많은가 저런 놈은 미워해도 괜찮아 하면서 원수 계속 미워하는 것이 예수님 따라가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나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계시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내가 매일 닮아가고 있나 지난번에 제가 이 마이클 리브스의 예수님에 대한 그런 글을 한번 읽어드린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라고 하는 아주 정말 우리 지금도 생존해 계신 마이클 리브스라고 하는 영국의 역사학자인데 참 귀한 분인데 그분이 그 책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제 글을 썼는데요.
제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 많은 분들이 글을 썼는데 그중에서 타고난 어떤 글 중에 하나라고 생각이 들어서 잠깐 말씀드리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분이 그렇게 말했어요.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그분은 결코 따분하고 무기력한 분이 아니셨다.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분이셨다.
건강과 치유, 떡과 물고기, 그분이 계시는 곳에는 모든 것이 풍성했다.
예수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셨다.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났다. 남자, 여자, 아이들, 병자, 정신병자, 부자, 가난한 자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그분께로 이끌렸고, 그분의 옷깃에라도 닿고 싶어 했다.
여름보다 더 온화한 그분은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가 되셨고, 소망 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셨다.
부정하고 멸시받는 자들은 자신이 그분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분과 더불어 마셨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그분과 더불어 있는 것이 마치 결혼식에 신랑과 함께 있는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자하고도 다정한, 단단하고 더 확고한 그분의 모습은 항상 놀랍기 그지없었다.
사랑이 넘쳐나지만 감상적이지 않았다. 그분의 식견은 항상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분의 친절함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분은 참으로 비상해서 항상 주변 사람들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들은 그분은 남자답고 인간적이었지만 거칠지 않았다.
순전했지만 재미없고 따분하지 않았다. 진지하지만 위트가 넘쳤다.

그분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온 모든 자들의 허구를 잘린 유리보다도 더 날카롭게 드러내셨지만, 논쟁 자체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지는 않으셨다.
스스로 아무런 흠이 없었지만 지극히 겸손하셨다.
스스로에 대해 어떤 인간도 감히 할 수 없는 주장을 하셨지만, 거드름을 피우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성전을 뒤엎고 헤롯을 여우라고 하며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말에 거침이 없었지만, 그분의 생애를 읽어보면 그분의 사랑을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
그분은 광대한 마음으로 악을 미워하고 궁핍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분을 보면 여기에 진정 생명력 있는 사람, 누구보다도 활력이 넘치고 완전하며 인간적인 사람이 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예수님, 우리가 이 마이클 리브스가 묘사한 거 이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얼마나 힘 있고 활기 있고 아름답고 온화하고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시는 분인지 몰라요.

이런 성품을 우리가 닮아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한테 그런 얘기해요.
예수 믿었는데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거는 그 이상한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예수 믿었는데 극단적이고 막 뭐 사람들 저런 징그러운 인생이 있어 아 저런 사람은 뭐 저래 이렇게 할 수 없는 거예요.
예수 믿으면요. 정말 아름다운 인간이 되어 가는 거예요.

연탄기를 쓴 이철환이라고 하는 시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 힘들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거예요.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속으로 들어오는 거 정말 기적이잖아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요. 그게 눈에 딱 보여요.
그러니까 쉬워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안에 들어와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안에 들어온 사람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 더 힘들 수 있어요.
그냥 나 하나님 믿어 나 예수 믿는다고 그러면서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 그칠 가능성이 많아요.
아까 우리 장로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와서 교회 와서 그냥 뭐 예배드리고 예배 끝나면은 그냥 가고 그러면서 그게 그냥 하나님 안에 있는 거고 예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많다고요.

근데 우리는 그냥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고 나는 예수님 안에 있어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이 아름다운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그분의 성품이 내 인격 속에 담아지고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있고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정말 기쁘게 기뻐하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행하는 거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 자기의 양식인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거

사람들 내 옆에 있는 사람 또 우리 함께 있는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 예수 믿는 거를 거절하고 박해하고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손을 내밀고 긍휼히 여기면서 찾아가고 도와주고 세워주려고 하는 마음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거야요.
이렇게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나는 나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연합을 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아름답게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 원수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닮아서 원수 해소하고 사랑하고 축복하고 아름답게 세우는데 쓰임 받으며 살아가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주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다윗 가까이 있으면서도 다윗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지 몰랐던 아비새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 가까이 있는데 예수님의 마음도 헤아리고 예수님의 사람 사랑하는 것도 본받아가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성품을 내 인격에 장착해 가고 있는지 생각할 때 참 너무나도 거리가 멀고 그래서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신앙의 연조가 점점 늘어갈수록 예수님 성품 내 인격이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 사랑하는 모습이 나에게도 정착이 되고 사람들 마음 다해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저에게도 그대로 심어져서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냥 미워하는 마음, 시큰둥한 생각, 비판과 비난하는 태도로 대하지 아니하고 사람들 정말 긍휼히 여기고 찾아가고 세워주고 변화시키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도하는 사람,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도록 우리 모두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점점 신앙의 연조가 늘어갈수록 우리 예수님을 닮은 성도예요 하고 우리 주님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그렇게 칭찬 듣는 성도들 다 되도록 우리 모두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