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우리(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 엡 2:11-22 …. 주희재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11. 23. 22:04
주희재 목사

 

 
251123말씀 우리(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 엡 2:11-22 …. 주희재 목사

하나님의 말씀 에베소서 2장 11절로 22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1절로 22절 말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오, 손으로는 육체의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은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그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화를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는 외인도 아니오 나그네도 아니오,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오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겠습니다.
우리 새생활교회 우리 성도님들 축하드립니다. 우리 예배당도 새로 마련하고 또 박주동 목사님을 또 담임 목사님으로 이렇게 모시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새생활교회에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혹은 아주 드물게 두 번 이렇게 오면서 제 아내에게도 고백했지만 참 제가 너무 많은 은혜를 받고 여러분들에게 도전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주일에 개인 구원과 성화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또 교회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까?
2장 전반부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2장 후반부는 공동체 교회에 초점을 맞춘 그런 말씀입니다.
먼저 교회 탄생 이전의 이방인 모습, 바로 우리가 예수 믿기 전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1절과 12절인데요.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오, 손으로는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여기에 유대인과 이방인을 비교하면서 기록되어 있죠.
여기서 너희는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 신자들이 예수님 믿기 전에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과 비교하여 이방인의 비참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먼저 11절에 보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 표로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곧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었어요.
반면에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기록합니까?
11절에 이방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에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12절에서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 제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뭐라고 표현하냐면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었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는 예수 믿기 전에 이런 비참한 이방인의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13절로 18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의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심으로 교회를 창조하셨어요.
13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여기 보면 원수 된 것이 14절과 16절에 두 번 나옵니다.
근데 그 대상이 다릅니다. 먼저 14절에 원수 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 된 것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의식이 너무 강해서 이방인을 개로 여겼습니다.
심지어는 지옥에 땔감이라고까지 말했어. 이러한 유대인들을 이방인들은 당연히 싫어했습니다.
원수 관계인 유대인과 이방인을 누가 화평하게 했습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찬양도 했는데 그는 그는 예수님이죠.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유대인 모든 사람들의 화평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평하게 하셨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원수 관계를 어떻게 화평하게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원수 관계를 청산하셨습니다.
근데 원수 관계를 청산하신 정도가 아니라 그 둘을 화목하게 해서 하나 되게 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끼리의 수평적인 화평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근데 16절에 원수 된 것 그것은 문맥으로 보면 하나님과 사람들이 원수 된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원수 관계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청산하셨습니다.
원수 관계를 청산하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수직적인 화평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수직적인 화평, 또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 수평적인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화평보다 사람들과의 화평보다 하나님과 화평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화평보다 사람들 간의 화평을 먼저 다룹니다.

이는 하나님과 화평 못지않게 사람들끼리의 화평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로 24절 말씀 제가 읽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재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그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재물을 드리고 예배드리는 것과 형제와 화목한 것이 그렇게 밀접하다는 거예요.
형제들과 화목하지 않고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오늘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형제에게 잘못하고도 하나님께만 죄를 고백하며 용서, 잘못한 사람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못한 형제에게 잘못하고 모른 척하고 있으면 그 형제와 원수 관계가 됩니다.
원수 관계는 죄를 짓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고 화해하지 않으면 시작됩니다.

죄를 거듭 짓고 큰 죄를 지을수록 원수 관계는 점점 더 심각해집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 가족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여 결혼한 부부가 이혼하게 되는 것은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원수가 되어 죽어도 장례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고 용서 구하지 않으면 원수가 되는 것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죄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으며 깨닫는 즉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또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용서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가 원수 갚지 않고 용서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원수였던 우리를 희생적인 사랑으로 먼저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용서할 때,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그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 받은 그 희생적인 사랑으로 희생하고 손해 보아야 용서할 수 있어요.

용서하기 힘든 이유는 내가 희생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부부 간에 가족끼리 용서가 안 되니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혼도 하고 별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원수 관계를 청산하셨으면 우리는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원수가 없어야 합니다. 원수가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므로 원수를 없애라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내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 사랑이 아닌 예수님께 받은 그 사랑으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사랑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내 사랑으로는 용서할 수도 없지만, 예수님께 받은 사랑으로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부부 간에 부모, 자녀 간에 잘못했을 때 서로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용서하고 싶지 않을 때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의 그 근거는 내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희생적인 사랑으로만이 용서가 가능합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이 용서해 주셨는데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어야만 나 자신도 살게 됩니다.
죄 고백하고 용서한 후에는 하나님께 함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남편을, 아내를, 자녀를, 부모를 용서한다고 용서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용서하셔야 진정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 간의 교회, 가족 간에도, 또 직장 동료나 직장 상사나 부하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잘못하고도 자기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용서하고 싶지 않습니다. 원수 갚고 싶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부당한 재판을 한 사람들, 바로 산헤드린 공회원들, 또 본디오 빌라도를 용서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군병들, 제사장들, 지나가는 사람들,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조차 용서했습니다.
자기가 잘못하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기가 잘못한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용서하고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너무나 잘 하는 말씀이에요.
십자가상에서 하신 기도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용서하셨기에 아버지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서 억울해도 이런 일반적인 일방적인 용서를 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 중에도 그런 분이 있고 우리에게 정말 잘못하고도 전혀 용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떳떳하고 오히려 내가 뭐 잘못했냐 그리고 니가 잘못했다고 이렇게 덮어 씌우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용서했어요.
그리고 아버지께 용서를 부탁해요. 바로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예수님께 받은 사랑으로 우리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용서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하는 기도를 드릴 때만이 우리 안에 있는 그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고 분노가 가라앉고 또 우리가 성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하지 못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처와 분노 속에 평생을 더 억울하게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신 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원수 갚으려고 평생을 허비하지 않도록 죄악 속에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원수를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본문에 근거해서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정체성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우리가 곧 교회인데, 우리 곧 우리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 곧 교회는 새로운 인류 공동체입니다. 15절 하반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여기 한 새사람을 지었다 그랬습니다.
이 한 새사람은 새로운 사람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창조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새로운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집단입니다.
새로운 사람은 바로 새로운 인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 공동체 교회를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에베소에서 계속 우리가 말씀 보면서 살펴봤죠.
예수님 안에서 만물을 통일하는 것이 새로운 인류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만물의 통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 공동체의 교회가 만물을 통일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 공동체 교회를 만드신 방법에 그 비결이 나타나 있습니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는 방법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원수 관계를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시는 희생을 통해 청산하셨어요.
새로운 인류 공동체 교회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원수 관계를 청산해 가야 하나님께서 원수인 우리를 희생적으로 사랑하셨듯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거죠.
그러면 원수 관계가 청산됩니다. 원수 관계만 청산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원수 관계 청산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들도 새로운 인류의 편입되어 새로운 인류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전도와 선교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이웃들, 나라들을 향해 복음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친척이나 이웃들을 이 시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우리 이웃들, 친척들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며 전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희생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원수 관계가 청생될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새로운 인류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인류 공동체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만물을 예수님 안에서 통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인류 공동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곧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우리 곧 교회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19절입니다. 하반절에 보면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여기서 성도들은 구약 성도들, 유대인 성도들, 하나님 나라 백성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바로 새로운 하나님 나라, 새로운 하나님 백성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소유한 백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특권이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시민권 가진 자가 특권을 누린 것에 비유할 수 있고, 오늘날 미국 시민권 가진 사람이 특권을 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바울 사도가 여기서 동일한 시민이라고 이 말을 쓴 것은 하나님 나라 시민권 소유자는 로마 시민권자보다 더 월등한 특권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어떤 나라보다도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그 당시에 로마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로마보다도 더 강한 나라입.
하나님 나라 왕이신 하나님이 로마 황제보다 강한 왕, 온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세상 권력자, 사탄, 마귀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이 온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 가운데서 허용하신 것뿐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우리를 지금도 보호하고 계십니다.
장차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을 위해서 이런 특권을 누리면서도 때로 책임은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 왕이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책임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하나님 나라 왕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힘이 센 왕이심을 우리가 확신해야 합니다.

그분이 가장 힘이 강력한 왕이심을 믿어야 우리는 세상 권력자나 직장 상사나 이 세상에서 힘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 권력자나 상사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순종하게 되는 거다.
일상적으로는 세상 권력자나 상사의 말에 우리가 순종해야 되는 게 마땅하죠.
근데 하나님의 말씀과 부딪히고 어긋날 때는 세상 권력자나 상사보다 하나님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가장 강력한 왕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왕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 곧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우리 곧 교회는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입니다.
19절 하반절에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의 권속은 하나님의 가족을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맏형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를 동생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양자가 되었고, 예수님의 동생이 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이 주님이시면서도 한편 마 형님으로 우리는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 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족끼리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입니다.
가족이 서로 책임지는 모습은 혈액을 나는 가족의 삶에서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가족끼리는 서로 책임을 집니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최고의 책임은 가장인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 아버지로서 우리를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 교회를 어떻게 책임지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일할 힘과 직장과 사업을 주심으로 책임지십니다.

우리의 생업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우리 교회의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또 교회 가족들 중에 누구에게는 많이 주고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또 책임지십니다.
많이 받은 형제들은 자기만을 위해서 쓰면 어느 순간 하나님이 더 이상 주지 않으십니다.
나누어 줄 것 같은 다른 형제에게 또 주십니다. 자신이 많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는 그 형제에게 계속 많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 이웃들에게 우리 형제들에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합니다.
재물도 시간도 재능도 나누어 주기로 공평하게 다 주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시고 어떤 사람은 많이 주고 어떤 사람은 조금 주면서 서로 나누어 가지게 하시고 누가복음 6장 3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에게 줄 것이니 곧 후이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주라 그랬어요.
그럼 주님이 채워주세요.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에 순종해서 나눠주기를 참 잘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 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하나님께서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입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하는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물은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오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다.
세상에서는 많이 받으면 그게 자기가 잘나서 받은 줄 알지만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혹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았다 그렇게 생각이 되는 분들은 아 내가 저 사람보다 잘 나서 내가 돈도 많고 뭐 재능도 많고 천만해 하나님이 많이 맡겨 주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많이 나누어야 돼.
그것이 물질이든 재능이든 무엇이든지 건강이든 있으면 그리고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그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셔서 자신도 누리고 계속 나누게 하십니다.
효육의 가족끼리 서로 책임져주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나눈 교회 가족들도 서로 책임져 주어야 서로 책임져주는 관계가 될 때 교회는 공동체의 강한 교회,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그런 교회로 성숙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 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가족은 서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서로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버지인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눠야.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방법은 예배드리는 것이 개인 예배, 가정, 예배, 교회 공예배로 나아가는 것이다.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드리지 않고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방법이 없습니다.
함께 자녀 된 교회 가족들끼리도 친밀한 교제를 나눠야.
근데 교회 가족끼리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방법도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고, 그리고 함께 예배하며 함께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찬양을 하고 함께 기도드릴 때 서로 친밀하게 됩니다.
또 함께 들은 말씀을 나누고 마음과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나눌 때 더 친밀해져 함께 먹고 함께 놀 때 친밀하게 돼요.
자녀들끼리 사이 좋게 노는 것을 보면 부모님들은 너무 흡족해 합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 가족들끼리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보면 기뻐하십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기에 존귀합니다. 아버지인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이기에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도 존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에게 서로를 나를 존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서로를 귀하게 존귀하게 여겨야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신 한 가족이기에 또 친밀하게 지내야 합니다.
서로 존귀한 자인 것을 알아보고 또 알아주어야 합니다.
서로 귀하게 여겨줄 때 또 친밀한 그런 교제가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 옆에 앉은 우리 교회 가족들에게 한번 이렇게 입으로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저를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우리 서로 존귀하게 대하면서 서로 친하게 지금도 친하지만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세상에 대해서는 긍지와 담대함을 가져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귀한 가족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세상에 주눅 떠는 것을 아버지가 싫어하십니다.
썩어져 가는 세상 곳곳에 파고들어가서 소금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어두운 세상에 우뚝 서서 빛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아버지인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새생활 교회가 서로 책임져주고 서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서로 존귀하게 여기는 가족 공동체로 자라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또 마지막으로 우리 곧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우리 곧 교회는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 공동체. 오늘 본문 20절에서 20절까지 상당히 길게 기록하고 있어 예수님을 모퉁이돌로 해서 모든 성도, 모든 교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믿는 한 개인도 성전입니다.
믿는 한 가정도 성전이고 믿는 교회도 모인 교회도 성전입니다.
한국교회 전체도 성전이고 세계 교회 전체도 하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는 이미 지어졌고 지금도 계속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전, 거룩할 성자잖아요. 성전이 왜 성전이에요?

거룩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성전인 거예요.
그러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 함께 살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 믿는 개인에게도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고 우리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성령님이 함께 거룩하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성전이고 우리의 가정도 한국 교회 전체에도 그렇게 성령님이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전인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개인 안에 가정 안에 교회 안에 함께하시면서 거룩하신 성령님이기 때문에 우리를 거룩하게 계속해서 빚어가십니다.
그래서 내조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순종함으로 죄 짓지 않도록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계속 거룩하게 빚어가시고, 또 우리가 죄를 지으며 회개하게 하시고, 십자가 모를 용서받도록 성령님이 계속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믿는 개인, 믿는 가정, 믿는 교회 안에 늘 함께하신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늘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큰 동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교회는 성전이면서 성전으로 계속 지어져 간다고 21절 2일에서 말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계속 지어져 간다는 것은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 간다는 거죠.
질적으로 성숙해도 가고 양적으로 자라가기도 성장하기도 한다는 거죠.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 힘쓰고 애써야 돼 우리 자신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도록, 우리 가정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도록, 우리 교회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도록 맺어지도록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격려하고 책망하고 서로 사랑하고 돕고 나 혼자만 자라가려고 하면 자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 함께 부부끼리도 함께, 부모와 자녀도 함께, 우리 교회 식구들끼리도 함께 자라가려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잘못하면 책망도 하고 서로 칭찬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함께 성장해 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전도하고 선교함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가는 데도 우리가 힘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질적으로 성숙하고 양적으로 성장하는데 우리 모두가 선한 도구로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들은 말씀 가지고 여러분들 잠시 기도한 후에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원수 되었던 저희를 사랑해 주시고 화평하게 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삼으시고, 우리를 가족 삼으시고, 우리를 주님 성전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교회로서 교회 공동체로서 하나 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이웃과 원수 되었던 저희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소멸하여 주시고 화평하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새생활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 공동체임을 날마다 확인하게 하소서 아멘 새로운 인류 공동체 교회를 통해 만물을 통일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원수 관계를 청산해 나가게 하소서, 원수인 사람들을 새로운 인류 공동체로 인도하게 하소서.
새생활 교회가 새로운 하나님 나라 공동체임을 날마다 확인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다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게 하소서.
새생활 교회가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임을 날마다 확인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정교한 자녀로 삼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위해 예배드리기를 힘쓰게 하소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책임지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서로 존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새생활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 공동체임을 날마다 확인하게 하소서.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하심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성전이면서 성전으로 성숙해 가고 성장해 가는 우리 교회가 되도록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힘쓰며 전도와 선교에 힘쓰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