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104말씀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 마태복음 4장 1-11절 •••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11절까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11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드니라.
아멘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새해 첫 예배 주 앞에 드리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마태복음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예수님 이 주제를 가지고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 심령을 활짝 열어주셔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에 잘 박힌 못과 같이 새겨지게 해 주시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주 앞에 다시 한 번 올려지는 그러한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사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건이죠.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마귀에게 이제 세 번 세 가지 시험 받으신 사건인데 예수님 시험받는 이 사건의 주체가 성령님이시라는 걸 알 수가 있죠.
그렇죠 4장 1절 보면은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 일이 진행되어져 가고 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이 사건과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을 이렇게 비교해 보면 조금 차이가 있고 지난번에 우리가 잠깐 살폈던 것처럼 마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잘 알게 되면 이 말씀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면이 있다고 그랬죠 그렇죠 오늘 본문도 그런 면이 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에는 1장에 이 사건이 기록되고 있는데 마가복음은 아주 짧죠.
예수님께서 성령의 거의 강권적으로 이렇게 말하자면 떠밀리다시피 하셔서 예수님이 시험 받으셨다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가 성령님이시다고 하는 것을 마가는 아주 강조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누가 복음 같은 경우에는 이 사건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냐 하면은 예수님 세례 받으시고 마태복음 같은 경우는 이 말씀이 그대로 이어져서 이렇게 나오게 등장하게 되는데 누가복음에는 그 사이에 족보가 등장해요.
요 사이에 세례 받으시고 족보가 등장하고 그다음에 시험 받으신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 족보를 보면은 마태복음의 족보하고 다르다는 걸 알 수가 있죠.
마태복음은 다윗을 강조한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으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마태는 강조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누가 복음은 계보를 보면 아담에서부터 쭉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제 두 사도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를 기록하려고 할 때 이 강조점이 다르다고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누가 같은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아담에서부터 우리가 이렇게 계보를 쭉 살펴보게 될 때 어떤 것을 금방 느끼게 되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생각하게 돼요.
누가 같은 경우는 이 복음서를 들려주고자 하는 대상자들이 헬라권에 있는 이방인들이죠.
주로는 그러니까 유대의 어떤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 하게 알 필요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자세하게 그리고 어떤 그런 충분한 배경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어떤 방식으로 구원에 관한 이 메시지를 증거해 나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담에서부터 계보를 이렇게 쭉 이렇게 연결해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마태복음 같은 경우에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으신 분이다.
그러니까 보통 다윗 하면은 우리가 그 연결해서 뭘 생각하게 됩니까?
이스라엘을 생각하게 되죠. 그렇죠. 이스라엘 그래서 마태복음 보면은 우리가 2장에서 예수님이 애굽으로 이렇게 가시는 태어나기 전에 태어나서 얼마 있다가 애굽으로 갔다가 다시 이제 돌아오게 되는데 마태는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냐면 구약의 호세야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그런 사건이었다 이렇게 그 사건을 해석해요.
마태가 그렇게 해석하면 우리는 이제 그게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애굽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그 사건을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대비해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는 거죠.
그 흐름선상에서 지금 이 사건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광야에 이렇게 가서 시험 받는 이 사건은 뭘 금방 생각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것과 이렇게 연결해서 보면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40년 광야 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시험받은 그 사건을 생각하게 돼요.
그러니까 그 사건을 사실은 마태는 생각하면서 예수는 그들과 어떤 점에서 달랐던 분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죠.
누가는 뭐냐 하면 아담의 계보를 이렇게 열어서 이어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뭐냐 하면은 구원자로 오셨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누가 복음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우리가 유심히 들여다보면 마태복음하고 다른 표현을 하나를 이렇게 써요.
누가 복음은 순서가 마태복음하고 뒤에 두 번째 세 번째 시험이 이렇게 뒤바뀌어 있거든요.
바뀌어 있는데 누가는 이 두 번째 시험 그러니까 마태는 거룩한 성으로 데려갔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데 누가는 그 성 이름을 예루살렘이라고 딱 얘기를 해요.
예루살렘을 누가가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그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거예요.
예수님은 고난 받는 종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는 말해주고 싶은 거죠.
그래서 누가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루살렘에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면서 기록하고 또 그 모든 과정에서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함께하셔서 성령의 어떤 인도하심 속에 그리스도의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누가는 많이 강조합니다.
그래서 누가 복음을 우리가 보면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그 성령의 역사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의 역사 그 누가가 기록한 말씀이에요.
사도행전은 저자가 누가입니다. 누가 복음의 저자도 누가 그렇죠?
그 통일성이 있어요. 그 책이 한 권으로 이렇게 해서 주어졌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근데 이제 마태는 여기서 이제 우리한테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게 뭔지 우리는 주목하고 그것을 우리는 이제 소화해 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패한 이스라엘과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점에서 승리하셨고 성공하셨는가 하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내 주고자 한다는 거죠.
네 근데 이제 이게 우리가 어떤 점에서 이 사건을 기본적으로 봐야 되냐면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으로 오셨는가 예수 그리스도 여기 이제 마태가 강조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셨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고 우리가 이런 표현 이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결국 사도들이 모든 사도들이 복음서의 제자들이 사실 강조하고 싶은 것들 강조하고 싶은 거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그들이 머릿속에 의식하면서 이렇게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소개시켜주고 있는데 어떤 것을 의식하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뭐냐 하면 사도 요한이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아니 세례 요한이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오셨다고 하는 그것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어요.
이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다 공유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의 표현으로 하면은 왕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는데 그분이 어떻게 하셨냐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그 얘기를 쭉 연결해서 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아예 이제 요한복음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세례 요한의 그 말을 언급하면서 그죠 그걸 기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왔다고 하는 것을 딱 먼저 말해주고 말씀해 주고 그것을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복음서의 기자들 그리고 우리 사도들이 머릿속에 어떤 것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물로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에 그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하는 거예요.
그것을 머릿속에 이제 그들이 갖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누가 또 갖고 있냐면 사탄이 그걸 딱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이 사탄의 시험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게 되는데 요 각각의 시험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살펴봐야 되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큰 그림 속에서 이것을 봐야 되냐면 예수님이 지금 시험받으시는 사탄이 말하자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되잖아요.
흠이 있는 순간 어떻게 돼요? 어린 양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돼요.
그러면은 이게 다 그냥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려요.
우리의 구원은 없어지게 돼요. 그러니까 사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사실 대단히 간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 놀라운 구원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데 사탄이 생각할 때는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일이에요.
왜냐하면 성공한 경험이 있거든요. 아담과 하와도 타락하기 전에는 이게 흠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죄가 없는 사람이고 죄성이 없는 사람이었다니까요.
그런 아담과 하와를 그들이 유혹해서 이렇게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어요. 마귀는 승리한 경험 그리고 아담과 하와 같은 경우는 되게 좋은 조건이었지 않습니까?
그렇잖아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안 먹으면 나머지 모든 것은 다 먹을 수 있어요.
그걸 왜 먹으려고 해요? 먹을 게 많은데 생명나무 실과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다 먹을 수 있는데 누릴 수 있는데 하나님이 이것은 하지 마라 이것은 먹지 마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그랬으면은 그렇죠.
먹지 말라고 그랬죠. 먹지 말라 그러면 그렇게 순종하면 되는데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마귀는 그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게 만든 그런 능력을 보여줬단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 이 예수님이 이제 40일 동안 금식하신 상황에서 그러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기 가장 어려운 상태죠.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유혹을 해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도록 만들기만 하면 사탄이 그냥 바로 승리하는 거예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죠 그렇죠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너무너무 불리한 상황 최악의 상황에서 예수님이 이제 과연 구원자로 계속해서 남아 계실 건지 아니면 그 조건을 잃어버리고 그렇죠.
우리의 구원이 그것으로 인해서 끝나는 더 이상의 어떤 구원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절망적인 상황이 떨어지는 그 상황에 떨어지는지가 결정될 수 있는 그 상황에 이제 예수님이 딱 계셨던 거거든요.
그래서 마귀가 어떻게 하면 되냐 하면은 예수님이 불순종하게 하면 되는데 예수님이 지금 무엇에 순종해야 되냐 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면 안 돼요.
여기서 예수님은 지금 철저하게 인간으로서 오셨고 그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그러니까 인간을 완전히 온전히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존재여야 되거든요.
철저하게 인간으로서 그 마귀의 시험을 다 받으셔야 되고 하나님께서 지금 예수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40일 동안 금식하는 거예요.
물도 마시지 않는 거 그것을 하나님이 명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명하셨기 때문에 순종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판단하실 때 아 그것은 너무 좀 그래도 어려운 것 같다 뭐 35일로 줄이면 안 되는지... 얼마든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너무 그거는 좀 극심한 거 아닌가 우리 인간 그렇게 하면 실제로는 뭐냐 하면 예수님이 죽거든요.
실제로 죽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께 명령하실 때 요구하는 게 뭐냐 하면 죽을지 살지를 선택하라는 거예요.
사실은 그게 그냥 견디는 어떤 그걸 지금 차원을 넘어가지고 죽을 때까지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거거든요. 그게 물을 40일 동안 그 그리고 막 이 환경 좋은 데서 안 먹는 거 하고요.
그렇죠. 광야에서 하는 거 이거는 차원이 다른 거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순종하는 것은 결국 예수님이 죽어야만 순종이 끝나는 그 어떤 상황까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예요.
실질적으로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명령하셨을 때 예수님이 이제 그것을 순종할지 말지를 결정하셔야 되는데 예수님이 거기에 순종하셔서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그곳으로 가서 있었던 거거든요.
그러니까 사탄은 뭐냐 하면 40일 동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냐 하면 아무것도 먹지 말고 끝까지 있으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다음에 다시 뭔가 명령하기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근데 그 사탄이 거기 들어와가지고 뭘 예수님한테 이제 유혹하냐면 떡을 만들어서 시장기를 조금만 달래라 그거예요.
떡 너 떡 만들 수 있지 않냐 우리는요. 그런 유혹을 해도 유혹이 안 돼요.
돌로 떡을 못 만들잖아요. 우리는 그걸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예수님은 떡을 그렇죠 돌로 떡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세요.
나중에 500여호 사건 보면 그렇죠 그런 분이세요.
예수님이 그러니까 얼마나 유혹이 되겠어요 이걸 만들면 만들 수 있거든요.
신성을 사용할 수 있는 분이시거든요. 근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끝까지 자제하신다는 것은 정말 힘드실 것 같아요.
우리는 우리는 그게 상상이 안 돼요. 그렇죠 너무 그 유혹이죠.
물 한 방울만 딱 이렇게 마시면 살 것 같은 그렇죠 숨 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상황에 예수님이 딱 떨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 상황에서 마귀가 딱 이렇게 시험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이렇게 이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그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려고 그래요.
그런데 사실 그걸 떠나가지고 예수님께서 말은 뭐냐 하면 나는 떡 안 먹겠다 이거예요.
그냥 물 안 마시겠다 그 말은 뭡니까? 나는 그냥 여기서 그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면 죽겠다는 거죠.
내 생명은 하나님께 있고 아버지에게 있고 아버지께서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지키지 않으시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내가 믿고 끝까지 순종하겠다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중에 십자가에서 이제 나중에 돌아가시 그러니까 사실은 40일 이 광야 시험에서 예수님은 사실 하나님 앞에 자기가 자기의 생명을 한 번 들여보는 그 사건이 벌써부터 시작된 거예요.
그 죽음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까지 그렇죠 같이 전체가 이렇게 예수님은 정말 무엇을 하러 오셨냐 죽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면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내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죠.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결국 뭐 하려고 하냐면요.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내려고 하는 데 있어요.
그게 핵심이에요. 그것만 이 두 가지만 잘 이해하시면 우리가 나머지는 이제 이렇게 그냥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왜 그런 방법을 썼을까 그렇죠 아니 예수님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탄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든지 구원하실 수 있거든요.
사실은 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한 방식으로 그렇죠 연약한 방식으로 우리 그렇게 그 구원 역사를 진행시키시고 완성하려고 하셨는가 그래서 한 가지밖에 이유가 없어요.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그 사랑이 가장 충만히 드러나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충만히 드러난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실은 뭐냐 하면 영광스러운 분이세요.
영광을 더 받을 필요가 없는 만큼 없을 만큼 영광스러우신 분이세요.
영광이 부족해서 영광을 더 받으려고 하시는 거 아니다는 거죠.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는 것은 우리 이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하잖아요.
막 그렇죠 하나님이 너무 영광을 갈망하시는 것 같은 느낌.
우리는 계속 드리기만 해야 되는 것 같고 하나님은 자꾸 받고 싶은 분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영광을 더 이상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영광이 충만하세요.
충분 충분하시고 충만하세요. 그런데 영광을 계속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때 우리가 가장 그때 행복해요.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장 영광 받으시는 그 자리에서 실제 뭐냐 하면 우리는 가장 큰 감격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거예요.
누리는 게 돼요. 우리가 살아가다가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없는 어떤 것을 향해서 막 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실제로 우리 상태가 어떠냐 하면 그렇게 좋지 않아요.
행복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가장 영광 받으실 때 우리가 제일 좋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이제 하나 그래서 하나님이 자꾸 영광을 내 영광을 위해서 나는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는다.
우상에게 주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게 너희가 그 영광 가운데 영광을 향해서 살아갈 때 그 영광이라고 하는 그 초점에 딱 맞춰서 너희가 살아갈 때 너희가 가장 큰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실제로 뭐냐 하면 이 40일 동안 금주이시고 시험 받으실 때 가장 연약한 상태지 않습니까?
이게 순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인간은 저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해야 될 정도의 그런 상황에서 순종하는 거거든요.
가장 연약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연약한 상태 가장 불리하고 고통스러운 상태거든요.
우리 성경에 보면은 이 사람하고 이분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고통받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욥 정도잖아요.
그렇죠 욥입니다. 다른 분들은 그냥 살 만큼 다 살면서 고난 받으셨어요.
아브라함도 다 근데 욥은 이제 잘 살다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자녀들을 다 잃어버리잖아요.
그리고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고 욥이 굉장히 그 동방에서 부자였는데 자녀들도 많고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복을 많이 받으면 하나님이 이 사람을 정말 특별히 사랑한다고 하는 것에 대한 표현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욥이 가지고 있는 재산 그다음에 자녀의 어떤 번성함은 하나님이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 이 사람이 도대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 살았길래 이렇게 하나님이 복을 주셨을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 자체가 욥의 어떤 신앙적 표현이거든요. 그 평가받는 하나의 척도들이에요.
그런 것들이 그런데 그것이 다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그 자체도 불행하고 또 욥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셔서 주신 그 모든 복을 거두고 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뭔가 이렇게 문제가 내가 문제가 있어서 내가 뭔가 잘못돼서 그렇게 하셨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인데 그렇죠.
근데 본인이 생각해 볼 때 그런 게 없는 것 같거든요.
자기가 생각할 때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은데 내가 하나님 앞에 잘 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죠.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럴까 하시는 그 마음이 욥에게도 있는데 입술로는 막 그걸 표현을 안 하려고 해요.
대단한 것 같아요. 욥이 보면은 욥이 나중에 이분이 정말 그리스도를 예표할 만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고백하게 되죠.
되는데 그 욥과 우리 주님과도 이렇게 비교해 보면요.
차이가 있어요. 욥은 견디는데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어떤 어떤 불만이 있어요 뭔가 불만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막 탄원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 탄원을 불만을 하나님 안에서 표현한다고 하는 게 위대한 점이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아요. 그 가운데도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은 결국 그 욥을 다 회복시키시는 그 과정을 보여주고 결국 뭐냐 하면 천상의 그 회의에서 욥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시험하는 그 사건이잖아요.
마귀가 욥을 시험했는데 결국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요을 지키시고 욥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그 사건이 이제 욥기죠.
욥기인데 그 예수 그리스도와 욥을 이렇게 비교해 봐도 예수님이 욥보다 훨씬 더 불리한 상황이에요.
욥이 이제 물론 욥도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고통이 본인도 막 정말 기왓장으로 몸을 긁어야 될 만큼 그렇죠 그 고통 속에서 있었어요.
어 근데 예수님이 40일 동안 물을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딱 있었을 때 보면은 하나님께 어떤 불만을 토로한다든지 불평을 한다든지 그런 표현이 나타나지 않고 사탄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렇죠 딱 시험했을 때 욥 같은 경우는 이렇게 간접적으로 어떤 환경을 통해서 시험을 했다고 한다면 여기서는 이제 사탄이 직접 예수님께 와가지고 딱 욕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상황에서 가장 말하자면 극복 저기 뿌리치기 힘든 그 제안을 하는데 그것을 이렇게 다 뿌리치고 또 어떤 점이 있냐면은 예수님은 실제 어 영광 받으신 이 만국의 주인으로 오셨잖아요.
만국의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너 나한테 절을 한 번 딱 하면 이 천하 만국을 내가 그냥 줄게 딱 그러거든요.
예수님 그러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해야 되는 것은 뭐냐 하면 분명히 만국의 주인으로 오셨어요.
예수님이 그런데 그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반드시 있어야 되냐 하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셔야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걸 완성하지 않으면 이 만국을 잃어버리게 되거든요.
만약에 마귀의 유역 제안처럼 너가 나한테 절 한 번 하면 내가 이걸 다 주겠다 하면은 너무 좋죠.
근데 예수님이 마귀의 유혹을 뿌리칠 때 우리가 어떤 점을 주목해서 이제 봐야 되냐면은 예수님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 부분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그 뜻에 따라서 그 상황을 다 해석했다는 거죠.
그 상황에서 그리고 그 해석에 근거해서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 모습이 딱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제 우리한테 대단히 중요해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이제 사탄의 유혹이 있고 그렇죠.
시험이 오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우리가 이렇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뭐가 요구되냐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게 되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게 불분명해 가지고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해서 이렇게 넘어뜨리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말씀 마귀는 보면은 광명한 천사같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 같아요.
그렇죠.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 말씀인 줄 알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넘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와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거예요.
그래서 한 거예요. 예수님을 유혹할 때도 결국은 뭐냐 하면 두 번째 시험에 보면은 너가 이렇게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너를 받으신다고 했다.
말씀에 보호하신다 고 했다.
자녀를 그러니까 해봐라 하나님이 반드시 할 거다.
하나님 믿어라 그러는 거예요. 아멘 하고 싶잖아요.
하나님 믿어라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그게 그 말이 아니거든요.
교묘하게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예요.
믿으라고 하는 그걸 지금 요구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교묘하게 시험하도록 그래서 그 하나만 잘못해도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만 불순종해도 예수님은 불순종한 그 죄를 남기게 되고 메시아로서의 자격을 바로 상실하게 돼요.
예 그렇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그것을 다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뭐냐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딱 가지고서 다 필터를 다 걸러냈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정확하게 마귀가 뭘 지금 나한테 도전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신 후에 그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딱 물리쳤다는 거죠.
그래서 물리칠 때 예수님이 마귀를 예수님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권세로 물리칠 수 있었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 권능으로 물리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그 말씀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그 말씀 가지고도 실패했어요.
그 말씀 가지고도 이스라엘은 갖고 있는 민족이잖아요.
말씀을 그 말씀이 있는데도 결국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실패했거든요.
그런데 예수는 그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그 말씀 그 그대로 사용해서 마귀의 시험을 딱 물리치고 그렇죠.
거기서 이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시거든요. 예수님이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과적으로 뭐냐 하면 그 시험 속에서도 나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어린 양으로서의 그 허미 없는 없애야 하는 그 조건을 계속해서 스스로 보존하셨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계속해서 이제 지 지켜내신 그 사건이고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근본적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기의 목숨을 처음부터 내어주시고 또 최종적으로 십자가를 통해서 목숨을 내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흠이 없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재물이 되신 거죠.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그렇죠 험이 없는 보열의 말하자면 어린 양의 죽음이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 어떤 말하자면은 그 효력을 갖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가 그래서 불순종했다면 그 효력이 상실되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이 순종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하나님 자녀 될 수 있는 그 모든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을 먼저 생각을 해야 되고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고난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의 그 실패를 승리로 다시 바꾸신 그런 면도 있지만은 그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지불하셔야 되는가 성육신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렇죠.
우리의 실패를 다 만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어디까지 순종하셨는지,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그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 건지를 우리가 잘 이제 깨달아야 되는 거죠.
그것을 잘 깨닫고 최종적으로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는 분이구나.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쫙 들여다보면서 어떤 사람도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렇게 나를 위해서 보여주신 그 모습을 이렇게 쫙 들여다보기만 하면요.
깊이 생각 안 해도 돼요. 쫙 들여다보고 예수님 옆에 따라 가기만 해도 진짜 어떤 사람도 그 마음에 그 하나님의 사랑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어 굴복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예수님을 잘 들여다보면은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탁 무릎을 꿇게 돼요.
그리고 그 사랑의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와 말하자면 기쁨과 경배를 표현하게 되죠.
그 자리에서 올려드리는 이 경배를 하나님은 받으시면서 하나님께서 이 영광을 받으시는 거거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 일을 하나님이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오셨고 이제 가장 먼저 이 고난을 받으셨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좀 잘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이 땅에 흠이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정말 하나님께서 주님께 준 그 모든 뜻을 성취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구원의 길을 허락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 찬양 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일생 동안 살아가면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점점 더 밝히 아는 사람들 되게 해 주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아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주 앞에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사람들인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올 한 해 동안 우리 새생활 교회가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와 찬양과 사랑을 담아 경배드리기를 힘쓸 수 있게 해 주시고, 그리하여 이 예배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높이 선포되어지는 그런 현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가 올 한 해 동안 충만히 경험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주님의 그 큰 은혜 안에 살고 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헌신이 우리 세상을 교회 모든 성도들 삶 가운데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배 > 말 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마태복음 6장 9-13절... 박주동 목사 (0) | 2026.01.31 |
|---|---|
| 팔복에 대해서... 마태복음 5장 1-12절... 박주동 목사 (1) | 2026.01.27 |
|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니이까? … 열왕기하 2장 1-14절 … 하광영 목사 (2) | 2025.12.29 |
| 예수님의 탄생(성육신) … 마태복음 1장 18-25절 … 박주동 목사 (2) | 2025.12.22 |
|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 열왕기하 6장 8-23절 … 박주동 목사 (1) | 202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