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거룩하신 하나님과 신자의 거룩(2) ...베드로전서 1장 14-16절...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4. 3. 17:24

박주동 목사

 

 

260329말씀 거룩하신 하나님과 신자의 거룩(2) ...베드로전서 1장 14-16절...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1장 14절부터 16절까지 말씀입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 신자의 부의 대해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베드로전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좀 더 강조하고자 했던 바가 무언지를 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베드로서 전체 속에서 사도가 고난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면서 너희는 이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이다 하는 것을 강조해 주면서 우리가 어떤 정체성 속에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인지를 먼저 우리에게 주지시켜주고,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너희가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구나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제 우리가 사는 동안에 거룩한 삶을 요구하신다고 하는 것도 사도 베드로가 특별히 선을 행하라 하는 이 구체적인 명령이죠.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서로 이렇게 사랑하라 하는 거 서로 사랑하라 하면서 사실 로마 베드로 전서 3장에 보면요.
또 아내와 남편 간에는 어떻게 서로를 섬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까지도 사실은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이제 실질적으로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표현되어져야 되는가에 대해서도 조금 생각을 해봤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 특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너희는 거룩하라 하고 명령하시면서 거룩함을 요구하시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 잠깐 생각해 봤죠.
아주 기본적인 하나님의 의도를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믿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식하도록 하려고 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까다로워 보이는 그런 이런저런 구약의 율법과 관련해서 요구되어지는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듣게 되는데 이제 그것을 이렇게 접하게 될 때 그들은 우리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가 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특징이 보면은 대체로 느낌이 우리한테 이렇게 잘 맞춰주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신이 이렇게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면 참 그런 요소들을 또 제공해 주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성정을 가지고서도 그런 신과 교제하고 신으로부터 뭔가 혜택을 받고 누리는데 크게 이렇게 문제가 없는 그런 신들이거든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대단히 이렇게 요구하는 게 까다롭고 또 복잡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하나님의 요구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받을 때마다 우리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우리에게 이런 걸 계속해서 요구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리고 이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잘 형성해서 우리가 참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그렇죠.
그런 삶을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제공해 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싶어 하시는 그 모든 은혜와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된 것들을 우리한테 부어주고자 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봤었습니다.
오늘은 이제 그것을 조금 더 이렇게 고런 내용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중요한 내용인가 또 우리가 잘 좀 더 소화를 해내야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것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은 거룩함이 없이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 자체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이제 거룩하세요.
하나님은 거룩하신 이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할 때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이 반드시 요구되냐 하면 거룩함이 요구된다는 거죠.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구별되는 구별된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룩하다 하면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유일한 어떤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그 속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구별되어 존재하시고 거룩하신 분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는데 우리가 이제 보통 거룩하다 그러면 우리는 좀 도덕적인 부분에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선을 행하고 착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고 하는 그런 부분에서 또 깨끗하게 살고 죄에서 멀리하고 어떤 그런 측면들 그럼 이제 그것도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제 거룩함의 요소들이라는 것을 조금 뒤에 이제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요.
근데 하나님이 거룩하다 할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차원하고 좀 다른 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 하면 그것을 좀 쉽게 또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신학에서 하나님 속성을 얘기할 때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으로 이렇게 나눠서 설명하거든요.
다 쉽게 설명하려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복잡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 그러니까 우리 인간과 하나님이 이렇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은 어떤 그런 부분들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 도덕성과 관련해서 그런 부분들은 어 공유적 특징이 있다고 느껴져서 공유적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그 공유적이란 말도 기본적으로는 우리 하나님과 우리가 이렇게 같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갖고 계신 것은 하나님만이 갖고 계시고 우리는 이제 그런 비슷한 것들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어떤 것이 중요하냐 하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뭔가를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속성 자체를 나누어주지는 않으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제 사랑을 이렇게 베풀어주셔도 하나님의 사랑 그 속성 자체를 우리에게 이렇게 나눠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죠.
거룩하신데 그 거룩함을 나눠주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의를 나눠주실 때도 그 의 자체를 이렇게 나눠주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 나누어지는 성질이 분리되는 성질이 아니거든요.
그것은 기본적으로 좀 잘 이해를 해서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에게 비슷하게 나타나는 그런 부분들을 공유적 속성이라고 이렇게 불러요.
그리고 비공유적 속성도 하나님은 아주 뚜렷하게 갖고 있는데 지난주에 잠깐 말씀을 드렸던 지지난주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은 영원하신 속성을 갖고 계세요.
완전하시고 하나님은 또 완전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무한하시고 또 어떤 게 또 있습니까?

예 전능하신 어떤 초월적인 어떤 존재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예를 들면 능력이다.
그러면은 그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있는 시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능력이 영원하지 그렇죠.
또 그러니까 영원하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요. 우리는 시간 속에서만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 계시면서도 시간을 또 초월하여 계시고 하나님은 또 알파이면서 오메가이시고 처음이시면서 끝이시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어떤 능력과 존재 방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라요.
그러니까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님의 편재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하나님의 편재성은 이제 이렇게 나타납니다.
우리 여기 보면 형제님하에 온전히 계시고 온전히 계시고 여기 계시고 또 저기도 계시는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는 이 자리에 계시면서 온전히 계세요.

조금 계시는 것이 아니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여기에 이제 온전히 계시는데 이 하나님이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그 공간 속에서도 온전히 계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편지 그런 것들을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시거든요.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아주 독특하게 구별되어 계시다고 하는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면이 있냐 하면은 기쁨이 충만하세요.
하나님은 의가 충만하시고 거룩함과 사랑이 충만하셔가지고요.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이 영광 돌리려고 막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영광이 충분하세요 충만하신데 충분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렇게 기쁨이 필요한 분이 아니고요.
더 만족도 필요한 분이 아니고 영광이 더 추가돼야 되는 분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것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실은 뭐냐 하면 더 기쁘시게 한다든지 더 이렇게 영광을 보탠다든지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충분하시고 충만하세요. 그런데도 성경에 보면은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것 같은 그런 원래 하나님은 그렇게 기뻐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방식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실제 하나님을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셔가지고 더 이상 영광이 필요 없는데 하나님 마치 성경 보면은요.
우리로부터 그렇죠 하나님 백성들을 통해서 영광을 막 받고 싶어 하시는 분처럼 보이거든요.
근데 이제 그것을 잘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근데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의 그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거거든요.
뭔가 구별되어 계신 분이라고 하는 이제 그 하나님 그렇게 표현하는데 그 하나님과 인간이 이렇게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뭐가 요구되냐면은 거룩함이 요구된다는 거죠.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창조 이제 받으셨고 처음에 이렇게 교제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가능했던 것은 인간이 그때는 따라가지 않고 죄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그랬던 거거든요.
근데 그 아담과 하와도 사실은 어떤 점이 있냐 하면은 탈락하기 이전에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 이렇게 온전히 교제하기에는 그 한계성을 갖고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이렇게 하나님께 창조 받았는데요.
그 창조받은 아담과 하와가 아직 완전히 성화된 인간으로 창조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의 계속된 교제를 통해서 점점 더 성화되어져 가고 우리가 이제 말하는 그 영화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이제 영화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인데요.
그 영화를 아담과 하와도 바라보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렇게 있기는 있는데 그 교재가 이렇게 더 충만해지는 어떤 모습으로 이렇게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면 그 교회는 점점 더 성화되는 그 어떤 요소들이 더 이렇게 추가되어야 되는 부분들이 사실은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탁 드러내실 때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어떤 그 한계가 감당할 수 있는데 한계를 갖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이렇게 만나서 교제하더라도요.
우리가 그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다 바로 다 이렇게 100% 받고 그걸 소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것을 소화 하려고 하면 거기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는 다 그 영광을 한꺼번에 다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이 거기에서도 일부분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고 우리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그 순간에도 다른 이게 차원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말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와 이렇게 기본적인 어떤 교재가 그래서 일어나려고 할 때 무엇을 하나님이 요구하냐면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이 우리이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어떤 기본적인 장애는 없어야 된다 하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탁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들어오면서 그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이 관계가 탁 파괴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관계가 완전히 이렇게 파괴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어떤 심판을 받게 되냐 하면 하나님 영적으로는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영적인 사망 상태에 딱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사망하는 존재가 아니고 그 즉시 사망에 탁 떨어지게 돼요.
그리고 살다가 우리의 육신이 다시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육체의 죽음이 선고되죠.

그래서 그 육체의 죽음은 곧바로 집행되지 않는데 이미 선언은 선고는 돼버린 거죠.
집행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지 집행은 반드시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죽음에 떨어지게 되고 또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죠.
최종적으로는 이제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최종적 그 심판 영원한 죽음의 어떤 심판이 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 믿고 돌아가신 분들은 지옥에 이렇게 떨어지게 돼요.
그게 끝이 아니고 거기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몸을 입고 그 사람들이 부활합니다.
부활 우리도 부활하지만 그들도 부활하는데 그 부활은 어떤 부활이냐 영원한 이제 형벌을 위한 죽음 을 위한 부활이 있게 되는 건데 그 사망까지 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탁 떨어진 거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그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인간이 사형 선고를 받고 탁 죽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이렇게 인식하고 또 하나님을 스스로 찾고 할 수 있는 그 능력 자체를 상실하게 돼요.
그래서 아담이 보면은 타락한 이후에 그 선고를 받고 나서도 하나님과 이렇게 교제하는 모습이 나타나거든요.
근데 그 사형 선고와 함께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선포가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심판의 선언과 함께 약속이 구원에 대한 약속이 동시에 탁 선언되면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관계가 계속될 수 있는 그 이제 일이 있는 겁니다.
만약에 그게 없으면 아담과 하와도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에 이제 그 약속을 믿은 사람들, 아담과 하와를 중심으로 해서 약속을 믿은 인류가 있고 아담과 하와 후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그 약속을 그 조상들로부터 상속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이 믿음의 계보가 있고 이 하나님을 잊지 않는 이 세상의 역사가 있는 거거든요.

이 두 역사 속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내린 후에 완전히 단절된 인간과 회복을 위해서 그렇죠.
그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 이상 교제할 수 없는 그 간의 인간과 하나님께서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이렇게 하나님 스스로 내시는데 그게 의원과 관련된 약속이었는데 그 구원이 이제 전국적으로 어떻게 드러났는지가 우리가 이제 성경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그 최종적 구원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어렴풋하게 알았어 알았는데 우리는 선명하게 알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렇죠. 우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 관계를 깨뜨렸던 이 죄의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것을 받게 되느냐 하면은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제공받게 되는 일이 발생해요.
그러니까 그것이 칭의라고 했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두 가지 의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원래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가지고 계신 그 의가 우리에게 이렇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는 것을 아까 말씀드렸죠.
그것은 나누어질 수 있는 속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뭘 하셨냐 하면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다 이렇게 순종하심으로 그 십자가의 죽음까지 다 포함되는 겁니다.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의를 획득하세요. 그 의를 우리에게 나눠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렇죠.
너무너무 힘들게 사실 획득한 거죠. 쉽게 획득한 게 아니에요.
네 그렇게 획득하신 그 의 죽음으로 그 피로써 획득하신 그 의를 우리한테 이렇게 나눠줍.
그러니까 우리는 그 의를 받은 사람들이 되고 우리가 그 의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이제 의인으로서 의인으로서 정 정재함을 받지 않는 사람으로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나아갈 수 있는 그 정도의 상황 상태까지 이르렀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하나님 의를 부여받고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그래서 우리에게 이제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건데요.
그게 끝이 아니고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그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주 화목한 그렇죠.
정말 화목한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데 그 숙제가 남은 사람들인데 그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 성경은 이 또 우리 베드로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거룩하라고 이렇게 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미 우리는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성도라고 그러죠.
우리 다 성도입니다. 거룩한 나라요. 그렇죠 여기 보면 2장 9절에서도 너희는 거룩한 나라다 거룩한 교회다.
그 각각에 속해 있는 그 속에 속해 있는 각각은 다 이미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다.
그 부분을 이렇게 이렇게 그가 알고 있는데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는 거룩하라 하고 이렇게 탁 명령할 때 그것은 무엇이 이렇게 전제되어 있냐면은 너희의 이 거룩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다고 하는 것이 이미 그때 전망이 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너희가 거룩하라 하면은 너희는 이 거룩함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는 그것을 딱 생각하게 하면서 그렇다면 우리가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 할 때 이제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이렇게 제사 제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어요.
거룩함과 관련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이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될 것들을 말씀해 주시는데 기본적인 것이 이제 성소를 중심으로 한 제사 제도죠.
그런데 그것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거룩함과 관련된 것들을 이렇게 시간과 관련해서 가르쳐 주시고 공간과 관련해서 가르쳐 주시고 심지어 또 우리 내면도 돌아보게 하시고 그렇죠 이런 이런 죄와 관련된 그래서 너희가 이런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러 절기들을 주셔가지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까지 되게 복잡해요.
그리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 민족 전체가 그 공동체 전체가 어떻게 운영돼야 되는가에 관해서까지 하나님이 하나하나 다 가르쳐 주셔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이제 따라서 순종해서 살면서 그들이 결국은 어디를 향해서 가는 사람들이 되도록 유도 말하자면은 예배하셨냐면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가는 사람들로 살게 하신 거예요.
자신들은 이제 자기들 걸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막 살 때가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뭐냐 하면은 그 방향을 향해서 사는 사람들로 존재하게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에서 이렇게 너희는 거룩하라 하면은 이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 구속을 필요로 한다고 하는 그 구석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한테 잘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우리도 이제 이렇게 거룩하라 이런 말씀을 이렇게 이제 신약 시대에 듣게 되는데 똑같이 듣게 되는데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 부분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되겠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하고 이렇게 얘기할 때 우리의 생각도 금방 어디를 가장 먼저 바라보고 향해서 가야 되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네 우리가 그게 없으면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너희는 거룩하라 할 때 우리를 거룩하게 하게 해 주신 그렇죠.
우리 스스로는 거룩할 수 없는데 그렇게 되게 해 주신 우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또 감격적인 일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베드로서도 사실 그 부분을 다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을 전해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이제 쭉 보면은요. 너희 아까 읽었던 말씀 그 뒤에 보면요.
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너희가 18절에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오직 점 없고 험없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된 것이다.
그렇죠 그러니까 이 거룩함에 대해서 얘기하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딱 얘기하거든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사실은 그거를 말씀해 주고자 하는 겁니다.
이제 왜 우리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 주는데 우리 사도들이요.
베드로뿐만 아니고 모든 사도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교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제가 볼 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관심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딱 맞춰져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맞춰져야 되는데 우리 우리 보면 교회에서 이제 목사님들 설교 많이 하시는데 다 보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해서 이 성경이 사실 게시되어 있는 거거든요.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개시하기 위해서 다 이렇게 말씀해 주신 거예요.
전부 그리고 심지어는 예수님은 구약과 신약의 이 계시 전체보다 크신 분이세요.
네 계시가 예수님의 어떤 한 부분밖에 사실은 드러내지 못한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신약시대에 이제 살면서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에 보여주셨던 그 삶도 많은 그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겁니다.
사도들이 그 의미를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요. 그래도 그것을 다 이렇게 드러내지 못한 그런 부분들이 여전히 이제 풍성이 남아 있어서 우리가 지금도 교회가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해도 되는 거거든요.
말할 것이 많고 많이 많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룩하다 할 때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잘 형성이 1차적으로는 되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이 명령이 거룩하라고 하는 이 명령의 말씀이다 하는 것을 먼저 잘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고요.
그리고 너희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너희는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가 하는 것을 얘기해 줬다고 그랬죠.
그렇죠. 그 부분을 우리가 좀 생각을 해봐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도 좋고 저렇게 살아도 좋은 어떤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예수님 믿고 거룩하게 된 존재 자체 우리는 기본적으로 뭐냐 하면 소유권 자체가 우리 주님께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 주인이 아니에요. 내가 뭐 내 꿈 내 내 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실은 내 소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주님의 꿈 주님의 소원이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뭘 명령하시는지 듣고 그 명령을 따라서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다.
그래서 그런 부분도 있고요. 또 우리의 내면 속에 어떤 것들이 있냐 하면은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을 갈망하는 우리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된다고 하면요.
우리의 마음속에 이 죄를 미워함 거룩하신 하나님을 조금 더 닮아가고자 하는 그런 그 신령한 소원이 있잖아요.
우리 속에 있어요. 그러니까 거룩하게 살아야 된다는 어떤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내면에 정말 거룩하게 살고 싶은 그 열망이 정말 거룩한 열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열망이 우리 속에 있는데 그게 어떻게 해서 그게 이렇게 되냐 하면요.
우리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가지고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끊임없이 우리와의 사기물 속에서 그렇죠.

우리가 때로는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그 하나님에게 영향을 받고 하나님을 나에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그런 모습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셔가지고요.
사실은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과 자기을 갖기 위해서 뭔가 많은 노력을 해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노력을 해요. 우리는 우리는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한다고 주로는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사실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와 사귀기 위해서 우리와 정상적인 관계를 계속해서 맺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신다는 거죠.
그게 비교가 안 돼요. 그래 대부분은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뭐냐 하면 대부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건 실제로는 거의 없다고 말해야 될 정도로 조금밖에 안 됩니다.
대체로는 어떠냐 하면요.

하나님과 좋은 관계성 속에서 살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이렇게 사는 어떤 그런 모습보다 대체로는 뭐냐 하면 이렇게 하나님이 그나마 이렇게 은혜를 통해서 만들어주신 그 좋은 관계 관계조차도 우리는 별로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관계를 해서 등을 돌려서 그렇죠.
막 달아나려고 하려고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려고 그런 모습으로 사실은 나타날 때가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우리 이제 일상을 이렇게 딱 들여다보면은 실제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이렇게 사는 모습보다는 자고 먹고 관계 맺고 이렇게 홀로 이렇게 지내면서도요.
실제로는 하나님과 이렇게 관계없이 그것과 오히려 좀 반대되는 어떤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때가 훨씬 많은데, 그런 우리가 계속해서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적인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기적의 증인들입니다.

그렇게밖에 못 살았는데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어떤 모습을 보면 너무너무 사실 이 놀라운 모습,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계셔서 우리가 그 하나님과의 사임 속에서 하나님의 그 주권 속에서 우리를 점점 더 거룩하게 가시는 그 모습도 우리가 거룩하라고 하는 이 명령을 이렇게 받아들 듣게 될 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정말 사는 거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전적인 은총 때문이다 하는 이것이 우리가 실질적으로 살아가면서 점점점점 늘어나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이제 복음에 대해서 우리 교회들이 복음에 대해서 잘 사실 설명하면 이 부분이 좀 명확해져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냐면요. 우리는 어떻게 느끼냐면 별로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은혜를 많이 받고 사는 모습이 나타나요.
복음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면 내가 별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은혜는 많이 받고 사는 것 같다 하는 생각이 이렇게 듭니다.

그런 생각이 잘 들면 그 교회 속에는 복음이 잘 가르쳐지고 있는 겁니다.
또 그런데 우리가 우리는 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좀 은혜가 인색한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들 때가 또 있거든요.
그런 내가 교회 속에 속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이 우리 속에 제대로 잘 안 가르쳐져서 그래요.
실질적으로는 뭐냐 하면 우리가 조금 하는데 이렇게 많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이렇게 누리는 것 같은데 우리 그 사람들 속에 실제로는 어떤 모습이 나타나느냐면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그 교회의 성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성도들보다 복음을 제대로 이렇게 이해하고 잘 지성적으로 이해를 해야 됩니다.
네 그래서 정확하게 이해해 가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됐을 때 그 지식이 우리의 전체 지정의 전체를 이제 잘 이렇게 다듬어 가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뜻에 맞게 근데 실제로 그 복음이 잘 가르쳐지고 그 은혜 속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해요.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 우리는 별로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런 사람들이 더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보면 말씀도 더 열심히 읽고 더 기도하게 되고 그렇죠 더 이렇게 서로 사랑하려고 또 헌신하려고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런 분들 마음속에는 어떤 것이 있냐 하면은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게 전혀 자랑스럽게 생각되지가 않는 거거든요.
그냥 늘 뭐냐 하면 부족하다고 느껴 늘 맨날 나는 아직도 이거밖에 못하는구나 이거밖에 못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해 그런 모습이 우리 속에 있다고 하면 우리가 이제 정상적인 모습이 있고요.

만약에 우리가 어 우리는 좀 열심히 하는 것 같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고 그런 마음이 드는데 들고 하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충만하지 않다고 이렇게 느낀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속에서 근본적으로는 뭐냐 하면 이 복음의 말씀이 제도로 선포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잘 생각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거룩하라고 하는 이 이제 명령을 우리가 탁 듣게 될 때 이 말씀을 이렇게 접하게 될 때 그런 부분을 우리가 한번 생각을 잘 한번 해봐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인도하는 이 명령의 말씀이구나 하는 것 그리고 이 거룩하라고 하는 이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은총을 기반해서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이 명령이고 우리가 실제로 노력하는 것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실질적으로 훨씬 더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이다 하는 거죠.

내가 좀 보잘것없는 것 같아도 내가 이 정도로 사는 것이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딱 생각해야 됩니다.
그 은총 때문에 사는 이제 그 은총 속에서 사는 이제 우리인데요.
이제 우리의 의무를 좀 한 번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제 거룩함을 요구하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떤 시간 속에서 요구되어지는 거룩함 관계 속에서 요구되어지는 거룩함 그죠 어떤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요구되어지는 거룩함들 이런 것들을 자세하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지 않습니까?
그 구약의 말씀들을 우리 신약 시대 때 이렇게 그대로 문자적으로 이렇게 갖고 와도 되는 것이 있고 문자적으로 가져오면 안 되는 것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도들이 우리 사 그 이 서신을 통해서 자세하게 이렇게 잘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도 이제 거룩하라 할 때 우리 사도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구체적으로 요구한다고 하는 것을 알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 거룩하라고 할 때 절제 있는 어떤 삶도 요구된다고 하는 거 그다음에 기본적으로는 뭐냐 하면 악에서 이렇게 멀리 해야 되는 거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나도 노력해야 된다 하는 것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그래서 근본적으로 우리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점점점 정겹게 되어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구나 하는 것도 가르쳐 주죠.
그렇죠. 그 부분은 뭐 늘 생각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정결과 관련해서 예식들을 많이 요구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너희의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점점 더 깨끗해지기를 원했던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점점 조금 더 깨끗해지는 그래서 하나님을 조금 더 닮아가게 되면 마태복음의 팔복에서 말씀하신 그 너희가 뭐라고 그랬죠?
심령이 청결하라 그랬죠. 그러면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랬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 눈으로 안 봐도 돼요.
우리 함께 계세요. 연합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하나님을 우리가 지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각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심정이 좀 더 정결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마치 이렇게 눈으로 보는 그 하나님과의 그 친밀함이 그 이전과 그 이후는 다르다 하는 것도 성경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물론 더 없이 친밀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친밀함을 실질적으로 누리는 것은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뭔가 요구되는 것이 있구나 하는 것도 말씀해 주고 있는 거죠.
그 중심이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우리 내면의 거룩함 그다음에 또 우리 관계 속에서 그렇죠 우리 요구되는 것들 이 공동체 전체도 거룩하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우리 사도들이 우리 교회가 이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뭘 이렇게 가르쳐 주었냐면요.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되고 교회의 이렇게 정치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되는가 하는 것을 교회의 직분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 과거 믿음의 선배들은 이런 부분들까지 잘 염두에 두면서 교회가 어떤 질서 속에서 형성되어야 되는가 하는 것을 고민을 대단히 많이 했고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되는지도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사실은 좀 더 나아가서 우리 교회가 이 국가와 어떤 관계성 속에서 살아야 되는가 하는 이런 부분까지도 또 가르쳐줬죠.
또 결혼에 관한 것도 가르쳐 주고 부부 사이에서 어떤 관계는 어때야 되는가 하도 가르쳐 주고 과거에는 이제 초대교회 시절에는 종과 주인이 있어가지고요.

종은 주인을 어떻게 대해야 되고 주인은 종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가 이런 부분까지도 어떤 성경적인 원리를 잘 가르쳐 주면서 이러해야 된다 하고 가르쳐 주는데 그게 이러해야 된다 하는 것들이 다 어떤 것들이냐 하나님 앞에서 너희가 거룩하다고 할 때 그 거룩함이 그 일상 속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어져야 되는가와 관련된 것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제 성경 전체에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이제 확인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까지 이 거룩하라고 하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되어지고 그 거룩함의 명령에 우리가 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근본적으로 그것을 통해서 기대하시는 것이 또 무언가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난주에도 살펴봤고 오늘도 좀 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이런 제 모습이 잘 드러나기를 원하는데요.
거룩함에 이르기 위한 우리에게 주어진 수단이죠.
거룩함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와 말씀 이 은혜의 수단이 이제 다 포함되는 건데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말씀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다락방 광화할 때 기도하시면서 17장 17절, 요한복음 17장 17절 보면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세요.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방조해 주시고 계시고 또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서 4장 3절인가 그렇습니다.
4장 4장에 앞부분에 있는데 5절인지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하여집니다 하고 딱 얘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은혜의 수단들이 있으면서 우리 성찬 또 이제 성도의 교제 이런 것도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 이제 은혜가 우리에게 은혜 되는 것은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거든요.

말씀을 사용해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가지고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 거룩함을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그래서 우리 거룩함의 목표는 뭔가 생각도 좀 해보게 되면요.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거룩함의 목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 이러면 이제 우리 잘 안 들어와요.
이게 이미지가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분으로 아마 주님 보내주셨지 않았는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해하는 그렇죠 그게 최대치라고 이렇게 생각이 되어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가지고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이제 사는 그 모습까지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복음서를 잘 읽다 보면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점점점 사실 눈 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그리스도를 점점 더 이렇게 닮아가는 그런 모습이 우리 속에 잘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가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또 우리 그리스도인의 거룩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이 귀한 시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이셔서 우리 하나님은 다른 세상 사람들이 믿는 그 신들과 근원적으로 다른 분이시고 실질적으로 우리 하나님만이 상천 하지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저희는 고백하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거룩하셔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사들이고 주님의 진노와 심판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저이오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부과해 주셨는데 이것이 얼마나 보석같이 귀한 것인지 우리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이 깨달아갈 수 있게 해 주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가고 그 거룩함을 향하여 향하여 지금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이 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한 가운데 살 수밖에 없으니 우리의 마음에 겸손함이 드리워지게 해 주시고, 늘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들도 저희가 무거운 마음으로 수납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을 따라 순종하여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시고, 이 일을 우리 한 사람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가 함께 감당해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배토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삶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 거룩함이 잘 표현되어지게 하여 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점점 더 닮아가고, 정말 하나님이 보실 때 기뻐하고 또 칭찬하고 또 인정할 만한 그러한 모습으로 점점 더 변화되어져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