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거룩하신 하나님과 신자의 거룩 ...베드로전서 1장 14-16절...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3. 27. 03:48

박주동 목사

 

 

260322말씀 거룩하신 하나님과 신자의 거룩 ...베드로전서 1장 14-16절... 박주동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1장 14절부터 16절까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주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새로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했던 바를 좀 더 생각을 했었고요.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 전서를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도 같이 은혜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 같은 경우는 이제 수신 편지를 받는 대상자들이 조금 터키 북쪽 지역 동아시아 북쪽 지역의 위치해 있는 이들이었는데, 사도 요한이 에베소를 중심으로 해서 소아시아 중남부 쪽에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편지를 썼다면은 베드로 사도와 같은 중소 아시아 탄 북쪽 지역에 있는 여기 보면은 갈라디아, 아파도리아 또 아시아와 비드니아에 흩어진 나의 이들에게 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 당시에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의 형편이 없다 이기는 로마의 어떤 통치의 영향력이 공부까지 이렇게 미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박해가 가중되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0 그러니까 ad의 64년경에 이제 로마의 대화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이후로부터는 이제 로마를 중심으로 해서 로마가 가능하는 체제 국민지까지 포함해서요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고 했는데 이때는 아직까지 그 정도의 박해가 교회 속에 들어오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시아 지역에 전체적인 어떤 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흩어져서 어떤 한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미 그 당시에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그렇지 부분들 또 문화적으로도 충격하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그런 부분들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그런 교회의 모습이 그 당시에 사도 베드로가 바라보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에 좀 더 가까웠던 거죠.
베드로가 그 고난과 어떤 박해의 어려움이 점점 더 이렇게 가중되고 있는 그 상황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에게 편지를 하려고 하는데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이 서신을 보내면서 어떤 표현을 다른 서신과 다르게 많이 사용하냐면 너희가 고난 받고 있다고 하는 부분을 계속 강조를 해 줍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전서와 같이 고난에 대한 말씀이 많이 언급되는 그런 서신이 없죠.

한 열몇 번이 사용되는데 권한이라는 단어가 빌리보스가 기품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우리 별명도 기쁨에 서 지금 이렇게 채워져 있고 사도 요한이 쓴 요한 서신 같은 경우에 그리스도의 사랑 또 형제 간의 사랑에 대해서 아주 강조해 주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서 같은 경우는 우리가 베드로서를 쭉 읽어보면은요.
고난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고 또 그 당시 주로는 뭐냐 하면 교회 속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인 거죠.
교회들이 보면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혼합되어 있는 그런 교회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베드로서를 이제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 같은 경우에는 그 교회 속에 어떤 유대인이 있어서 문제가 되는 그런 부분은 좀 적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 발생할 수도 있는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그런 문제 갈등 이런 것들을 지적하고 그것을 이렇게 교정해 주려고 하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장 14절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 이런 말씀이 나오는데요.
너희가 2장 12절 보면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니까 그러면서 너희의 육체를 용 너희의 육체를 제어하라.
11절에 그렇게 말씀 또 우리가 읽었던 말씀 중에서 지금 15절에 보면은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되라 하면서 18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돌려준 헛된 행실에서 이런 말을 하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삶이 대단히 이제 정력을 추구하는 사람 허란 방탕했던 그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금방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았을 때 그때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그 삶의 모습을 갖고 있었던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그들이 이제 예수님 믿고 변화되어서 주님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데 여전히 방탕했던 사람 경력을 추구했던 삶의 방식의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여전히 가지고 있는 그들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범죄를 주는 거거든요.
근데 이 핍박 속에 있고 또 그런 육신의 정욕을 여전히 추구하는 모습이 그들 속에 남아 있고 특히 또 사도 베드로가 이 말씀을 전하면서 뭘 강조하냐면 선을 행하라는 말을 많이 얘기해요.
소멸 행하라 소멸 행하라 곳곳에 그런 일들이 이제 등장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그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서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이 주께로 다시 이렇게 돌아오는 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렇게까지 얘기합니다.
믿음 12절에 그렇게 나오죠.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이라 이 말씀이 이제 이런 말씀이 베드로서 전체적으로 이렇게 잘 말하자면 지배하고 있는 어떤 그런 것을 금방 살펴 보게 되는데, 베드로가 그런 어떤 영적 상태 속에 있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또 외적으로는 그런 어려움과 고난 속에 있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베드로가 어떤 부분을 강조하냐면요.
너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라여 이 말씀을 하 이게 무슨 이제 관계가 있을까 싶은 그런 어떤 생각을 우리가 금방 사실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적으로 어떤 어떤 박해를 맞서서 싸우라고 하는 어떤 그런 쪽의 운명이 물론 여기에서 이제 나오는데 깨어서 근신하라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초점이 어떤 투쟁적인 어떤 그런 어떤 언어가 아니고 그 초점이 너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라 하는 말씀으로 귀결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 부분을 우리가 한번 이렇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형편, 우리 교회가 처해 있는 형편, 또 우리 개인들이 처해 있는 형편도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면 이때의 상황하고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직간접적으로 사실은 이박 가운데 고난 가운데 놓여져 있다.
그리고 우리도 이 바둑 사도 베드로가 이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소아시아 여기 북쪽 지역의 교회들처럼 우리야말로 그렇죠.
과거 하나님 믿지 않았을 그 이방인들이 갖고 있는 육신의 정욕을 추구하는 그 삶의 모습들이 많이 남아 있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도 사도 베드로가 경멸하는 것처럼 선한 행실을 통해서 너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이 있는 그래서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삶을 보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우리도 중요한 어떤 신앙적 과제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그런 사람 우리의 모습과 약 2천 년 전에 이 교회의 모습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이제 이런 어떤 정황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도 우리 같은 경우에 어떤 생각을 많이 하기 쉬우냐 하면은 우리 현실적인 어떤 문제 당내가 문제 그런 부분을 우리가 맞서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고 또 기도도 해야 됩니다.
그것과 그것을 어떤 극복하기 위한 영적인 투쟁을 우리가 많이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이 사도 베드로가 이 상황 속에서 특별히 그 성도들에게 이 거룩함에 대해서 강조하고 또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면서 그것을 강조하려고 하는 그 이유를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제 삶 속에서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내가 거룩하게 살아야 되겠다 하고 그렇게 하면 깊이 마음을 먹고 방향성을 가지고서 신앙생활을 해 가는 우리의 모습 사실 이렇게 보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런 것을 아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내 삶의 전체가 그렇죠.
통일성 있게 나타나도록 에레스는 이런 부분에 우리가 사실 생각보다 신경을 안 씁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이제 거룩하게 너희가 거룩하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너희는 거룩하라 하고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이제 뭐냐 하면 이런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 그것을 너희가 지금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가치에 너희가 눈을 떠라는 겁니다.
바울이 사도가 그 부분을 사실은 그 성도들에게 한 번 더 이렇게 주지시키고 싶어 그러니까 우리는 이 당면한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의 문제 그렇죠 그것을 맞서서 싸워서 이기고 그것 해결하고 하는 그쪽에 우리의 마음이 많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우리 마음속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마음이 쉽게 이렇게 이동하는 이유는 대체로는 뭐냐 하면 그것이 우리 삶 속에 되게 중요하게 다가오거든요.
우리의 마음의 어떤 부분을 막 뒤흔드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분명히 그게 우리가 볼 때는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지금 사도는 우리에게 뭘 가르쳐 주고 싶었냐 하면은 이제 그 뒷부분에 나오죠.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이제 그런 말을 합니다.
그렇죠 거룩한 나라다. 그래요. 너희 이 교회를 보면서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다.
우리 각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하나님이 보실 때는 거룩한 백성들,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을 딱 생각하면서 사도바울이 뭘 하냐면은요.
이제 거룩한 공동체 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하는 것을 그 교회 성도들에게 다시 한 번 가르쳐 주고 싶어 너희들의 그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도의 관심은 뭐냐 하면 박해가 얼마나 지금 어렵게 교회 속에 주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거룩하게 하셨는가 거룩한 나라 되게 하셨는가 그것에 대한 그 영광스러움에 대해서 오랜 아바야는 꽉 차 있는 겁니다.
그 영광스로 그래서 장차 나타나 그 영광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 그룹 함과 함께 그래서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특히 성도들의 함 그것은 뭐냐 하면 너희는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에서 난 사람 그리고 너희의 그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뭐냐 하면 너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게 하고 하나님과 관계 맺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너희의 그 구원을 완성하게 하는 그것을 전망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키워드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베드로가 너희는 거룩하다 하면서 이제 그런 구체적으로는 뭘 말하냐면요.
이 베드로서에서 너희가 형제를 사랑하라 그래요.

너희가 22절에 보면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되어 있다는 거죠.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따라가라 그럽니다.
그리고 너희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렇게 말하면서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너희가 선을 행하라 그럽니다.
이 말이 전부 이제 뭐냐 하면 너희가 이미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너희는 그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사실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거 살아라 이렇게 살아라 이렇게 살아라 그걸 또 육체적으로 이렇게 명령하는 그 명령이다.

요 결국적으로 뭐냐 하면 너희가 거룩하게 된 사람 하나님처럼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살아야 마땅하느냐 하는 것을 말해주면서 구체적으로 거룩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삶이 나타나는구나 하고 지금 이제 얘기해 주는 그 삶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서 너희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거룩하다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그러니까 너희는 거룩하지 않다 고 거룩해져야 된다.
이런 어떤 측면을 지금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너희가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
너희의 삶 속에서는 이런 삶의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념을 피하고서 선을 행하는 그 삶의 모습이 너희 속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제 바울이 물론 그렇게 얘기합니다.
너희가 그렇게 살아 하고 얘기해요. 명령에 그 명령의 이제 근거도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명령을 이제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너희에게 그런 모습이 나타나게 될 때 결국 이제 사도 바울의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어디로 돌아가게 되냐면은 정말 우리가 거룩하게 된 백성들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잘 생각하면 결국 우리가 우리에게 사도가 뭘 요구하냐면요.
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그룹 하게 되면 우리가 이 삶 전체를 삶 전체 속에서 그렇죠.
우리의 일상 전체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이렇게 소통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사실은 잘 얘기해 주는 거죠.
거룩하신 하나님과 살아가는 삶의 어떤 방식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헌신하면서 깨어서 기도하는 그런 모습이 요구되는 거죠.
그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서는 특히 선을 행하는 모습, 거룩하다 할 때 그 모습이 너에게는 선을 행하라고 하는 그 명령으로 주어진다고 하는, 특히 그 선을 행한다고 할 때 그 중심에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바가 뭐냐 하면은 너희가 형제 간에 서로 사랑해라 하는 거 이것을 먼저 강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 공동체의 독함을 요구하는 거예요.
형제 간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랑을 하는 거 그 이상으로 우리 공동체가 거룩하게 이렇게 존재하는 다른 어떤 방도는 없거든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거룩하게 살아간다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적으로 종교적으로 뭔가 이렇게 많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이제 거룩함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의 참 좋은 모습들인 거죠.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꾸준히 읽고 공부하고 서로 이렇게 교제하면서 서로를 배워가는 그런 모습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는 수단들이죠.

그 은혜를 사용해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해 그것을 표현하느냐면은 서로 사랑하는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거룩한 게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거죠.
그래서 사랑함이 우리 속에 충만히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사랑하지 못하는구나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뭐냐 하면 그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그 사인이 뇌 속에 충분하게 일어나지 않고 있구나 하는 것을 금방 이렇게 진단할 수가 그래서 이 거룩함에 대해서 저도 베드로가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가 성경 전체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구약 특히 구약 성경에 게시되어 있는데요.
사도 요한의 경우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고 아예 다 이렇게 명시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이렇게 쭉 보게 되면은 뭐라고 이렇게 고백하면 좋겠나 이사야 6장에 보면은 이사야가 하나님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래요.

그러니까 구약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쭉 계시하실 때 그 핵심적인 내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그리고 그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뭘 요구하냐면 의를 요구하잖아요.
공이죠. 공이 의로운 삶을 요구해 그것이 이제 이 베드로가 간주하는 이 말씀과 비교해서 보면은 통일성이 있는 거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리고 너희도 더 거룩하게 살아라 하면서 요구하는 것이 뭐냐 하면 선을 행하라.
그러다 구약 성경에 우리가 하나님을 보면은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고 또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나도 베드로 장까지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거룩함을 요구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도 이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거룩함에 대한 요구,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에 대한 요구 받잖아요.

그렇게 하라고 하신 이유가 뭐냐 그것이 핵심적인 이유가 뭐냐 하면 너희가 나를 이렇게 생각할 때 너희 마음대로 생각하지 마라 너의 마음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인간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 주려고 하는 바가 뭐냐 하면은 너희와 지금 관계 맺고 있는 나는 다른 신들하고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라고 하는 그러니까 너희가 이전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그와 관계 맺던 어떤 방식들이 있잖아 그리고 그 신에 대한 어떤 인식들이 있잖아요.
하나 신은 이런 이런 존재일 것이다 하고 이미 그들 마음속에 그게 꽉 차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계속해서 거룩함을 요구하면서 어떤 느낌을 계속 계속 주냐 하면요.
만만한 분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까다롭고 요구가 그 하나님이 하나하나 시키는 대로 하면 때로는 막 숨이 막힐 수 있는 그 정도의 그런 느낌까지 가질 수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한테 막 그렇게 답답하게 만들려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신앙생활 힘들게 해서 어떤 어떤 경지에 이르러 이르러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뭐냐 하면요.
너무 빠르게 다른 신을 추구해요. 하나님을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하나님 내가 이런 하나님이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그런 하나님으로 금방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계속해서 명령을 하면서 우리가 그걸 지키는 과정 속에서 끊없이 뭐냐 하면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하는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를 잊어버리지 않도 거기에 계속해서 주목하도록 해서 표정적으로는 그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 속에 이렇게 들어가도록 하는 데 있었던,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또 하시는 이유가 또 뭐냐 하면요.

그 거룩한 분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거룩함을 요구하면서 그 하나님을 빠르게 인식하도록 돕는 그 청년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는 이것은 뭐냐 하면은 그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 우리도 하나님의 그 거룩함을 닮아갈 때 인간이 가장 건강하고 정상적이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왜 그럴까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는구나 이렇게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까?
그 정도까지만 생각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하를 요구하는 궁극적인 돈을 줬으면 하나님과 관계를 사람이 잘 믿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제공되어지는 놀라운

그 하나님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우리의 참된 기쁨 참된 어떤 만족 행복 그런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고요.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와의 관계 속에서 충만한 은혜 속에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그 우리를 보면서 가장 기뻐하세요.
기쁨이 그때 가장 충만하시고 하나님의 기쁨이 가장 풍만할 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많이 받으실 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방식이 하나님 때문에 즐거운 거 기쁘고 행복한 거 그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그러니까 그게 이제 우리가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른 신과 다르게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잘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뭐냐 하면 그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막 다가가기 힘들고 다가가 수 없는 어떤 그런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제대로 섬기기를 원하시는 제대로 관계 맺기를 원하시는 분이고 그렇게 해서 아버지 노릇 세워주고 싶은 분이라고 하시는 우리를 자녀로 삼고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딱 만나고 나면 금방 다시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그렇게 관계 맺고 나서 우리가 정말 자녀로서 그 하나님 아버지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그 혜택들을 선하게 누리면서 그 혜택 속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행복이 충만한 상태에 그래서 이제 우리가 언제 행복하냐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가 막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렇게 막 그렇죠 친밀감 있게 살아갈 때 사실은 우리가 그때 제일 행복합니다.
이렇게 다른 행복의 요소들이 많이 있는데요.

우리가 가장 행복한 이 땅에 살면서 행복한 것은 하나님 하나님 때문에 그 사랑해서 하나님 사랑해서 행복한 것과 그다음에 하나님 사랑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누릴 수 있는 그 행복은 최고 최고 그래서 하나님은 결국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시고 우리 교회 공동체 속에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하면서 살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정말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하나님도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시니 어려운 것이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또 역할을 받으시는 그런 분들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뭐냐 하면 이런 어떤 머릿속에 비전을 어떤 우리의 새로워진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겁니다.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있다는 거 그러니까 사도 베드로가 볼 때는 뭐냐 하면요.
권한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겁니다.

이 권한에 대해서 막 얘기해서 권한을 되게 중요하게 지금 다루는 것 같은데 사실은 뭐냐 하면 이 권한이 너희에게는 그러니까 우리는 그리고 넉넉히 이 고난을 참을 수 있고 견디고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심지어는 뭐냐 하면 이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 1장 6절에 나오잖아요.
너희를 잠깐 근심하게 하는 거라는 거죠. 잠깐 근심하게 하는데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거 다 그래요.
말도 안 되는 그런 거죠. 왜냐하면 이것은 너희의 믿음 면담해서 면담해서 그렇죠 금보다 더 미안하고 합니다.
왜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금보다 더 귀한 너희의 그 순전한 그 믿음을 좀 더 순전하게 한다고 하는 점에서 이 고난은 너무너무 너희에게 가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고난을 심지어 기뻐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바울 베드로가 그 시대 상황 속에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 하나하나의 문제를 깊이 문제의식 가지고 하나를 뛰어넘는 어떤 방식으로 이렇게 범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은 오히려 너희에게 교한 일이고 너희가 지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되어줘서 너희가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이 문제야말로 너무너무 중요하고 기가 어떤 순간에도 가장 시급이 있잖아 그 부분을 인식 하고 그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런 모습이 우리 교회 속에 계속해서 있어져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 시대도 이렇게 어려운 시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지금 바드로가 강조하는 우리 그리스도의 진정한 정체성 하나님과 관계 맺고 사는 삶의 그 어떤 영광스러운 삶의 무게 있게 다가오는 그런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충분하게 인식을 못하는 우리의 이 삶이 거룩한 나라다 습니까?

이 나라 밖의 그 세잖아 라켓을 주로 이제 우리의 마음이 많이 대하기도 쉽게 열리고 브라질 하는 그런 형태로 그래서 우리가 그런 것 때문에 세상의 어떤 염려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흔들린다.
근본적으로 그게 힘이 있어서 거세게 밀려와서 그렇게 하는 현상이 아니고 우리의 내 마음속에 이 거룩하신 하나님 이름 또 나도 그 하나님이 이미 거룩하게 고 그 거룩함을 하나님께서 새 조국적으로 완성시켜 가시고 우리에게 가져다줄 주신 그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이 완전히 이제 완전히 완성되는 성취되는 그 하는 소망이죠.
그 소만이 우리의 마음속에 많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생각해 봐 그것을 이렇게 막 이렇게 생각하고 그와 이 위기 속에 이렇게 충만하면 나머지 우리 모든 어떤 그런 문제들 우리 신앙에 위협이 될 만한 요소들을 밀어내고 우리의 마음에 하신 하나 와 그래서 이제 우리는 편하기 그런 부분을 우리가 한 번 더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가 그런 신앙을 우리에게 한 번 더 말씀해 주고 실질적으로는 이 현실의 어려움을 느끼고 그 근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히브리스도인들의 그 은혜가 이제 다쳤어요.
선을 행하는 데까지 나 한 사람을 사랑하는 어떤 그 정도 차원을 이제 넘어서서 다른 사람 형태로 사람 심지어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내 일상에서 있는 사람들을 돌리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어떤 힘을 가진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서로 베드로가 말씀해 주고 다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요한일서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또 예비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그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 충만히 구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을 배우고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왜 우리로 하여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살피게 될 때 사도 요한과 베드로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은 같은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간다고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의 공동체에 하게 될 때 우리 속에 그 거룩함이 온전히 드러나고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으로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이 우리의 가운데 충만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각 사람이 그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우리의 심령이 깨끗하게 되고 정의롭게 되어지게 해 주시고, 또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회복되어지게 해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이 다시 한 번 우리 심령에 회복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 또한 참으로 하나님 앞에 정결한 삶, 또 순전한 삶을 살아가게 해 주시고, 우리가 나를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충만한 삶이 있는 삶을 통하여서 아버지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삶의 모습을 우리가 표현해낼 수 있도록 청원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말씀을 허락하여 주셔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자가 끊임없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 알아가는 그 지식에서의 성장이 있게 해 주시고, 또 그 주님의 은혜 속에서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우리 속에 잘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