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신자의 영적 전투 - 에베소서 6장 12 - 13절 • • •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5. 30. 04:05

박주동 목사

 

 

260524말씀 신자의 영적 전투 - 에베소서 6장 12 - 13절 • • •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6장 12절 13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 13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아멘 주께서 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들려주는 말씀인데요.
지난번에 에베소 교회 개척에 대해서 한번 말씀을 드렸었는데 사도 바울이 어 3차 이제 전도 여행이 사도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갖게 되는데요.
3차 전도 여행의 과정 속에서 이제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앞부분에서부터 지금 6장에 해당하는 이 말씀을 처음부터 이렇게 보게 되면은 왜 사도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는데요.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면 대단한 핍박 가운데 기본적으로 놓여져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외부적으로 핍박 가운데 놓여져 있었고 또 교회 이제 내부적으로도 이런저런 어려움에 얼마든지 처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어떤 거짓된 사상이 교회 속에 쉽게 파고들어오는 그런 상황이었고 또 그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개척하던 그 시점에는 특히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그러니까 유대인들 유대인 출신인데 유대교에 이렇게 있었던 사람이 이제 회심을 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 그런 사람들과 그냥 이방인들인데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혼합되어 있는 그런 이제 교회들이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자체적으로도 얼마든지 어려움이 있어서 그들이 그런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뜻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 개인에게 주신 그 뜻을 잘 순종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를 우리가 삶 속에서 구현해 내야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서 에베소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권면을 자세하게 해주고 있고요.
근면을 하면서 바울이 특히 어떤 부분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냐 하면은 5장 22절을 보면은 아내와 남편에 관한 교훈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6장 1절에서 4절에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 속에서 자녀들은 아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되고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되는가 하는 것이 권면이 되어 있고요.

그다음에 5절부터 9절에서는 그 당시에 교회 속에 지금 우리 교회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때는 그 교회 속에 내가 섬기는 주인이 있고 또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나를 섬겨야 될 이 있는 그런 어떤 구도가 얼마든지 형성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과 종의 이 관계는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 믿는 그 믿음 안에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핍박이 이렇게 주어지고 또 우리가 이 말씀과 같이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이렇게 편하게 편안하게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어떤 상황이 아니고 그야말로 치열하게 끊임없이 어떤 싸움이 있는 그렇죠.
어떤 전투적인 어떤 그런 삶이 요구되는 그런 환경 속에 있거든요.

그 환경 속에 있는데 그 상황에서 바울이 어떤 이야기를 하냐면 아내와 남편은 어떻게 잘 지내야 되는지, 종과 주인은 어떻게 지내야 되는지, 자녀와 부모는 어떻게 잘 지내야 되는지 그러니까 그것들이 처한 상황과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죠.
지금 이런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 그런 문제들을 바울이 실질적으로는 어떻게 저을 전하느냐 우리의 그 치열한 영적 전투 삶 속에서 가장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잘 이렇게 감당해야 되는 어떤 부분들을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게 뭐냐 이런 부분들이라는 겁니다.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 종과 주인의 관계 그렇죠 그리고 자녀와 부모의 관계 이 세 부분에서의 이 관계와 관련해서 새 관계와 관련해서 사실은 뭐냐 하면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되는 그런 영적인 싸움 그죠 영적인 전투의 성패가 결정되는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 부분에서 우리가 잘 감당하게 될 때 실제로 이 교회가 왜 이렇게 든든하게 쓸 수밖에 없고 승리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사실은 정확하게 알고 이것을 권면해 주는 거거든요.
그거를 이제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겠죠. 그런데 지금 바울이 어쨌든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지금 씨름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하는 겁니다.
12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오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어떤 정체성의 한 부분을 여기서 이제 말씀해 주고 있다고 보면 좋겠죠.
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정체성이 있죠.
하나님 이 교회의 한 가족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그런 정체성이 또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정체성 그렇죠.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하는 정체성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 어떤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냐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여기 보면은 씨름하는 사람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제 그리스도인이의 영적 전투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투하는 군사로 군인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다 하는 것을 여기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면은 우리의 영적 전투라고 하는 것은 씨름과 같다고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 이 씨름은 그냥 우리 이렇게 사바 잡고 이렇게 하는 그런 씨름 아닙니다.
네 이 씨름은 이제 고대 로마의 이렇게 군인들이 이렇게 서로 사실은 뭐냐 하면요.
죽을 때까지 서로 이렇게 격투하는 그런 어떤 싸움과 더 가까운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내 적을 나와 함께 씨름하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그런 상황 속에서 지금 이렇게 씨름하고 있는 그 모습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고요.
그리고 우리 씨름은 어떤 특징이 있냐 하면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속해서 살아 이제 가는데요.
우리 나름대로 이제 이 세상에 살면서 되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마치 어 대단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내가 이렇게 이제 먹고살아가면서 감당해야 되는 그런 일들 그렇죠 또 때로는 내가 이렇게 회복시켜야 될 우리 건강의 문제 또 어떤 관계의 문제도 있을 수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 우리 이제 삶 속에서 이렇게 눈에 드러나 있는 어떤 삶에서의 어떤 전투를 지금 바울이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것이 물론 다 관련이 있습니다.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본질적인 어떤 부분이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전투라고 하는 것은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뒷부분에 보면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하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절에 보면은 그 대상을 바울이 마귀라고 이렇게 분명하게 표현되어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제 교회 속에 아내와 남편과 관련된 문제, 자녀와 부모에 관한 문제, 종과 상전에 관한 문제 그리고 어떤 이 세상에 이제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권력을 가진 권세를 잡은 사람들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남아 있는 문제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런 것을 교회가 이렇게 잘 감당하고자 할 때 기본적으로 교회는 어떤 의식을 다 가지고서 이런 중요한 부분들을 감당해야 되느냐 하면요.
우리가 자칫하면은 이런 것들을 감당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이 마귀의 관계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마귀는 대단히 간교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 이제 마귀의 유혹이죠.
마귀의 유혹에 어떻게 넘어갔는지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 같은 경우에는 우리하고 이제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부패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유혹이 잘 떨어져요.
그러니까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려고 마음먹으면요.
우리는 다 이렇게 그 의도대로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데 아담과 하와 같은 경우는 아직도 타락하지도 않은 제가 들어오지도 않은 그 상태에서 유혹을 받게 돼요.
그런데도 뱀이 그 하와를 유혹해서 그렇죠 결국은 남편까지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딱 나무의 실과를 먹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게 하는 그 결과를 만들어내거든요.
그것을 보면은 이 마귀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이제 하나님의 이 나라는요.
어 두 어떤 국면으로 이렇게 나눠져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전히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하셨을 때 그 하나님이 창조한 그 모든 세계는 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런데 인간이 이제 범죄하고 나서 인간이 죄와 사탄의 지배 가운데 들어가는 모습이 나타나게 돼요.
동시에 뭐냐 하면 하나님이 끊임없이 그 지배 가운데 있는 인간과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해서 구현해 나가려고 하는 그 모습이 이제 창세기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인류의 어떤 이제 기원인데요.
우리의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이 모습이 지금 우리 원래부터 살아왔던 그 모습이 아니고 원래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사는 것이 정상적이고 그렇게 살 때 본인들이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존재로 인간이 지음을 받았는데 인간이 불순종하고 죄와 사탄의 그 지배 가운데 들어가면서 그때부터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을 지배하고 그 하나님의 통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해방하는 사탄의 지배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그런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요즘 이제 전쟁하고 이러면 이렇게 나라끼리 싸우고 무력으로 싸우고 이렇게 그것만 이렇게 보여요.
그렇죠 이것저것 우리 일상 속에서 서로 이렇게 정말 그야말로 싸워서 이겨야 되는 어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는 하는데요.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은 하나님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하나님이 다시 찾고 회복하려고 하는 그 하나님의 통치력과 끊임없이 그것을 내어주지 않을 하나님께 내어주지 않으려고 하는 이 사탄의 통치력이 계속해서 이게 충돌하면서 지금 이 계속해서 이 역사는 지속되어져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사실은 이해하는 사람이 이 세계의 실상이죠.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는 그대로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계획하시는 방향을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고 역사 속에서는 뭐냐 하면 끊임없이 사탄이 승리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그리고 그들을 이렇게 잘 이렇게 지도해서 결국은 어디까지 이르게 되냐 하면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특히 솔로몬 시대에 정말 하나님이 택하시고 구원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가 이렇게 될 수 있겠구나 하나님의 통치 그 나라가 가장 충만하게 나타나는 그 시대를 맞이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어 그게 하나님이 이렇게 딱 이렇게 승리하시는구나 딱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은 그 그렇게 힘들게 세워졌던 그 나라가 아주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게 돼요.
그래서 결국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북 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요.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70 bc722년에 망하고 남 유다가 586년에 망하게 되거든요.
그 역사를 이렇게 딱 보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애를 써서 만든 이 하나님의 나라도 그렇죠.
그것을 무너뜨리는 그 세력에 의해서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역사에서 구약 역사에서 보게 되는데 이 구약의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과 관련된 역사들 있지 않습니까?
그 전쟁과 관련된 역사들은 사실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의와 악에 대한 죄에 대한 충돌이죠.
하나님의 공의와 그렇죠 인간의 악의 죄악과의 충돌입니다.

특히 뭐냐 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그것이 이제 가장 큰 우상을 숭배하는 그 이제 죄죠.
그 죄와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의 충돌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구약에서 이렇게 확인하게 되는데 구약에서는 그게 선명하게 이렇게 나타나지는 않아요.
이게 어떤 그들이 싸움 속에 놓여져 있었는가 하는 것이 명확하지는 않은데 신약에 이렇게 딱 들어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렇죠.
어떤 싸움을 싸우냐 하면요. 구약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이 귀신과 싸우는 장면이 나타나 사탄과 싸우는 장면이 나타나요.
사탄을 이렇게 예수님이 막 물리치려고 하시고 또 귀신 들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귀신을 물리치는데요.
어떤 사람은 그 몸에 귀신이 2천 마리 2천 마리의 귀신이 들어 있는 사람을 만났잖아요.
그렇죠 그런 사람을에게서 귀신을 이렇게 쫓아내시고 예수님이 뭔가 막 하세요.

그래 보면은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 이런 죄와의 싸움일 뿐만 아니라 불신앙과의 싸움일 뿐만 아니라 이 귀신과 또 그 귀신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사탄과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신약에 와서는 선명하게 이렇게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의 그 모든 전쟁과 관련된 특히 그렇죠 그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불순종하는 그런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냐면은 영적인 전투의 의미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의 그 사역을 통해서 이제 선명하게 확인을 하게 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이 결국 했던 것은 뭐냐 하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통치와 사탄의 통치 간의 충돌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요.
예수님 시대에 와서 그것을 명확하게 알고 이후에 우리 교회 역사 2천년 이제 지속되지 않습니까?
2천년 역사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해서 완성되어져 가는 그 과정 속에 있는데 그것을 끊임없이 해방하는 사탄의 어떤 면에서는 지배력이죠.
그것을 사용 자기가 갖고 있는 이 지배력을 사용해서 하나님께로 이렇게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 되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해방하는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영적 전투 속에 이제 살아가고 있는데 사도 바울 이렇게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우리가 뭔가 이렇게 대단한 그러면 일을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제가 이 말씀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뭐냐 하면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이렇게 지시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 부활하세. 그러면서 어떤 일이 발생하냐 하면 이 기본적으로 사탄과의 이 싸움에서 승리를 딱 확정 지으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 지기 전에도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요.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그래요.

근데 이것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을 통치하는 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결국은 이 사탄과의 싸움이고요.
또 죄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싸움은 어떤 싸움이냐 이 죄와 관련되어져 있는 이 악의 구조 있지 않습니까?
까지 포함해서 그러니까 우리의 대적하면 이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죠.
사탄 죄 죄와 관련된 이 악의 구조 있습니다. 이 세 싸움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그것을 이제 격파시키죠.
격퇴시키시고 예수님의 승리를 확정지은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예수님이 보면요. 그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해방했죠.
그렇죠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그래서 심지어는 뭐냐 하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 들어와서 역사예요.
그러니까 사탄이 보면 얼마나 간교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아주 가까이에 까지 다가온 거 아닙니까?
베드로 옆에까지 왔으니 베드로 안에까지 들어왔으니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십자가 지시면 안 됩니다 하고 그런 일이 우리 주님께서는 얘는 혈탕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고 주님에 대한 어떤 사랑과 그 의리에 근거해서 그렇죠 베드로가 말리거든요.
그때 예수님이 딱 그래요. 사탄아 물러가라 그래요.
이걸 정확하게 이렇게 딱 간파하시는 그렇게 간교하게 예수님 십자가 지지 못하도록 이죠.
승리하지 못하도록 최종적으로 그렇게 했는데 우리 주님께서 그 시험을 다 견디시고 이기시고 최종적으로 십자가를 확 지심으로써 승리가 확정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승리가 어떤 승리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인간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면서 받은 이제 하나님의 선고죠.
그 심판에 대한 선고 이게 죽음에 관한 선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어떤 문제가 있냐 하면은 하나님의 뜻에 원래 순종해야 될 책임이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것도 다 못 지키고 순종해야 될 것도 다 못 지키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될 심판 그렇죠 그것도 남아 있는 이것을 죄책과 오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원제라고 이제 표현을 하는데요. 그 원죄의 문제를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탁 쥐심으로써 해결해 주셔야 그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해서 지불해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그 진노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시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주님께서 주님의 그 의를 우리에게 이렇게 전가시켜 주심으로써 전가시켜 주심으로써 그의 의를 가진 사람으로 그렇죠.
그래서 너가 내 명령에 다 한 순종했다 하고 간주해 주시는 거예요.
놀라운 거죠.

우리가 사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딱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다 순종한 사람들로 순종한 사람들이라고 간주해 주는 그 놀라운 일이 발생 그게 있기 때문에 우리를 우리 주님께서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다고 이렇게 선언하실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 이제 그 근거가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가지신 획득하신 주님의 의 원래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으로서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의 말고요.
그 순종을 통해서 획득하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셔가지고 우리를 외롭다 거룩하다 하는 그 일이 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믿음으로 그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것은 왜 그렇게 하냐 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왜 믿음으로 그렇게 하시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구원의 방도를 하나님이 정하신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이제 우리가 언약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부르는데요.
우리 하나님을 약속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루실 모든 일들을 너희가 믿는다면 물론 그 이루시는 일이 먼저 전제돼야 됩니다.
그 이루시는 일은 누가 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다 하신 거죠.
다 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너희가 그러면 믿는다면 그 믿음에 근거해서 내가 너희를 내 자녀로 삼겠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제 자녀로 삼는 과정에서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시고 거룩하게 해 주시는 그 모든 일들, 우리와 그리스도께서 연합하시는 그 모든 일들이 이제 일어나는 거예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나 이런 데서 추가적으로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겁니다.
복음서에서는 안 나타나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이미 이렇게 승리해 있고 우리는 사실 어떤 이제 그래서 사람들이냐 하면 이 전투를 이렇게 마귀를 바라보면서 전투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마귀를 보고 전투할 정도로 우리는 그 정도로 이렇게 그러니까 마귀는 우리가 이렇게 신경 써야 할 대상이 그렇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 정도 차원의 어떤 사람들이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이미 승리가 결정되어졌고 우리의 관심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가 뭔지만 잘 생각하면 돼요.
마귀는 그냥 있다. 그리고 얘는 이미 접고 무력화됐고 그리고 얘도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하는 것은 인식을 해야 되죠.
그래서 우리가 뭐냐 하면은 야고보서 같은 경우에는요.
야고보서에서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래요. 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고 베드로서 5장에서도 보면은요.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마귀가 언제 나를 삼킬지 막 이렇게 경계하면서 두려워하는 그런 모습으로 있어야 되느냐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뭐냐 하면은 승리한 사람들이고요.
마귀는 이렇게 되게 위협적인 것 같은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 모든 구원에 관한 일들을 빼앗아 갈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요. 마귀인도 우리를 계속해서 유혹하고 괴롭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그 크신 팔로 그 권능의 팔로 우리를 딱 붙들고 있어요.
붙들고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의 말하자면은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거든요.
우리를 대신 이스라엘 역사 보면 그래요. 그게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군사력에 힘을 기울이고 그죠 전쟁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도 구약에 나타나거든요.
이스라엘 역사 속에 그런데 이스라엘이 항상 언제 승리하냐면 하나님 잘 믿을 때 승리해요.
그 승리의 이렇게 비결을 들여다보면은 실제로 뭐냐 하면 이스라엘이 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한테 어떤 얘기까지 하냐면요.
너희가 만약에 전쟁에서 승리해서 이렇게 말을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으로 말을 많이 얻을 수 있거든요.
그 말들을 힘줄을 다 끊으라고 그러세요. 말에 힘줄을 끊으면 말이 군사용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 하면서 그 말에 힘줄을 다 끊어버리라고 이렇게 명령을 하세요.
그러니까 그것을 실제로 이제 다윗이 그렇게 해요.
대부분은 안 하는데 그렇게 솔로몬 안 해요. 이렇게 다윗이 때 그렇죠 다윗이 많은 그 말을 넣었는데 그 말에 힘줄을 하나 탁 끊어버리거든요.
그렇게 해서 그 말을 하나님 하나님을 내가 의지하겠습니다 하는 그 모습이 다윗에게서 이렇게 나타나는데 사실 하나님이 그런 신앙을 요구하거든요.

그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다른 왕들은 안 그러는데 다윗이라고 하는 왕의 전쟁사를 보면요.
다윗은 한 번도 전쟁에서 진 적이 없어요. 좀 반란 때문에 자식이 힘들어해요.
자식 문제 때문에 힘들죠 네 분 때문에 힘들어요. 그런데 바울이 외부적으로 그렇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서 나가서 싸웠던 그 전투 속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그리고 다윗이 차지했던 그 저기 예루살렘 성 그죠?
이제 다윗 성입니다. 그 여성은 대단히 천혜 요새고 점령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이렇게 높은 지대에 이렇게 자연 지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벽이거든요.
그 위에 이렇게 성이 이렇게 도시 작은 도시가 이렇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그걸 점령해 한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다윗이 그것을 점령하거든요.
그것을 점령하고 그것을 다윗성 삼는 그런 모습 보게 되거든요.

다윗이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딱 믿음이었다고 하는 것이 아주 명확하게 이렇게 드러나는데 신약 시대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 위에 딱 서 있으면요. 어떤 일이 발생하냐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서 끊임없이 싸워오시는 분으로 계세요.
나타나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뭐냐 하면 전투한다. 그리스도인의 전투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이게 아니고요.
그냥 그리스도의 그 은혜 안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겁니다.
거기에 거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강한 그리스도인이에요.
그래서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그 믿음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되기를 사도 바울이 바라는 거죠.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한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이 우리 교회가 더 강한 공동체 전투에 정말 능한 공동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제 이런 겁니다.

아내와 남편 이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잘 구현되게 하 또 자녀와 부모 간의 관계, 존과 이 상전 간의 관계, 그리고 이게 뭐냐 하면요.
우리 공동체 교회 공동체 속에 나타나는 관계적인 문제예요.
전부 그렇죠. 그래서 그 속에서 어떤 미움이나 다툼이나 시기나 어떤 질투나 이런 것이 그 교회 속에 들어가지 말고 그것이 지배하지 않도록 그래서 그 속에 서로에 대한 관용이죠.
겸손함 예 서로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 그 교회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으면요.
그 공동체는 강력한 공동체가 되는 거예요. 영적으로 그 공동체는 사탄이 이렇게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그 힘이 이제 힘을 쓸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뭐냐 하면 하나님 그 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되는 거예요.

예 그래서 하나님의 우리는 은혜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느냐 사탄의 그 지배 가운데 사느냐 또 죄의 지배 가운데 사느냐 하는 이 문제 속에 늘 이렇게 부딪히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배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때로는 뭐냐 하면 우리가 연약해져서 이렇게 죄의의 지배 사탄의 지배 속에 이렇게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 속에 놓여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뭐냐면 때가 되면요.
우리 주님께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다시 되돌려 놓으세요.
우리를 돌이키시고 회개케 하시고 때로는 징계도 하세요.
그렇게 하셔서 때로는 뭐냐 하면 고난도 사용하세요.
그렇죠 그렇게 해서 우리를 하나님 그 자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 자리로 우리를 다시 이끄세요.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우리 주님이 요구하는 건 분명하게 있습니다.
너희가 때로는 적극적으로 그렇죠 너희의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 받은 사람답게 너희는 내 뜻에 순종해야 되지 않느냐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는 조금 더 힘을 써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거죠.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말씀에서 너희가 전신 갑주를 취하라 하는 이 명령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 하나님이 기본적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신데요.
그러나 우리가 우리도 우리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하기를 우리 주님께서 요구하고 계시는데요.
그래서 너희가 전신 갑주를 취하라 하면서 이게 바울이 자세하게 몇 가지 말씀 이제 자세하게 이렇게 몇 가지 말씀을 해 주는데 결국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이 내용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강하라 이 말하고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하는 겁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했던 말씀 그거예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거예요.

내 은혜 안에 거하라 하는 것이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 말은 그 은혜 안에 거하라 하는 이 말이고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수단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수단을 주시는 대표적인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래서 말씀 안에 우리가 거하고 또 여기 보면은요 18절이죠.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서로를 위해서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그러죠.
서로를 위해서 기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열심히 사용하십시오 하고 또 명령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제 그렇게 은혜 안에 잘 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계속해서 영적 이 전투 속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이제 생각을 해야 되는데요.

우리가 음 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이 의무의 측면도 잘 생각하셔야 되는데 어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 의무의 측면을 많이 강조를 해요.
기본적으로 말씀 선포할 때마다 기도하세요 기도하세요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주신 그 은혜의 청년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고 어떤 존재 되었는가 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우리가 더 많이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보면요. 늘 연약해요.
죄와 허물을 끊임없이 남기거든요. 그런데 그 죄와 허물을 끊임없이 남길 때 마귀는 그래요.
너가 봐라 그것밖에 안 되지 않냐 너가 그런데 너가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느냐 그래요.
너가 그것밖에 안 되는데 너 그런 너를 우리 주님이 계속해서 용서하겠냐 그래 계속 그래요.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이 있잖아요. 하나님 좌절하게 하고 절망하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가게 하거든요.
떠나가게 하려고 그래요. 되게 강력한 것 같아요.
그런 게 그런데 안 그래요. 그 순간에 보면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정제하지 않는다고 딱 선언하시잖아요.
내가 너를 결코 정제하지 않겠다 그러 왜 우리를 정하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정제하실 수 없냐 하면요. 하나님이 우리를 정제하실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될 그 모든 심판과 정죄를 그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기 때문에 그러거든요.
값을 다 지불해 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함께 이미 죽고 장사된 사람으로 간주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간주를 해버리신 거예요. 우리 최종적 심판 심판자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그래서 그것은 그 어떤 것도 그 하나님의 행하신 일은 번복시키거나 흔들 수 없는 그런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진리를 이제 사실은 우리 교회는 더 많이 배우고 그 진리 위에 확고하게 우리가 서게 되면요.
그러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이렇게 연약함이 막 나타날 때 그때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걸 더 많이 느끼냐면 정말 우리 주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그 큰 게 맞구나 하는 거예요.
세월이 갈수록 우리는 사실 뭐냐 하면 죄가 더해가는 사람들 같아요.
그렇죠 남는 것은 제 예축적밖에 없어요. 사실은 그런데 이 죄가 크면 클수록 그렇죠.
축적되면 축적될수록 우리는 뭘 깨닫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놀랍고 크다고 하는 겁니다.
그 은혜에 점점점점 더 눈 뜬 사람으로 우리는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나타나게 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모든 은혜를 다 이미 베풀어 주셔 가지고요.

우리는 그 은혜가 이렇게 탁 나타날 때마다 뭘 확인하게 되냐 하면 내가 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한 사람이구나 이긴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우리가 확인하고 내가 연약함 가운데서도 때로는 뭐냐 하면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부르짖고 기도하고 요청하는 자, 그 그 어떤 특권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이렇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교회는 그런 곳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삶이다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과 함께 이미 승리한 사람들인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다시 고백하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는 끊임없이 연약함 가운데 떨어질 수밖에 없사오나.

그러나 우리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변함없이 결코 정제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의 변함없는 그 언약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고 또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에도 함께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그리스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그 보좌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든지 사귐을 갖고 또 간과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점점 더 아는 사람들로 우리가 성장해 가게 하여 주시고, 또 우리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함, 우리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경배와 그 영광을 주 앞에 올려드리는 그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잘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