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추수감사주일 보아스의 감사절 ... 룻기 2:8~16 ... 임형택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11. 17. 23:18
임형택 목사

 

 
추수감사주일 보아스의 감사절 ... 룻기 2:8~16 ... 임형택 목사

하나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룻기입니다.
룻기 2장 8절부터 16절까지입니다. 룻기 2장 8절부터 16절까지입니다.
구약 404쪽에 있습니다. 구약 성경 404쪽입니다.
룻기 2장 8절입니다. 제가 받들어 읽겠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게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언제나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에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르러 와서 떡을 먹으며 네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아멘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우리가 한 해 동안 받은 바 은혜를 헤아려 보면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저도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참 많다 감사하다 하는 생각을 몇 달 전부터 몇 번에 걸쳐서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도 한 번 그런 말씀드린 적이 기억이 납니다.
우리 성도들께서 우리 어른들께서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아 참 평안하시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한나 어른들도 그렇고 모세 어른들도 그러신 것 같아요.
특히 리브가 선교 회원들도 보면 벌써 여기저기 막 아프다고 하시고 또 막 수술도 하고 그러실 때시거든요.
그런데 제가 다른 분들 그 같은 연령대의 다른 분들하고 이렇게 비교를 해보면 참 안아푸신 것 같아요.
뭐 입원하신 분들 또 별로 없는 것 같고 또 가정사도 참 평안하시고 또 마음도 참 평안하시구나 저 이 생각이 들어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부임할 때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제가 부임할 때 그때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많으셨거든요.
근데 지금은 전체적으로 안정돼 있고 또 가정적으로도 평안하고 건강도 마음도 참 평안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신방하거나 대화할 때도 한마디 한마디 들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 이분도 이렇게 신앙이 자라가는구나 아 이 마음속에 믿음이 싹 트고 있구나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와 같이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가고 있는 것을 볼 때도 참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것은 참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성경 암송이에요. 요즘은 교회들이 성경 암송을 안 합니다.
근데 아직도 우리 교회가 성경 암송을 잘하는 것을 보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신앙 고백서도 저도 열심히 가르치려고 하지만 열심히 배워준 것을 보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대개 교리 신앙 고백 이런 것들을 잘 배우려고 하질 않거든요.

가르쳐주면 그거 어렵다고 생각하고 딱딱하다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거든요.
그런 점도 감사하고요. 얼마 전부터는 우리가 이제 예배 전에 지금 1부 예배가 9시 시작합니다마는 8시 40분부터 성경 읽기를 합니다.
장로님들께서 한 분씩 한 달씩 돌아가면서 성경을 먼저 한 절 읽고 또 우리가 함께 읽는 그런 시간을 갖고 있는데 아 이것도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2부 예배 때는요. 새생활교회도 함께 예배할 겁니다.
그래서 연합 예배가 될 거예요. 연합 예배 제가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새생활교회가 같이 예배하고 싶다고 해서 예배하기로 해서 그래서 그러면 기도는 새생활교회 장로님이 기도하세요 해서 새생활교회 장로님이 기도하시게 됐거든요.
근데요. 이렇게 교회가 우리 같은 식구로 교회를 섬기는 것은 평생에도 한 번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런 경우를 어디서 들어보셨습니까? 정말 들어보기 힘든 일이에요.

우리가 이처럼 새생활교회를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참 큰 은혜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마음 아픈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오늘 김경희 성도님 같이 동생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마는 어머니께서 이번에 별세하셨잖아요.
참 그렇게 어머니도 의지가 강하셨어요. 어머니가 그림도 참 잘 그리십니다.
아 정말 그림을 어떻게 여기서 배워서 그린 그림이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그림을 잘 그리실까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셨고 그 어머니께서 저희 교회를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나 숭신교회 가고 싶다.
숭신교회 가고 싶다. 그래서 그 투병하면서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부축을 받으면서 우리 교회 예배 오시곤 했었거든요.
그 어머니께서 별세하신 것이 참 마음이 굉장히 아프지만 또 그 아픔을 잘 이겨내고 또 하나님의 많은 위로 가운데 힘을 얻으시리라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병찬이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병찬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예배 중에 예배 드리다가 병찬이가 걸어 나갔잖아요.
저 왜 갑자기 성경 들고 싸들고 나간다나 속으로 그랬거든요.
알고 보니까 아버지가 밤새 돌아가신 거예요. 가서 누나가 이제 전화를 안 받으니까 집에 가서 보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지 병찬이가 얼마나 충격을 얼마나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근데 올해 병찬이 예쁜 딸이 태어났잖아요. 그 딸이 세례도 받았잖아요.
그 딸 때문에 병찬이가 아픔을 잘 이기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생각하면 참 감사하고요. 그리고 신종 코로나 이후에 참 우리 교회도 새로 나오신 분들이 많지가 않아요.
다른 교회 다 다 그렇습니다만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올해 우리 고유경 집사님 어머니 오늘 우리 교회 나오시고 꾸준히 교회 나오시잖아요.
오늘 아버지께도 함께 교회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성재도 그렇습니다. 성재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회를 안 나오는 거예요.
취업을 했는데 제가 속으로 이 자식이 왜 이렇게 교회를 안 나온다냐 한 번씩 생각하면 좀 화가 났거든요.
근데 성재가 예수 믿는 아내를 만난 거예요. 그리고는 교회를 잘 나옵니다.
아주 코가 꿰었어요. 얼마나 잘 나오는지요 그래서 성재의 부부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 참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그러셔야 됩니다. 여러분 또 자녀들을 혼인시킬 때 예수 믿는 며느리 예수 믿는 사위를 보시면은요.
믿음이 좀 없어도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어요.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서태석 장로님과 이종숙 권사님 연세가 올해 서 장로님이 아흔이시거든요.
건장하세요. 허리도 꿋꿋하시고요. 아주 예배 안 빠지고 잘 나오십니다.
얼마나 힘이 되는지 근데 서 장로님이 큰일 하나 하셨습니다.
구영남 성도님께서 그날 아침 약을 안 드시고 오셔 가지고 예배 중에 쓰러지셨잖아요.

근데 서 장로님이 직감적으로 딱 볼 때 아 저분은 나하고 똑같은 병이구나 싶어서 자기 몸에 목걸이를 걸고 다니던 약을 빼서 구영남 성도 이 혀 밑에 혓바닥 밑에다가 딱 세 알을 넣어줬는데 그래 소생한 거예요.
예배 중에 한 분이 돌아가시는 이런 또 참 놀라운 일을 겪을 뻔했는데 또 그렇게 해서 소생을 했습니다.
그런 것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나봉준 성도님도 그동안에 1년에 한 번 정도 이렇게 나오셨는데 올해는 안 빠지고 잘 나오십니다.
얼마 전에는 저보고 목사님 저도 성경 퀴즈 하겠습니다.
성경 퀴즈 보내주세요.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자기 친구 한 분을을 전도행사에 데리고 오겠답니다.
야 참 나봉준 성도님이 이렇게 믿음의 생활 잘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한 일이오 우리가 헤아려 보면 더 많은 감사한 일이 있어요.
참 감사한 일이 많은데 정말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안 해본 일인데 이 시간에는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 한번 돌리겠습니다.
박수를 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감사한 일이에요.
올해도 이렇게 풍성했는데 내년에도 우리 하나님이 이에 복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이니까 절기를 맞이해서 절기에 감사를 드려야 되거든요.
하지만 절기의 감사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요.
일상의 감사예요. 일상에 생활을 돌아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절기 때 한 번 감사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걸.
근데 일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또한 절기 때도 하나님 은혜를 헤아려 보면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일상의 감사가 중요합니다. 일상의 감사라고 하는 것은요.
소소한 일에 대한 감사이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소소한 일에 매사에 감사하는 것 일상의 감사는요.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것은요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늘 감사하면서 사는 거예요.

일상의 감사는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감사하며 살지 않으면 어떨까요? 감사하지 않으면 더 잘 살까요?
감사하지 않으면서 긍정적으로 살거나 걱정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하지요 감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사에 일희일비하기가 쉬워요.
근데 일희 할 일보다 일비 할 일이 더 많은 거예요.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 삶이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상에 감사하지 않으면요. 기쁘게 살기보다는 걱정하며 살기가 쉽습니다.
삶을 우울하게 살기가 쉽고요. 불평과 원망하며 살기가 쉬워요.
그렇게 되면 마음이 삐뚤어지고 삶이 삐뚤어지는 거 이게 중요한 것이죠.
마음도 삐뚤어지고 삶도 삐뚤어지기가 쉬운 겁니다.
자기는 잘 살겠다고 하는데 잘 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살펴봐야 됩니다.

자기 입에서 어떤 말이 많이 나오는지, 감사하는 말이 많이 나오는지 아니면 불평이나 걱정하는 말이 많이 나오는지 살펴보고 자기 삶을 살펴보면 그게 일치가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은 매사에 일상에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잘 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들에게 부어 주지 않으시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러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보면 알 수가 있어요.
불평이 많으면 주변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힘들어해요.
걱정이 많고 부정적인 말을 잘하면 옆에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같이 있고 싶지가 않아. 왜냐하면 자기마저도 힘들어지거든요.
자기가 불평하는 것은 아닌데 남이 불평하는데 그 말을 듣는 동안에 자기마저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지는 거야.
그래서 근심 잘하는 사람, 불평이 많은 사람 부정적인 사람 그런 사람 곁에는요.
사람이 있기가 힘든 거예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요. 설령 한 번씩 불평이 생길지라도 걱정거리가 생길지라도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감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마음을 새롭게 하거든요.
몇 해 전에도 설교 시간에 그런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만 요즘엔 감사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연구를 많이 해요.
그래서 감사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연구하신 분들의 연구 논문들을 보면 감사의 말을 하고 감사의 마음 품을 때 우리 뇌에서도요.
좋은 호르몬이 많이 나온다는 그래서 마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 같은 생각을 새롭게 만드는 것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요. 삶을 잘 살게 되고 신앙적으로도 굉장히 유익하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죠.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됩니다마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자기를 한번 살펴보고 내가 감사의 말을 잘하는지 불평의 말을 잘하는지, 내가 원망의 말을 잘 하는지, 감사의 말을 잘하는지 내가 염려하는 말을 잘 하는지 감사하는 말을 잘하는지 한번 살펴보셔야 됩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한번 새롭게 좀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감사의 말을 하자 자기를 도전하는 거예요. 제 주변에 제가 알고 있는 몇몇 분은요.
감사 일기를 씁니다. 어떤 분은 다섯 권을 썼다.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겠어요.
이제 감사 일기를 썼는데 늘 오늘은 이것이 감사였다.
오늘은 감사 이게 감사 감사 일기를 쓴답니다. 그래서 이다음에 이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겠다고 그렇게 말씀하는 분도 봤어요.
자기를 바꿔 나가는 실은 그분 중에 한 분이 제 친구거든요.
친구인데 그 친구 굉장히 예민해요.

옛면에서 교회에서나 어디서 같이 이렇게 잘 지내는 게 쉽지가 않은데도 그런데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다 보니 살면 잘 살아요.
참 부부가 잘 삽니다. 그만큼 감사하고 사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이번 감사제를 통해서 우리도 감사하는 사람으로 이것은 성숙한 변화거든요.
이 성숙한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본문은요. 맥추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맥추절은 보리와 밀 추수를 시작하면서 짓기 시작해서 마치고 다 같이 모여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맥주절은요. 보리 밀보다 보리 추수가 먼저 빠르거든요.
한 달 정도 그래서 보리 이삭을 한 움큼 딱 베면 그 첫 번째 보리 이삭을 성전을 갖다가 하나님 앞에 바치는 거예요.
그 첫 번째 이삭을 바친다 그래서 다른 말로 초실절 첫 번째 열매를 드린다 해서 초실절 이런 말을 쓰기도 하는 겁니다.

맥추절은요. 추수 감사절이지만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단지 추수감사의 의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자기들이 종 노릇했던 일들, 애굽에서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던가를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는 거예요.
이게 종교 의식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컬트라고 하는 것이죠.
자기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던가 그 비참한 세월을 어떻게 견뎌 왔던가 이것을 다시 한 번 회고하면서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게 하는 절기가 맥주절입니다.
근데 우리의 추수감사절에는 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감사절 의미만 있는 거예요. 본문의 주인공은 룻입니다.
룻은 남편이 죽은 후에 시어머니의 나오미를 따라서 이스라엘 땅으로 왔거든요.
그 나오미의 시아버지와 남편과 동생 그 네 가족이요.
자기들이 살던 땅 베들레햄이 너무 흉년이 심해서 좀 잘 살아보겠다고 잘 살아보겠다고 이방인의 땅 모압 땅으로 이주해 갔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남편도 죽고 시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시동생 다 죽은 거예요.
남은 게 새 과부가 남은 것이지요. 내 손 밑에 동서는 떠나가고 이 룻이 자기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를 따라서 돌아온 겁니다.
남편의 고향으로 그전에 시어머니께서 야 돌아가라 너희 친정으로 돌아가라.
친정으로 돌아가라. 너희 너무 젊다. 친정에 가거라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아니라는 거예요.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르겠다면서 시어머니를 따라서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온 거야.
돌아왔을 때 그때가 이제 막 맥추절 절기가 시작이 되고 있었던 거예요.
다시 말해서 보리 추수가 시작이 된 겁니다. 사람들이 추수한다고 얼마나 흥겨워했겠습니까?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돌아오는데 그런 모습이 눈에 비칩니다.
서글프지 않았을까요? 비참하지 않았을까요? 흉년을 피해서 잘 살아보겠다고 모든 가산을 정리해서 모합땅으로 갔는데 거기서 남편도 시동생도 시아버지도 다 돌아가셨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라서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다 추수한다고 그냥 잔치 분위기예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처지가 초라하고 비참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몇몇 단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그때 당시에 생계조차 막막했습니다.
땅도 없습니다. 이제 돌아왔는데 먹을 게 어디가 있겠어요?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 시어머니를 모셔두고 집에 모셔놓고 자기는 남들이 추수하는데 그 밭에 가서 바로 땅에 떨어지는 이삭을 주우러 간 거야.
그 주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이삭을 주러 갔는데 마침 밭주인 보아스가 추수하는 모습을 보려고 그 밭에 나온 겁니다.
나와서 보니까 못보던 여인이 있는 거예요. 베들레 사람들 얼마 되지가 않아서 다 압니다.
아는데 못 보던 여인이에요. 종들에게 저 여인이 누구냐 물어보니 그가 바로 나오미의 며느리 그 모압 여인이라는 겁니다.
바로 룻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룻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듣고 있었거든요.

그가 얼마나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런데 그 룻이 자기 밭에 와서 이삭을 줍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른 거예요. 불러서 룻에게 다른 밭에 가서 줍지 말고 내 밭에서 주어라.
다른 소년들이 옮겨가도 또 그 밭에 가서 줍고 그게 내 밭이라는 것이죠.
또 식사할 때도 자기네 빵을 같이 먹게 했어요. 물도 자기 종들이 길러온 것을 같이 먹게 하고 그러면서 종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합니다.
오히려 말입니다. 종들에게 추수하면서 한 움큼씩 흘리게 했습니다.
더 많이 편히 주어가도록 여러분 우리 옛날 추수 때 그런 추수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주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근데 이런 경험은 있어요.
추수가 다 끝났어요. 끝났는데 그런데 학교에서 이삭 줍기를 하는 거예요.
전교생을 동원해 가지고 논밭에 돌아다니면서 땅에 떨어진 석을 막 죽게 만든 거야.

전교생이 주어왔는데 얼마나 많았는고하니 아마 제 기억은 우리 예배당 반 정도는 채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이 주었어요. 그런데 그거 주어 가면은 주인들이 좋아하겠어요?
좋아하지 않죠? 근데 보아스는 다른 밭에 가지 말고 내 밭에서 주워라.
여기 출구가 다 끝나면 옮겨갈 것인데 소년들을 따라가서 또 거기서 주어라.
소년들에게도 그냥 하나도 흘리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한 움큼씩 뽑아서 흘려라 필요한 것이죠.
룻은요. 그 일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너무 위로가 되고 그 말이 힘이 됐어요.
그래서 엎드려 절을 하면서 나에게 참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을 해 주셨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룻기 2장 10절에 보면 그때 이런 말로 표현합니다.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십니까?
유대인들은 율법은 그렇게 못하게 돼 있는데도 이방인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거든요.

근데 자기가 거부당하기 쉬운 이방 여인인데 어떻게 제게 저 같은 이방 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감격스러운 것이지 고마운 거죠. 13절에 보면 또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 하나와 같지도 못하오나 당신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위로가 됐으면 이렇게 말했겠어요

이런 말씀 볼 때 룻이 그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보아스의 말에 룻은 가슴이 먹먹해졌던 게 틀림이 없습니다.
보아스가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게 해요.
그만큼 자상하게 친절을 베푼 거죠. 만약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위로와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도요. 그동안의 아픔과 서러움에 북받쳐 올라와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매이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 있었죠. 너무 고마워서 너무 감격스러워서 이게 보아스의 감사절입니다.
이게 보아스가 감사절에 했던 일이에요. 그는 말로만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실천적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방 여인이라고 멸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더 많이 주어가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런 게 진짜 감사절 아니겠어요? 오늘 감사절이라 지난주와 똑같은 예배 한 번 또 드렸다.
감사절 써 붙여놓고 그걸로 충분히 감사적 예배가 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감사한지도 모르는데 감사해서 베풀지도 모르는데

보아스 처럼 그렇게 해야 됩니다. 한 해 동안 받은 바 은혜를 안다면 그렇게 베풀기도 해야 되는 거.
왜냐하면은 그렇게 하는 것이 감사절의 중요한 정신이기 때문이에요.
감사절에는 추수할 때는 누가 제일로 기쁠까요? 땅 주인이 밭 주인이 제일로 좋겠지 또요.
일하는 일꾼들이 좋겠지 그러면 밭도 없고 수확할 것이 없는 사람은요.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런데 감사절에는 그들도 함께 기뻐하게 하셨어요.
그들도 함께 기뻐하게 하는 것이 뭐겠습니까? 이삭을 줍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그들도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보아스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게 감사절이지요. 이게 물도 같이 마시게 하고 떡도 같이 먹게 하고 더 흘려서 더 많이 주어가게 하고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것 그것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에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대신해서 위로하는 것이고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죠.

올해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헌금을 합니다.
그 헌금을 어려운 교회와 어려운 목회자를 돕는 데 전액을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예요.
그게 감사절을 지키는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해야 돼요.
받은 바 은혜가 크다면 또 그것을 베풀 줄도 알아야 됩니다.
보아스와 같이 그렇게 함으로 감사절에 감사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죠.
위에 보아스는요. 기업 무르기 법 구약에만 적용된 법인데 기업 무르기 법에 따라서 룻과 혼인했습니다.
기업 무르기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의무인데 그중에 하나가 죽은 형제가 자기 형제가 죽게 되면 그 형제의 부인을 순서에 따라서 그 순서 의무가 있는 첫 번째 순서자가 자기 아내로 맞이해 주는 거야.
그리고 첫 번째 의무자가 그것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면은 두 번째 이행자가 의무자가 그것을 이행을 해야 되는 거야.

알고 보면 우리나라도요. 고구려 때에 그런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형사 취수제라고 했는데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제도였죠.
알고 보니 보아스는 룻의 친척이어서 룻을 아내로 맞이해야 될 두 번째 의무자였어요.
첫 번째 의무자가 그걸 이행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불명예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 할 때는 신발을 벗어 던지거든요.
그래서 저놈은 신발을 벗은 놈이다 이런 별명이 붙어요.
불명예지요.

이런 경우 죽은 자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은 재산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손해도 감수해야 됩니다.
또 하나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요. 자기 아들이 안 돼요.
죽은 자의 이름을 이어주도록 양자로 보내줘야 됩니다.
그러니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안 하려고 하지 이 첫 번째 의무 이행자도 그래서 포기한 거예요.
난 안 하겠다. 신발을 벗어버렸어요. 그래서 보아스가 그 의무 두 번째 의무자로서 룻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지금의 우리의 관습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 의무를 이행했다는 점에서 잘한 일일까요?
못한 일일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보셨을까요? 하나님이 잘했다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잘못했다고 하셨을까요? 기업을 무르는 것은 구약의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잘한 일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행한 일이에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잘했다고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잘했다고 잘한 것이지요.

그래서요. 룻기가 길지가 않은데 룻기가  끝날 때 그 보아스의 족보 몇 절로 딱 마무리가 됩니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서 어떻게 행복했는지를 말하고 있지만 그 얘기를 끝을 내지 않고 그 나머지에 보아스가 오벳을 낳았고, 오벳이 이세를 낳았고 이세가 누구로 낳았을까요?
이세의 아들이 누굽니까? 다윗이에요. 보아스가 오벳을 낳았고 오베이 이세를 낳았고 이세가 다윗을 낳았어요.
근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다고 하는 정황을 볼 때 다윗이 왕이 아니었더라면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내용을 기록했을까요?
기록하지 않죠. 왜 보아스의 자손 가운데 다윗이 나왔다 하는 것을 왜 기록하고 여기에 끝냈을까요?
다윗 밑으로는 나오지도 않아요. 다윗이 났다 하고 딱 거기서 끝납니다.
왜 이렇게 룻기를 매듭을 지었을까요? 보세요. 4장 21절부터 22절까지인데 한번 보고 우리가 나머지 설교를 듣겠습니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다윗은 성군입니다. 성군이에요. 하나님 백성의 왕으로서 가장 유명한 왕이에요.
심지어 다윗의 계보를 통해서 누가 오십니까?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오세요 어느 날 보니까 오베스가 왕의 할아버지가 돼 있는 거예요.
어느 날 보니까 육신으로는 메시아의 할아버지가 돼 있는 거예요.
이게 우연일까요? 우연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일일까요?
까닭 없이 이렇게 됐을까요? 성경에 까닭 없이 이렇게 써놨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이 보아스에게 어떻게 복을 주셨는가를 암시하는 대목이죠.
단소예요.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축복하신 것이지요.
보아스의 자손들을 축복하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가문인데, 근데 그 가문에서 다윗 왕이 나오고 보니까 너무나 유명한 가문이 돼버린 거야.
그 가문에서 육신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고 보니까 너무너무 유명한 가문이 되어버린 가문의 영광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보아스와 같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하나님이 그 일을 얼마나 기뻐하신 일인지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 일이 언제 있었던 일이라고요? 맥추절에 있었다는 얘기예요.
감사절 절기에 있었다는 얘기예요. 그는 감사절을 이렇게 지켰고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고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자손 중에 다윗이 나왔다고 우리의 감사가 이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감사절이 이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복을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한 해 동안 받은 바 은혜를 헤아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잠시 묵상하면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오늘 감사절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하나님 보아스의 감사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새겨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힘든 시간이 많은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 정말 놀라운 은혜를 받고 살고 있음을 잘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면서 감사하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특별히 절기를 맞이해서 이 절기에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줄 알게 하시되 하나님 우리 일상에서 늘 감사하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