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신자의 신앙성장... 베드로후서 1장 1-11절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2. 24. 21:53

박주동 목사

 

 

260222말씀 신자의 신앙성장... 베드로후서 1장 1-11절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후서 1장 1절부터 11절까지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부터 11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더불어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으실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아멘

지난 주에 이 말씀을 잠깐 언급을 했었었는데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연합과 관련해서는 하나님과 연합되어져서 살아가는데, 우리의 신앙에 성장에 걸림이 될 만한 어떤 그런 요소들을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이제 세월이 지나면은 그 세월이 지나는 만큼 정상적으로 이렇게 꾸준히 성장해 가야 되는데, 우리가 부패성을 가지고 있어서 끊임없이 마치 이렇게 길을 가다가 웅덩에 빠지는 것처럼 정상적으로 가지 못하고 한 번씩 우리가 연약함에 툭 떨어지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신앙 성장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곤 하는데 그러한 것들을 우리가 좀 더 이제 인식을 하면서 그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연합과 관련해서 그래서 오늘은 어떤 부분을 생각해 보려고 하냐면은 우리가 어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그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노력들이 또 요구되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결국은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런 하나님 백성다운 가장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 어떤 모습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이제 충분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 두 가지를 강조했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강조하셨고 또 사도 요한과 같은 경우에도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너희도 이렇게 서로 사랑하라 그리할 때 그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히 거한다 하는 그런 얘기들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경우에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고 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고 특별히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많이 말하기 때문에 좀 그 표현 자체가 자칫하면은 진부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하나 마나 한 얘기가 되기가 쉬운 거죠.

그래서 사랑 얘기하면 또 저 얘기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깊이 이렇게 잘 생각해 보게 되면 이것이 어떤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는 우리가 죽고 사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대단히 심각하고 그렇죠 우리가 진지하게 다뤄야 되는 주제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 이런 말 이제 하면 또 그래 사랑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그러면서 그 외에 어떤 중요한 것들 그렇죠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것들 우리가 많죠.
그런데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우리 시선이 쉽게 돌아가곤 하는데,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이렇게 계속하면 할수록 우리의 시선이 이렇게 다른 좀 부수적인 것들에서 그렇죠.

주변에 있는 것들에서 점점 가운데로 이렇게 오게 되는데, 우리가 이렇게 계속해서 주목해서 바라보면서 늘 이렇게 기억해야 되는 내용이 어떤 내용이냐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 사랑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그곳에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신앙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사실은 그 중요성에 대해서 더 깊이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렇게 많은 복잡한 문제죠.
관계적인 어떤 문제 또 교회의 어떤 질서와 관계된 정치 질서와 관계된 그런 문제들 발견하게 되는데,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세속화의 문제 그렇죠.
영적인 어떤 타락의 문제 이런 교회가 큰 시험에 들기도 하고 그러는데요.
근본적으로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이렇게 이탈한 그 문제입니다.
다 그거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하는 데서 실패하면서 결국은 뭐냐 하면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에서 실패하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떠나게 되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한테 이렇게 이렇게 살아라 하고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실 떠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씀들이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본적 성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그런 성정으로는 순종할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아니죠.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 하면 이렇게 딱 받아들이면 금방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 거룩한 말씀이죠. 생명의 말씀이고 빛이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딱 이렇게 다가오게 되면 우리가 즉각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돼요.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임하게 되면 그 말씀의 그 빛으로 인해서 우리가 되게 부담감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말씀이 너무 밝아서 마치 우리의 이렇게 치부를 활짝 이렇게 드러내는 그 순간과 우리가 맞닥뜨려야 되고 우리가 이제 아픈 곳을 그렇죠 반으로 이렇게 탁탁 찌르는 것 같은 그런 또 아픔을 느끼게 해 줄 때가 많거든요.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우리의 본성은 뭐냐 하면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거슬러서 가는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 그게 우리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거든요.
그쪽으로 갈 때 오히려 우리는 더 이렇게 안심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때가 많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실질적으로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이렇게 계속해서 나아가고 그렇죠 말씀 앞으로 우리가 간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닌데 실질적으로는 상당히 사실 영적인 투쟁을 요구하는 어려운 그런 일들이 지속되게 하는 것이 뭐냐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이렇게 베풀어주신 그 은총이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모든 은총은 뭐에 대한 은총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분유해 주시는 나누어 주시는 그 은총이죠.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렇게 딱 나누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우리에게 그 의를 이렇게 나누어 주시고 그렇죠.
의를 전가해 주시고 또 그리스도께서 그 의만 증가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돌보시기 위해서 뭘 하셨습니까?
하나님 자신을 또 보내시죠. 그분이 성령님이시죠.
예수님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고난을 받으셨고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계속해서 실질적으로 우리를 이렇게 돌보시는 그런 일들을 하세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이렇게 종합적으로 이렇게 챙기시는 분인지 사랑하시는 분인지를 잘 이렇게 우리가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가 이렇게 잘 형성이 되고 하나님을 결국은 뭐냐 하면 깊이 사랑 사랑하는 사랑해서 우리 마음에 그 사랑이 이렇게 차고 넘쳐서 형제를 향해서 그렇죠.

겸손하고 온유함 그죠 그리고 그 관용함 그리고 그 형제를 사랑하는 그런 모습이 쫙 이렇게 나타날 때 실질적으로는 어떤 현상이 있느냐 하면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그 어려움과 아픔과 이런 것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다 사실은 해결되어져 가는 그런 하나님의 그 사랑에서 실질적으로 그 생명을 살리는 그 능력이 그곳에서부터 계속해서 흘러나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점점점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후서의 이 말씀도 결국은 뭐냐 하면 8가지 덕에 대해서 얘기하는데요.
마지막에 보면은 형제 우애의 사랑을 더하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이제 우리가 이렇게 1절부터 11절까지 이렇게 다 살펴보면서 이해를 해야 되는 말씀인데요.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래서 3절에 보면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니까 이미 주셨다는 거죠.
그리고 1절에서도 보면은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그러니까 보배로운 믿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이라고 이 편지 받는 수신자들에게 지금 이야기하고 있죠.
이 베드로서의 수진자는 소아시아 터키 지금 터키 지역에 있었던 소아시아 지역의 몇몇 교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운데 당시에 소아시아에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보면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나오죠.
그렇죠 빌리아델피아 교회 사대 교회 에베소 교회 서모나 교회 여러 이제 교회들이 나오죠.
그 외에도 골로새 교회도 있고 그랬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10개 정도의 교회들이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 곳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고 있는 데요.

베드로가 우리가 베드로후서를 보게 되면 그 교회 속에 거짓 선지자가 들어왔고 거짓된 가르침이 들어오면서 그들의 신앙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그런 것을 보면서 베드로가 이 편지를 통해서 다시 그들에게 원래 하나님이 주셨던 그 믿음 그 지식 위에 그렇죠 진리 위에 다시 견고하게 서도록 이렇게 그것이 무엇이고 그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러니까 그 진리와 지식 위에 우리가 다시 견고하게 서기 위해서 너희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하는 것을 권면해 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 교회에 파고들어온 이 진리를 배격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진리 를 중심으로 해서 결국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 속에 살게 하는 거죠.
예 그겁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제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는 뭐냐 하면서 이제 1절에 보면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사람들이고, 너희는 그리고 너희는 2절에 보면 예수 주 예수를 앎으로 그렇죠.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많을지어다. 주 예수를 아는 사람들이고 그의 의를 받은 사람들이고, 또 3절에 보면 그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4절에 보면은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하면서 너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 되었다.
그러니까 자세하게 다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약속에 근거해서 주신 은혜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한 거죠. 예수 그리스도와 그들이 새롭게 언약 맺은 사람들 그리고 그 언약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성도들은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성찬하게 되는데 이 성찬도 그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는 거거든요.
매번 그러니까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일들, 그 구속에 관한 일들을 다시 한 번 이렇게 상기시키면서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신의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이 되었다 이렇게 하면서 베드로가 그 편지를 받는 분들에게 이제 최종적으로 자기가 뭘 원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 더 건면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8절에 보면은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그 열매로 말미암아 최종적으로 11절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누리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풍성한 열매를 맺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그 부분을 지금 베드로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칫 하면은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표현들이 있죠.
그래서 11절 같으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너희에게 넉넉히 주시리라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해서 이 말씀을 오해하면은 이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제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서 그죠 그 열매를 힘입어서 너희가 그의 나라에 이제 들어갈 만한 사람들 되라 이렇게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조금 있습니다.
근데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 표현만 보면은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그런 표현인데 항상 이게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 말씀과 함께 전체적인 베드로는 베드로서 전체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그가 복음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되는 거죠.
그리고 사도 바울이 베드로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도들이 이 복음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항상 잘 생각해서 이런 말씀들을 정확하게 이제 해석 해야 됩니다.
그런 요구가 그런 부분이 요구되는데요. 결국은 우리가 풍성하게 열매를 이렇게 맺는 그 모습은 우리가 구원의 그 터 위에 우리 자신이 견고하게 서 있다고 하는 것을 확정시켜줍니다.

끊임없이 그래서 우리 마음에 내 그 열매를 내가 바라보면서 아 내가 정말 그 하나님 나라에 이제 그 영광에 참여할 만한 그런 사람이구나 나는 그 영광에 참여하겠구나 하고 나 자신을 보면서 내가 맺은 풍성한 그런 열매들을 보면서 점점 더 큰 확신 가운데 이렇게 거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참여하는데 우리에게 어떤 좀 문제가 있냐 하면은 다 참여할 사람들인데 참여할 사람들이라고 일단 가정을 하고요.
그 속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있냐 하면 그것을 확신하는 사람이 있고 또 내가 정말 참여하는 사람이 맞나 하는 어떤 의구심이 있거나 심지어는 불안해하는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불안감이 있다고 하면은 의구심이 있다고 하면은 그것은 아직도 여기 보면은

20절이죠.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러지 않습니까?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왜 굳게 하라고 말하냐면은 그 턱 위에서 너희 신앙이 흔들리지 마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신앙의 틀 위에 너희가 굳게 서서 너희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들이죠.
그것을 순종하는 사람들 되라 그러니까 신앙이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게 서서 확신 가운데 이렇게 살아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구원의 확신이 부족해서

이렇게 신앙적 진전이 그렇죠 충분하게 이렇게 일어나지 않는 열심히 우리가 사실은 신앙의 어떤 성장을 향해서 성화를 향해서 나아가야 되는데 그 부분에서 진전을 잘 이루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세월이 흘러도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구원의 기초 초보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 때문에 히브리서가 이제 기자는 그 사람들의 그 문제를 경고하면서 너희가 그 신앙의 초보에서 이제 계속해서 머물지 말고 성장해야 된다 하는 얘기를 해 주는 거거든요.
그리고 이 베드로서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도 보면 똑같은 다 교회들이죠.
은혜 받은 교회들이거든요. 다 같은 은혜 받은 교회들인데 그 일곱 교회를 보면은 이렇게 칭찬받는 교회도 있고요.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는 교회들이 있고 또 책망만 받는 교회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일곱 교회들을 보면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 믿고 똑같은 은혜를 받고 진리를 갖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도 우리에게 나타나는 그 모습들이 다양하게 이렇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고 신앙도 똑같은 세월을 이렇게 보내도 어떤 사람들은 신앙의 성장이 늘 이렇게 제자리처럼 그 젖을 먹어야 되는 부드러운 음식만 계속해서 먹어야 되는 사람으로 머물러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죠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지각을 사용해서 단단한 식물을 식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진리에 대한 지식의 말씀이거든요.
그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데요. 둘 다 다 이렇게 다 귀한 것들입니다.
이것도 귀하고 이것도 귀한데 이것은 먹지 말고 이것만 먹어라 그런 얘기가 아니고요.
둘 다 먹어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것만 계속 먹지 말고 이거 이제 편식하는 거하고 비슷해요.

편식 그런 어떤 분들은 이제 결국은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또 이렇게 더 살찌워지지 못한 그 문제가 일어나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 맛이 주는 더 풍요로움이 있지 않습니까?
즐거움이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거거든요.
하나님과 함께 그렇죠 교제하는 더 큰 즐거움이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은혜의 그 풍성함을 더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그 속에서 이렇게 살기를 하나님 바라실 거 아닙니까?
네 그런 삶을 우리 살기를 바라 바라서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해 가기를 바라고 그 성장해 가는 사람들에게 이제 아까와 같은 그런 모습들이 잘 나타나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숭전과 관련해서 우리 신학적인 표현으로 쓰면 이제 성화 이렇게 표현하죠.
성화 성화와 관련해서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성장에 관해서 우리 자신을 이렇게 한 번씩 이렇게 돌아보면 어떤 부분을 우리가 좀 생각을 해야 되냐면요.
우리가 생각보다 내가 지금 신앙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현재 신앙이 건강한지 그것을 객관적으로 이렇게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제가 볼 때는 뭐 열에 아홉은 다 그래요 10에 한 99명 다 그렇습니다.
그 정도로 잘 파악을 못해요. 우리는 파악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게 어떤 것과 비슷하냐면 우리 다 이렇게 건강을 챙기면서 살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의 건강을 그런데 우리 내 건강을 딱 이렇게 잘 아시는 분 내가 지금 건강하다 보면은 이렇게 정확하지 않아요.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식사하고 잠자고 이렇게 운동하고 하면은 그냥 내가 건강하게 잘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그런데 막상 이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지 않습니까?

그러면은 혈압도 정상이 아니고 당도 정상이 아니고 막 어떤 체중도 정상이 아니고 대사혈도 정상이 아니고 그런 문제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도 뭐냐 하면 내가 지금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이렇게 탁 내 스스로 체크하는 거죠.
이게 쉽지 않거든요. 여기에서는 뭐가 필요하냐면 저기 점검을 하려면 훨씬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요.
우리도 그렇죠 그래서 그것을 판별하기 위해서 있는 분들이 의사 선생님들인데요.
그분들 얼마나 공부 많이 해요. 사람이 어떻게 해야 건강한지에 대해서 과학적인 것 그렇죠 이런 것들 해부학부터 시작해가지고 심지어는 우리 세포까지 들여다보면서 정말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이렇게 판단하는 그 능력을 훈련하시는 분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분들 앞에 가서 이제 건강을 이렇게 진단받고 하는데 사실은 뭐냐 하면 우리가 그래도 내가 지금 현재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 몸이 건강한지 아닌지는 어느 정도는 좀 더 객관적으로는 파악할 수는 있어야 되거든요.
근데 우리는 병원에 가서 검사받기 전에는 생각보다 내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 부분을 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영적으로 이렇게 성장해 가는 이 부분에 있어서도 우리가 얼마나 내 영적 성장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내 영적 성장에 있어서도 내가 잘 모르고 살아갈 수 있겠다 하는 것을 이렇게 생각을 해 봐야 되는데 사실은 실제로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저는 이제 독학을 해서 의학을 배운 그런 이제 면이 있고요.
성향이 그래요.

이렇게 사람의 몸을 이렇게 연구하는 그런 어떤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영적인 면에서 우리가 건강한지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이렇게 동일한 방식으로 이렇게 탐구해 온 어떤 그런 시간들이 많거든요.
그런 것을 제 스스로 많이 하면서 하면 할수록 뭘 느끼냐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내 신앙 상태를 잘 모르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구나 하는 건 거의 대부분이다 하는 거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이렇게 탐구를 하면서 한 번씩 제 자신의 어떤 신앙적 상태가 어떤지를 잊어버리고 그렇게 막 살고 있는 그런 모습들도 보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대단히 연약한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먼저 이렇게 한 번씩은 잘 생각하면서 적어도 뭐냐 하면 내가 신앙이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그렇죠 그 건강함에 비추어서 그 건강함에 대한 성경의 진리죠.

진리 성경의 가르침을 기반해서 우리 자신을 없이 이렇게 비춰보고 점검해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어떤 어떤 지식과 안목은 우리가 계속 가져나가려고 해야 된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우리 자신을 빨리 돌아보고 점검하고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건강한 방향으로 이렇게 가도록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식이 있으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집에서 생활하다 보면은 대체로는 어떠냐 하면요.
이렇게 집에서 이렇게 처음에 이렇게 쉴 때는 편안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집에서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서 편안하게 쉬는 침대에 누워서 편안하게 쉬는 그게 건강을 다 망가뜨리지 않습니까?
그게 건강을 다 망가뜨려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것도 막 착각하는 거거든요.
이게 걸으면 좋겠다 하는데 안 걸어요. 막 나가서 걸어야 돼요.
또 막 산도 올라오고 땀도 흘려야 되고 운동도 막 해야 된다 일도 하고 그렇게 해야 그게 다시 정상적으로 몸이 이렇게 회복되는 그런 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아는 거거든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영적으로도 이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어떤 신앙적 모습이 나타나야 되는가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데요.
이 베드로 부서의 이 말씀이 성경 전체 속에서 제가 볼 때는 제일 잘 표현해 줬어요.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우리 신앙의 상태와 그렇죠 어떤 성장의 과정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많은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많은 말씀들을 주시는데 이 베드로서의 이 말씀은 마치 그 전체를 다 요약해 놓은 것과 같은 요약해 놓은 것 같은 그런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이 말씀 이제 우리가 살펴보는데 이 말씀을 늘 생각하면서요.
베드로후서 1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 이 말씀이 나오고 여기에서 나오는 8가지 이제 말하자면 우리 건강을 진단하는 하나의 진단서입니다.
진단에 뭐라고 그래야 기준 기준 잣대를 여기서 딱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게 8가지가 뭐냐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이 8가지를 가지고서 내 자신을 한번 이렇게 비춰봅니다.

비춰 보면 내 상태를 금방 진단 영적으로 진단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믿음은 믿음은 이 8가지는 뭐냐 하면은 그 우리 그러니까 하나의 건강한 사람의 모습 그렇지 않습니까?
신앙이 건강한 사람의 모습을 이 8가지의 안경으로 이렇게 보는 거예요.
보면서 건강한지 안 건강한지를 체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우리 어떤 사람이 딱 있는데 믿음이라고 하는 관점의 측면에서 먼저 그 사람을 딱 점검해 보는 거예요.
그다음에 겁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덕이라고 하는 안경을 또 가지고서 그 사람을 또 비춰봐요.
보면은 사실 이게 다 사실은 이제 같은 것을 보는 거거든요.
건강한 사람에게는 이 전체적인 요소가 그냥 다 골고루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덕의 어떤 요소가 이만큼 있고 절제가 이만큼 있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네 우리는 이제 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그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점점점점 닮아가는 사람들인데 그 닮아가는 사람들은 이 8가지의 요소들로 요소들이 잘 드러나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 믿음이라고 하는 안경을 가지고서 우리 자신을 딱 봤는데 잘 파악이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은 다른 걸로 봐요. 예를 들면은 형제 우애를 보는 거예요.
바로 그러면 형제 우애 보면 내가 형제 우애 잘하고 있는가 보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걸 진단하냐면은 믿음도 없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네 형제 믿음은 있고 또 절제도 있고 인내도 하고 경건도 있는데 내가 형제 후에는 좀 부족한 것 같다 그런 거는 없습니다.
형제의 우애가 없으면 다 없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죠 이 형제의 우애를 안경을 가지고 딱 보니까 내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러면은 내가 실질적으로 믿음과 경건과 절제 이런 모든 부분에서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거를 다시 생각하면서 나를 어떤 점에서 내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된다는 거죠.
어떤 점에서 내가 경건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들여다봐야 된다는 거죠.
그죠? 그러니까 이게 8가지가 대단히 예리한 우리에게 우리를 예리하게 보게 하고 아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우리의 신앙을 평가해 주는 개념들이거든요.
그러니까 보면은 우리가 신앙이 괜찮은 것 같은데 실제 뭐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냐 지식이 또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사랑도 있는 것 같고 또 인내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뭐가 없을 수 있냐면 신앙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성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특히 한국 교회가 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 제가 볼 때는 충분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 같아요.
신학교 가서 공부를 해보니까 제가 그전에 선교 단체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엄청 많이 했거든요.
성경을 한 한 50번을 읽은 것 같아요. 그러고 이거를 전체를 네 번을 큐티를 했거든요.
제가 20대 때 그리고 거의 암송하다시피 했었어요.
성경을 나는 잘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신학교에 가서 성경을 배우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러면서 충격도 받고 또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가는 그 이제 즐거움이 이게 정말 즐겁다는 거를 이제 더 느끼곤 했는데 처음에 충격을 줬던 책이 제임스 페크가 쓰는 책인데요.
제임스 페크가 쓴 책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사실은 이제 그냥 한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 셀러거든요.

그런데 수백만 부가 팔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정말 뛰어난 작품이고 그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그 뛰어난 신학자가 너무나 이해하기 쉽고 은혜롭게 쓴 책이에요.
그 이제 읽으면서 너무 은혜 받고 배워가는 즐거움을 누렸었는데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이렇게 좋은 지책을 우리 한국 교회가 사실 잘 모르거든요.
거의 읽어본 분들이 사실 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이제 그 정도는 그 정도 책은 우리가 한국교회가 소개되고 목사님들이 그것을 읽고 그것을 가지고서 같이 토론을 하고 나눌 수 있는 그 정도까지는 한국교회가 가야 되는데 이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의 성장이 없는데 이 시간이 막 계속 가지 않습니까?
이게 간다고 해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이제 마지막에 보면요.
3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그래요.

그러니까 이것은 신앙 성장에 있어서 반드시 요구되는 두 가지 요소거든요.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우리의 지정의 전체에서 특히 우리가 감정적으로도 그 부분을 풍성하게 받아들여야 되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면 마음에서 감격과 기쁨이 있어야 되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잘 알아요?
제가 볼 때는 또 지식은 있어요. 그런데 감격이 없는 분들이 또 있거든요.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지식이 제대로 지식을 깨달으면 그 지식은 반드시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거든요.
그 감정을 움직이게 한단 말이죠. 그런데 그런 요소가 또 없는 그런 지식을 계속해서 탐구해 가는 분들도 굉장히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기는 합니다.
근데 이제 우리 한국 교회는 그쪽보다는 그쪽보다는 실제로 하나님 그를 아는 지식이죠.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에서 공급이 부족하고 그 측면에서의 성장이 부족해요.

그러니까 우리 한국교회가 이 성경의 지식에 대해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뭐냐 하면 신앙이 있고 부족한 그 정도 수준밖에는 안 될 것이다 생각해 보게 돼요.
우리가 이렇게 신앙이 괜찮겠지 하고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면은 이제 그렇게 생각도 할 수 있는데 냉정하게 보면은 그 지식에서의 성장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신앙이 정체돼 있다 이렇게 진단해야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베드로서는 그런 면에서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훨씬 더 냉정하게 이렇게 평가해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절제도 그렇습니다. 절제 이게 이 절제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이제 타고나게 절제를 잘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절약도 잘하시고 그런 절제 아니고요. 하나님의 뜻에서 이렇게 이탈하지 않는 그 힘이거든요.
하나님의 뜻 좌우로 치우치지 마라 그랬잖아요. 이 절제력이 없으면 자꾸 이렇게 좌우로 치우쳐요.
왔다 갔다 해요.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쭉 쭉 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절제 있는 사람이거든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계속해서 구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보면 하나님의 뜻에서 이렇게 너무나 쉽게 한 번씩 탁탁 옆으로 튕겨나가잖아요.
이탈하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절제하지 그때 못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우리가 절제한다고 하면은 사실은 뭐냐 하면 그런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이렇게 쭉 이렇게 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갖고 있는 사람 모든 요소들이 그 그것을 향해서 질서 있게 딱 형성 된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밥을 먹는 거 잠을 자는 거 그다음에 우리 몸을 관리하는 거, 건강을 관리하는 이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쫙 이렇게 뭐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방향으로 질서가 탁 잡히는 거예요.
우리 이제 일주일 이렇게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일주일 사는 동안에는 뭘 중심으로 해서 우리 삶의 질서가 딱 잡혀 있어야 되냐면 예배를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다 잡혀 있어야 되는 거죠.
최소한 그렇죠. 예배를 중심으로 해야 주일이라고 하는 원래는 뭐냐하면 모든 날이 다 그래야 돼요.
주일처럼 모든 날이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날이죠.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정도 수준까지는 도저히 안 돼요.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좀 한번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 해서 주일날 이렇게 하는 겁니다.
네 네 그래서 이 주일날 우리가 이제는 중심으로 해서 한번 이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거예요.
주일날 중심으로 해서 일주일 동안 체력도 안배하고 있잖아요.
건강 관리도 하고 특히 토요일 요즘 토요일 쉬는 날이 많잖아요.
토요일 날 너무 쉬어가지고 너무 놀아서 피곤해서 주일을 못 오는 친구들이 가끔씩 있습니다.
아파서 너무 말이 뭐 이렇게 몸 관리 잘 안 해서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사실 여기서 말하는 절제 있는 이 삶에서 이탈한 거예요.

이게 이런 것이 자주 이렇게 나타난다고 하면 이분은 신앙이 어린 분이구나 내가 그런 모습이 자주 나타나면 내가 신앙이 생각보다 어리구나 그렇게 진단을 할 수가 있는 거거든요.
이 8가지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이렇게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이 우리 자신의 제 신앙적인 어떤 노력과 관련된 내용들도 있고 또 신앙 우리가 소유해야 될 덕과 성품에 관한 내용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방식은 성장하는 성장한 그리스도인 다운가 하나님 백성다운가 하는 것을 한번 이렇게 잘 생각해 보게 되고 또 실제로 우리 내면의 성품도 그 성장했다고 하는 사람의 그 성품이 잘 드러나는가를 잘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거 여기서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번 이렇게 집에 가셔가지고요.
이것을 여기서 더 말씀 많이 드려도 크게 소용도 없습니다.

이것을 다 가지고서 우리 자신에게 한번 이렇게 적용해 보게 되면 내가 어떤 부분에서 좀 신앙의 성장에 문제가 있는가 하는 것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어떤 모습이 나타나게 되냐 하면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는 모습,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모습,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모습이죠.
그것을 잘하는 분들은 당연히 성경을 가까이하는 분들이에요.
성경을 사랑해요. 성경을 사랑하지 않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고 하는 분들은 다 거짓말입니다.
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할 수 있도록 그렇죠.
놀라운 그 길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련해 주셨는데 그게 기도지 않습니까?
그 기도를 부지런히 사용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부지런히 이렇게 가까이하면서 배워가지 않는다든지 기도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충분하게 이렇게 그 삶이 나타나지 않으면 내가 신앙이 아직도 이거밖에 안 되는구나 이런 것도 생각해 보게 되고 또 이렇게 해가지고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겠구나 하는 것도 예상을 해 봐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신앙이 성장하지 않겠다 하는 것도 생각을 냉정하게 하면서 이런 모습이 이제 잘 회복되는 것도 나에게 요구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어서 조금 더 나를 넘어서서 확장이 일어나야 되는데 우리 가까이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대할 때 이제 그게 나타나요.

그래서 우리가 성품이 성장하는 것은 이게 이제 성경에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그렇죠 성품이 성장하는 것은 사랑을 많이 받을 때 행복감을 많이 제공받을 때 신앙이 아니 성품이 성장한다는 게 성품이 건강하다고 이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그래서 성품이 어떻게 하면 건강합니까? 행복감 그리고 사랑을 많이 공급받고 그 감정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누리는 사람들이 그것이 누적에 의해서 이 성품이 이렇게 형성이 됩니다.
이렇게 이제 얘기한단 말이죠.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부모님을 통해서도 받지 못했던 그 인격적인 대우 또 신뢰 또 사랑 그런 것들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우리가 제공받게 되는데 그 제공을 통해서 우리 내면에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형제 사랑할 수 있는 그 성품 있지 않습니까?

그 성품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형성이 되게 되고 그 성품이 있게 되면은 그 사람은 사실 뭐냐 하면은 이렇게 막 노력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거죠.
네 노력해서 겸손한 사람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겸손한 것을 사모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정말 기뻐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정말 좋아서 사랑해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가 나타나고 있는 그런 나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이 이제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그 모습이 형제들과의 관계 속에서까지 이렇게 확장이 일어나면 우리는 내가 신앙이 조금 더 성장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확장이 이제 계속해서 일어나는 그래서 우리 교회가 그렇게 해서 함께 성장하고 우리 성장한 교회가 우리 교회가 성장했다고 하는 것은 또 뭘로 나타나느냐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두고 그들에게 사랑이 확 뻗어가는 흘러들어가는 그 모습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많이 나타나면 우리 교회가 성장한 교회구나 성숙한 교회구나 하는 것도 알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말씀을 한 번씩 잘 이제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냉정하게 잘 점검해 보고 우리의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지 파악이 됐다고 하면은 그런 부분들을 더 이렇게 기도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 을 통해서 베풀어주시는 그 은혜를 의지해서 계속해서 영적인 노력들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베드로후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장성한 믿음의 불량에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그 성장의 과정이 어떻게 나타나야 되는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이제 성장해 가야 하는 이 숙제가 구원받은 모든 백성들에게 남아 있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또 그 영광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저희가 살아가야 하는데, 아버지 하나님 그러한 은혜의 역사들이 우리 속에 잘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말씀과 또 하나님의 은혜 안에 계속해서 자라가기를 원하오니 아버지 하나님 우리 교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의 성장이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 가운데 잘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