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026말씀 은혜로 구원받은 목적 … 엡2:1-10 … 주희재 목사
하나님의 말씀 에베소서 2장 1절로 10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10절 말씀 한목소리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문은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니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목적.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 공로로 구원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신 그 목적대로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은혜로 은혜로 주신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또 놀라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살펴보겠습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로 3절 말씀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1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허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영적 죽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영적 죽음의 상태란 생명이란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포도나무에서 잘린 가지가 살아있는 듯하나 죽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죽어 있는 상태이기에 생명이신 하나님에 대해 전혀 반응할 수 없는 상태가 영적 죽음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죽어 영원한 죽음인 지옥에 가는 것이다.
인간이 생명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 곧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무엇을 합니까?
2절입니다.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했다는 것은 허물과 죄를 계속 지으며 살았다는 것이 예수님 믿지 않을 때 왜 계속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까?
죄를 짓도록 계속 유혹하는 세력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유혹하는 세력에 저항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겐 유혹하는 세력을 극복할 힘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믿는 자에게도 영향을 미쳐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우리를 죄 짓도록 유혹하는 원수는 셋이 있습니다.
3절에는 그것을 육체의 욕심이라, 2절에는 이 세상 풍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표현한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이 세 원수에 사로잡혀서 죄만 짓고 살았습니다.
3절.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어요.
하나님의 진노 심판을 받아서 죽어 지옥에 갈 운명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세상 이 세 원수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원의 소망도 없었어요.
그러면 구원의 소망이 없던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오늘 본문 4절과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7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풍성한 긍휼과 은혜, 그 큰 사랑 자비하심으로 구원받았어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의 자존심은 산산조각 납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이 방법밖에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지도 살펴보겠습니다.
5절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5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 살리심은 부활을 가리키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습니다.
이건 승천을 가리킵니다. 또 예수님 그래서 죽으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우리가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이 죽으실 때 예수님의 몸인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예수님의 몸인 우리도 함께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예수님의 몸인 우리도 함께 승천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때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이 되어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러한 일이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미래에도 일어나지만 이게 이미 과거에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일어났다는 표현입니다.
예수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 믿는 순간 영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고 예수님과 함께 승천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하나님 아들로서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얻었다는 것은 죽음에서 구원 얻어 부활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건져주신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의와 생명과 천국을 주시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해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오는 세대에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7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오는 세대에게 증언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는 세대는 바로 다음 세대요. 우리의 자녀들이요 청년들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증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부지런히 증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와 선교를 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해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구절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리라.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운이나 우리의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만 자랑하여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봉사를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다 보면 마치 공로로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건 대강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너무 철저하게 너무 진심으로 너무 열심히 충성스럽게 섬기는 사람 중에는 마치 자기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로 자기의 봉사로 공로로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우리는 깜짝 놀라서 회개해야 해요. 우리는 한순간도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로 구원받는 걸 잊지 않을 때 우리는 항상 겸손할 수 있고 하나님만 높일 수 있어요.
근데 우리가 너무 봉사를 열심히 하고 그것이 자기 의가 되면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교만해지고 마치 공로로 구원받은 것처럼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해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목적인데, 우리로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우리를 구원하여 재창조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해서임을 밝히고 있어습니다. 여기서 선한 일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일하기에 적합한 존재로 재창조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선한 일 행하기를 기대하시고 성경에서의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일일 때 선행이 됩니다.
사실 선행 중에 선행은 예배입니다.
봉사, 교재, 전도, 선교도 다 선행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선행이고, 문화 명령에 복종하는 것도 선행입니다.
각 직업 영역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도 선행입니다.
공의를 행하는 것 선행입니다. 근데 선한 일도 그 동기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선도 되고 악도 됩니다.
사람 보기에는 분명히 선인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드러내려고 자기 자랑하려고 예배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구제하면 이게 악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겸손히 예배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구제하면 선이 됩니다.
그건 다른 이웃을 사랑하고 구제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기가 나를 드러내려고 하면 그건 악이 돼요.
세상 사람 볼 때는 다 선이지만 하나님 볼 때 악이 되고, 그 동기가 하나님을 위한 사랑으로 할 때만이 그것은 선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은혜로 구원받은 목적대로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선만을 행하며 살 수 있습니까?
우리의 원수 셋을 멀리하고 우리의 원수 친구 셋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우리를 죄 짓도록 유혹하는 원수가 셋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로 선을 행하도록 이끌어주는 친구도 셋이 있어요.
우리를 죄짓게 하는 원수 셋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원수 셋은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 내부의 원수가 있습니다.
죄성입니다. 3절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여러 가지 본질상 진노의 자녀.
여기서 이 육체의 욕심은 여기서의 육체는 이 바디 우리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플레처 죄를 가리키는 겁니다.
죄성 부패한 인간성, 부패한 인간성은 자꾸 욕심을 부려서 우리로 우리를 죄 짓는 대로 끌고 갑니다.
성욕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정상적인 성욕은 경건한 자손을 태어나게 합니다.
부부 간의 사랑을 돈독하게 합니다. 결혼 관계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욕이 욕심으로 음란으로 음탕으로 흐르면 간음죄와 간통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는 자신을 파괴하고 부부관계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 외부에도 원수가 있습니다. 2절에 있는 이 세상 풍조,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적하는 세상 문화, 세상 가치관입니다.
세상 풍조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돈의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 세상 풍조입니다.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인식을 팽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하나님은 필요 없는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도둑질도 하고 사기도 치고, 살인도 하고 유괴도 하고 끊임없이 죄를 짓게 만들고, 이 세상 풍조 이 세상 유행은 자꾸만 죄를 이런 돈만이 아니라 음란과 여러 가지 모든 죄악들이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포장해서 우리로 죄를 용감하게 짓게 하는 것이 이 세상 풍조입니다.
셋째, 원수는 사단 마귀입니다. 2절 하반절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내부의 원수와 외부의 원수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가 바로 이 사단 마귀입니다.
내부의 부패한 인간성과 외부의 세상 풍조를 배우해서 사단이 조종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성을 자극하여 죄짓게 합니다. 세상 풍조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유행하도록 사단이 역사합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이고 살인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진짜 같은 거짓으로 유혹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진짜 같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범죄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진짜 같은 거짓말로 유혹해서 죄 짓게 합니다.
서로를 속이고 속게 만듭니다. 서로를 죽이고 죽게 만듭니다.
사탄의 목적은 우리로 계속 죄짓게 해서 지옥에까지 끌고 가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깨달은 제 경험입니다.
화를 낼까 말까 하는 작은 문제입니다. 아내에게 화가 조금 나는데 이걸 화를 내 마라 뭐 이런 정도의 문제인데 내가 화를 내자.
그리고 화를 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가 봤습니다.
화를 낼까 말까의 작은 문제인데도 일단 화를 내면 화를 계속 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그러면 또 화를 더 내게 되고 그러면 걷잡을 수 없이 더 화를 내라고 어떤 놈이 계속 저한테 속삭입니다.
그럼 더 화를 내고 근데 이 사실을 나중에 여러 번 화를 내면서 아내에게 화를 내고 싸우다가 깨달았습니다.
배후에서 사탄이 화를 낼까 말까의 작은 문제임에도 화를 한 번 냈더니 끊임없이 이놈이 부채질해서 더 화를 내게 하는 거야.
이것을 간파하고 저희 부부는 꽤 오래전부터 이런 별일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면 사단이 지금 우리 사이에서 이간질하고 있다라는 것을 깨닫고 휴전을 선포합니다.
여보 우리 오늘은 일단 싸우지 말자 이게 오늘은 이상하게 꼬인다 이게 이 말도 안 되게 우리가 마음이 상한다.
그러니까 오늘은 근데 이런 날이 보통 제가 이제 은퇴했지만 목회 한참 할 때 꼭 토요일 날 이런 일이 일어나 희한하게 우리 성도들 중에도 토요일 날 싸워가지고 교회 안 나오는 성도들 제가 종종 봐요.
기분 나쁘니까 교회도 안 가는 거 싸우고 교회 나오는 성도들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근데 싸우고 안 나오는 성도들은 미련한 성도죠. 근데 목회자라고 예외가 아니에요.
꼭 토요일 날 별것 다 하는 일로 싸우게 하는 게 사단이 그래서 저희는 특별히 토요일날 싸움이 생기면 휴전합니다.
일단 일단 미안하다. 일단 일단 잠정하고 예배드리고 싸우자 예배드리고 주일날 예배드리고 주일 오후에 하면 은혜 받고 싸우니까 이 대화가 잘 되고 웬만한 거는 넘어가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정말 사단은 우리 배우에서 별거 아닌 일로 우리를 싸우게 하고 심각하게 합니다.
우리로 선을 행하도록 이끌어주는 친구 셋은 누구입니까?
첫째 친구는 우리 안에 있는 새 성품입니다. 우리 본문은 아니지만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 보겠습니다.
4장 22절로 24절 한번 같이 읽습니다. 시작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
너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으로 중생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22절에 보면 옛 사람은 예수 믿기 전에 자아를 가리킵니다.
회심하기 이전에 내 전 존재를 가리킵니다. 24절 세 사람은 예수님 믿음으로 새로운 존재가 된 자아를 가리킵니다.
세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존재입니다.
의 진리의 거룩함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세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 살도록 하나님의 성품으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세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이 성품을 받았으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 안에는 새 성품이 있습니다.
새 성품은 우리로 선을 행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새 성품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 부패한 인간성과 대조되고 싸웁니다.
둘째 친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도록 행하며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성경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위로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로 17절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3장 16절로 17절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외워서 늘 마음에 새기면 좋은 말씀입니다.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 시작,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에게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기를 원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근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역할을 하기에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교훈합니다. 진리로 교훈합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교훈해 주세요.
그리고 그 교훈대로 순종하 되는 것이 있고 순종을 못하면 그것에 대해서 책망합니다.
말씀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교훈도 받게 되지만 아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근데 그렇게 살지 못했을 때 책망도 받게 되고 그리고 책망받은 것을 또 바르게 하도록 다시 성령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감동하시고 의로 교육한다는 것은 한 번 해서 안 되면 계속해서 훈련을 해서 될 때까지 훈련하는 것이 의로 교육합니다.
습관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면 그대로 순종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순종되다가 안 되다가 말다가 또 이러잖아요.
그럴 때 의료 교육 습관이 될 때까지 매일 아침 큐티 하는 것도 습관이 되면 너무 쉬워요.
예배하는 것도 습관이 되면 너무 쉽죠. 근데 습관이 되기까지 계속해서 훈련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의로 교육하는 거예요.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신 목적대로 선을 행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하고 성경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일주일의 첫날인 주일에 이렇게 예배로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또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함께 순종하자고 서로 다짐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서 예배로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십니다.
그러면 그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셔서 선을 행하게 하시고 우리의 인격이 점점 자라가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말씀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셋째 친구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다른 말씀 오늘 많이 인용하게 되는데,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입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
함께 읽습니다. 시작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습니다. 26절도 한번 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이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십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혼자 있을 때가 없다는 진리를 깊이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혼자 있어도 성령님과 교제하기에 외롭지가 않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도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다 보고 듣고 계십니다.
우리 생각까지도 다 아시고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깨닫게 하시니 성령님께서는 깨달은 말씀대로 행할 마음과 능력을 새 성품에 부어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 원수와 우리의 세 친구가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원수인 옛 속성 죄성과 친구인 새 속성 새 사람이 싸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옛 사람을 벗어 그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여전히 옛 속성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이거 싹 없앴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죠. 근데 있어요.
우리 안에 남아 있어요. 예수 믿기 전에는 옛 사람만의 옛 속성인 죄성밖에 없었어요.
그러기에 죄를 지을 망정 갈등이 없거나 적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죄를 지어도 뭐 별로 양심이 마비가 돼서 별로 죄의식이 없었어요.
나만 죄 짓나 다 죄 짓는데 그러고 그냥 같이 용감하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된 지금은 새 성품이 새롭게 생겼고 옛 성품도 남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예수 믿은 후에는 때로 심하게 갈등을 하게 돼요.
옛 사람과 옛 속성은 죄를 짓는 데 한마음이기 때문에 갈등이 적었는데, 이제 우리 안에 새 사람도 있고 새 성품도 있고 옛 성품도 있어서 이 두 성품이 싸웁니다.
그래서 죄와 관계되어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과 죄를 뿌리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싸우는 것이 사실은 예수 믿는 증거예요.
죄 앞에 두고 갈등이 없다. 너는 예수 안 믿는다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우리 안에서 끊임없는 싸움이 옛 사람과 새 사람, 새 속성과 새 성품과 옛 성품 사이에서 싸움이 있습니다.
또 원수인 세상, 풍성한 친구인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또 싸웁니다.
원수인 마귀와 친구인 성령님도 싸웁니다.
원수 마귀는 또 다른 원수 세상 풍조를 배후에서 조종해야 함으로 우리를 죄를 쉽게 짓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성경에서의 죄가 더 이상 죄가 아닌 분위기로 세상 풍조를 몰아갑니다.
요사이, 간음, 동성애 등이 죄가 아닌 것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원수 마귀는 사람들을 세상 풍조 유행을 따라 죄짓게 합니다.
원수 마귀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도 불화살을 쏘아서 죄를 짓게 하고 불화살을 쏜다는 게 우리 생각에 죄악된 생각이 나도록 자꾸만 사단이 생각을 넣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원수 마귀의 생각을 불화살로 우리의 생각에 계속 넣어주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넣어주는 겁니다. 야 너만 그렇게 산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냐?
너만 손해야 다른 사람 사는 대로 죄 짓고 살아 죄 짓는 재미 없이 무슨 재미로 사냐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적당히 음란도 즐기고 가늠도 몰래 행하면서 즐겁게 살아 이때 내 안에서 맞장구 치는 놈이 있는데 그놈이 바로 옛사람 죄성입니다.
옛 사람 이 죄성은 마귀의 이 불화살에 어떻게 반응하는 줄 압니까?
내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생각을 했지? 그래 맞아.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거짓말하고 적당히 없는 돈 즐기지 즐기고 회개하면 되잖아.
맞장구 치는 놈이 있다고 동시에 그러면 안 되지 하는 새 성품의 속삭임도 동시에 일어나죠.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죄짓게 하다가 지옥에까지 끌고 가는 것이 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내 친구 성령님은 또 다른 친구 성경을 읽고 깨닫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옛 속성의 반응에 따라 죄를 지으면 근심하시고,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읽은 말씀을 칼로 사용하여 마귀의 불화살을 잘라내시고 죄악된 생각, 마귀가 주는 생각이 날 때 말씀은 그것을 잘라내도록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성령님은 마귀가 넣어준 죄악된 생각을 버리도록 우리를 감동하시고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사 우리 마음에 심어주고자 감동하시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마음과 능력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고, 성령님은 지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끊어내도록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역사하시고 성령은 우리가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천국에까지 인도하기를 성령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성령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모습이 그대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로 32절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로 32절에는 마귀가 역사하는 내용과 성령님이 역사하는 내용이 막 교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같이 읽습니다. 25절부터 한번 읽어봅니다.
시작. 그런 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릎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기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라.
같은 이 본문 안에 마귀도 나오고 성령도 나옵니다.
마귀에 대해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말씀이 나오고,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사실은 마귀가 역사하는 때와 성령님이 역사하는 때를 교대로 여기서 하지 말라는 건 다 마귀가 하라는 거 하지 말라는 거고 하라는 건 성령님이 하라는 걸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계속해서 교대로 나와요.
그래서 25절에 보면 마귀는 거짓말하도록 이끌고 성령님은 참된 것을 말하도록 이끕니다.
그러니까 마귀는가 거짓으로 이끄니까 거짓을 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마귀가 주는 이 거짓은 버리고 성령님이 주시는 이 참된 것을 말하는 26편도 마찬가지예요.
마귀는 분을 내도록 우리를 이끌고, 성령님은 분을 내지 않도록 이끄시고, 마귀는 분을 풀지 않도록 이끌고, 성령님은 분을 내어도 분을 풀도록 이끄시고, 28절에 마귀는 도둑질 하도록 이끌고 성령님은 도둑질을 하지 않게 이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자기 손으로 일하여 가난한 자를 돕는 선행을 하도록 이끄시고, 29절에 마귀는 더러운 말을 하도록 이끌지만, 성령님은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는 선한 말을 하게 이끄십니다.
31절에 마귀는 모든 악독과 노안과 분쟁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과 모든 악의로 우리를 이끌지만, 성령님은 32절 서로 친절하며 서로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도록 이끄시고, 우리는 내가 어떻게 지금 반응하는 어떤 생각과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마귀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 너무나 분명한 거예요.
성령님께서는 새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 따라 행할 마음과 능력을 넣어주십니다 새 사람이 성령님이 넣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생각을 하게 되고, 말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선행이고,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반면에 마귀는 우리 안에 있는 옛 속성에게 세상 풍조를 따라 살 마음과 능력을 넣어줍니다.
우리 안에 옛 속성에 마귀가 넣어준 세상 풍조를 받아들이면 세상 풍조에 맞는 죄악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악행입니다.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을 거부하는 삶이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대로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느냐 아니면 악을 행하면서 사느냐는 우리의 선택이에요.
비록 성령님이 역사하고 마귀가 역사하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가 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를 구원하신 목적대로 선을 선택하며 살 수 있습니까?
바로 새 원수를 멀리하고 새 친구를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사이클과 선을 행하게 하는 사이클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인 옛 속성을 마귀가 세상 풍조를 자극할 때 옛 속성이 반응함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반면에 새 성품을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극할 때 새 성품이 반응하므로 선을 행하게 합니다.
새 성품을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계속 자극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악의 사이클은 점점 무너지고 선행의 사이클이 잘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새 원수를 멀리하고 새 친국을 가까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죄악의 사이클은 점점 무너지고 있고 선행의 사이클은 점점 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으로 돌아간 저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악순환을 끊고 선순환을 시작하려면 우리가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을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빌립보서 4장 5절에 보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근데 이거를 뭐 많이 읽었죠? 근데 여기 모든 사람 그래 모든 사람이 관용해야지 이게 모든 사람이 관용하려고 제가 굉장히 애를 썼어요.
근데 여기서 예외가 된 사람이 제 아내와 두 아이의 아들이었어요.
저는 제 아내와 제 아들 둘은 다른 사람보다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했습니다.
높은 수준의 요구가 현실에는 어떻게 나타나는 줄 아십니까?
아내에게 요구했던 것은 이제 세월이 가서 잊어버렸는데 아이들에게 했던 건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으로 생각돼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고 그 엄격한 기준을 어기면 때렸습니다.
거짓말하면 열 대 맞기, 싸우면 다섯 대 맞기 근데 문제는 싸울 때였어요.
뭐 거짓말을 그렇게 애들이 자주 하는 건 아닌데 싸우는 건 두 아들 놈이 매일 뭐 하루에 수십 번도 싸우는 거 같아요.
제가 볼 때 그러니까 제가 싸울 때마다 때렸어요. 싸우지 말라고 때린 거예요.
싸우지 말라고 근데 제가 집에 있는 날은 뭐 집에 자주 하루 종일 있는 건 아닌데 어쩌다 집에 하루 종일 있어 보면 두 놈이 얼마나 싸우는지 그때마다 제가 집요하게 때렸죠.
그냥 그러니까 하루에 엄청나게 때리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야 이거 애 때리다 잡겠네.
어느 날부터는 애들이 슬슬 날 피하는 거야. 그래도 싸움은 계속해.
근데 그 어간에 이 말씀을 읽은 거예요.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이 말씀을 읽었는데 그날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이 말씀이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이 말씀이 적용되는구나라는 거를 깨달은 거예요.
그때 그래 가지고 아 아내와 아이들도 내 관용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깜짝 놀라 가지고 이 아들에게 두 아들들에게 이제 관용을 베풀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 이제 그럼 이렇게 때리지 말고 뭘 뭔 뭐가 있을까 해서 벌 주는 걸로 싸울 때는 거짓말하면 여전히 때리지만 이 싸울 때는 내가 벌을 줘야 되겠다.
그래서 이 벽에다 손 대고 서는 벌을 개발했어요. 제가 그래서 한때는 그 벽이 새카맸어요.
얼마나 싸웠던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부터는 안 싸우던데 그 전에 얼마나 싸웠지 그래서 이제 벌로 때려야 하니까 이제 때릴 일이 없고 그리고 이제 때릴 일이 생겨도 때로는 아빠가 오늘은 특별히 용서한다 그러고 이제 안 때리고 어떤 때는 벌도 안 주고 막 이러면서 좀 관용을 베푸는 이제 그런 이제 아버지로 이제 변화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할 때 때로 그것이 분명히 적용하고 있었는데 부분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 온전하게 예외가 됐던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이것이 적용될 때 저도 좋고 아이도 좋은 그런 경험을 경험이 생각납니다.
정말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해 주신 목적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좋겠어요.
새 원수 내 안의 죄성 세상 풍조 사탄을 멀리함으로 죄를 멀리하게 해달라고 새 친구 내 안에 새 성품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을 가까이 함으로 선을 행하게 해달라고 이 악순환을 버리고, 이 선순환으로 우리의 삶이 살아갈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가 예수님 닮아가는 그런 성숙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같이 마음에 와닿는 말씀 붙잡고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가장 귀한 구원을 은혜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죄와 사망과 사탄과 지옥에서 건져주시고 의와 생명과 성령님과 천국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으셔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왕 노릇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 원수 곧 죄성 세상 풍조, 사탄을 멀리하고 새 친구 곧 새 성품 하나님 말씀 성령님을 가까이 하게 하소서 일주일의 첫날인 주일에 예배하며 말씀 들으며 교제함으로 세 친구를 가까이 하게 하소서 하루에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게 하소서, 사탄의 죄성과 세상 풍조를 자극하여 죄 짓도록 유혹할 때 즉시 감지하게 하소서 내조하시는 성령님께서 근심하실 때 즉시 눈치채고 회개하게 하소서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순종할 마음과 능력을 부어주실 때 단 마음으로 받아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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