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마태복음 6장 9-13절)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2. 4. 07:03

박주동 목사

 

 

260201말씀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마태복음 6장 9-13절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서 같은 말씀 마태복음 6장 9절에서 13절까지에 있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가 산상 설교에 나타나 있는 주기도문의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기도문을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성경 전체를 공부하는 것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주기도문이 성경 전체가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이제 보내셔서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구속에 관한 일들이죠.
또 구속에 관한 일들만 이루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고 이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종국적으로 이렇게 완성하고자 하는 뭔가가 있는 거죠.
그것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이 주기도문 짧은 구절을 우리가 반복해서 기도하고 따라서 기도하고 또 묵상할 때마다 금방 떠올리고 또 기억할 수 있도록 주신 말씀이 주기도문이다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주기도문을 주님께서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정말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사실 병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제 이 제자들 입장에서는 이 말씀이 대단히 어렵고 그 시점에서는 이것을 소화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주님께서 기도에 관한 말씀 여기 보면은 산상 설교에서는 기도에 관한 말씀을 주시면서 그 사이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라 해서 좀 더 바람직한 기도가 어떤 건가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그 정도에서 제자들이 그 산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이런 말씀을 다시 이렇게 이해하려고 할 때는 제자들이 그 산에서 주님께 그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 제자들이 소화했던 그 정도 수준에서 우리가 소화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이제 성경 전체가 이제 완성이 됐지 않습니까
계시가 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특히 우리가 사도 글을 통해서 기록된 그 서신이죠.
서신의 말씀까지 참고해서 그 빛에서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고 또 이 말씀도 보게 되는데 그렇게 봤을 때 우리가 이 주기도문을 생각해 보게 되면 이 말씀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가 마귀에 의해서 그렇죠 잃어버리는 그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들이고 하나님의 소유인 거죠.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인간 그러니까 이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자로 아담과 하와를 세웠는데 그 인간이 마귀의 시험에 의해서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 하나님의 통치를 주장하셔야 될 이 세계적 그 세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잃어버리는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 창조가 끝이 아닌 창조구나 하는 것도 이제 나중에는 알게 됩니다.

처음에 창조할 때는 그런 것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우리가 완성의 어떤 빛에서 다시 이렇게 보게 되면 아 우리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 창조가 다가 아니고 그 창조의 과정 속에서 뭔가 하나님이 종국적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그 하나님의 큰 꿈이 있었다는 거를 알게 되죠.
그 꿈이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졌죠.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어져 지금 가고 있는 그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 주기도문의 말씀을 주신 것은 뭐냐 하면 결국 그 잃어버린 그 세계 속에 세계를 하나님께서 다시 뭔가 회복시켜 가지고 다시 하나님께서 되찾아오셔서 그렇죠.
하나님의 그 소유를 주장하시면서 최종적으로 그것을 기반해서 하나님이 처음에 꿈꾸셨던 것을 완성하고자 하신다는 거죠.

그렇게 꿈꾸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제 그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 일은 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주는데, 하나님께서 이 잃어버린 세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급한 것은 결국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백성을 다시 찾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꿈꾸셨던 것은 결국 하나님이 이 세상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의 나라거든요.
그런 나라를 하나님이 꿈꾸셨던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이제 이 세상 사람들 볼 때는 참 말이 되지 않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내용이에요.
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는 이 세상은 뭔가 이렇게 나라들에 의해서 통치되는 것 같고 또 소수의 어떤 권력가들이나 특히 우리 시대 같으면은 어떤 몇몇 대단히 그 영향력 있는 사람들 우리가 정말 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별과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어떤 인물들이나 권력가들에 의해서 이 세상이 이렇게 움직여지는 역사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그런 어떤 탁월한 인간이 이 세계를 이끌고 계속해서 뭔가 발전된 어떤 세계를 이루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그런 유토피아죠.
그런 데 대한 막연한 우리 인간의 꿈이 있고 비전이 있습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 역사를 보면은 역사의 어떤 종국이 있겠구나 하는 것도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자신들을 보게 되면은 우리가 한 세상 이렇게 살아가는데 한 70 80 90 이렇게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시간을 사는 동안에도 우리는 어떤 착각에 자꾸 빠지냐 하면 영원히 살 것 같아요.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어떤 착각에 계속해서 빠지면서 사실은 우리 인생을 이렇게 살아갈 정도로 우리가 대단히 연약하거든요.

그런 우리의 이제 눈에 이 역사는 계속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어떤 개척해 가고 발전시켜서 뭔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보지 못했던 그런 세계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어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성경은 이제 우리 우리에게 정확하게 이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됐고 인간은 인간의 끝은 어떻게 종결될 것인가에 대해서 이 역사는 어떻게 종결될 것인가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이 성경의 선포가 사실 대단히 충격적이고 또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금방 이렇게 거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되게 될 때 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선포하신 이 말씀이 참되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믿으면서 받아들이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단순하게 그냥 지적으로 동의하는 어떤 그런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러니까 지적으로도 우리가 충분히 납득되고 설득될 수 있는 요소를 성경은 갖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우리 역사 속에서 탁월한 그런 지성인들도 성경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에 의해서 설복이 되어지는 거거든요.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믿음을 이렇게 다 주셔가지고 선물로 주셔요.
주셔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이 세계가 이 세계를 지금도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그 권능의 이 팔로 붙들고 계시고 역사해 가신다는 그 권능을 지금 시행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감지할 수 있는 거죠.

그걸 보면서 우리가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돼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조금만 겸손하다고 하면 그렇죠 하나님 편에서 볼 때의 그 겸손하다고 하면은 하나님의 어떤 그 창조를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서 누군가 어떤 대단히 창조적이고 심지어는 그 미적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고 또 한편으론 대단히 유머러스한 어떤 그런 존재가 이 세계를 창조했을 거라고 하는 것을 인정을 하게 돼요.
그것을 믿는 게 쉽지 이제 우리가 학교에서는 막 진화론 배우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이론을 믿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훨씬 더 어렵거든요.
그것을 가르쳐주고 이거 너 믿어봐라 하는 것이 그렇게 서 믿으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사실은 어려운 건데 우리가 조금만 생각하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그렇죠 분류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이상하게 그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하는 그렇죠 왜냐하면 이 세계를 우리가 창조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세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창조할 수 있는 세계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이게 어떤 우연히 이렇게 창조됐든지 어 생겨났든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 지어져야 되는데 이 세계를 보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대단히 사실은 과학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빗대서 말한다면요.
대단히 과학적인 거죠. 너무 과학적이어서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다 탐구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그런 것을 우리가 보면서 그렇죠 그래서 아주 미세한 세계에서부터 우주에 이르는 그 광활한 세계까지 다 들여다봐도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보게 되면 우리가 어떤 창조자에 대한 경외감과 그 존재 앞에서의 그 겸손함에 이르러야 되는데 인간은 안 그래요.
그 순간에도 인정을 안 한다는 거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거라고 하는 것을 인정치 않는 면에서 인간이 대단히 독특하고 한편으로는 대단해요.
인간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그 정도 상황에서도 그것을 거부하고 그렇죠 거역하고 자기의 고집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어떤 아주 독특하면서 대단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이게 이제 사실은 보면은 제약 제약된 우리의 타락한 성향 때문에 그런 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뭐냐 하면 그것을 독립적으로 생각하면서 거부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인간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처음부터 높고 존귀하게 사실 지으셨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과 함께 교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의 그런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렇게 창조하셔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를 이렇게 꿈꾸시는데 그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면은 결국은 사랑이 충만한 나라거든요.

하나님의 그 은혜가 충만해서 그 은혜 안에서 그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삶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서로 사랑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 삶에 대한 꿈이 하나님께 있었던 거거든요.
그게 이제 그 삶이 얼마나 충만한 어떤 영광 속에서의 삶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다 지금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조금 아는 거죠. 조금 알아요. 조금 아는데 어떤 분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가 영원히 이제 살게 됩니다.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데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영원히 사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현재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고 그 나라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부분은 이제 계속해서 좀 특별히 더 강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하고 자꾸 미래적으로 이게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 가지고 저도 이렇게 표현하다 보면 그래요.

지금 우리가 사는데 그 하나님 나라의 이제 극치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극치의 순간에 우리가 와서 영원히 그 극치의 순간을 누리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순간 어떤 때는 야 그 삶도 대단히 참 지루할 수 있겠다 그래요.
그런데 언제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한 번씩 느끼느냐 하면은 우리가 누군가를 그렇죠.
지극히 사랑하고 또 우리 내면의 어떤 그 행복감이 정말 충만할 때가 한 번씩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보면은 그 어떤 것을 느끼냐 하면 그 짧은 시간이죠.
사실 우리가 그걸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의 찰나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입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뭘 느끼냐 하면 영혼을 느껴요.
그 행복이 영원 속에서 이렇게 쫙 이렇게 인식돼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영원 속에서 뭐가 없냐 하면은 이 시간에 간다고 하는 거 그렇죠.
시간이 가면서 그 시간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어떤 이제 우리가 익숙한 그 지루함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다 이렇게 경험을 하면서 그 세계 속에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어떤 그러면서 염려도 하고 그러시는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사랑 속에서 우리가 교제하고 우리 속에 그런 교제가 일어난다고 하면은 우리는 실질적으로는 뭐냐 하면 이 시간이 가는 것을 인식을 하기가 어려울 거다라는 거죠.
그런 곳이 그래서 아마 우리가 생각 상상하고 생각하는 그 너머의 어떤 세계인데 우리는 분명하게 아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지금도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 때문에 이렇게 때때로 행복하다고 하면 그 순간에 얼마나 그 행복이 그 기쁨이 충만할까 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런 세상을 이렇게 꿈꾸고 계셨는데 그 세상이 말하자면은 어 그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는 그 위기에 직면했다는 거죠.
언제 직면했느냐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에 둘이 잘 계속 살았어야 돼요.

잘 살아야 되는데 사탄이 그 뱀을 사용해서 유혹을 해요.
그래서 사탄에 의해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서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된다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그 관계가 사실상 깨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되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거죠.
그 일이 창세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장면을 다시 한 번 조금 생각해 보면 어떤 장면이냐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에 에덴 동산에서 사람을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이 지금 이렇게 학자들은 어디쯤일까 생각하는데요.
저쪽에 유프라테스 강 쪽 그 강이 큰 강이 이렇게 맥티그리스 강하고 이렇게 몇 개의 큰 강이 있어요.
그쪽이 아닐까 이렇게 추측은 합니다. 정확하게는 모르는데요.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이 지구적으로 어떤 지각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정확하게 위치를 찾기가 어려울 텐데 대강 이제 그 정도가 아닐까 하는데 에덴 동산은 그 에덴 동산에서 여러 개의 강이 강의 발원지일 만큼 그곳은 조그마한 동산이 아니다는 거죠.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그 당시에 하나님이 창조한 이 창조의 세계를 다스리는 데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모든 동물들 이름을 다 지어질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걸 다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어요. 네 그거를 다 알아요.
동물들 있지 않습니까? 동물들 이 비둘기가 있으면은 비둘기 비둘기 전체만 아는 것이 아니고 비둘기 한 마리 한 마리의 특징을 다 알 정도로 그런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사실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다 이렇게 지어주고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질적으로 대행할 만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어요.
인간이.

그런데 그 에덴 동산에 살 때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너희가 먹지 말라 하는 그 하나의 그 이제 명령이죠.
하지 마라라고 하는 유일한 명령 그리고 나머지 모든 실과는 너희가 먹어도 된다.
그래서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 어떤 삶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탁 따 먹게 돼요.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그렇죠. 그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사용해서 유혹을 해서 결국은 그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하면서 죄를 범하게 되는데,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담과 하와의 죄가 얼마나 큰 죄냐 하나님의 존재를 침범한 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거든요. 인간은 인간이 자기에게 죄를 범하는 것은 자기를 창조하시고 소유하고 계신 그 하나님의 존재를 침범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영광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의 가치는 측량이 안 되는 분이세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에게 죄를 범하는 것은 그 죄의 크기라고 하는 것은 측량이 안 된다는 거죠.
예 그런 이제 측량할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이후에 인간에게 내린 그 형벌을 보면요.
그것이 죄의 경중을 따져서 만약에 하나님이 심판을 하셨다면 그 정도 심판으로도 안 됐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이 그 심판하는 그 하나님의 심판 속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구원의 길도 여전히 남겨 놓으시면서 인간을 이렇게 심판하는데 그래도 우리가 볼 때는 그 심판이 어떤 심판이냐 하면 삼중적인 죽음의 우리에게 선고된 그 심판이었죠.
대단히 우리에게는 무시무시한 심판입니다. 네 정말 무서운 심판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다 흙으로 돌아가야 되는 심판이 선고됩니다.
그러니까 원래 인간은 죽지 않는 존재로 창조됐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죽는 게 익숙한데 당연한데 실제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그 몸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존재였었어요. 그게 상식이어야 되는데 지금은 그것이 그런 이야기가 이상한 이야기가 된 거죠.
이상한 시대의 이야기가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 성경은 우리가 그 진리로 우리를 다시 이렇게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생각이 다시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너무너무 정말 대단한 말씀이고 또 감사한 말씀이다 하는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그다음에 두 번째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면서 영적 죽음이 있게 돼요.
이것을 죽음으로 사람들은 잘 인식을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죽음으로 인식을 잘 못해요.
그리고 이 죽음이야말로 실질적으로는 정말 무시무시한 어 심판이 되었구나 심판이다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고 축복된 일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이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의 단절이 가져온 그 참상이 얼마나 그 비참함이 얼마나 큰지를 잘 인식을 못해 그래서 이제 우리 예수님 믿어서 그 기쁨과 즐거움을 조금은 알지 않습니까?
그 감격이 우리 안에 이제 있죠. 그래서 한 번씩 한 번씩 생각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다면 어떨까 한번 생각해 보면 정말 내가 목숨은 잃어도 그것은 안 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정말 참으로 믿음에 이르잖아요. 그러면 그냥 얼핏 생각하면은 내가 목숨을 잃을지 목숨을 잃는 것은 안 되겠다.
내가 차라리 예수를 부인하고 목숨은 건져야 되겠다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정말 실질적으로 그런 일이 이렇게 발생하면 그렇게 선택 안 할 것 같아요.

마지막 순간에는 정말 그것을 참으로 선택해야 되는 상황이 만약에 온다 그러면 주님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그 주님과 관계가 깨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단순하게 지금의 어떤 깨어짐의 문제가 아니고 영원히 깨어지는 것이죠.
그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제 그다음에 또 다른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죠.
그래서라도 이제 관계가 깨어져서는 안 되는데 그것보다도 지옥에 떨어지는 그것을 접어두고라도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그 삶 속에서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도 그렇고 우리 2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정말 그 것을 선택해야 되는 순간에 우리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하나님께 어떤 면에서는 이제 드리는 그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 믿음의 선조들의 후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도 아마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주었던 믿음이고 동일하게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하는 것을 충분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두 번째 심판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심판이고요.
그리고 최종적 세 번째 죽음이 뭐냐 하면은 그것이 끝이 아니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 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그때 뭐가 있느냐 최종적 심판이 있게 돼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이제 부활 얘기를 지금 말고 한참 뒤에 얘기를 해야 되는데 그렇죠 우리가 이제 말씀을 잘 알고 있어서 부활에 대해서 곧바로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
다 부활하게 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떤 부활이냐 생명의 부활이다 그러죠.
영원히 이제 그 몸을 입고 살기 위한 부활이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부활이냐 영원한 그 형벌에 떨어지는 부활입니다.
예수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즉각적으로 어 죽음과 함께 지옥에 떨어지게 돼요.
영적인 몸을 영적으로 그 상태에서 떨어져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느끼는 고통이 이제 바로 즉각적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몸을 잊지 않아도 고통은 그 영혼이 겪는 고통은 마치 몸을 입고 고통당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물론 나중에 그들이 부활하면서 몸을 입을 때 그리고 몸을 입은 후에 최종적으로 심판에 처해지게 될 때 그 고통은 제가 생각할 때는 훨씬 더 큰 고통일 것 같아요.
영혼만 이 고통 당하는 게 아이 아니고 몸을 입고 있는데 죽지 않는 그 몸 불로 이렇게 소금 친다고요.
불이 붙는 붙어서 타오르는데 거기에다가 소금을 뿌리는 그런 어떤 고통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이것은 인간이 이제 세상에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어떤 한계를 넘어서는 그런 고통입니다.
그런 심판이 남아 있는 존재가 됐다 하는 거죠.

그 삼중적 죽음이 선고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 잃어버린 백성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찾으시려고 하는 그 계획을 시작하시고 그 계획을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그것을 진행시켜 가시는데 그 진행시켜 가는 그 역사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느냐 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일을 이루려고 하시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부르신 사람이 누굽니까?
육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혈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부르신 그 사람.
네 아담부터 불렀죠. 불렸는데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 명 이제 있습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이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우리 요한이 이거는 알아야 돼요.
요한이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라는 걸 알아야 되고 이삭의 아들은 야곱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제가 언약학교에 있을 때 주일 학교를 11년인가 했거든요.
근데 맨날 한 게 뭐냐 하면 아브라함의 아들이 누구예요?
그거예요. 그럼 꼭 예수님이라 그래요. 우리 애들이 그게 10년이 지나도 그러더라고요.
중학생이 돼도 그래요. 그러니까 아 이걸 계속해서 얘기해야 되는구나.
아브라함의 아들은 누구 아브라함과 예수님이 오시기 전 그 사이에 있었던 아주 우리 유명한 왕이 하나 있는데 누구세요?
그러면 이제 또 막 다른 사람을 얘기 막 합니다. 또 다윗이라고 얘기해야 돼요.
아브라함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한 2천 년 전에 오셨고 그다음에 그 사이에 딱 한 천년 빛이 천 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왕 그분이 이제 다윗인데요.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이렇게 선택하시는데 이 성경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대부분이죠.

구약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인데 이것을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봐야 되냐 하면 하나님께서 만들고자 하는 그 하나님의 나라 있지 않습니까?
최종적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것의 모형이에요.
모형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중에 어떤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별하게 이 사람들만 구원하려고 이렇게 탁 택한 어떤 그런 민족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 세계를 완성하고자 하는 그 세계를 그 세계가 어떤 세계고 내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완성시켜 갈 것인가를 그리고 어떤 그 사역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그 일이 완성 되느냐 하는 것을 예표하기 위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그렇죠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택한 그 백성들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각을 그래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택하셨는데 자기들은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딱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자기들 외에 나머지 모든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냥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제로 그래요.
지옥의 땔감이다 지옥의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존재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없다 하는 게 그들의 생각 속에 있었던 거거든요.
그게 탈모드나 이런 데 보면 그들의 의식이 그대로 나와요.
진짜 그래요. 그러니까 이제 그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아마 얘기는 잘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자기들끼리는 실제로 그들은 그 정도 아닐까 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러니까 우리가 로마서에 보면은 어 그리고 또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실제로 뭐냐 하면은 그 이방인들을 할례받지 못한 백성 이러지 않습니까?
그리고 로마서나 이런 데서도 할례받지 못한 그 이방인들의 그 구원에 대해서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막 힘들어하는 그런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거든요.

그만큼 이방인들을 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정말 그야말로 지옥의 땔감 정도나 그들이 그들의 어떤 역할이 있을까 그 정도까지 생각할 정도로 그랬는데 그 유대인들이 실질적으로 착각했던 것이고 실질적으로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완성하고자 하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먼저 이렇게 모형 모형적으로 보여줘서 그것을 우리가 먼저 이렇게 한번 이렇게 보게 해줘서요.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이것을 이것의 어떤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그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자 한다는 거죠.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또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 신약 시대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그 이스라엘을 보면서 그 하나님이 완성하고자 하는 세계를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되는 그 일이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렇게 우리가 쫙 보게 되면은 하나님이 완성하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냐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백성들의 그야말로 다시 하나님이 되고 그들의 다시 아버지가 되려고 하는 데 있구나 하는 것을 먼저 가르쳐줘요.
그리고 그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렇게 가르쳐 주는데 그 핵심이 뭐냐 하면 하나님처럼 너희도 사랑이 충만한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사람 되어야 된다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완성된 그 하나님의 세계는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북적이는 세상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신 것처럼 사랑이 충만한 그 고유의 말하자면 그 공동체 그 나라를 하나님이 꿈꾸고 계신다는 것을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이렇게 보여주세요.
보면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해 보면 대단히 복잡한 것 같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그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시는 가르쳐 주려고 하는 바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게 사실 아주 분명하고 또 또 한편으로는 단순합니다.
그래서 역사가 왜 그 복잡하게 이렇게 기록되고 있느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 구속에 관한 일들을 게시하기 위해서 그런 거거든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이루려고 하시는데 그 구속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에 다시 유입되는 그 일이 일어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구약의 하나님을 믿고 돌아가신 분들 아브라함도 그렇죠.
이삭 야곱 이런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 믿고 이렇게 돌아가셨는데 그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도 그곳에 계셨을 거예요.
그렇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그곳에 계셨을 거 아니에요.
어디 이상한 어중간한 데 있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들이 어떻게 갔겠어요?

아직도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그 구속을 미리 적용하셔가지고 실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그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나 그 이후에 있게 될 사람들만을 위해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고 아담에서부터 그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전에 그것이 있었던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동시적으로 그것이 적용이 돼버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예수님이 오시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이렇게 간 그분들 에녹과 같이 하나님께로 바로 올리어진 그런 분들 어떻게 거기에 이렇게 갈 수 있었느냐 그분들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을 믿었죠.

그 하나님을 믿는데 그들의 그 믿음 속에 뭐가 함께 마치 씨앗처럼 이렇게 포함되어 있었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여 구속하실 그 약속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모든 구속의 사역이 그 그들의 믿음 속에 같이 들어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사역에 근거해서 그들도 구원받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분들이 하나님을 믿었어도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최종적으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이전에 돌아가신 분들도 사실 구원 못 받아요.
그렇습니다. 아무도 구원 못 받는 거예요. 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에 유입되는 일이 있어야 되는데 그 일이 있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되는 이 사건이 있어야 되는데 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되느냐 그것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죄의 삭은 사망이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을 때 그 죄에 대한 대가로 기본적으로 우리가 지불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목숨입니다.
그런데 그 목숨을 그렇죠. 우리가 다 그대로 지불하게 되면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겠죠.
누군가 대신해서 내 목숨 값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실질적으로 그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우리의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셔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냐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시는 그 일을 행하셨어요.
그러니까 십자가에 지신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에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 한 부분이거든요.
그러니까 두 가지를 하신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하나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순종하신 그러니까 우리가 순종해야 될 순종이 있지 않습니까?
죗값을 지불하는 그 정도 차원이 아니고요. 우리가 원래 하나님께 순종해야 될 순종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우리를 대신해서 다 순종하신 그 순종이 하나가 있고요.
그 측면이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우리의 죗값을 대신해서 지불한 그래서 집을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그 순종이 있는 거죠.
그 순종이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하나죠.
하나인데 그 순종의 두 측면이 있는 거죠. 그래서 옛날에 우리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것을 구분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능동적 순종하고 수동적 순종 이렇게 구분해서 표현했는데 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이 표현을 또 안 쓰려고 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적극적 순종, 소극적 순종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표현도 조금 이상해가지고 그러니까 뭐냐 하면 우리 주님 우리가 감당해야 될 순종을 다 감당한 측면이 하나가 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불해야 할 죗값을 대신해서 지불하기 위한 그 순종 그 두 순종을 우리 주님께서 다 감당하심으로써 이제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빛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될 그 빛의 문제 빚의 문제를 우리 주님께서 다 청산해 주신 거 대신에 청산해 주셨습니다.
청산해 주셔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뭔가를 해야 될 게 없는 상태가 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우리가 받아야 될 모든 진노를 우리 그리스도께서 다 그 진노를 다 받으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더 이상 우리에게 쏟아질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그 상태 속에 있는 겁니다.
네 그래서 그 상태 속에 있고 우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 앞에 다 지불하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느냐 하면 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요구하세요.
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그 믿음을 어떻게 우리에게 주시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거죠.
그 믿음도 선물로 주세요. 그러니까 믿음도 하나님이 그냥 또 주세요.
뭘 또 해야 또 믿음을 주시는 게 아니고요. 믿음을 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믿어지지 않습니까?
아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구나 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도 선물로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데 우리가 이게 딱 믿어지게 그러니까 믿을 때 그때 어떤 일이 실제로 발생하느냐 하면 삼위 하나님 중에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 완성하신 그 모든 구속의 일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딱 적용하세요.
그러니까 성령님이 없으면 구원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 그러니까 이 구원 역사는 성부 성자 성령 3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일을 했죠.
그것만 갖고도 안 돼요. 그것을 성령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실제로 효력 있게 적용해 줘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적용할 때 뭘 먼저 주느냐 하면 믿음을 탁 주세요.

믿음을 탁 주셔서 그 주시면서 그 그리스도께서 이루어주신 모든 구속의 일들을 우리 각 사람에게 적용하셔서 그러니까 어떤 일이 발생하냐면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그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게 된다는 거죠.
그 일을 성령님께서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어떤 일이 발생했냐면은 2천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그때 돌아가실 때 지금 여기에 있을 우리가 우리도 2천년 전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같이 죽은 사람으로 성령께서 그렇게 간주해 준다는 거죠.
아멘 실질적으로 그냥 그게 그 효력 있는 죽음입니다.
우리도 그때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시면서 실질적으로 우리가 우리도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도 하나님께 무엇을 이렇게 지불할 게 없는 실질적인 그런 존재가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값을 실질적으로 다 지불한 사람들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일들을 우리 주님께서 이루시면서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유입이 되는 일이 이렇게 있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질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일을 다 완성하시면서 그때부터 시작되어져서 그때부터 시작되어져서 그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아담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그렇죠 그때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되어져서 그 일이 거기에서부터 아담의 이 역사 속에서 마지막 인류까지 그렇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역사 전체 속에 적용이 되고 그래서 아직까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 어떤 사람들이 있는 겁니까?
우리가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그 작정 속에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 백성 된 사람들 그들이 있어요.
하나님 편에서는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미 그 하나님 보실 때는 그 나라가 다 또 완성이 돼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시간의 개념에서 사는 분이 아니세요.
알파와 오이 처음이자 끝이신 분이에요. 우리만 모를 뿐이지 하나님은 사실은 뭐냐 하면 완성된 그 세계를 이미 갖고 있고 그렇죠.
그 세계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지도록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나타내게 해 주시는 분이다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제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주기도문은 지금 오늘 주기도문 이제 완성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이 세계의 키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여기 담겨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려고 했던 말씀이 이겁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아주 핵심적인 내용이다 하는 거.

그래서 조금 전에 제가 설명했던 그 하나님이 꿈꾸셨던 나라를 하나님이 완성하려고 하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주님께서 완성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될 일을 하기 위해서 오셨고 그리고 너희는 그 나라가 계속해서 이 땅에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라 그렇게 우리에게 또 요청하고 있는 거죠.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해야 될 사역은 이미 다 감당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이 교회를 이제 주시는 겁니다. 우리 후대의 세대들을 향해서도 이 말씀을 듣고 계신데 그 이후에 그렇죠 그리스도께서 나중에 승천하시지 않습니까?
승천하신 이후에 남아 있는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계속해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 일을 위해서 너희 자신을 드리라 하고 주신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것을 가져다주셨고 또 이것을 우리에게 숙제로 이렇게 남겨주셨는데 능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완성하고자 하는 그 나라를 온전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딱 생각하시면서 우리에게 지금 이 역사에 참여하도록 부르시는 분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쓰실지 어떻게 쓰실지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우리가 열심히 해서 많이 하나님의 뜻에 잘 순종할 수도 있고 또 우리의 교회가 이 하나님의 뜻에 정말 충분히 이렇게 정말 순종하지 지 못했다고 이렇게 평가받아야 되는 어떤 그런 교회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그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분명한데 우리 편에서는 뭐냐 하면요. 아 간절히 기도해야 돼요.

우리가 정말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데 우리 교회가 잘 쓰임 받게 해달라고 그렇죠 우리가 이 아까 게으른 종아 이런 얘기 들으면 안 된다는 거죠.
게으른 종아 착하고 충성된 종들아 하고 칭찬받을 수 있을 만한 그런 어떤 우리의 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리 속에 잘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거죠.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기도문 말씀을 제가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완성하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하늘로 올리우셨는데 우리 주님께서 올라가시면서 다시 오겠다고 그리고 속히 오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가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느 때에 다시 오게 될 텐데 하나님 나라의 극치가 그때 우리 눈에 펼쳐지게 되고, 우리가 주님을 배웠고, 주님께 우리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감격과 영광 속에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께서 이 땅에 두신 것은 우리를 이 세상에 구별하셔서 하나님이 지금도 이 세계를 이끄시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시고 또 완성시켜가는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이 거룩한 교회를 통하여서 나타내고자 하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모습이 우리 교회 속에 잘 나타나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로 잘 살아서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이 기도가 우리의 사역과 삶을 통하여서 성취되어져 가는 모습이 우리 교회 가운데 잘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