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천국복음 ... 마 4:12-17 ...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12. 8. 19:58

박주동 목사

 

 

251207말씀 천국복음 ... 마 4:12-17 ... 박주동 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에 주께 경배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자격 없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대신하여 지불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되고 또 우리 주님 자녀요, 또 상속자들로 삼아주신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게 되고, 또 우리 주님을 높이며 찬양 드리는 이 시간 가질 수 있게 된 것 또한 저희가 주님의 은혜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을 통하여서 다시 한 번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주께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다시 기억하고 주께 우리 심령으로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릴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들려준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메시지는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먼저 예수님 먼저 사역하면서 사람들에게 들려줬던 핵심적인 메시지였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고 외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바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 그 당시에 처했던 어떤 영적 실상에 대해서 세례 요한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죠.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눈에서 눈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 다윗 왕조 때에 또 솔로몬 왕조 때의 왕이 다스렸을 때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중심으로 해서 그렇죠 그 하나님의 통치를 이스라엘의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 이제 시행해 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어 하나님을 잘 믿는 그 왕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을 잘 믿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많은 복을 주셔가지고 그 복을 풍성하게 누리면서 이렇게 정말 은혜 안에 그리고 행복하게 살던 그런 모습들을 생각해 볼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제 이때 이스라엘이 처했던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 하면은 대단히 이제 정치적으로도 암울했던 그런 시기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실질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거의 뭐 식민지 백성처럼 그렇게 살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로마의 총독 군대를 실질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군권을 그래서 사형 집행권 같은 경우에도 이스라엘 자체적으로 가질 수가 없었고 로마의 군대 군에서 그것을 이제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예수님도 나중에 이제 돌아가실 때 로마 총독에 의해서 판결을 받고 돌아가시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어떤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그런 모습 볼 수가 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어떤 성전 과거 같으면은 솔로몬이 주도적으로 해서 지었던 그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잘 유지되고 했던 그런 어떤 시절이 있는데 지금 이 시대에도 이제 헤롯에 의해서 성전이 지어졌고 성전이 계속해서 또 지어져 가고 어떤 면에서는 솔로몬 성전보다 더 화려한 그런 성전일 수도 있습니다.

헤롯 성전이 그런데 그렇게 이제 지어져 가고 있는 성전이었지만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전을 중심으로 한 어떤 신앙 생활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또 이스라엘을 잘 섬겨야 됐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 특히 이제 이스라엘의 어떤 영적 지도를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대제사장이죠.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 돌아가시는 그 과정에서 그렇죠 대제사장이 행하는 그런 모습들, 전직 대제사장, 현직 대제사장 이렇게 하는 걸 보면은 대단히 불법적이라는 걸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당시 이제 최고의 종교적 수장들이 지니고 있었던 어떤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수준이 굉장히 낮은 상태였죠.
그리고 그당시 나름대로 이스라엘 안에 신앙적인 어떤 그 갱신을 이루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던 사람이 그나마 이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근데 바리새인들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실질적으로 종교적인 어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고 실제로 내용 신앙적 내용은 그 속에서 이게 잘 지켜내지 못한 그런 문제를 당시에 바리새인들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떤 이스라엘의 영적 실상을 이제 요한이 바라보면서 얘기를 하는 거죠.
회개하라 하면서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렇게 외칩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고 이렇게 외칠 때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는 의미하고는 좀 달라요.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그 의식은 어떤 어떤 생각으로 많이 자리 잡고 있냐 하면은 우리가 마태복음 2장에 이렇게 살펴보면 알지만 세례 요한이 이제 자기에게 요단강에서 이렇게 막 나아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막 보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그러지 않습니까?
예 임박한 진노를 너희가 피할 수 있느냐 그래요.

그러니까 요한은 곧 메시아가 온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곧 오신다 자기의 뒤를 바로 이어서 곧 오신다 하는 그것은 딱 갖고 있었는데 요한 같은 경우는 예수님이 이제 정말 그 메시아인가에 대한 확신이 처음 이렇게 없었어요.
그러니까 요한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보면서 저분이 이제 나의 뒤를 그렇죠 나 이 사역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어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메시아로 오시는 분이다.
이렇게 확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된 사건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 그렇죠 받으실 때에 하늘로부터 이렇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고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그러지 않습니까?
내 기뻐하는 자라 그래요. 그러니까 요한이 그때 이렇게 보면서 아 저분이겠다 이런 생각을 이제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정도 시점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확신했겠다 이렇게 우리는 보통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데 나중에 요한이 감옥에 이렇게 갇히게 돼요.
그렇죠 나중에 감옥에 갇혀서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께 마지막으로 묻죠.
아마 요한이 돌아가실 자기가 이제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과연 자기가 이렇게 그래도 살아 있을 때 메시아가 오시는 걸 내가 볼 수 있겠나 한 번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서 당신이 그 사람입니까 하고 한 번 더 질문을 하죠.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한테 그래요. 너희가 가서 너희 선생님한테 가서 너희가 본 그대로 얘기하라는 거죠.
그죠 병자들 눈 뜬 사람 들 그다음에 귀머거리가 귀가 열리고 자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그걸 가서 그대로 다 얘기하라는 거죠.

이제 거기에서는 나오지 않지만은 우리가 그 복음서에서 보면은 예수님이 잘 내가 잘 믿어지지 않으면 내가 행한 것을 보고 믿으라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그러니까 그 요한에게 예수님이 그런 부분을 지금 어떤 면에서는 믿을 수 있도록 제공해 주는 거죠.
제자들을 통해서 너희가 지금 나와 함께 이렇게 있으면서 이렇게 봤던 거 이거 가서 그대로 그냥 전해라는 겁니다.
그러면은 요한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요한은 그 얘기를 딱 들으면 대부분 알죠.
사실 특히 이제 요한도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많은 사역들을 알고 있었고 들었을 것 같아요.
충분히 들었을 텐데 그래도 한 번 더 제자들을 보내서 이제 확인할 건데 그런데 이제 사실은 직접적으로 자신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렇게 해서 답을 직접 자기에게 들려주시는 답을 한 번 더 들은 건데 한편으로는 요한 요한도 아 예수님 믿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았구나 그렇죠 그렇게 신앙이 좋은 분도 예수님을 이렇게 믿는 것이 쉽지 않은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롯 유다도 조금 이해가 돼요. 그러니까 어떤 분은 그렇죠 예수님 제자도 아니고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탁 받았는데 그걸 보고서 이렇게 예수님 믿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가지고 예수님 실제로 그 즉시 믿음이 생긴 사람도 있고 니고데모 같은 사람도 그렇죠 예수님이 행하는 일들을 보면서 아 저분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분이다 대부분이 생각했죠.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가서 이제 도움을 받곤 하는데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데 어떤 분들은 보면 예수님을 잠시 만나고 잠시 주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인데도 주님을 이렇게 탁 믿는 사람이 있고 가롯 유다 같은 사람은 예수님 그 하고 3년 동안 3년 반 동안 지냈는데도 예수님을 끝까지 안 믿는 아 그렇게 보면은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리고 한편으로는 예수님 믿는 게 또 대단한 거죠.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이제 예수님 이 메시아라고 하는 것을 확신하게 됐을 텐데 특히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말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냐 하면은 특히 이렇게 소경이 눈을 뜨는 거 있죠 소경이 눈을 뜨는 그러니까 구약에 우리가 많은 이적 사건들이 있는데 소경이 눈을  뜨는 사건 그런 사건은 없어요.
죽은 자가 살아나는 사건은 있는데 소경이 눈을 뜨는 그런 사건은 없습니다.
귀머거리가 그렇죠 듣게 되는 그런 사건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그렇죠 그러니까 특히 이제 그런 몇몇 어떤 어떤 우리 신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러 그것까지도 해결해 주실 분으로 누군가가 오시는데 그분이 이스라엘의 약속된 메시아다 하는 그 말씀이 주어져 있는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엘리아나 엘리사도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게 그 사람들한테는 어떤 더 특별하지 않고요.
오히려 소경이 눈을 뜨는 그런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사건 귀머거리가 듣는 사건 만약에 이런 일이 있다면 이것은 이제 그 사람들이 볼 때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사건보다 자기들이 그 사람들이 볼 때는 더 놀라운 일이에요.
그러면 그 사건이 탁 이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타난다면 그 일을 행하는 그 사람은 약속된 그 메시아다 하는 그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고 이 세례 요한 정도 되면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어떤 선지 사역의 최종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 뒤에도 물론 선지 사역을 했던 사람들이 나오지만은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선지 어떤 자의 전통의 마지막 사역자라고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이제 충분히 알고 있었을 만한 그런 사람이죠.
세례 요한이 제자들이 자기에게 와서 그대로 이야기했을 때 요한은 마음속에 바로 그 약속된 그 메시아로 내가 아는 그 그리스도 예수님이 오셨구나 아마 확신하고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그 아마 돌아가셨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을 세례 요한도 이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과정 속에 있었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이제 알고 있고 또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는 이 메시지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확실히 좀 차이가 있구나 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렇게 이제 세례 요한의 이 메시지를 반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일단은 예수님께서도 기대하시는 바는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을 때 그렇죠.
그 기대와는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이스라엘 전체가 결국은 지금 과거의 다윗 시대 때와도 이렇게 비교해 보면 그때와 비교해 보면 너희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왔는가 하는 것을 이제 생각해야 되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은 대단히 독특한 민족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잘 믿으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 삼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약속을 맺으면서 뭐라고 약속하시냐면은 너희가 나를 이제 잘 믿으면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 노릇해 주겠다 하는 겁니다.
내가 너희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

그리고 너희는 나의 장자처럼 내가 돼 주겠다 하는 게 약속이거든요.
그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로부터 시작해서 다윗의 언약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말씀하셨던 거예요.
내가 너희가 나를 잘 믿으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 하는 게 하나님의 그 언약인데 그 언약을 맺은 백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그 방식이 대단히 독특한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는 어떤 느낌이냐 하면은 너무 그게 저게 하나님이 모든 이 세상의 하나님이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면은 모든 이 세상의 하나님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어떤 느낌이 없고 이스라엘만의 하나님 같이 보이시죠?
이스라엘만의 하나님 어떤 때는 너무 막 편협하고 이스라엘만 편해하는 그런 하나님처럼 보이거든요.
근데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렇게 나타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셔가지고 뭘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냐 하면은 하나님은 정말 살아있는 분이다 하는 거를 이스라엘을 통해서는 확실하게 보여주신 거예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데 우리도 이제 과거에 우리 민족들 또 모든 민족들이 보면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이 있지 않습니까?
근데 그 신들이 과연 그 자기가 다스리는 그 민족의 신답게 했냐는 거죠.
그런 신 있으면 한번 가져와 보라고 없는 거예요. 어떤 신도 자기가 자기를 섬기는 그 사람들을 뭔가 이롭게 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뭔가 삶을 주관하고 복을 주고 그렇죠.
생명을 죽고 살리게 하는 그죠. 생사 화복을 주관하는 그런 신은 없거든요.
그런 신은 없습니다. 어쨌든 이제 다른 민족들이 볼 때는 저 하나님은 저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은 아닌데 확실히 그냥 저희들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죠.

확실히 하나님이시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무수히 많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베풀어 주셨던 그 은총들이 있어요.
그게 굉장히 독특한 이제 민족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인데 하나님을 잘 믿으면 이스라엘은 절대로 이렇게 멸망할 수가 없는 나라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신데 그 왕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우리가 이렇게 공부를 해보면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조금 이렇게 신앙이 참 정상적이었을 때 조금이라도 좀 괜찮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우리가 볼 때는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저 정도까지 잘한 건 아닌데 조금만 잘해도 보면은 하나님이 느낌이 어떤 느낌이냐면 이때다 하고 은혜를 주시는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전부 다 그래요. 이스라엘이 조금만 잘하면 회개 기도하고 무릎 꿇고 눈물 흘리고 그러면요.
하나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때다 하고 은혜를 팍 주세요.
그렇죠 히스기야가 그렇죠 그 시대에 산 해립이 쳐들어왔을 때 이 이스라엘이 거의 뭐 망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앗수로가 18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그런데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이때다 하고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그냥 줘버리시거든요.
하루아침에 그 모든 군인들이 다 죽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그 역사 그런 역사가 이스라엘 속에 무수히 많이 이제 나타나는데 그런 것들을 보게 되면 그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이 다스리는 동안 절대로 잘못될 수 없고 망할 수 없는 나라여야 되거든요.
그런 이스라엘이 지금 예수님 시대에 이 로마 밑에서 그렇죠 정말 별 볼 일 없는 나라가 돼버렸잖아요.

그리고 그 이전에 한때 마카비 왕조 시대 때 한 200년 동안 그렇죠 그나마 어느 정도 좀 이스라엘이 독립된 나라로 이렇게 좀 서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나중에 다 이제 무력화되고 무너지고 예수님 시대 때 성전을 짓기는 짓는데 그 짓는 주체가 누굽니까 헤롯 그 헤롯 이스라엘을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앙적으로 이렇게 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그 신앙적인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그 정도밖에 보지 않는 거예요.
그 정도 해 주면 얘들은 우리 말 들을 거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정말 막 형편없이 되는 거 형편없이 되고 한편으로는 그런 이방인들과 또 로마의 압재 속에서 엄청난 수치 가운데 있는 그렇죠 우리 이스라엘의 종교인들은 그렇게 또 오히려 그 당시에 이제 로마의 어떤 마치 이렇게 앞잡이 같은 세리 세금을 징수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이 원래 같은 동족들끼리 서로 한 형제로 살도록 한 그런 민족이거든요.

그런데 그 동족들의 에 그야말로 피를 빨아먹으면서 자기의 부를 채우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기득권을 누리고 힘을 발휘하는 그런 아주 하나님 백성이 원래 가져야 되는 모습과 너무 먼 그런 모습이었어요.
그런 어떤 이스라엘의 현재 어떤 실상을 이렇게 세례요한은 이렇게 바라보면서 바라보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 이렇게 딱 하는데 그 요한의 메시지는 뭐냐 하면 이렇게 된 이렇게 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이제 메시아를 보내셔서 심판하신다는 거예요.
세례 요한이 생각한 거는 드디어 이제 너희들이 그대로 이렇게 지금 사는 사는 거대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 왕이신 분이 이제 오시면 그 왕권을 사용해서 다시 징계하셔서 이스라엘의 그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신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느낌에 가까웠냐 하면은 과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잘못 살다가 어떤 왕들이 나타났을 때 큰 종교적 어떤 개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왕이 어 다윗 이후에 아사 왕이라든지 그다음에 여호사밧이라든지 그리고 이제 후에 요시아 왕이라든지 그 전에 히스기야 왕 같은 특히 이제 이스라엘의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 같은 경우는 엄청난 종교 개혁을 단행해 버려요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 왕권과 어떤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면서 정상적으로 이렇게 작동해야 되는 선지자들의 사역 말씀 사역 그다음에 왕을 통한 어떤 정치적 사역 그다음에 제사장들을 통한 그런 이 성전 중심의 사역이잖아요.
이 3개의 사역을 다시 정상적으로 하실 그런 분이 오셔가지고 그 모든 잘못된 것들을 심판하고 징계하고 바로잡을 것이다.
요한은 딱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 예수님이 이제 회개하라 할 때 그들의 그 하나님을 떠난 문제에 대한 율법에서 떠난 문제에 대해서 회개하라 이렇게 하는 외치시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그 그런 정상적으로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서 행하려고 하는 그 사역의 면들은 요한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는 거죠.
요한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거를 우리가 잘 생각해야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이렇게 나중에 올라가서 그렇죠 최종적으로 이 공생의 사역을 다 이렇게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결집하고 있는 거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볼 때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거든요.
그러니까 그 정도의 어떤 기세면 충분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뭔가 이렇게 뭔가를 하실 수 있는 특히 나중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점점점점 나중에 확인합니다.
심지어는 막 바람도 잠잠하게 해요. 와 바람을 잠잠하게 하는 이분은 도대체 누군가 그래요.

제자들이 죽은 자를 살리는 거는 뭐 그렇죠 나중에 뭐 나사로도 살리지만은 벌써 이미 이때도 보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그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도 그대로 요한에게 가서 얘기하라 이렇게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예수님을 보면은 충분히 요한이 기대했던 그리고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그런 메시아를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나중에 보면 예수님이 어떻게 되냐면요.
제자들이 생각했던 거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그 메시아가 아니에요.
거의 비슷한데 비슷한데 완전히 다른 거죠. 예수님은 이게 나중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가지고 막 호산나 하면서 환영받으면서 가셨는데 그것도 나귀를 타고 가세요.
그러니까 나귀를 타고 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딱 알거든요.
저분이 우리의 왕이시다 하는 걸 딱 알아요. 솔로몬 저기 누굽니까?
압살롬도 나귀를 타고 이렇게 왔잖아요. 이스라엘 왕들이 나귀를 타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서는 거거든요.

그러면서 또 대관식도 하고 그러는 건데 예수님이 나귀타고 성전을 딱 갈 때만 해도 예수님 제자들이 저분이 메시아구나 우리를 다스릴 왕이시구나 하고 딱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왕으로 이렇게 이제 말하자면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독립된 어떤 왕국을 새롭게 형성하실 분이로 저분이 이제 예루살렘에 가시겠다고 기대했는데 예수님이 그냥 군병들에게 그렇죠 나중에 이게 체포되고 어 대제사장들이 그 하속들에 의해서 체포되고 나중에 군병들에 의해서 그렇죠 또 끌려가 끌려 다니시고 나중에 재판 받으시고 그냥 굉장히 말하자면 제자들이 볼 때 너무 허무하게 돌아가세요.
너무 허무하게 돌아가시면서 제자들은 그 실망감 때문에 다 뿔뿔이 흩어지기까지 해요.
우리 선생님이 고작 저거 하려고 그동안 이렇게 그 많은 일들을 하셨나 굉장히 실망했을 것 같아요.
제자들이 그럼 다 뿔뿔이 쫙 흩어지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중에 이제 아는 거죠.
예수님께서 어떤 분으로 왔는지를 다시 알게 돼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도 그 예수님에 대해서 이제 눈을 떠야 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제 성경을 공부를 하다 보면 특히 구약이나 이렇게 복음서를 공부하다 보면 이 구약과 복음서에서 게시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 하나님 그 안에 우리 자신이 이렇게 갇히는 경우가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공부할 때는 거기에 자칫하면 갇혀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항상 우리에게 어떤 시각이 필요하냐면 그리스도께서 오셔가지고 가져다주신 그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와 그것이 지금 계속해서 완성되어져 가고 최종적으로 완성될 그 하나님 나라 있지 않습니까?
그 빛에서 항상 성경을 봐야 됩니다. 알겠죠. 그게 이제 구속사적인 어떤 방식으로 우리 교회들은 설교해야 되고 또 우리 개인들은 그렇게 성경을 보고 그렇게 이제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사역이 어떤 이렇게 어려움을 겪으면서 뭔가 하나님의 창조의 그 계획이 뒤틀린 것 같고 실패한 것 같고 그런 이제 과정을 거치거든요.
그런데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그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오히려 더 말하자면은 완벽하고 아름답고 더 영광스럽게 이렇게 완성시켜 가시는 그 하나님의 전체 창조의 사역에 비해서 우리가 항상 성경을 이렇게 봐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나서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그 사건을 통해서 이제 서서히 다시 눈을 뜨게 되고 예수님 이제 40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얘기하시고 나서 승천하시지 않습니까?
너희가 본 대로 다시 온다 이렇게 약속하시고 올라가셨는데 그리고 나서 너희가 이제 너희에게 임할 성령을 기다리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은 1장에서 나중에 제자들이 한 일주일 동안 다 같이 모여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그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면서 제자들이 그때 비로소 눈이 이제 쫙 열리고 그때 눈이 이제 완전히 밝아지는 거예요.
그전에 40일 동안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다시 이렇게 많이 들으면서 아마 다시 생각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우리 복음서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하셨는데 그거를 아마 다시 반복해서 이렇게 많이 말씀해 주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제자들이 비로소 이제 눈이 쫙 떠지는 것은 성령께서 딱 임하셨을 때에 그들의 눈이 탁 떠지면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는지 눈을 이렇게 확 뜨게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려고 하셨던 것은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 나라를 회복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는 거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도 사실은 그 속에도 그 회복의 사역이 포함됩니다.

어떻게 포함되냐 하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를 과거에 다윗 왕국을 세우듯이 회복하시는 분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이제 그들 속에 하나님의 참된 백성 이스라엘 속에 있는 그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을 불러내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거죠.
그런데 그 이스라엘의 어떤 말하자면 남은 자들만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결국은 뭐냐 하면 천하 만민을 그러니까 온 인류죠.
온 인류를 결국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불러내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그게 어떤 민족 그죠? 이런 것들 다 넘어서서 다 넘어서서 혈통 이런 것도 다 넘어서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 그렇죠 이 만방에 흩어져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모으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들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고 그렇죠 오셨고 그렇게 해서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신 후에 사실은 꿈꾸셨던 그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면서 꿈꾸셨던 나라가 그 에덴 동산을 통해서 완성되는 그런 나라가 아니고 그런 나라가 아니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이렇게 도래하게 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 사실은 비전을 갖고 계셨어요.
그게 이제 아담과 하와가 타락을 하지 않고 계속했으면 살았으면 그 아담과 하와도 후손들도 어느 시점이 되면 성화가 돼요.
점점 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돼요.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죄안짓고 나서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거 아니거든요.
심지어는 우리도 나중에 하나님 나라 갈 거 아닙니까?
거기 가서도 영원히 살게 되는데 영원히 살아도 하나님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세요.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 가서도 뭘 하는 사람들이냐 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속해서 알아가는 그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서로를 점점 더 많이 알아가는 그 알아가는 그래서 사랑을 나누면서 그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살아가는 그 기쁨을 이제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나라 완성된 그렇죠.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면서 살 사람들인데 그것에 대한 하나님이 사실은 비전을 갖고 계셨던 거예요.
그걸 이미 하나님은 다 알파 오메가 신이신 하나님이 이미 그걸 갖고 계신 거예요.
그러면서 이렇게 쭉 역사를 쭉 진행시켜 나가시는데 우리가 그 하나님께서 역사를 진행시켜 가는 것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배우지 않습니까?
배우면서 우리가 어디에 눈을 떠야 되냐면 정말 하나님은 정확하시다 오묘하시고 정말 기묘하신 분이다 하는 것에 이제 눈을 떠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한테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고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서 가르쳐 주려고 하나님께서 이 성경이 기록되는 이 모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그 많은 일을 하신 거예요.
이게 하나님이 그냥 완성시키시면 되거든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 긴 역사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시는 걸 통해서 결국 뭐냐 하면 우리가 그렇죠.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좀 더 이렇게 많이 정확하고 풍성하게 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런 방식을 쓰신 거예요.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고 그 기다리시면서 많은 그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이렇게 계시해 주신 그런 분이구나 하는 것도 우리가 이제 알고 늘 생각을 해야 되는 그런 부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제 꾸신 그것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하자면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 되는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나중에 이제 좀 더 배우면 좋겠죠.
그런 부분을 우리가 이미 많이 듣고 공부했는 부분인데, 특히 이제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그런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루면 좋겠습니다.

일단은 뭐냐 하면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할 때 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천국이 세례 요한이 생각한 천국과 그렇죠 예수님이 생각한 천국이 이제 다르고 또 우리가 신앙생활 오랫동안 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천국에 대한 제 머릿속에 뭔가를 갖고 있어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갖고 있는데 우리가 이제 오랫동안 한국 교인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하면은 뭔가 이렇게 장소적 개념 이곳과 분리된 어떤 저곳 다른 저곳 그런 장소적 개념으로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살다가 나중에 그곳으로 간다 이게 이제 틀린 말은 아니겠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근데 그것만 생각하면은 안 되죠.
그러니까 이 천국이 현재적으로 이미 우리 가운데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이제 잘 생각해야 되는 거죠.
우리가 가져야 될 천국에 대한 정확한 개념 속에 그 개념 속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와 주님과 함께 이 땅에 도래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천국은 어떤 장소적 개념이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뭘 생각해야 되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라라고 하는 이 나라라고 하는 이 이미지 속에 하나님의 통치 개념이 담겨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이 이제 재림하실 때 그 나라가 완전히 새롭게 됩니다.
분명히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이 새로워져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 전 우주가 새롭게 창조되든지 없어지고 다시 창조되든지 아니면 이것이 다시 갱신되는 재창조든지 그렇죠 그게 나중에 이제 되봐야 압니다.
그리고 학자들마다 이렇게 어떤 사람은 이거는 다 다시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실 것이다 아니다.
갱신을 통한 새로운 재창조다 이렇게 이제 서로 주장하고 하는데 저는 제가 볼 때는 새롭게 하실 것 같습니다.
다시 창조하시는 것은 아닐 것 같고 새롭게 하실 것 같은데 어쨌든 간에 우리가 볼 때는 뭐냐 하면 그냥 새로운 거죠.

새로운 우리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그런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우리가 거기에서 이제 살게 되는데 분명히 그 그때 완성된 나라에서 살 그 삶의 어떤 실질적인 부분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오고 있고 누리고 있는 거라는 거죠.
이게 연속성이 있는 거죠. 불연속적이지 않습니다.
그 연속성 속에 초기인데 그 하나님 나라에 결국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나라일 수 있는 것은 뭡니까?
그곳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그 예수님의 그 통치가 그곳에 있는데 그 통치가 거기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지금 이 현재적으로 그렇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이미 그 하나님의 나라가 통치가 시작된 때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이제 항상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 나라의 속에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그 통치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우리의 모습 속에 항상 어떤 것들이 나타나야 되냐면 이제 우리가 복음서를 잘 배워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우리 현재 삶 속에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이렇게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생각할 때 사도들이 이 복음서 뒤에 서신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 가르쳐주는 그 말씀들이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라든지 에베소서라든지 빌립보서라든지 그렇죠.
야고보서라든지 이런 사도들이 우리에게 딱 가르쳐준 이 말씀을 많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게 현재적으로 우리에게 그러니까 오순절 성령 받아서 하나님의 그 강력한 통치 속에 살아가는 그 교회에 현재적으로 들려주고 있는 그 말씀이거든요.
서신이 그래서 우리가 그 서신을 그래서 잘 공부하고 많이 배워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 그 강력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우리 속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어떤 문제 때문에 우리 교회 속에 그 하나님의 통치가 약화되거나 잘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도 사도들이 다 진단해 주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대한 답도 그 서신서를 통해서 우리가 다 보게 돼요.
그래서 그 서신서를 우리가 쭉 보면서 결국 뭐냐 하면 가장 완성된 계시지 않습니까?
계시가 이렇게 쭉 점진적으로 이렇게 쭉 이제 가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 이 하나님의 계시가 어떤 계시인지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 준 이들이 사도들이에요.
서신서에 그래서 우리가 그 서신서를 잘 공부해서 그 시선으로 그 어떤 관점에서 우리가 성경도 창세기부터 다시 쭉 읽어봐야 됩니다.
쭉 읽어보고 우리 신앙도 다시 이렇게 항상 그러한 관점으로 이렇게 해서 점검하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결국은 뭐냐 하면 좀 간단해요.
사실은요. 이게 막 복잡한 게 아니고 아주 간단하게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고 그 예수님의 다스림이 우리 속에 충만히 나타나면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거든요.
딱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아 그런데 우리가 이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그 아주 간단한 그것을 놓쳐요.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막 뭔가 우리 교회는 대단히 복잡해진 것 같고 우리 교회 도대체 문제가 뭐지 하고 막 궁금해하는 분들 많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 살다가 우리 교회 속에 뭔가 많은 일들이 일어나면 그게 왜 일어나지 잘 이렇게 답을 잘 못 찾으세요 의외로 근데 사실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의 왕적 통치 하나님으로서의 그 통치가 교회 속에 잘 안 나타나서 그렇고 그 통치가 나타나면 그 교회는 무조건 그냥 정상적이고 건강한 교회가 돼요.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 통치가 이렇게 우리에게 임하는데 뭔가 중간에서 그 통치가 우리에게 잘 임하지 않게 하는 요소가 있어서 그런 거잖아요.
요한일서 같은 경우는 대표적인 교회서 두 가지로 이렇게 딱 얘기해요.
뭐냐 하면은 교회 안에 거짓된 진리가 있어서 그렇다 그래요.
거짓된 진리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오는 하나님의 통치가 잘 안 나타나요.
그래서 이 거짓된 진리의 문제를 배격해야 된다 하고 요한이 이제 지적하고 또 하나가 뭐냐 하면 너희가 형제를 사랑해야 된다 그래요.
그러니까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랑이 없으면 갈등이 있고 하면 이 하나님의 통치가 거기에 의해서 막혀요.
또 죄가 있으면 막히지 않습니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이렇게 막힌단 말이죠.

그래서 그런 여러 사례를 들어가면서 하나님과 우리 너희 너희 이제 화목하게 된 사람들이니까 계속해서 화목하게 지내라 그러는 거예요.
잘 지내라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냐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속에 계속해서 임하게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 하나님의 통치가 잘 안 일어나는 그런 어떤 문제가 이렇게 이제 살다 보면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에게 주님께서 뭘 하냐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힘 있게 붙들고 또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이렇게 더 사랑하려고 하면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더 공급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더 공급받으면 돼요. 내가 사랑을 더 공급받고 내 안에 있는 어떤 미움과 질투와 어떤 시기 이런 것들을 몰아내야 됩니다.
우리 교회 속에 그런 요소가 있으면 그런 것이 없게 해달라고 더 강력하게 힘 있게 기도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해서 그거를 거의 속에 계속해서 몰아내야 돼요.
몰아내고 몰아내면 이미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에게 이미 임해 있어요.
그게 다시 그냥 쫙 살아나는 거예요. 이게 교회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간단한데 왜 복잡하게 그래서 이게 이제 예수님께서 이런 교회 이런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이렇게 실현되는 거를 예수님 보시는 거거든요.
이걸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이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나중에 이제 십자가도 지시고 쭉 이렇게 하시는 건데 우리가 지금 너무 빨리 사실은 그런 문제를 에게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은 결국은 우리가 이 성경 전체 속에서 주님께서 그런 것들을 품으면서 이 말씀하시겠다 하는 거를 생각하고 우리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 이 말씀은 참 아까 말씀드린 것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잘 이해가 됩니다.

결국은 뭐냐 하면 천국 우리 안에 하나님의 통치가 충분하게 나타나는 첫 번째 문제 어떤 방식 회개하는 거죠.
맞지 않습니까?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잖아요. 이미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문제를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정제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너 이미 다 된 사람들이에요. 다 된 게 뭐가 문제냐 하면은 우리가 죄사함 못 받은 거 죄사함 받는 그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끊임없이 이제 죄로 인해서 발이 더러워져요.
그것을 주님 앞에 또 들고 나아가서 내가 이렇게 잘못했습니다.
그러면은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입혀주신 그 의의 칭의 의의 옷 그 그리스도의 의죠.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해서 우리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실질적으로 법적으로는 우리는 다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근데 내가 실질적으로 우리 내면에 계속해서 내가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을 경험하도록 이렇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대단히 은혜로우신 분이시죠. 법적으로는 우리 다 무죄인데 우리가 어 죄사함 받았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말하자면 실감을 잘 못해가지고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너 진짜 은혜 받았다고 계속해서 무수히 반복해서 그 용서하시는 그 사랑을 보여주세요.
그렇게 해서 너는 정말 용서받았다는 거를 우리로 하여금 이제 확신하게 하고 그것을 점점점점 이렇게 확신하는 사람들 우리가 성장해 가면서 정말 하나님의 그 풍성한 은혜를 아는 사람들로 살아가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런 어떤 꿈을 가지시고 아 이렇게 이제 사역을 시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오늘 이 말씀 볼 때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베풀어 주셨고 또 우리가 그 주님의 은혜 안에서 무엇을 누리면서 살아야 되는 사람들인지를 한 번 더 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걸 마태복음을 순서대로 다 쭉 공부하려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아니고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바가 무언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우리가 이제 좀 반복해서 한동안 많이 공부하면서 또 교회가 무엇이고 예배드리는 것이 어떤 것이고 또 성도의 이 친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지 이런 부분들을 한동안 이제 좀 잘 배우는 그런 시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그러면서 우리가 결국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 장작을 사용해 가지고 우리에게 이미 가져다주신 이 성령의 그 불이 우리 사람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 성령의 이제 불꽃이 늘 우리 심령에 타오르고 있는데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우리 교회 속에 우리 심령에 이렇게 잘 공급해 가지고 그것이 정말 이렇게 활활 타오르도록 그렇죠.

그런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그 하나님 나라 속에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씀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한번 생각해 보게 해 주시고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알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을 왕으로 모시면서 그 주님의 사랑의 통치 속에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저희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주님의 그 진리에 눈 뜨는 사람들 되게 해 주시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이신지 점점 더 그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서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고 또 주께서 우리에게 이제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 자녀답게 이 땅에서 살도록 또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는 분이신 줄 알아서 우리가 그렇게 넉넉히 살아낼 수 있는 사람들로 성장해 가고 또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의 전진이 우리 속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