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 ...로마서 8장 26-27절 ...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3. 4. 12:18

박주동 목사

 

 

260301말씀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 ...로마서 8장 26-27절 ...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8장 26절에서 27절까지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27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아멘
오늘 이 말씀은 로마서에 있는 말씀이죠.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인데요. 이 로마서는 이렇게 비유하곤 합니다.
성경을 이제 반지 반지로 이렇게 비교하면은 로마서는 그 반지에 박혀 있는 보석 이라 하고 또 로마서 8장은 그 반지에 박혀 있는 보석에서 참 그 빛나는 광채 표현하고 하는데 누군가가 정말 로마서를 사랑하는 분이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요.

우리도 성경을 읽다 보면은 로마서가 정말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로마서를 이렇게 쭉 읽다 보면은 로마서 8장이 정말 이렇게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을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가능하면은 8장 이 말씀을 많이 읽으면서 암송할 수 있는 그 정도 수준까지 이 말씀과 익숙해지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이 로마서 8장 어떤 말씀인지 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로마서 이거 많이 읽고 또 많이 가르치고 이렇게 했는데요.
그리고 이제 로마서 8장이 특별히 이제 중요하다고 해서 늘 8장 말씀 많이 보거든요.

근데 이 보면은 이렇게 어떤 때는 이제 8장 앞부분에서 이 은혜 받으면서 8장 전체 내용이 이거 이런 내용이 됐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어떤 때는 로마서의 또 중간한 정도에서 은혜 받으면서 로마서의 내용에는 이런 내용이고 8장 내에는 이런 내용이구나 또 끝에 가서 도 은혜를 받으면 로마서 8장은 이런 내용이구나 하면서 8장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뀐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이 말씀을 보게 되면 생각보다 좀 쉽지 않은데요.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은 이렇게 읽어보면 다 이해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 로마서 8장을 어떤 논리적인 어떤 근거 하에서 이렇게 전개하고 있는지 그것을 따져서 이렇게 읽어보면 생각보다 좀 어렵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은 과연 뭘 말하려고 할까 오늘 우리 이제 이 말씀을 보게 되면 기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말씀하셔요 그래서 이 말씀만 딱 보면은 우리에게 참 감동이 옵니다.
특히 우리가 기도를 잘하고 싶은 이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하고 싶은 열망이 늘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도우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시는 분이구나 하면서 우리가 또 에베소서 말씀과 의 연결 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가 덧입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런 기도 생활 잘했으면 좋겠다 하고 이제 우리 마음에 큰 힘은 희망을 품고 하는데 그런 생각들도 이 로마서에 포함되어 있는 거죠.
8장에 그런데 로마서 8장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가 그동안 파악한 바로는 어떤 내용이냐 하면요.
이 8장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을 로마서 앞부분에서 얘기해 줍니다.
결국은 너희는 구원받았는데 너희의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 주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관련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너희는 얘기해 주고요.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도 로마서 7장에 보면은 어려움이 있는 거죠.
그래서 확신 가운데 살아가지 못하고 하나님 믿고 믿는 그 사람다움이 나타나지 않은 채 신앙생활하는 그런 모습이 나타나곤 하는데, 로마서 8장은 이제 그런 너희가 어떻게 하면은 구원의 큰 확신 가운데 살 수 있는가 그래서 먼저 8장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너희는 너희의 구원은 확실하다 이겁니다.
너희의 구원은 확실하기 때문에 확신해라는 거죠.
그건 제가 볼 때는 구원의 큰 확신을 가지도록 사도 바울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힘 주어서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난번에 그동안 이제 구원의 확신과 관련해서 많은 말씀드렸는데 이 로마서 8장은 특별히 사도 바울이 그런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데 너희의 구원의 확신을 심지어는 성령님도 도우신다는 거예요.
이 말씀은 그 말씀은 그 전체적인 틀 속에서 딱 주어지는 겁니다.
너희는 어떤 점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져도 좋으냐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로마서 8장을 한번 다시 보면요.
첫 번째는 뭐냐 하면 너희는 너희에게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
정죄함이 없다고 딱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7장에서 결국 우리를 끊임없이 이렇게 절망에 떨어뜨리는 것은 결국 사탄과 죄지 않습니까?
사탄과 죄의 세력에 의해서 우리가 때로는 이런 무력해지는데 그 사탄의 세력 죄의 정죄를 단숨에 이렇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진리를 자동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고 지금 이야기하는 그런 증거 차원이 아니고 각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결정이지 않습니까?

최종적 결정을 딱 선포해서 너희는 정죄함이 없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담당해 지불해 주신 모든 그 속죄 사역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만족하셨어요.
하나님 만족하셨기 때문에 댓가를 다 지불해서 이제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거예요.
그래서 너희가 죄의 삯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하나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그렇다면 이제 너희는 무죄다 하고 선고를 딱 해버리죠.
이 그 사실은 사실 어떤 우리 구원의 확신과 관련해서 어떤 측면이냐면은 좀 객관적인 측면이라고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객관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 우리의 구원의 영역입니다.
또 하나 더 뭘 강조해 주냐면은 우리가 오늘 읽은 말씀 이 뒤에 보면은요.
조금 어려운 표현이 나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셨다.
예지 예정 부르심 이런 내용들이 나와요. 여기 뒤에 보면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너희의 구원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작정되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객관적 요소를 또 사도바울이 얘기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확신하라 지금 이걸 이제 얘기하는 거죠.
그리고 그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절을 한번 보십시오.
너희 손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이다 그래요.
그러는데 그 영이 거하시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그 영이 거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스도의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거죠. 그렇죠 그러면 이건 이제 우리에게 상당히 주관적인 영역에서 우리가 구원을 확신해도 된다고 하는 것을 조금씩 설명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면 그렇죠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근데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많이 갖고 있거든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제 어떠냐 하면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아까 우리 말씀처럼 도우시기까지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복도 있고 역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아주 다양하고 풍성하게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세요.
그것을 통해서 뭐냐 하면 우리는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확신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나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구나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제 사도바울은 이 너희가 참으로 너희의 구원을 확신해도 좋다고 하는 것을 지금 얘기한다는 거죠.
그리고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14절에 보면은 이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너희가 그런 사람들 아니냐 그런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선 예정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고요. 그리고 로마서 8장에 보면 끝에 가서 최종적으로 사도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 다 드러나죠.
내가 이제 확신하노니 하면 38절 39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또 높음이나 기쁨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 얘기를 한 번 더 하면서 그 말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이 성도의 견인 우리 이제 교리적으로 그렇게 표현합니다.
성도의 견인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하나님의 그 나라 최종적으로 완성된 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그때까지 그 구원을 완성시키신다고 하는 교회이거든요.
성도의 견인 그러니까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그 손이지 않습니까?

구원의 팔 그 권능의 팔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 어떤 것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거 그래서 하나님의 그 의지 변하지 않는 의지 또 사랑이 충만한 사랑의 의 그리고 권능이 충만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이렇게 구원을 탁 붙들고 있다고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사실 이 8장에서 말해주고 싶은 거거든요.
그래서 너희의 구원은 확실하다 그래서 구원을 너희의 구원을 확신하고 살아라 하고 지금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것이 있냐 하면은 우리의 이 구원은 이제 점점 더 확신으로 또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죠 구원은 확신이다 확신해요. 구원의 확신을 사도바울은 강조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은 더 큰 구원의 확신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이 말씀에서 다 또 가르쳐 주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우리의 구원을 우리가 한 번씩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리스도인들마다 구원을 확신하는 그 확신의 강도가요.

다 달라요.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은혜 은혜를 베푸신 거는 다 객관적으로 베풀어 주신 은혜는 다 똑같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똑같이 베풀어주신 우리가 예정하셔서 우리를 부르셨거든요.
때가 되어서 그런데 그것을 인식하는 우리는 주관적으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확신하는 그 정도가 다 다르다라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문제 의식과 안타까움이 사실은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한 번 더 확보해 주시면서 너희의 구원은 확신해도 좋다 하는 것을 얘기해 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이제 중요하냐면 첫 번째는 뭐냐 하면 우리가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 문제에 대한 문제는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에 관한 사역들, 제가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말씀드렸던 이런 것들을 생각보다 우리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잘 몰라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지실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노를 이렇게 퍼부우셨다고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이것도 이해를 잘 못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어야 될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쏟아부으셔가지고 더 이상 쏟아부으셔야 할 분노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돼버리신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당하신 그런 진노가 얼마나 그죠?
무시무시한가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서 그래서 모든 진노를 다 쏟으셨다고 하는 거 그래서 우리가 받아야 될 진노가 없다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그렇죠.
그리고 우리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그 진노가 어떤지를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구속에 관한 많은 중요한 진리들을 하나하나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면서 그것을 깊이 묵상하면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가 어떤지를 우리가 풍성하게 점점 아는 그래서 반드시 어떤 부분이 필요하냐면 지식이 필요해요.
그죠 그래서 왜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 많은 짐승의 피를 흘리셨는지 왜 피를 요구하시는지 이런 것들 다 우리의 거기에 대한 공부가 이제 필요하고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속죄를 위해서 예비된 어린 양이라고 하는 그 어린 양으로서 유월절에 이렇게 돌아가셨고 그 유월절에 죽으셨을 때 과거에 이스라엘이 죽으려 할 때 유월절에 있었던 그 구원의 역사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죽으시는 그 죽으신 피 흘림에 그림자구나 모형이구나 하는 것도 이렇게 대답하면서 그 예수님의 죽으심을 우리가 더 풍성하게 또 이해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을 우리가 하나 공부해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그 모든 구속에 관한 것들을 충분히 알아서 우리가 구원의 은혜와 감격 속에 들어가고 또 그 진리의 체계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있으면서 그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를 계속해서 생산하는 거거든요.
근데 그 진리 체계가 부족하면 어느 때는 막 감동이 막 많이 있는데 그 진리가 부족하면 체계가 부족하면 다시 이렇게 은혜가 회복이 되는데 시간이 많이 이제 걸려 특별한 시간들이 필요하고 그렇습니다.
근데 이제 그래서 구원에 관한 어떻게 복음에 관한 지식이죠.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부분이 문제가 되어져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의 그 강도에 있어서 어떤 부분은 어떤 분들은 좀 약할 수 있다 하는 거 그다음에 또 어떤 부분이 있냐 하면 그 지식의 체계는 충분히 이렇게 공급이 됐는데 또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면 이제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앞부분에 로마서 8장 앞부분에 이 죄의 문제를 이제 어떻게 다루느냐 고민하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지난번에 로마서 살피면서 그렇죠 이 죄와 은혜의 지배라고 하는 이 주제로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나눴는데 제가 어떤 부분을 말씀을 드리지 않았느냐 하면은 이게 은혜로 죄를 탁 죽이는 그 부분에 대해서 사실 말씀을 충분히 못 드렸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해야 될 말씀이 많은데 시간이 이제 그 설명 하면서 여기까지 하기에는 좀 너무 내용이 많겠다 싶어가지고 말씀을 안 드렸었는데요.
그래서 로마서 8장 앞부분에서 사도바울이 사실은 말씀을 6장에서 하고 싶었던 내용이 8장에서 좀 더 분명하게 말씀되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바울이 뭘 말하고 싶어 했냐면 우리가 구원의 확신 가운데 거하는 데 있어서 끊임없이 우리가 그 확신에서 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 죄의 문제를 우리가 너희가 다루려고 할 때 이 너희의 죄는 1차적으로 뭐냐 하면 너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하는 거를 얘기를 해 줍니다.
너희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만큼 이 죄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세력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식을 하게 해줍니다 이 죄는 뭘로만 약화되느냐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정확하게 뭘로 약화되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약화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 너희의 죄 문제를 다루려고 할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 부분에서 사실은 익숙한 저것을 다룰 줄 아는 잘 다룰 줄 아는 아주 숙련된 사람들이 돼야 되거든요.
그 부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전문가가 돼야 돼요. 그래서 죄가 딱 들어오면은 그 죄를 어떻게 생각하냐면 내가 보통 죄가 들어오면요.

죄는 내가 죄가 마치 이렇게 하나가 된 것처럼 딱 인식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즉각적으로 죄가 들어오면은 그래 나는 죄인이지 죄와 나를 하나로 만들어 버려요.
그런데 제가 딱 들어올 때 우리는 그 순간에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되냐면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죄를 아무리 지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해 주셨다고 하는 그 진리는 불변한 진리입니다.
불변한 그래서 그 순간에도 나를 하나님 앞에서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그렇죠.
그것을 죄에게 주장을 해야 돼요. 나는 그래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그것을 붙드는 거예요.
즉각적으로 뭘 붙들어야 되느냐 그러면 그러면은 이거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이제 뻔뻔한 거 같잖아요.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해야 되냐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그 순간에 회개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 회개하고 싶어서 제가 막 나를 그러면 안 된다고 나를 막 질책하기도 하는 거잖아요.
제발 좀 정신 차려라 회개해라 하고 나한테 막 그렇게 말하고 싶잖아요.
근데 우리가 그 순간에 왜 그 하나님의 의를 붙들어야 되냐 하면요.
우리를 회개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나를 질책해도 내가 회개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그래서 다시 진리를 붙들어야 되요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구속의 은혜를 객관적인 베풀어주신 사실들을 다시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은혜 그것을 통해서 나에게 베풀어주는 은혜를 다시 생각하면 그 은혜가 어느 순간에 힘을 얻어요.
그죠? 은혜가 점점 힘을 얻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이 죄의 죄로 인해서 우리 안에 이 부패성이 힘을 잃게 되거든요.
그래서 약화되요.

힘이 약화되서 이게 은혜에서 좀 이렇게 멀어지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사모하게 하는 부드러운 마음 성경의 살과 같은 마음을 우리 살과 같이 그러한 마음을 주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금방 막 쑥 그렇게 쑥 나의 마음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 일들을 누가 이루시냐 성령님께서 하신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왜 먼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는 거죠.
그 진리 앞에 나가는 겁니다. 진리 앞에 나아가서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진리를 우리가 더듬고 묵상하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거는 그 정도밖에 할 게 없어요. 우리가 막 은혜를 우리가 생산할 수가 없잖아요.
하고 싶은데 은혜 받고 싶어요. 저도 그런데 안 돼요.
그냥 묵상하고 주님께 기도해요. 주님 도와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면은 우리 주님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지 몰라요.

그래서 성경에 계속해서 그냥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다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다 얘기하는데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그걸 보여주고 싶어 이스라엘이 보면 정말 하나님 앞에 철들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거든요.
그런데도 하나님 이 그 이스라엘을 계속 참으세요 이스라엘을 우리가 공부할 때 이스라엘은 한 아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항상 얘는 한 아이인데 아직 어린 아이예요. 이렇게 아직 계시가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아서 하나님 앞에 마치 어린아이가 하나님 아버지하고 같이 사는 그 시절처럼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 어린아이와 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굉장히 길게 참으시고 오랫동안 하면서 양육해 가신 겁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를 다루시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뭐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냐하면 하나님은 정말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자비로우신 하나님 때문에 그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도 있을 거예요.
바라보면 정말 하나님은 내가 너가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너가 그럴 줄 알았다. 다 아세요?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이 없거든요.
다 연약해요. 막 종이 한 장 차 따질 것도 그래서 그런 너가 다시 회복되고 살아나는 것은 나를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주는 은혜를 통해서만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또다시 변함없이 그 자비를 베풀어주신다 하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어떤 영적 원리 속에서 살아야 될 사람들이라는 거를 잘 알고 있고 사도 바울은 그것을 명확하게 알고 알고 우리에게 지금 이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죄와 은혜의 지배, 죄도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고 은혜도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는데 이 두 전투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는가 우리가 끊임없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그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덧입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금씩 조금씩 주실 때 그것을 주의해서 늘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 때를 내가 보내야 된다는 걸 생각해야 됩니다.
어떤 과정이 있냐면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조금씩 조금씩 주시잖아요.
그럼 그때 우리가 부주의하게 되면 그 은혜의 역사를 딱 멈춰버리게 만듭니다.
그런데 은혜가 이렇게 부어주실 때 우리가 이제 하나님 앞에 소원을 조금 가지게 되잖아요.
그때 소원을 가진 그때를 놓치면 안 돼요 하나님 앞에 더 힘 있게 쫙 나가 나가야 돼요.

그 은혜를 주실 때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실 때 나 가야 되는 
그러니까 성경이 은혜를 받을 만한 때에 은혜를 받아라 그러잖아요.
그게 그겁니다. 구원의 때가 딱 정해져 있는 거예요.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그 큰 구원 받는 우리 구원받는 그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다시 구원하시고 살리시는 그 하나님의 구원 그렇죠.
그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해서 또 우리 자신을 은혜를 은혜의 은혜를 힘입어서 나가야 되는데 그때도 나아갈 때 뭡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은혜의 수단이 말씀과 기도죠. 그래서 말씀과 기도를 좀 더 힘을 다해서 사용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될때.
그래서 그 충만한 은혜에 의해서 우리가 가끔씩은 뭘 경험해야 되냐면 내가 생각해도 내가 천사 같은 느낌이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사람이 이게 내가 맞나 싶은 그럴 때가 있어요.
저도 너무 내가 사랑스러울 때가 있단 말이죠.

은혜를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주셔가지고 그런 내 마음의 부패성이 이렇게 그러면 막 과거에 지은 이전에 지었던 그 죄들이 있죠.
그게 막 그걸로 인해서 너무 슬픈 거예요. 그죠? 그러니까 회개도 그때 일어나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회개가 일어나서 막 회개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역사들이 내 안에서 막 일어나는 것을 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우리 마음에 어떤 것에 대한 열망이 생기냐면은 내가 나를 영화롭게 하려고 하는 그 그런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너무 막 그게 너무 보잘것없는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지는 내가 정말 보물처럼 생각했던 그런 내 꿈들 있지 않습니까?
내가 보물처럼 생각했던 그게 너무 막 정말 지푸라기 같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이제 인식에 떨어지거든요.
사로잡히게 되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셨으면 좋겠다 하는 그 열망이 내 안에 있는 걸 보면서 뭘 느끼냐 하면요.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보는 거죠.

한 번씩 가끔씩 이제 우리 그런 경험이 사실은 크거나 작거나 이제 있습니다.
그게 이제 혹시라도 없다 그러면은 아니면 너무 임재가 약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잘 들어보면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하나님의 영광의 참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방향을 향해서 우리의 신앙이 계속해서 진전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지금 말씀을 듣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을 보면요.
벌써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각 사람에게 다 이렇게 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냥 여기에 있는 게 아닌 거죠.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있고 우리가 그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조금이든 많이든 다 받고 있는데 내가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그 지정의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진 그 의지를 사용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또 기도하는 자리로

또 성도의 사랑의 교재 속으로 또 이런 예배 속으로 또 성찬에 참여하는 그런 어떤 방식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공급받고 그 이제 은혜의 세계에 참여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의 우리의 구원은 얼마나 확신 해도 좋은가 하는 것을 바로 많이 말씀해 주고 있고 우리는 특히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참으로 우리가 객관적으로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아는데 그것이 과연 나에게 일어난 일인가 이제 그 부분은 우리에게 늘 궁금한 어떤 숙제처럼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성령의 주관적인 우리의 개인에게 인격적으로 찾아오셔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구원 내 구원이 정말 안전하구나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구원받은 사람들 그 말이 그것을 우리는 더욱더 확신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이 로마서 8장 전체를 우리가 살피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성령 오늘 이 말씀해 주세요. 성령은 우리의 어떤 부분을 잘 아시냐면 연약함을 잘 아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그랬는데 우리는 항상 연약해요.
항상 연약하다는 것을 성령님을 아시고 그리고 때때로 뭐냐 하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와 풍성한 사귐을 가지려고 하시는 거거든요.
우리와 교제하시려고 하는 건데요. 그 풍성한 사귐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 사귐이 일어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이제 베풀어 주셨는데요.
우리가 은혜의 수단에 이렇게 참여할 때 잘못하는 문제를 여기서 한 번 더 지적을 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잘못한다기보다는 연약하다고 말하는 게 맞겠죠 그렇죠 우리가 연약해서 이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 말씀에 참여하고 성도의 교재에 참여하고 이 기도라고 하는 이 수단에 딱 참여하는데 우리의 연약함이 있다는 거죠.
어떤 연약함이 있냐 하면은 은혜의 수단이라고 해서 이제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신다고 이제 하니까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실제로 해보면 내가 뭔가 이렇게 노력하는 만큼 은혜가 탁탁 안올 수가 있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보면은요.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잠깐 짧게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확 밀려올 때가 있고 그래요.
그래서 이게 도대체 어떤 현상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사도바울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답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문제를 나타냈냐면은 기도할 때 나도 모르게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부패성과 막 뒤섞여 있는 생각들이 감정들이 우리 기도 속에서 막 이렇게 꿈들거려요.
그것이 막 표현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지를 머릿속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도인가를 저도 이제 공부하면서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이제 그렇게 또 기도를 해보려고 해요.
하면은 기도하는 내용은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별로 은혜는 없어 은혜가 안 되는 거 그 마음이 어떤 것이 있냐면 나도 모르게 나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이렇게 기도하는 거야.
마음이 높아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연약합니다.
제대로 기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가 기도라고 하는 그 좋은 은혜의 수단에 참여하면서도 우리에게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하냐면은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신다고까지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어떤 부분에서 사실은 더 강조점이 있냐면은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성령님은 막 기도를 하니까 성령님이 기도하니까 나는 기도 안 해도 된다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라고 지금 주는 말씀이 아니고 여기서 연약함을 돕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 어떤 물건을 이렇게 있으면요.
이거를 같이 이렇게 맞잡고 이렇게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주로는 어떤 것을 하시냐 하면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를 막 이렇게 하게 하세요.
은혜를 주셔가지고 잘못된 기도도 많이 하게 하시고 그래요.
그래서 또 은혜를 주셔가지고 내가 또 잘못된 걸 깨닫게 해 주시고 바르게 기도하는데 때로는 내가 교만하구나 왜 이렇게 은혜가 안 되지 그러면 보면요.
내가 교만하구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아주 우리 내 안에 역사하는 이 죄가 민첩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기는 하는데 그 성령님께서 그 때를 따라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가지고 사실 어느 정도였느냐 보면요.

우리 각 사람에게 필요할 만큼 딱 맞는 은혜를 참으로 인격적으로 주신다 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받을 더 많이 받을 준비가 되면요.
또 은혜를 더 많이 주시고 우리가 은혜를 여기서 더 받으면 안 되겠다 싶으면 조금 주세요 이 은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거든요.
영광 영광이 우리에게 같이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를 너무 많이 주면요.
죽어요. 은혜를 너무 많이 받으면 진짜 심장이 딱 멈출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좋은 소식도 갑자기 들으면요. 쓰러져요.
막 너무 기쁜 소식 들으면 쓰러진다니까요. 심장이 좋아서 심장이 멈춰버렸다.
그만큼 나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가요.
그 영광이 아주 강렬하거든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우리 부패성을 갖고 이렇게 탁 보면요.
그 너무 영광스러워서 충격에 받아서 그냥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려요.
그렇다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이제 우리 그런 것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인격적으로 네가 나한테 딱 맞게 여기시고 우리 연약함의 연약할 때는 연약한 어떤 세월을 보낼 때는 그 연약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하나님이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그렇죠 목숨은 안 끊어지게 하시면서 목숨은 안 끊어지게 하면서 계속 그냥 기다려요.
그러면서 우리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또 철 들어가는 그 이제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때 또 하나님 은혜를 더 베풀고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해 나가시면 그런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물론 그런 것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가 특히 이렇게 예배드릴 때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할 때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혜를 더 많이 베풀어 주실 때가 또 있습니다.
그게 어떤 우리가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하고 이렇게 딱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데 매이지 않고 정말 인격적으로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또 이렇게 은혜를 여기에 있는 분들한테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주셔도 그 은혜가 각 사람에게 백이 다할때까지 다 이렇게 그렇죠 가는 게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서 다 이렇게 거두는 거예요. 우리 일용할 양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요한 만큼 다 거두게 하셨잖아요.
인격적 그렇게 하시는 거 그런 하나님의 은혜 역사들이 우리 교회 속에 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가 이제 은혜의 수단이라고 하는 거죠.
우리 일반 은총 의 영역 속에서도 그리고 또 일반 은총의 영역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죠 그래서 이렇게 이런 식물을 보면서도 은혜를 받잖아요.
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느끼거든요. 그런 방식으로도 은혜를 주시고 또 이제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의 수단이라고 하는 이 방식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내려주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외에 이런 일반 은총의 영역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사는데 특별히 하나님의 특별 계시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는 수단에 참여할 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특별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참여하는 그리고 이런 예배에 참여하고 교재에 참여하는 것은 여전히 이제 중요하게 생각을 또 해야 되는 거죠.
그런 부분들도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이 26절 27절을 우리가 이해할게요.
이 말씀을 이제 잘 알아서 우리 한국 교회에서 많이 설교되고 하는데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큰 구원의 확신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더 강조해 주기 위해서 그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다라고 하는 그 부분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강조해 주기 위해서 일단 이 말씀이 기록되었구나 하는 것은 우리는 이제 잘 기억해 두셔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에 대한 이 큰 확신이 있으면요.
그 그 은혜의 뿌리가 튼튼한 거 아닙니까?

여러분 한 은혜의 뿌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그 모든 풍성한 은총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고 또 그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되면요.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때는 훨씬 더 선명하게 이미 알고 있는 것도 그것을 내가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내 전 인격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그게 이렇게 반응할 줄 아는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거거든요.
근데 그렇게 넣은 것을 꽃피게 하는 그 튼튼한 이 뿌리가 뭐냐 하면은 우리의 구원이 나의 이 구원이 정말 확실하고 확신해도 좋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잘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의 수단에 우리가 잘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우선적으로는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이 구원의 은혜가 나에게 얼마나 확실하다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고 그 은혜를  회복하는 그런 쪽으로 기도라고 하는 것을 먼저는 잘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고, 또 우리가 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해주시고, 또 그 은혜가 우리를 끊임없이 살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그 뜻과 영광 가운데로 인도해 간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교회 속에 복음의 말씀이 더 주님께 선포되게 해 주시고 큰 구원의 은혜 가운데 우리 새생활교회 모든 성도들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은혜를 저희가 풍성히 누릴 때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주께서 충만히 거하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로 우리를 친히 인도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또 채워가시며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그 영광을 드러내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