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118말씀 팔복에 대해서 마태복음 5장 1-12절 박주동 목사
[성경 봉독: 마태복음 5장 1절-12절]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12절까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12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아멘 잠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설교 전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주 앞에 감사함과 기쁨으로 찬양을 올리드리게 해 주시고, 주께서 우리 심령에 찾아오셔서 힘 주시고 또 위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주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세우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드리고자 합니다. 주님 우리의 모든 생각들을 내려놓고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주님의 그 뜻에 아멘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팔복 비교]
마태복음에 산삼 설교가 나와 있고 또 한 군데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마태복음에 나와 있고 누가 복음에 나와 있죠?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팔복에 관한 이 말씀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마태복음에 5장에 나타나고 누가복음 같으면은 6장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 비교해서 한번 살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마태복음의 이 팔복에 관한 말씀과 누가 복음의 복에 관한 이 말씀이 많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에는 우리가 3절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한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시작하지 않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 보면 심령이라는 말이 없고 그냥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래요. 그래서 마태가 하나님 앞에 선 우리 어떤 영적인 상태 신앙의 상태를 중심으로 해서 이 복에 관한 말씀이 많이 이렇게 주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되고 누가 복음의 말씀을 보면은 누가가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는 거는 아니겠죠.
그런데 그 당시 시대 속에서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 있었던 경제적인 가난함 또 정치적인 그런 어려움들 그런 것들 인생 전체의 그 어려움을 다 생각하면서 누가는 이제 그런 부분들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그것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려고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중에 이제 누가 복음을 배우면서도 그런 부분들을 좀 살펴봐야 되고 또 마태복음에서는 우리가 마태복음의 마태가 이 팔복을 이렇게 잘 기록하면서 좀 더 관심 있게 보고 있는 부분을 우리도 같이 생각하면서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팔복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신 분은 우리 주님이시죠? 주님이신데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내용을 다르게 기록했다는 게 참 독특하죠. 그렇죠? 그런 부분들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마태복음에서 우리가 좀 더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그 완성된 말씀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누가 복음 같으면은 이 내용이 훨씬 더 요약적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은 마태복음이 좀 더 완성된 문장에 가깝다 말씀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이 팔복에 관한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복과 주님이 주시는 복의 차이]
그렇죠 팔복 8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특히 우리가 복이라는 이 단어에 관심이 많고 그렇죠 우리도 살아가면서 정말 복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모든 사람들이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특히 이 복에 관한 말씀이 이렇게 등장하게 될 때 우리가 더 좀 주목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편 말씀 그렇죠 복 있는 사람은 해서 이렇게 쭉 나오지 않습니까? 그 말씀도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시작에서 복에 관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정서들을 가지고 있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주고자 하시는 복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복, 우리가 기대하는 복이 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복받고 싶은 것을 그 말씀과 연결해서 그렇죠 그 복이 이렇게 나에게 오기를 바라는데 주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그 복보다는 정말 내가 받고자 하는 복, 내가 받고 싶은 복을 빨리 생각하면서 그런 것들이 나에게 왔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 가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이제 우리가 잘 공부를 해보면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복하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그 복 속에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또 다 포함이 거의 다 돼 있어요. 그게 분리되어 있지 않고 다 포함되어 있는데 주님께서 주려고 하는 복이 대체로는 뭐냐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복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요.
더 풍성하다는 거죠. 복이 크고 깊고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데 우리가 그런 것을 전체적으로 잘 헤아리지 못하고 그중에 이제 우리가 관심이 있고 받고 싶은 것들을 사실은 일부분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시는 복이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에 눈을 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죠. 그렇죠 그래서 내가 받고 싶은 것은 일단 우리가 내려놓고 정말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주고 싶으신 복이 뭔지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이렇게 우리 눈을 떠서 그 복을 실질적으로 이제 받아 누릴 수 있는 그런 시간 되면 좋겠죠.
[시대적 배경: 로마의 압제와 이스라엘의 현실]
이 당시 시대를 이렇게 생각해 보면은 이 말씀이 참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에요. 그냥 우리는 이제 이 성경을 읽다 보면은 이 복에 관한 말씀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당시 이 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들하고 잘 안 맞는 말씀입니다.
일단은 그러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관심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2천년 전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당시에 로마의 식민지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적 경제적 어떤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그런 나라에 살았던 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제시대 때의 그 상황하고 좀 비슷할 것 같아요. 우리 그때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다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역사가 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그 시대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래서 정말 독립할 수 있다고 하면 자유로울 수 있다면은 그것만큼 우리가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고 생각할 정도의 그런 정서들을 그 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 그런 정서들을 많이 잃어버린 면이 있죠.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대 속에서 로마의 압제 속에서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그런 상황 속에서 또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잘 살고 싶은 그런 민족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런데 신앙생활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이제 어려움들을 사실 겪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 속에 사실 있었습니다.
[헤롯 성전과 당시의 영적 어두움]
그 당시에 성전이 지어지고 있었는데 원래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그렇죠 이제 성전이 준비되고 솔로몬 시대에 성전이 완공된 적이 있어요.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공간이면서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그 성전에 임재해 계시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성전은 하나님의 왕궁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그 통치의 장소예요.
성전이 그런데 그 성전이 이제 역사 속에서 파괴되는 일이 있었고 세월이 흘러서 그 성전이 예수님 시대에 이제 가까이 오면서 그 전에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이스라엘을 누가 이렇게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느냐 하면은 헤롯이라는 왕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통치권을 부여해 주어서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헤롯 대왕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대왕 이후에 4명의 아들로 또 이렇게 나누어지면서 이스라엘을 분할 통치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예수님 시대는 이제 분할 통치 시대죠.
통치 시대인데 그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헤롯 왕이 성전을 이렇게 다시 재건하고 그 이전에 스룹바벨 성전을 좀 더 확장하고 완성된 어떤 성전으로 계속해서 지어가고 있었는데 대단히 화려한 성전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보다 더 화려한 그런데 그 성전을 이렇게 보게 되면은 그게 이스라엘의 어떤 신앙적 열망을 담아서 이렇게 성전이 지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헤롯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을 얻어서 그들을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다 얻어내려고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는 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전공사를 하고 있었던 거거든요.
그러니까 또 실제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또 예수님 시대에 나중에 예수님이 성전에 이렇게 올라갔을 때 그 성전에서 많은 말하자면 종교 지도자들을 의 어떤 보호를 받으면서 거기서 장사하는 일 성전은 원래 기도하는 곳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대단히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되는 게 기본이거든요. 근데 그 장소가 이제 장사하는 그런 곳으로 전락할 만큼 그 시대가 신앙적으로 대단히 이제 어두운 그런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예수님의 등장]
그러니까 그 시대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이제 딱 등장하신 거거든요. 예수님이 이들의 구원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치자로 오셨어요. 그래서 특히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앞으로 이제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이 다시 이렇게 회복이 되고 다윗의 왕국이 재건될 것에 대한 그런 기대감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 기대감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는 이제 그분이 오시면 이렇게 어떤 것부터 이렇게 행하실까 예상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상되는 것 그러니까 로마로부터 자기들을 해방시켜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그리고 다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그 번영했던 그 시대에 경제적으로도 번영했고 그래서 솔로몬 시대에 먼 그 시바의 여왕이 막 보물을 들고 와서 솔로몬을 알현하면서 그의 말 한마디 그렇죠 지혜를 들으면서 감탄했던 그래서 국가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정말 고조대 최고조로 치솟았던 그 시대가 솔로몬 시대였거든요. 그런 시대가 다시 와서 우리도 정말 자긍심을 가지면서 또 경제적으로 실질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부유한 어떤 삶 속에서 살면 좋겠다 하는 그 요망을 그들이 갖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이 예수님이 이제 이스라엘 역사 속에 딱 이제 등장하세요. 등장하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또 예수님의 입에서 말씀이 이렇게 확 설교되는데 이전에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서 들었던 말씀하고 완전히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이제 마음에 기대감이 막 솟아오르고 있는 겁니다. 저분이 정말 우리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메시아로 통치자로 오신 분이 아닌가 하는 그 기대감이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이렇게 있었어요. 막 싹 트고 있었습니다.
[기대와 다른 산상수훈의 말씀]
그래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수님 모아놓고 산에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탁 이렇게 선포하시는데 말씀을 탁 선포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는 그런 어떤 부분에서 말씀이 선포되어져서 다시 자신들의 삶의 회복을 생각할 수 있는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랐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뭐라고 선포하냐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래요.
이 팔복에 관한 말씀을 먼저 딱 선포하는데 이 내용을 보면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에 자기들의 어떤 삶이 형편이 나아지겠다고 기대하게 하는 그런 말씀이 여기 없다는 거죠. 복이 어떻게 하면 복 되느냐 심령이 가난하면 복되다 그러고 그다음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이런 말씀은 전혀 자기들의 삶과 그 현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이게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게 하는 그런 말씀이거든요.
실제로 그리고 긍휼히 여기 자는 여기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런 말씀은 사실 듣기가 더 어려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자기가 위로받아야 되는 사람들이거든요. 누구로부터 큰 긍휼을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인데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되다 이렇게 하면은 이건 너무 우리의 상황과 맞지 않는 거죠. 그렇죠 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런 말씀도 그렇지 않습니까?
화평을 지금 깨뜨리는 요소는 로마지 않습니까? 자기들을 깨뜨리는 요소 그러면 그 로마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하는 거죠. 그리고 이스라엘은 다시 독립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이렇게 선포하는 그런 메시지를 던졌다면 그들의 마음이 정말 열망이 그렇죠 고조되고 그 심령이 막 뜨거워졌을 것 같아요. 우리도 독립할 수 있다 그래요. 뜨거워졌어. 근데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화평하게 하는 자 너희가 화평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라 그렇게 명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들의 어떤 지금 어떤 상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말씀처럼 들리는 거거든요.
그다음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고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것도 이제 마찬가지인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 8가지의 복에 대해서 말씀이 주어지고 있는데 이 복들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듣고 싶은 어떤 복과 얼마나 어떤 그 간극이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우리가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복: 하나님 나라(천국)]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그들의 어떤 현실적인 형편을 다 이렇게 무시하고 그렇죠 그냥 내가 주고 싶은 말을 이렇게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내가 깨달은 거 그죠 그것을 이렇게 선포하는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 말씀은 뭐냐 하면은 근본적으로는 우리 스스로는 그러니까 이스라엘 스스로는 자기들이 어떻게 되어야지 정말 복받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겁니다. 그들이 그러니까 예수님이 사실 어떤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하셨냐면 너희가 이제 원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거 모든 면에서 정말 부국강병하고 모든 삶의 어떤 자기들이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 것들이 그들에게 실제로 다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너희가 참된 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결론이에요. 너희가 원하는 것을 다 얻어도 다 내가 줘도 그것으로 너희는 복 못 받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막 그런 것을 추구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그것을 막 죽어가면서 사는 것을 보면서 때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도 저런 복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나도 저런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냐면 그런 복을 내가 너희에게 줘도 실질적으로 너희가 행복한 게 아니다 그렇게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 주님께서는 정말 너희가 복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뭔지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고 그 복을 그냥 이야기만 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예수님이 그 복을 그들에게 가져다주려고 하는 거예요. 복을 그들에게 손 보고 이 보타리를 그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안겨주시는 걸로 그렇게 지금 하기 위해서 예수님 그 자리에 이 산 위에 예수님이 딱 서 계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부분을 생각해야 되냐 하면은 이 이제 예수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아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복의 대해서 일단 우리가 내려놓고 정말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복이 뭔가에 대해서 먼저 귀 기울여 들어야 된다는 거죠. 이것은 그냥 한번 예수님 해보는 얘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이 복을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데 그 복이 뭐냐 천국입니다. 천국 복을 예수님이 지금 주려고 하는 게 뭘 주려고 하느냐 천국을 주려고 하는 거예요. 이제 엄청난 겁니다.
이거는 지금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수준은 최고의 복이라고 할 만한 건 뭡니까? 해방 정도겠죠. 해방 해방이 이제 되고 나면 우리도 이제 해방을 경험해서 살지만은 저는 우리 그 시대에 우리는 거의 대부분은 이제 대부분은 아마 그 시대에 아주 어렸거나 태어나지 않았던 분들인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그렇죠 이런 것이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로부터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이 메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다시 다윗의 왕조가 회복이 된다고 그러면은 그들 그것만으로도 막 엄청난 감격과 기쁨 속에 떨어졌을 것 같아요.
실제로 이스라엘이 그 멸망하고 나서 저기 바벨론 그렇죠 바벨론 지역 다 포로로 끌려갔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그때 이들이 포로로 생활하다가 70년 정도 세월이 지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일이 있어요. 그때 이 사람들이 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거든요. 자기가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래요. 시편에서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꿈꾸는 것 같다 그 기쁨을 주체를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때 그 꿈꾸는 것 같은 기쁨 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지금 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한테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 설교를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거라는 거죠. 이스라엘만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그래서 온 천하 만민에게 주님께서 이 복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생각하면서 지금 이 산상에서 서서 이 팔복에 관한 말씀을 다 들려주고 있는 거라는 거죠. 그것을 우리가 다 생각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정말 이 복을 받는 사람 그리고 복 받은 사람들은 이미 받은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그 복에 참여하면서 그 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우리가 딱 나타나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도에 이제 부합한 그런 모습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됐으면 이제 좋겠다 하는 기대감 소망을 가지면서 이제 우리가 좀 더 말씀 생각해 보려고 그럽니다.
[천국 개념의 확장: 현재와 미래]
그래서 이 말씀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시고자 하시는 복 복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라 하나님 나라인데 이것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여기 이제 우리 말씀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뭐가 그들의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 그래서 우리 한국 교회가 이 천국에 대해서 좀 풍성하게 가르치지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하면 예수 믿고 있는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어떤 저곳 있잖아요.
하나님이 계신 곳 이곳만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천국은 그런 개념을 이제 포함할 뿐만 아니라 이미 이 땅에 온 하나님 나라를 포함합니다. 그 두 가지를 다 생각해야 돼요. 그러니까 천국은 나중에 죽어서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이 오심과 함께 같이 이 땅에 온 거예요. 그래서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해 있는 겁니다. 그것을 잘 이해해야 돼요.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이제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낯설지 않은데 아직도 한국교회에서는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면 처음 듣는 어떤 내용처럼 이렇게 반응 보이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천국은 그 완성된 최종적으로 완성된 그 하나님의 나라를 포함해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과 함께 우리에게 임해 있고 하나님의 나라의 결국 주인은 누구시죠? 예수 그리스도 아니 그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는 이때 오신 겁니다. 그 통치자 이 땅에서 통치하시고 동시에 이 땅에서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늘을 통치하고 계시는 그분이 오신 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만 통치하고 계시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이스라엘을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늘과 땅 전체를 통치하는 통치자로 예수님이 딱 오신 겁니다.
그것을 다 통치하시는 분이 이제 오셔서 뭘 하려고 하느냐면 이 땅에 있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는 그냥 이렇게 다른 어떤 뭐라고 그래야 하면 어떤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 그 생각 속에 있는 나라가 아니고 실제로 그 나라는 계속해서 지어져 가고 있고 나중에 그 나라가 나타나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납니다. 지금은 우리 눈에는 이 세상만 보이죠. 그런데 나중에는 그 나라가 이 세상이 없어지고 그 나라가 다시 우리 눈에 드러나게 되는데 하나님이 통치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이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원래 원래 이 지구에서 우리 인류가 이렇게 살지 않습니까? 이 세상은 원래 그렇게 되어 지도록 설계된 계획된 그런 나라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 잘 믿고 살도록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면서 이 세상이 그냥 엉망이 돼가지고 지금은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이상한 취급을 받을 기 쉬운 그런 이상한 시대가 된 거예요. 이게 정상이 아니고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지금 너무 이상한 상태에서 막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원래 인간은 모두 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고 하나님과 함께 이렇게 교제하면서 살도록 그렇게 지은 거거든요.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적인데 그것이 이제 엉망이 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뭔가를 하셨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겁니다. 하나님 자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이 땅에 오셔가지고 그 깨어진 하나님의 나라 파괴된 것 같은 그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뭐냐 하면 완성시키고자 하시는 그 하나님 나라의 그 하나님 머릿속에 그게 있지 않습니까? 그 것과 이 땅에서 이 땅을 하나 되게 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일을 예수님은 완성하려고 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이스라엘에 와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회복하는 그 정도 차원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선택과 초청]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떤 것을 알게 되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를 택하시는데요. 그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가 뭐냐 하면 이 사람들이 정말 어떤 특별해가지고 택한 게 아니다. 특별하게 선택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말씀 보면은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너희가 열국 중에서 정말 보잘것없기 때문에 택했다 그러지 않습니까? 보잘것없기 때문에 특별해서 택한 게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 연약하고 보잘것없고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택했다 그러세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그분은 뭐냐 하면은 결국 이스라엘만을 택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결국은 인류 전체죠. 천하 만민을 택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분이셨다 하는 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명확하게 이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꿈을 꾸고 계셨는지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보게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하나님 생각하시는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고 이제 그 시작을 하고 계시는 상황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지금 이 팔복의 말씀을 탁 던져주는데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초청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왕은 왔어요 왕은 왔지 않습니까? 통치자는 왔습니다. 하늘과 땅 전체를 통치하는 통치자는 왔고 이제 뭐냐 하면 하나님이 뭘 하려고 하느냐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을 부르려고 그러는 거예요. 이 두 개만 구별해도 그렇죠. 나라는 다 된 거죠. 왕이 있고 백성이 있으면 나라지 않습니까? 네 땅은 어디 있느냐 이 땅이 나중에는 이제 새롭게 되든지 그렇죠 다시 형성이 되든지 그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우리 눈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때 되면 엄청나게 놀라울 것 같아요. 우리가 본 적이 없어서 막 그것만 봐도 우리는 감격할 것 같아.
근데 정말 사실 이제 감격스러운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그것보다 더 감격스러운 것이 이 땅에 살다가 우리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정말 그렇죠. 너무너무 놀랍고 충격적인 거거든요. 이제 우리 신앙생활을 이제 오랫동안 하시다 보면은 하나님 믿고 사는 것이 그냥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된 것, 그리고 계속해서 살고 있는 거 이것이야말로 정말 놀랍고 감격스러울 거다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그런 것을 때로는 이렇게 놓치고 할 때 그런 것들이 회복돼야 된다고 하는 것을 늘 이렇게 상식처럼 생각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상이겠다 하고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돼요. 그렇죠. 그게 상식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 예배와 소망]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것을 계속해서 회복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오셔서 회복하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그 한 면이 어디에서 가장 잘 드러나느냐 이 교회에서 드러나고 예배하는 이 현장에서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예배에서 뭐냐 하면 먼저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이제 살아보는 거예요. 계속 완벽하게 못 삶니다 어떤 때는 뭐 그렇죠. 하나님 나라 자녀답지 않고 백성답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가 앉아 있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는 또 그 하나님 백성다운 그 감격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보고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잘 살아서 나중에 우리 주님 다 그것도 금방 만나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는 몸을 이끌면서 만나게 되고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이제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몸은 아직은 있지 않지만 우리의 영은 바로 우리 주님 앞에 가서 주님을 만나게 돼요. 그때는 몸이 없어도 이렇게 안을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때는 우리가 몸까지 입게 되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그 은혜는 훨씬 더 풍요로워집니다. 몸과 함께 누리는 더 풍성함이 또 남아 있어요. 나중에 이제 천국에 가셨어도 그 주님이 재림하셔서 완성되게 될 그 하나님의 나라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꿈꾸는 사람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은 모든 천사들도 고대하는 지금 주님과 함께 있는 돌아가신 우리 이제 믿음의 선조들 그렇죠 지금도 다 살아계세요. 그분들도 막 꿈꾸면서 그런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이제 고대하면서 사는 사람들이고 결국 주님께서 지금 그 나라의 사람들을 초청하려고 하고 우리는 초청받은 사람들이고 지금 아직까지 초청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지금 던지는 겁니다.
[복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그러면 여기 이 말씀하고 그렇죠. 주님의 초청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는데 이 말씀이 뭐냐 하면은 이 8가지 복이 예수님이 주고자 하는 복을 8가지로 이렇게 쭉 이렇게 나열을 하는 게 아니고요. 이것은 한 가지입니다. 한 가지 이 복이 한 가지인데 한 가지만 얘기하면 다 우리가 잘 이해를 못해서 나눠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 복은 사실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이 복은 누구를 지금 말하냐면은 예수님을 말하는 거예요. 너희가 예수님을 딱 만나는 순간 이 8가지 복이 예수님으로부터 우리가 그대로 들어오는 거예요.
선물로 주신다니까요 예수님 자신을 우리에게 이제 주시는데 예수님을 너희가 받으면 어떤 것이 어떤 것이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이 팔복의 말씀과 같은 이 감격이 이 복이 말하자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하는 그 복을 받은 사람의 어떤 그 정서가 형성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이에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그 사람은 심령이 가난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심령이 가난해서 복 받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래서 가끔씩 뭐냐 하면 심령이 가난해져야 되는데 복 받으려면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게 아니고 이거는 뭐냐 하면 예수 믿은 너희는 이미 심령이 가난하다는 걸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심령이 가난해져봐야 얼마나 더 가난해지겠어요 그렇죠. 우리가 교만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나 겸손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나 사실은 하나님이 보실 때는 거기서 다 거깁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려고 해보면요. 겸손해지지가 않아요. 겸손하려고 막 노력하면 더 교만해져요. 진짜 그래요. 내가 마음이 가난해져야지 그러면요. 마음이 점점 높아져요. 우리 마음대로 안 돼요. 이게 이게 그렇게 하면 조건적으로 이런 복을 주겠다 하는 이 조건적인 게 아니라는 거죠. 이거는 뭐냐 하면 예수님을 믿는 너희는 이미 복 받은 사람들이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고 이미 애통한 사람들인 거예요.
네 그걸 얘기하려고 하는 겁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 모습이 팔복의 모습이 나타나고 이미 복을 받은 그러니까 예수님보다 우리가 예수님을 얻는 것보다 우리가 더 큰 복이 뭐가 있어요? 없잖아요. 그거 예수님이 그냥 전부잖아요. 네 더 큰 복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이 이제 나의 주님이 되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동시에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그러니까 우리 삼위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제 공부했었는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그 성령 하나님께서 물론 성령 하나님만 우리 안에 계시는 거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그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계속해서 지키시고 보호하세요. 계속해서 우리를 붙들고 가세요. 안고 가시고 업고 가시고 그렇죠. 함께 팔짱하고 예수께서 그 완성된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분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어떤 보호와 함께해 주신 그 은혜를 다른 분도 아니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돼 주셔가지고 그렇죠. 나의 또 때로는 친구가 되어 주셔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그곳까지 인도해 가신다는 거 생각하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없습니다.
[세상의 복과 비교할 수 없는 평안]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가 잘 믿잖아요. 좀 더 잘 믿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받고 싶은 복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 믿기 전에 받고 싶었던 그 복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아 그것은 좀 적어도 되겠다 없어도 되겠다. 때로는 조금 불편할 수 있어도 좀 적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점점점점 들어요. 그래서 사실 어떤 것을 우리가 누리냐 하면은 실질적으로 그런 복을 통해서 우리가 누리고 싶은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돈을 많이가 돈이 많으면 좋겠다. 왜 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그러면은 내 마음에 변하지 않는 어떤 평안함이 있을 것 같아요. 돈이 충분하면 내가 이렇게 염려를 덜 해도 될 것 같고 조금 더 평안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내가 뭔가 그런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 가능할 것 같아요. 예측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이렇게 안 가져봐서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는데 많이 가져봤던 분들이 특히 그런 분들 중에서 주님을 만나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은 공감이 이제 되겠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러니까 그것이 정말 복이었다고 하면 우리 주님께서 오셔가지고 이스라엘에게 그걸 줬을 거예요. 주님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 자녀들을 사랑하시는데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요. 그게 정말 복이 되면 다 주셨어요. 그렇게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그런 것들을 하나도 주시지 않는데도요. 그렇다고 안 주시는 분 아닙니다. 그것을 아직 안 주셔도 있잖아요. 안 줘도 아직 우리가 그것을 받지 않아도요. 이미 우리가 그 복을 누린 사람의 평안과 그죠 그 염려하지 않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 마음의 상태를 딱 주시는 거거든요.
그것이 있는 사람도 실제로는 그 자기의 안전을 다 보장할 수 없잖아요. 그렇죠 특히 사람들이 목숨을 우리가 스스로 지켜낼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은 연약해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다치거나 아프거나 이렇게 죽는 것은 어쩌면 좀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없잖아요. 내 자녀들을 지킬 수 없잖아요. 그것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거든요. 어떤 사람도 어떤 왕들도 내 자녀가 죽는다고 하면은 절망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실제 그 죽음까지도 그렇죠 우리를 절망에 떨어뜨리는 그 죽음까지도 우리가 이겨내게 해 주시고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생명 선물로 우리에게 다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 이렇게 헤어지면 슬플 수 있어요. 잠시. 근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슬프지는 않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하고 기뻐요.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68세에 돌아가셨는데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면 막 이렇게 이제 우리 아버지가 평생 저를 핍박만 하셨거든요. 예수 믿는다고 족보에서 빼신다고 그러고 그러셨는데, 어 아버지하고 앉아가지고 막 싸우기도 하고 그랬어요. 아버지도 예수님 믿어야 된다고 그래서 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숨이 하여튼 거둬지시기 얼마 전에 예수님을 자기가 영접한다고 고개를 끄떡끄떡 하셨어요. 네 그렇게 그래서 다시 이제 나중에 만나게 될 걸 생각하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한 번씩 생각하면 막 슬프고 이런 것이 아니고요.
너무 막 기대가 되고 감격이 되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렇게 우리가 살아도 좋은 사람들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다 이렇게 만들어주신 그렇게 복을 주시려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거거든요. 그런 복을 주시려고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지금 여기에 오셔서 이 복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충격을 주는 거예요. 우리가 구했던 우리가 지금 구하고 있는 거 내가 지금 받고 싶은 것 그런 것들과 전혀 다른 말씀이 딱 주어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렇게 충격을 받으면서 이 사람들은 뭘 생각하냐면요. 도대체 저 말씀하시는 저 언덕 위에 서 있는 저분은 누군가 그거예요.
[결론: 예수님을 만난 자의 확신]
이 복에 대해서 딱 말씀하시면서 우리 주님께서 복에 대해서 선언하시는 그 주님에게 다른 사람들이 눈을 딱 맞추도록 저렇게 말씀하시는 저분은 누군가 거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고 실제로 주님이 어떻게 하시냐면은 자기에게 와서 자기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내가 이 복을 그 즉시 소유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게 하신 거예요.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서 선포하시는데 이제 그 말씀 듣고 내가 예수님 영접한 사람 인가 생각할 거 아닙니까? 내가 지금 예수님 영접한 예수님 말씀하신 이런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고 생각할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스스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고 또 여기 무리들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금방 아는 거죠. 아 우리가 주님을 만난 사람이구나 내가 메시아를 만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그 즉시 딱 확인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정말 그 주님 만난 사람들의 그 기쁨이 그들에게 이렇게 충만하게 돼요. 그런 것을 기대하시면서 주님이 이 말씀 주시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더 내가 우리 주님 만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이 팔복의 말씀에서 잘 비춰서 한번 살펴보면 좋습니다.
이게 풍성하게 이렇게 나타나기도 하고 조금밖에 때로는 안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요. 우리가 신앙이 때로는 이렇게 좋다가도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 8가지 중에 만약에 한 가지라도 안 나타나면 내가 좀 생각해 봐야 돼. 예수님 아직 안 만난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봐야 되고 이 8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나타나거나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사람 있지 않습니까?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 이것은 왜냐하면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은 평생을 이렇게 살아도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믿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이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이라도 이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면 그분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라고 하는 스스로가 생각할 수 있다는 거 충분히 해서 제가 주님 믿는 사람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을 드려도 된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 다시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이렇게 딱 주시는 그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또 어떤 분은 그 예수님을 나도 믿었으면 좋겠다 믿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그래서 내가 예수님 만약에 후에라도 믿게 됐을 때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 나 정말 예수 믿은 사람이 맞구나 다시 생각하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그런 이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마침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팔복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복받은 사람들인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우리 마음에 그 큰 복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가 우리 마음에 가득 찰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일생 동안 살아가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점점 더 밝히 아는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 우리 가운데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 주님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그들도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들 또한 우리가 받은 이 복을 함께 누리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을 우리가 일생 동안 누리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이 복을 충만히 누리는 사람들 되게 해 주시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우리가 헛되이 하지 않도록,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지시고 또 피 흘리신 그것을 그 일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더욱 더 의미 있게 드러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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