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510말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3절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3절까지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3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주님께서 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이 사실은 쉬운 말씀은 아닙니다.
이 말씀을 히브리서를 전공하려고 하는 신학자들도 해석에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하는 토로하는 그런 구절 중에 한 구절이거든요.
그래서 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문장이 이렇게 간단하지 않습니까? 심플하고 그런데 이 문장을 원어적으로 이렇게 잘 이렇게 해석을 정확하게 해보려고 하면은 쉽지 않은 그런 부분이 있는데요.
지금 이 표현은 믿음에 관한 어떤 정의를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의 이게 믿음의 정의인가 아닌가 하는 이 부분에서도 조금씩 의견이 갈라지는 부분도 있고요.
대체로는 이 믿음에 대한 정의를 지금 표현해 주고 있다고 이렇게 보려고 합니다.
우리도 이제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될 것 같고요.
이 실상이라고 하는 이 단어도 그렇게 간단한 단어는 아닙니다.
이게 이제 원어로 보면은 휘포스 카시트 이 말인데요.
이게 어 하나님을 우리가 삼위일체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사위 하나님에 대해서 일체를 표현하는 말이 히포스타 타시스인데 사실은 이제 원어적으로는 같은 뜻인데 요 히브리서에서는 어떻게 표현할까 이제 이것도 조금씩 조금씩 의견들이 있는데 우리 성경에서는 실상이라고 이렇게 번역을 아주 잘했습니다.
제가 번역을 확신이라고 이렇게 우리 제가 갖고 있는 저쪽에 지금 무슨 새 번역인가요?
사실 쉬운 성경에서는 또 확신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보증 이렇게 번역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또 뒤에 보면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정근이 이것은 이제 앞에 있는 이 부분을 한 번 더 부연 설명한 것으로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추가적으로 믿음에 대한 어떤 정의를 이렇게 추가시키는 어떤 개념보다도 이것은 부연된 설명으로 이제 보는 그런 입장이 좀 더 주류적인 입장입니다.
그래서 그 실상 확신 보증 증거 이렇게 다양하게 이 단어들을 표현해 볼 수가 있어서 그 전체를 이렇게 잘 생각하면서 이것을 보면은 조금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좀 더 다양한 측면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근데 어쨌든 지금 우리 성경에 실상이라고 표현 또 증거라고 이렇게 표현된 이 번역은 번역이 아주 잘 되었고 이 본문을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 주고 있어서 너무 감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이 히브리서 이 말씀을 우리가 처음부터 쭉 공부하면은 이제 좀 더 자연스럽게 이 본문에 다다르면서 이 본문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토대가 형성이 될 텐데요.
지금은 이제 우리가 이 말씀을 바로 이렇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다 충분히 살펴보실 수는 없는데 이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구조적으로 보면요.
이렇게 감싸고 있는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1장을 뭐가 감싸고 있냐 하면은 1장에 36절 보면은요.
인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까? 장 36절에 인내가 나오고 38절에 보면 믿음 나오죠.
믿음 이 두 이제 단어를 기억하시면 될 텐데요. 12장에 보면은 1절에 뭐가 나오냐면은 인내라는 말이 또 나오고요.
2절에 믿음 이래 나오죠. 그러니까 이 히브리인들은 자기들이 강조하려고 하는 어떤 것들을 이렇게 문학적인 방 표현 방식을 이런 방식을 사용해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이런 부분들을 조금은 참조를 해서 이 본문을 이해하면은 이 저자가 강조하려고 하는 바가 뭔지를 우리가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이 양쪽에 이 양쪽에 있는 이 같은 표현이 가운데 있는 내용을 이렇게 잘 표현해 주는 그런 이제 말씀인데요.
인내와 믿음을 양쪽에서 이렇게 강조하면서 어쨌든 이 저자가 우리가 믿음과 인내를 강조하고 지금 이 11장에 있는 내용이 믿음의 실레드를 쭉 나열해서 표현해 주고 있는데요.
이 11장만 보게 되면은 또 어떤 것이 이렇게 관찰이 되냐면 1절에 보면은 믿음은 이렇게 하면서 증거니 이렇게 아니 2절에 보면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렇게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11장 36절 3 8절을 보면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증거라는 말이 또 등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믿음의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또 38에서 39절에서도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하면서 이 같은 문장을 사용해서 이 30 11장 말씀이 이렇게 그 사이에 내용이 같은 말씀이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운데 있는 내용은 이제 믿음에 대한 증거들이거든요.
믿음에 대한 증거들을 쭉 설명해 주고 있는데 이 내용을 보면은 그냥 구약 성경을 요약해 놓은 것 같습니다.
아벨레스부터 시작해서 아벨레스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이스라엘이 이제 거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멸망할 때쯤 그 점까지 해서 전체적으로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그 역사 속에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그렇죠 그 예들을 쭉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내용을 이제 지금은 다 살펴볼 수 없는데 어떤 부분이 있냐면은 어떤 부분은 이제 하나님을 잘 믿어서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 믿음대로 뭔가 이렇게 응답을 받은 거 있잖아요.
그런 내용들이 있고 예를 들면은 믿음으로 유리 우성 그렇죠 공략을 했죠 돌았지 않습니까 했는데 요리 구성이 확 무너지면서 정복한 믿음으로 결과가 이렇게 탁 드러난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믿음으로 해서 이렇게 어떤 나의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응답을 받은 그런 역사도 기록이 되어 있고 또 뭐냐 하면은 이 39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런 면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믿음으로 이제 이들이 살았는데 최종적으로는 그 약속을 받지 못하고 그냥 나그네로 살았다 이런 이제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믿음의 선조 중에 아브라함과 같은 경우에는 그 땅에서 그냥 이방인처럼 나그네로 이렇게 살았는데 그가 믿음으로 어떻게 살았느냐 장차 이렇게 자기가 돌아가야 할 그 본향이 있다고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러나 그 삶을 자기가 실질적으로는 그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경험하지 못하면서 쭉 사신 그러나 믿음으로써 그 그런 삶이 자기가 자기에게 주어질 것을 바라보면서 실질적으로는 뭐냐 하면 그것을 누리면서 심리적으로는 신앙적으로는 그 삶을 실질적으로 누리면서 그들이 살았다고 이제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이 믿음으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렇게 소개하면서 이렇게 다양한 측면들을 얘기해 주는 거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은 뭐냐 하면은 믿음으로 딱 받으셨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이 그 이삭을 어떻게 구원하셨고 또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그 증거를 아브라함이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은 자기도 아버지의 칼에 죽을 뻔했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이삭은 순종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도 사실은 믿음으로 한 거죠. 그렇죠 믿음으로 했을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그 아버지의 그 칼을 붙드시고 그렇죠.
자기를 그 자리에서 살아 그러니까 마치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과 같은 그런 경험이 그 이삭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그 사건 속에서 사실은 경험되어지는 어떤 그런 부분들인데 믿음으로 이제 그러한 것들을 경험을 하면서 자신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다 표현했다는 거죠.
그래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고 우리도 늘 생각을 합니다.
이게 이제 좀 간단하지는 않아요. 믿음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 믿음이란 먼저 이렇게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할 때 막상 이렇게 딱 생각해 보면 선명하게 이렇게 와닿지가 않거든요.
그런데 어 이제 이 히브리서 본문을 우리가 살펴보게 되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실제로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이렇게 배울 수 있어서 이제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 웨스트미드 신앙고백서에 보면은 이 부분이 쉽지 않고 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뤄주고 있어요.
믿음은 뭐냐 이러면은 믿음은 하나님을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어떤 그 정도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을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서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데 그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표현이 되고 또 우리가 생동안 살아가면서 우리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의지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믿음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것을 통해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떤 경우가 많으냐 하면은 내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실질적으로는 믿음이 없는 그런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 이제 아닐 수 있는 거죠.
믿음이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믿음이 아닌 믿음이 없이 산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제 뭐냐 하면은 마태복음에서 그렇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자가 아니다 했고요.
그리고 우리 과거에 이제 믿음의 선배들이 특히 청교도 개혁주의자들이 청교도 개혁주의 이를 추구했던 우리 신앙인 선배들이 어떤 부분에 대해서 우리 교회들에게 많이 설교를 하고 가르쳐줬냐 하면요.
유사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인 거의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 거의 그리스도인이에요.
홀 모스트 크리차니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죠.
그것의 차이를 이렇게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그 시대의 교회들에게 설교를 많이 이렇게 들려줬었어요.
그 자료들이 이제 사실 풍성하게 남아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읽으면서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또 참된 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그러는데요.
결론적으로는 이렇게 아까 말씀드린 것이 우리 교회가 최종적으로 특히 이제 조직 신학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 를 통해서 그게 표현이 됐는데 우리는 웨스민스 신앙고백서에서 특별히 더 그 부분이 잘 표현되어져 있다는 거죠.
나중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4장 그리고 19장인가 그럴 겁니다.
믿음과 관련된 그 부분을 한 번 더 이렇게 확인하셔서 참된 믿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한 번은 이제 이렇게 들여다보면서 생각을 해보면 좋겠고요.
이 믿음 짱은 이 믿음 짱은 어 그렇게 웨이스미스 신앙고백서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이걸 쭉 이렇게 보면 아 이런 것이 믿음이구나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이제 어떤 것이냐 이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해서 때로는 이제 고난을 받는 것이고 또 순종해서 때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그 은혜와 복을 또 경험하는 것이고 그렇죠 순종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순종해서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고 사는데 그 약속이 때로는 다 성취되지 않은 그런 것까지도 이렇게 바라보면서 그런 가운데서도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약속을 향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그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을 표현해 낸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우리의 이제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마태복음의 표현대로 하면 이제 삶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그 모습 그 열매를 우리가 바라보면서 아 내가 정말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이렇게 확인하게 되는 그런 측면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사실은 이제 성령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면 지난번에 말씀드렸었는데요.
성령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되면은 그게 좀 좀 쉽게 명확하게 파악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셨을 때 우리에게 어떤 부분들이 나타나는지 이런 부분들을 이렇게 잘 이렇게 들여다보게 되면은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우리가 믿음 위에 서 있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우리가 실제로 이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다시 한 번 더 뭐냐 하면은 내가 참으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더 큰 믿음의 확신 속에 이렇게 거해야 된다 하는 거죠.
그렇게 또 거할 수 있는 부분도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 히브리서 이 말씀은 그 당시에 상당한 핍박 가운데 처해 있었던 교회 공동체에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10장 32절 보면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뎌낸 것을 생각하라.
고난의 큰 싸움이 있었다고 하고요. 또 33절에 보면 비방과 환란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구경거리가 됐다는 겁니다.
또 34절에 보면은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긴 것 소유도 빼앗긴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또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또 고난의 큰 싸움 아마 큰 핍박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 수신자들이 정확하게 어떤 형편에 처해 있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는데 어쨌든 우리가 다른 서신들을 전체적으로 이렇게 살펴보더라도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거의 대부분이 상당한 핍박 속에 놓여져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어요.
그렇죠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는데 이 히브리서 말씀의 이 표현은 다른 서신들보다도 훨씬 더 그들이 놓여 있었던 그 어려움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이렇게 표현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른 데서는 이렇게 조금 그냥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는 않는데요.
여기서는 이들이 어떤 핍박을 당했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오히려 실제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은 그들이 큰 어려움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그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는 분이 누군지도 정확하지는 않은데요.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는 초대 교회의 몇몇 유력한 분들의 주장을 따라서 사도 바울이 아닐까 생각은 해보고 있습니다.
문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도 상당히 이제 설득력 있는 학계의 주장인데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라고 또 해도 용납할 만한 그런 부분들도 상당히 있어서 사도바울이라고 봐도 괜찮겠다.
그래서 마지막에 13장에 보면은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13장 23절을 보면요.
디모데를 언급하고 있는데 디모데를 언급하면서 아주 친밀하게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디모데하고 아주 가까운 사람 제일 가까운 분이 일단은 바울이거든요.
바울은 디모데는 바울이 영적으로 이렇게 낳았다고 표현하는 자식처럼 여기는 믿음의 동역자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떠났을 때 그 에베소를 맡아서 실제로 목회를 했던 이제 사역자가 디모데인데요.
디모데를 이렇게 친밀하게 언급하는 걸 보면은 이 저자가 바울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 시점이 상당한 박해 속에 있었고 이 저자가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그 박해받는 그 상황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을 하셨고요.
그것을 돕기 위해서 지금 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거죠.
그래서 과거의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으로 이렇게 살았다 하고 쭉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서 아까 10장 마지막에서 말씀했던 것처럼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뭐냐 하면 인내해라는 겁니다.
인내해라 그리고 인내할 때 어떻게 인내해야 되느냐 믿음으로 인내해라 그래서 이 믿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그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 하면은 소망을 바라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너희가 인내해야 되는데 너희는 그 왜 인내해야 되는지 또 왜 인내해도 좋은 사람들인지를 얘기를 해 주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궁극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소망이 있어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소망 사실 궁극적인 소망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이들에게 궁극적인 소망은 하나님이죠. 그러니까 이들이 먼저 이렇게 바라보는 거는 뭐냐 하면요.
특히 히브리서 전체에서는 어떤 표현이 있냐 하면 구원에 관해서 얘기하고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사람들이다.
기업에 대해서 나오고요. 또 여기 11장에서는 본향에 대해서 나오죠.
본향에 대해서 나오고 그리고 또 안식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히브리서 4장에 보면은 그러니까 구원하면은 이렇게 기업 그죠 그리고 본향 안식 이런 것과 관련되어져서 아 그렇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거죠. 이런 것과 관련해서 소망을 두게 되는데 최종적으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궁극적인 소망인 거죠.
이것을 다 가져다주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그 소망을 이렇게 붙들면서 살아야 되는데 이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이것만 이렇게 딱 두고 보더라도 이 표현이 우리에게 정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게 돼요.
왜냐하면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분이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믿죠.
그것도 우리는 지금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렇죠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뭐냐 하면은 우리가 그 하나님을 눈으로 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주세요. 그런데 우리가 뭘 아냐면 믿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 딱 알거든요.
그리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뭐라고 했습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고 보존이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지난번에 우리 금요일 날 목요일날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 그러니까 이게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잘 믿어야지 결심해서 소유하게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지 결심한다고 하나님을 믿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이렇게 우리가 딱 지금 믿고 있는 거 이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보증하는 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증해 주는 그 보증이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이 믿음이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제 믿으면서 사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이 말씀에서 주목 좀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6절입니다.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러니까 이 말씀은 어 우리가 이 땅에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 어려움을 이제 뛰어넘는 극복해 나가지 않습니까?
전국적으로는 우리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그 모든 풍요로운 것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기면서 이렇게 쭉 살아가려고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이제 그렇게 해서 잘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우리의 모습이 모습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요구하고 계신 거거든요.
그 부분이 이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그렇게 우리를 살게 하시는가 이게 이제 우리의 질문이고 궁금증이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소망도 주시고 그 소망을 붙들 수 있는 이렇게 믿음도 주시고 그 믿음으로 그걸 이기면서 살도록 이렇게 하세요.
왜 그렇게 하시냐는 거죠. 하나님 그렇게 안 하면 안 됩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죠. 그런데 그런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세요.
그냥 딱 그 이유가 그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여기 보면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그러니까 적어도 뭐냐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은 되게 귀한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기쁘시게 하려면 정말 고귀한 것이 필요해요.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어떤 면에서는 가장 좋은 선물,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은 뭔가를 들고 나가야 되는데요.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셨을 때 기뻐하시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 그 부분이 사실은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하나님께서 그걸 뭘로 무엇을 받으실 때 가장 기뻐하시냐 하면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기뻐하세요.
그래서 뭐냐 하면 하나님이 더 좋은 걸 받고 싶으세요.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의 믿음을 계속해서 전검과 같이 연단하세요.
우리는 힘듭니다. 믿음이 연단되고 신앙이 계속해서 이렇게 순전해지는 것이 우리는 우리가 볼 때는 정말 어떤 때는 뼈를 깎는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데 지금 이 히브리서 기장은 그래 인내해라 그럽니다.
답이 있잖아요. 명확하게 없어요. 그거 하나하나를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11장을 보면은 그런 부분들도 있는데 아닌 부분들도 많거든요.
하나님이 탁탁 기도를 들어주셔서 문제가 탁탁 해결되어져서 우리가 정말 그야말로 속 시원하게 해주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정말 할 만하겠다 싶은 그런 모습이 있거든요.
근데 이제 그런 모습들도 사실은 어떤 모습들이냐 하면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에게 응답받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했던 그들의 순종이 사실은 전제돼 있어요.
뼈를 깎는 순종,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을 이기면서 감당한 어떤 그런 순종이 있습니다.
그것과 함께 이렇게 붙어 있는데 어쨌든 그렇게 순종했을 때 응답이라도 받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 그런데 이게 보면요.
응답도 못 받고 평생 살다가 이렇게 돌아가시는데요.
뒷부분에 가면은 더 상황이 안 좋습니다.
어떤 분들은 돌로 치는 것과 더불어 켜는 것과 37절에 보면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유리하다가 궁핍과 환란과 확대를 받으면서 이렇게 나중에 잘 된 것이 아니고요.
그냥 그대로 그냥 가셨어요. 그냥 그대로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이분들은 지금 아마도 선지자들을 지금 가르치는 거거든요.
돌로 이렇게 맞은 사람 그렇죠 스펙 스테반도 표현하면 되는데 우리 과거에 11기에서는 이제 서가리아 선지자라든지 톱으로 회임을 당했다고 보는 분이 보이는 분이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우리 이사야서 얼마나 은혜로워요.
그런데 그분이 얼마나 고난 받고 최종적으로 그 이사야 선지자가 톱으로 이렇게 켜임을 당해서 죽었다는 그런 것을 이제 전성에서는 그렇게 내려오고 있는데요.
어 그 외에도 뭐 많이 있습니다. 우리야 우리야 그러니까 칼로 죽임을 당한 우리아 선지자도 있고 그런데요 그러니까 그 선지자들을 보게 되면은 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 당대에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신앙생활을 정말 잘하셨던 분들이거든요.
열심히 하셨고 그런데 삶이 그렇게 우리가 볼 때 사모할 만한 사람 같지가 않아요.
그런 것만 이렇게 딱 생각하면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도대체 뭔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려고 그러는 건가에 대해서 이렇게 물음표가 계속 이제 생기게 되거든요.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어서 정말 믿는 자는 넘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런 말씀 너무 위로가 되고 그랬거든요.
실제로 이제 그 말씀이 잘못됐다는 거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 정말 넣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없느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 참여한 사람들이죠.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그 복이 사실 뭐냐 하면 믿음으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붙들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 그게 사실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하는 거 생각하면요.
뭐 못하는 게 없다고 말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그렇죠 만족시키고 기쁘시게 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특히나 뭐냐 하면은 이미 만족이 충만하시고요.
기쁨이 충만하세요. 더 더 기쁘게 하실 수가 없을 만큼 기쁨이 충만하신 분인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에 기뻐하시고 만족하신다고 하는 것 이건 정말 놀라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님 입장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끊임없이 믿음을 요구하시고 그 믿음을 계속해서 연단해 가시는 분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는 이제 이 말씀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그 믿음으로써 그것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예를 이렇게 살피면서 우리도 이 믿음의 길을 가야겠구나 또 우리도 하나님께서 믿음을 제공해 주셨을 때 이 믿음의 선조들이 갔던 이 길을 갈 수 있겠다 하는 것도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이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 살아가면서요.
우리 시대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바라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을 한 번 더 다시 잘 생각하면서 우리가 믿음으로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우리는 얻고 싶고 그렇죠 성취되기를 바라는 그런데 먼저 우리 마음이 이렇게 달려가는 사람들인 것도 맞습니다.
우리 끊임없이 이런 말씀을 다시 잘 살피면서 때때로 우리가 믿음으로 내가 지금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은 우리 주님께서는 뭐냐 하면은 때때로는 뭐냐 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여전히 선하시고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그 하나님의 약속이 최종적으로는 성취된다고 하는 거 그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적으로는 완성이 되고 우리가 그 하나님의 나라에 온전히 참여하게 하실 분이라고 하는 그것에 대한 그 믿음을 우리가 딱 붙들면서요.
계속해서 이 땅에서 때로는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도 우리가 감당해 내야 될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만 이렇게 하도록 하는 분은 아니다는 것도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막 고생하는 거 보면서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복되다고 하는 것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때로는 연단해 가시는 분이고 1장 12장에 보면은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도 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시는 축복하시는 다양한 얼굴들이에요.
그래서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시험 당할 때 피할 길도 내시고요.
네 또 우리가 11장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때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넘치도록 우리의 삶에 그 삶을 윤택하게 하시는 기본적으로는 그것이 전제되어 있어요.
그렇게 윤택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더 마음껏 섬기고 또 서로를 서로를 섬기고 또 나눔이 있는 그 삶을 살도록 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 하나님의 더 큰 은혜 가운데 살게 하고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강화해 가시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이렇게 주시고 강화해 가는 그 방식은 다양한 얼굴로 이렇게 나타나게 되는데 어떻게 대전제가 뭐냐 하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이 그렇게 대한다 하는 것이 히브리서 이 말씀이 또 강조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12장에 7절 보면요.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그러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대 존재입니다.
아들을 대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대하실 때 그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유익한가 하는 것을 잘 생각하시면서요.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섬겨가셔서 때로는 우리가 볼 때는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해 주시면 이런 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그런데 하나님은 보면요.
우리 애하고 템포가 좀 안 맞으세요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시는 방식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이렇게 탁탁 안 맞아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시는 그 이유도 이제 생각 충분히 생각할 수가 있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가만히 돌아보면은 너무 감사해요.
우리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끝이 없거든요. 하나가 요구해서 들어주면요.
또 하나를 요구하고 요구하고 그 끝이 없이 우리는 요구해요.
하나님께 선물을 끝이 없이 요구하는 아이 같아요.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아이 같아요.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의 때로는 딱딱 있잖아요.
멈추시면서 그 템포가 맞지 않게 어느 때는 아들에게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놀라운 선물을 이렇게 주시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을 통해서 뭐냐 하면은 우리가 내가 갖고 있는 어떤 관심 있지 않습니까?
내가 기대하는 아버지 내가 기대하는 그 하나님이 아니고 그렇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계속해서 생각하게 하세요.
생각하게 하셔서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우리가 결국은 파악하고요.
아는 사람들 되어줘서 그 아버지가 나를 어떤 눈으로 아니 어떻게 도우시는지 그 아버지의 눈으로 나를 보고 해석하는 그 사람이 되도록 왜냐하면요.
그 사람이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이거든 그런 사람이 되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와 관계 속에서 섬겨가시는 그 모습이 하나님이 이전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얼굴로 나타내시는 분이다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이제 한국 교회는요. 그 하나님을 자꾸 우리가 이렇게 이런 분이다 이런 분이다.
성령님은 이런 분이다. 기도하면 이렇게 된다 하는 뭔가 이렇게 정형화된 어떤 답을 있잖아요.
어떤 틀을 만들려고 하고 답을 찾으려고 그래요. 근데 그런 노력도 물론 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를 다시 이렇게 보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서 요구하는 게 뭔가 하는 것을 점점 더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어떤 의식들을 한번 그런 생각들을 해보는 거거든요.
그게 이제 이렇게 뒤바뀌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잘 생각하면서 이제 히브리서 말씀도 결국은 우리에게 그런 어떤 도전을 줍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잘 읽으면 우리가 이 말씀을 대충 볼 때에 생각하는 이 히브리서 11장 1절 2절 말씀이 아니고요.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이렇게 잘 보면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 더 이제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이렇게 파악하는 것은 좀 이게 어렵긴 한데요.
이렇게라도 우리가 고민해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어떻게 살아야지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삶을 살아내야 되는데요.
정말 기본적으로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생각하면서요.
우리가 자리에 서 있는 자리에서 삶의 자리에서 잘 인내하시고 믿음으로 인내하시고 때로는 우리가 기도한 것이 응답이 늦어지고 잘 응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내하시고요.
그 인내하시는 것이요. 이렇게 더 귀한 겁니다. 그게 귀한 거예요.
최고의 선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정말 값진 선물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아직 뭔가 오지도 않았는데요.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그 하나님을 누리는 거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의 이제 모든 것 되시는 그 하나님을 붙들고 현재적으로 이렇게 누려가는 내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모습 이어서요.
그런 거 생각하면요.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안 들으시는 게 좋아요.
좋을 때가 많아요. 기도를요 적게 들어주시는 것이요.
좋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 것까지도 우리가 생각하게 해 주는 그런 말씀이다 하는 것을 잘 생각하면서요.
우리가 계속해서 인내하면서 예기치 못한 하나님의 은혜들도 경험하면서 이렇게 잘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속에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히브리서 말씀 통해서 저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고 또 그것을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찬양과 영광을 또 받고자 하심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영광받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그 자리야말로 우리의 삶 속에 가장 복된 자리이고 또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 영예로운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그 그것을 사모하여서 때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고 또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인내하며 순종했던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이오니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이 히브리서 말씀을 다시 한 번 잘 들여다보면서 우리에게 주님께서 인내할 것을 요구하시고 또 어려움과 핍박 가운데서 또 기도가 응답되어지지 않고 지연되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인내하고 그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 그 모습을 우리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믿음으로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우리 세상을 교회 전체 속에 풍성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또 그것이 이렇게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찬양을 통해서 올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배 > 말 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복 있는 사람은(시편 1편 1-2절)... 박주동 목사 (0) | 2026.05.07 |
|---|---|
| 한 알의 밀이 죽으면(요한복음 12장 24절)... 박주동 목사 (0) | 2026.05.01 |
| 더 넘치게 하시는 주님 (에베소서 3장 20-21절) ... 박주동 목사 (1) | 2026.04.20 |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립보서 4장 6-7절) ... 박주동 목사 (1) | 2026.04.17 |
|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고린도전서 15장 1-4절) ... 박주동 목사 (1) | 2026.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