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강하고 담대한 믿음 - 여호수아 1장 1-9절...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6. 9. 04:50

박주동 목사

 

 

 

260607말씀 강하고 담대한 믿음 - 여호수아 1장 1-9절...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장 1절부터 1절부터 9절까지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1장 1절부터 9절까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주께서 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오늘 말씀의 제목 강하고 담대한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읽기만 해도 힘이 되고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내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내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지금 이제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죠?
여호수아가 가난한 이 정복 전쟁 본격적인 가난한 정복 전쟁을 앞두고 있는 그런 시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모세의 지도하에서 출애굽을 했고 출애굽을 한 후에 약 40년 동안 이 광야에서 방황도 좀 하고 그렇죠 또 훈련도 받은 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경험하면서 가난 정복 전쟁을 감당하기에 이제 충분한 그런 신앙적 역량을 갖춘 그런 민족으로 훈련되어져 가는 그런 것을 우리가 그 이전에 출애굽기 신명기 이런 데서 살펴볼 수가 있는 거죠.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한 10 한 14개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한 3개월 정도 지나서 시내산에 도착하고요.
그리고 3개월 이후부터 시내산에서 한 11개월 정도를 보내게 됩니다.

그 11개월을 보내는 동안에 거기에서 이제 모세의 율법도 받고 또 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식양을 따라서 성막도 이렇게 세우고 그런 일들을 이제 11개월 동안 하면서 어 성막을 중심으로 한 어떤 신앙생활을 이제 본격적으로 훈련받고요.
어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언약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시내산에서 다시 한 번 이렇게 확인하면서 그들이 이제 언약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어떤 신앙적 준비를 한 10여 개월 동안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14개월 정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을 중심으로 해서 보면 이제 남쪽입니다.
남쪽 남쪽의 그 가난과 남쪽 지역의 그 경계선 경계선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탐하는 일이 있게 되는데 그 지역 이름이 가데스바네아라는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한 14개월 정도 지나서 가데스 바니아에 그 자리에서 위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12명의 정탐꾼을 이렇게 보내게 되는데 그 사건과 오늘 이 말씀은 상당히 이제 연결해서 봐야 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기도 한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이제 가데스바네아로 40 거의 38년 정도 지나서 다시 이렇게 도착을 해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는 뭐냐 하면 요단 동편에서 거주하면서 요단 동편에서 여리고성을 정탐하는 일이 여호수아 2장에 보면 나타나거든요.
그러니까 요리고성을 정탐할 때의 그 이스라엘의 모습과 어 약 한 38년 전에 가레스 바네아에서 가난을 정탐할 때의 그 모습을 이렇게 대조해서 보면은 여기서 우리에게 오늘 말씀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30 약 8년 전에 가데스 바니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지도하에서 이미 이들은 많은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이거든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또 하나님이 성막을 주셔서 그 성막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서 그들과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다고 하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그런 상황이거든요.
그 상황에서 모세의 지도하에서 12명의 정탐꾼이 약 한 40일 정도에 걸쳐서 가나안을 정탐을 하게 되는데 그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그들이 보인 반응을 보면은 어떻습니까?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빼고는 나머지 10명의 사람들은 그들은 지파를 나름대로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에요.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낸 거거든요. 그런데도 그 10명이 돌아와서 가난한 지역을 자기들이 정탐을 해보니까 거기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요로운 곳인가 하는 것은 다 같이 공감을 해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보니까 대단히 이렇게 장대해서 우리가 그들을 못 지어야 되는데 그래서 그 땅을 차지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지금 모습과 우리의 역량이 너무 형편없어 보인다는 거예요.

메뚜기 같다고 이제 표현할 정도로 우리는 그들이 볼 때는 너무 보잘것없는 그런 모습을 딱 보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거기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반응을 보였냐 하면은 그걸 딱 보니까 자기들은 이 두 사람은 그렇죠.
너무 거기가 탐스럽게 보인다는 거죠. 우리는 빨리 가서 저것을 가서 먹자 그럽니다.
심지어 우리의 밥이다 그래요. 저들은 가서 우리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사 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설한 말하자면 식탁이 잔치가 얼마나 큰 잔치 아름다운 식탁이 준비되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그 두 사람은 그 돌아와서 고백을 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돌아와서 고백한 그 결과를 이렇게 지켜보시면서 어떻게 하십니까?
진노를 하세요. 진노하시고 그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약 38년 정도 광야에서 이렇게 말하자면 유리방황하는 물론 이제 유리방황하는 건 아닙니다.
그 광야의 삶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해 가세요.

그러니까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고 축복의 땅 가나안인데 그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척박한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그곳에서 이제 나와 메추라기를 중심으로 저기 뭐야 만나를 중심으로 해서 그들이 광야에서 이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이 3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불순종했던 첫 세대는 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요.
그리고 이 세대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이 이제 가난 입성을 준비하게 되는데 그때 그들의 지도자로 있었던 사람이 두 사람이죠.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여호수아 1장을 지금 보고 있는데 여호수아 이전에 신명기 34장을 보면은 마지막에 모세의 지도력이 마무리가 어떻게 되는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세가 3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을 잘 지도하고 그들을 신앙적으로 이렇게 잘 훈련 했다고 하는 것을 어느 정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여호수아가 대를 이어서 리더십을 이어받아서 가난 정복을 준비하게 되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은요.
신앙이 대단히 잘 준비되어 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여리고성 정탐하는 정탐꾼 2명에게서 잘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얼마나 믿음이 좋으냐 하면 12명을 보내질 않아요.
그냥 2명만 보냅니다. 물론 이제 12명은 가라앉은 전체를 정탐하고 다 한 40일 정도 걸려서 자세하게 이렇게 정탐을 하는데 사실은 뭐냐 하면 자세하게 정탐하는 게 한편으로는 불신앙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40년 지나서 요리 구성을 정탐할 때 사실 그때도 자세하게 정탐을 우리는 하고 싶죠.
최대한 자세하게 그래야지 어떤 승리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 더 높일 수 있겠다 하는 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거거든요.

군사는 어느 정도고 군사력은 어느 정도고 또 여리고성을 우리가 공략했을 때 그 측면이나 어떤 후면에서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세력은 어느 정도고 이런 것들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싶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요. 이 사람들이 40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들 계획하신 자기들에게 계획하신 그 일을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자세하게 고민하고 따지고 뭐 이렇게 살펴야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그 모습에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가 이제 잘 드러나는데요.
그러니까 40년 전에 가디스 바니아에서 4 12명이 정탐할 때도 사실은 뭐냐 하면은 그들이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고 순종할 만했거든요.
그때도 그러니까 40년 전 38년 전 그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지도하에서 출애굽 그러니까 특히나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래서 그 당시에 세계 최강대국 애굽으로부터 자신들을 안전하게 이렇게 구출해 낼 수 있는 그런 구원의 그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데다가 홍해도 건너간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뒤에서 막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는데도 하나님이 그 상황에서도 불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다 막고 안전하게 건너가게 하신 그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세대가 첫 1세대거든요.
그러니까 한 14개월 정도 지난 후에 그들이 가나안 땅에 이렇게 들어갈 때 정말 믿음의 눈으로 이렇게 바라봐야 어야 됩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들이 믿지 않고 그렇게 불신앙적인 반응을 한 게 좀 이상할 정도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이렇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보통 믿음 하면 어떻게 생각하냐면요.
우리가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뭔가 우리 스스로 개척을 해서 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제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인도하는데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이렇게 탁 가려고 할 때 내가 믿어야지 그래서 내가 믿고 저리로 가야 되겠다 하고 이렇게 우리가 믿음을 근거로 해서 나아가려고 하는 그런 태도를 우리가 많이 보이는데요.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그런 믿음하고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은요. 정말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될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서 가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요.
성경은 항상 하나님이 먼저 말씀을 하세요. 아브라함에게도 그렇죠 내가 너희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그 명령에 순종한 겁니다.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과 불이 흐르는 그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미 약속입니다.

약속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그 믿음의 조상들에게 그렇죠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가 그러니까 요셉 같은 경우에는 내가 우리가 다시 돌아갈 것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그곳에 가서 묻어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우리 선조들은 그 땅에 당연히 다시 돌아갈 것에 대한 확신 가운데 딱 죽거든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다 그래요. 그렇지 않은 하나님이 어떤 블레셋이나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그 전쟁을 할 때도 보면요.
하나님이 말씀을 하세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은 내가 너희에게 승리를 주겠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어떤 약속이 있냐면 너희와 함께하겠다.
내가 대부분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겠다고 이렇게 말씀을 해 주세요.
대단히 친절하시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그런 사건들 속에서도 기본적으로 어떤 게 있냐 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합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솔로몬 시대 때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 계실 때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그렇게 함께한다고 하는 것을 그 성전을 통해서 잘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항상 뭐냐 하면요. 우리가 가야 될 길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세요.
글로 내가 인도하겠다 하는 게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을 때는 뭘 믿냐 면은 그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에 대한 그 비전들을 우리가 제시 받았을 때 우리는 이제 그것을 믿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와 관련되어져서 구약 성경 특히 그렇죠 보면은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항상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약 시대는 그럼 다르냐 똑같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예수님이 뭐라고 약속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떠나지 않겠다 하는 게 약속입니다.

그리고 명백한 그런 약속들이 계속해서 주어진 너희와 함께하고 지키고 너희를 통해서 내가 어 땅 끝까지 너희를 증인으로 삼겠다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의 전체에 그렇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거든요.
그리고 너희의 그 구원은 내가 붙들고 지키겠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은총이 사실 우리 신약시대에는 주어져 있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이 직분은 모세의 직분보다 영광스러운 직분이라고 나중에 얘기해요.
우리 그렇죠 사도 바울이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과거에 함께 하신 그 우리가 역사를 보더라도 우리 하나님 정말 우리와 함께하셔서 여기 보면은 신명기 31장에 보면요.
너가 나를 믿고 내 명령에 순종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너희를 앞서서 행하겠다 그래요.
형통하게 하겠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이 백성들에게 형통함을 기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거죠.
하나님과 함께하는데 그렇죠 뭔가 이렇게 그짐이 있다고 하는 거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심지어는 홍해나 그렇죠 이런 것이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그 길을 막지를 못합니다.
그래요. 그게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따라가는 사람의 특권이고 우리의 모습인데 신약 시대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놀라운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성령님이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서 이렇게 뒤를 따라 가는 분이겠어요.
우리와 교회가 함께하시는데 성령님이 우리 교회와 함께하시고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내 주에 계시는 분이 성령님이세요.

이스라엘 역사 저기 나라의 그 중심에 있었던 그 솔로몬 성전이 우리 안에 오신 성전으로 우리 안에 오신 분이 우리를 성전 삼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항상 뭐냐 하면 우리를 앞서서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래요.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거라는 거죠.
이것을 우리가 우리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 명령을 딱 하실 때 여호수아가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되냐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과거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서 이미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 그것을 이제 너희에게 주겠다 하는 40년 전에는 모세와 함께 너희 조상들이 1세대들이 실패했지만 이제는 너희가 나를 내 명령을 듣고 내 명령에 순종하면 그 약속을 다시 내가 준행하겠다.
사실은 상황이 아무것도 바뀐 건 없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님이 어차피 다 하신다고 하는 것은 똑같거든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뭘 요구하시냐 하면은 그 하나님의 명령에 너희는 순종해라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고 과거에 그들이 실패하면서 40년 30몇 년 동안 어떤 면에서는 재교육을 받고 새롭게 추가적인 연단을 받은 것은 그들이 불신앙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본적으로 뭐냐 하면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이미 하나님 자신 게시해 주셨고 말씀해 주신 하나님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먼저 잘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좀 충분히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우리 마음에 이렇게 불평이 생기기 쉽냐 하면 하나님 좀 은혜를 충분하게 이렇게 보여주셨으면 하나님 좀 잘 믿고 순종할 수 있었을 텐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정도의 어떤 그런 놀라운 이적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면 우리는 좀 잘 믿고 순종해서 순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에게 그렇게 은혜를 안 베풀어 주셔 가지고 주님을 믿는 것이 참 힘듭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있거든요. 안 그래요.
그런데 이것은 상황을 우리가 잘못 파악한 거라는 거죠.
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함께해 주심도 정말 그들에게 넘치는 은혜였고 우리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놀랍고 큰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뭐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정말 어려워요.
사실은요.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있잖아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으면요.
하나님을 안 믿으려고 한번 노력을 한번 해보세요.
믿으려고 노력하지 마시고요. 잠깐 중단하고 내가 하나님을 오늘부터 믿지 말아야 되겠다 하고 결심을 하면요.
하나님이 점점 더 잘 믿어져요. 그래요. 반대로 해보면요.
부인하려고 하면 부인이 안 돼요. 너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그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나 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안 믿을 수가 없어 사실 그래서 안 믿는 것이 더 어렵고 불가능할 정도인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 하면 그 상황 속에서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되냐면요. 믿음이 없을 때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이야기할게 말씀드릴 게 아니고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충분하게 기억하지 않고 그렇죠 그 명령 하나님의 우리를 통해서 보여주신 그 모든 은혜의 일들을 우리가 헤아리지 않는 우리의 그 최소한의 노력이 없는 우리의 문제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가 충분히 믿을 수 있도록 그렇게 역사해 주셨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이렇게 마음으로 굳게 이렇게 믿지 못하는 우리의 어떤 이 문제를 보면요.
우리는 정말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의 죄가 죄가 그래서 아주 뿌리가 깊다고 하는 것을 인정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것이 하나님에게 그 어떤 문제를 돌리고 하나님을 탓할 문제가 아니고요.

우리가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붙들지 못하는 우리 안에 있는 이 죄성 이 부패성과 죄악됨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고 하나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데리고 가서요.
불쌍히 여겨 달라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주님 믿음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우리가 기도할 수 있어야 되고요.
감사하게도 그렇게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 입혀주시는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여호수아에게 요구했던 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잘 기억하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그렇죠.
회개하면서 주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요.
우리에게 믿음을 이렇게 심어주시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다시 심어주시고 그 우리의 믿음을 강화해 주시기 위해서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뭡니까?
말씀이죠.

말씀 너무 잘 아셔 가지고 대답 안 하시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강화해 주시는 가장 1순위 중요한 거 말씀 그래서 여호수아 여기에서도 너희가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생각하면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그냥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도 과거에 38년 전에 그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가나안에 이렇게 들어가 가지고 거기에 가나안에 있는 자손들 아낙 자손들을 보니까 키가 거의 장대가지고 자기들은 거기서 볼 때 너무 초라해 보이고 그래도 가난에 있는 그 사람들은요.
군사적으로도 사실 대단히 발전돼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앞선 어떤 면에서는 운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딱 보니까 도저히 그 상황에서 이 상황에서는 정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얼마든지 그러니까 그 어떤 상황에 쏙 빠져가지고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38년 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그들이 보여줬던 모습이고요.

지금 그들이 세월이 흘러서 신앙적으로 많이 이제 연단되어졌습니다.
가장 그들이 38년 동안 받은 훈련이 뭐 훈련입니까?
믿음의 훈련 만나를 맨날 거두는 훈련이죠. 아침마다 만나를 계속 거두면서 날마다 뭘 경험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날마다 경험하는 겁니다.
날마다 우리 이제 이스라엘 만나 먹은 거는 대단히 놀랍고 부드러워 하는데요.
우리가 맨날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 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건지 저는 잘 생각 안 해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날마다 은혜를 주세요.
큰 은혜든 작은 은혜든 고 우리 상황에 맞게 날마다 은혜를 주세요.
그게 우리가 이렇게 뭔가 은혜받을 만한 어떤 것을 이렇게 하려고 한다고 그러면요.
어떤 것을 해도 우리가 사실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그 호의를 받을 만한 것이 없거든요.

내가 아무리 기특하게 살아도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그냥 우리를 사랑하시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큰 구속에 근거해서 우리를 하나님이 자녀 삼았다고 하는 그렇죠.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녀 삼았다고 하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하나님의 아버지가 자녀를 날마다 이렇게 먹이는 그 모습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났는데 우리 이제 그 훈련을 계속해서 받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이스라엘이 그 훈련을 계속해서 이제 받으면서 여호수아 시대 때에 그들이 이 정탐꾼 딱 보낼 때 그들의 신앙적 상태가 어떤지 금방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두 명 정도만 여리고성 정탐하고 이렇게 돌아오도록 하는데 두 명이 돌아와서 하는 보고가 대단히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어 두 사람이 여리고성에 들어가서 한 거는 뭐냐 하면요.
숨어 있는 거예요.

그냥 그러니까 뭘 경험하냐 하면 정말 자칫하면 죽을 수 있겠구나 2명이 들어갔는데 그들이 겨우 누구 때문에 삽니까?
라합 때문에 살죠 라 라합은 왜 거기에서 등장하면서 등장하냐 하면요.
라합이 다윗의 할머니입니다. 무슨 할머니입니까?
정조 할머니보다 고위 할머니를 뭐라고 그럽니까?
고조 할머니세요.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라이 라합은 다윗의 고조 그러니까 라합이 이제 누구의와 결혼하냐 하면 살몬과 결혼합니다.
마태복음에 나와요. 살몬 살몬이 누구를 낳았습니까?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의 아내는 루시고요. 그렇죠 룻과 보아에서에서 오벳이 나오고 오벳에서 2세가 나오고 2세에서 다윗이 나왔다 이게 나와요.
그렇죠 그게 계보가 이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루치나 라합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다윗의 계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말씀해 주기 위해서 사실 이 역사가 아주 중요하게 거론이 되는 거거든요.
사실 역사 기록 안 해도 되죠.

거기 가서 정탐하고 돌아왔다 하면 되는데 굳이 랍과 관련된 사건을 기록한 것은 그렇게 하 그런데 그들이 랍의 도움으로 이렇게 라이 여리고성 성 위에 집이 이렇게 세워져 있었어요.
그 그 가난한 사람들의 집은 그 지붕 위에가 이렇게 평평해 가지고 그 위에 3대를 말리었습니다.
3대 삼배 옷 아니 배 옷 우리 배 옷 제사장들이 배 옷을 입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부드러운 배옷, 거친 배옷 이렇게 또 나눠지고 그렇죠 거친 배옷은 막 회개할 때 입고 그러잖아요.
그 배옷을 만드는 재료예요. 그 재료를 이렇게 잘 말려가지고 그것을 이제 이렇게 어떻게 가공을 해서 팔고 가공을 하고 그렇게 하는 것 같은데 그 산배 더미를 이렇게 높이 쌓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두 사람을 그 속에 이렇게 숨기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정탐꾼이 들어왔다는 것이 이미 발각이 돼 가지고 정보가 다 샜어요.

그래서 군대가 그들을 잘 보호하려고 왔는데 라에 의해서 그들이 살고 이제 그 성벽을 이렇게 줄을 내려서 타고 내려서 저 산에 가서 3일 동안 숨어 있다가 가세요.
그렇게 라합의 지도하에서 그들이 겨우 그냥 갔다가 왔어요.
그러니까 돌아왔을 때 간담회 선언 할 거 아닙니까?
죽었다가 죽을 뻔했잖아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그러니까 본인들이 간담회 선언해야 되는데 두 사람이 돌아와서 뭐라고 보고하냐면요.
그들이 간담회 선언 하더라 선언한다고 하더라. 반대로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사실은 라보의 섬김을 받으면서 자기들이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 상황에서 그 한 여인의 도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구원해 주신 그 구원의 하나님을 사실 본 거거든.
그러니까 이 믿음이 딱 있으면요. 모든 상황을 어디서 보냐면 하나님 중심으로 해서 봐요.
왜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보고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보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보는 생각하는 어떤 삶의 습관이라든지 그런 태도에서 이렇게 멀어지게 되면 같이 그 믿음에서도 멀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겠죠.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점점 강화되는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 이렇게 쭉 갈 때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내가 처한 상황이나 모든 그 닥쳐오는 삶의 문제를 딱 바라볼 때 그 모든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현장이래요.
그래요 믿습니까? 네 이게요. 그게 그냥 얘기 말씀드리는 게 아니고 확실한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렇게 인도해 가시는데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그렇게 두 정탐꾼처럼 그런 어떤 삶의 위기 목숨이 위협받는 그런 삶의 위기 속에 맞닥뜨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구원의 그 역사 속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믿음만 있으면 뭐냐 하면 그 두 사람도 돌아와 가지고 즐겁게 그들이 지금 벌벌 떨더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 기쁨이 충만한 거예요. 그렇게 돌아와 오고 나서 그게 우리가 그렇게 얼마든지 우리의 삶의 해석이 바뀔 수가 있는 거거든요.
이게 이제 하나님을 중심으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내가 이렇게 앞으로 맞닥뜨려야 될 상황을 바라보는 그 믿음 그게 어떤 믿음이냐 그게 강하고 담대한 믿음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내가 이렇게 스스로 내 자신의 어떤 능력과 어떤 내 스스로 이렇게 막 나를 확신시켜가지고요.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가하고 당대해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고 그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뭔가를 이렇게 딱 생각하면요.

우리의 마음에 뭐가 생기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잘 이렇게 주목하면서 그 하나님을 확 보면요.
사랑하게 돼요. 내가 그 주님을 믿습니다. 이런 반응이 아니고요.
내가 우리 주님을 사랑 왜냐하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베푸시는 은혜를 보면 너무 은혜로우시거든요.
너무너무 오래놓으세요. 그 이스라엘 역사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보면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이렇게 안고 양육하듯이 그렇게 양육하는 너무 은혜로우세요.
그 모든 하나님의 이적은 그 하나님의 그들을 향한 사랑의 손길이거든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느끼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실은 뭘 요구하냐면 너희가 나를 잘 믿어라 이렇게 말씀하기 전에요.
신명기 우리가 6장 5절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너희가 나를 사랑하라 그래요.

그게 나를 사랑하라 하는데 그게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보게 되면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 사랑에 눈 뜨게 되면요.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친밀해져요.
그래서 그 하나님과 그 사랑의 관계 속에서 그 친밀함이 형성이 되면 그 사람은 그냥 담대하지 마라 그래도요.
강하지 마라고 해 그렇게 명령하지 않아도 내면에 그 강인함이 생겨요.
그래서 사랑하면요. 하나님을 어떤 순간에도 내가 배신하지 말아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딱 들어요.
그리고 그분을 내가 불신하면서 잘 살기보다는 믿고 죽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면 그런 마음까지 든다니까요. 그런 사랑을 이렇게 알게 해 주시는데, 그런 사랑을 하나님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고 그 관계 속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말씀 그래서 여기서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서 좌로나 우로나 그 치치 율법을 행하는 데 있어서 치우치지 마라 니 율법책을 너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해라 그래요.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가 뭐냐면 그 하나님을 그래서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면은 사랑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이 신명기 30장 20절만 보겠습니다.
신명기 30장 20절 보면요. 20 16절에도 나오는데요.
207 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이래 나오죠.

16절에도 보면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러니까 내가 오늘 오늘 내가 오늘 내게 명령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벽들을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여호와를 사랑하라 해서 그것을 듣고 지키고 그것을 너희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는 그 삶을 향해서 계속해서 나아가고 거기서도 떠나지 않고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너희의 삶이 자우로나 우로나 흐트러짐이 없이 치우치지 않게 흐트러짐이 없이 하라는 겁니다.
네 그래서 우리가 어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데 이 강하고 담대한 믿음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되는 믿음입니다.
특별한 믿음이 아니에요. 마땅히 가져야 되는 믿음인데 그 믿음의 어떤 우리 수준에 그래서 우리가 머물고 이탈하지 않으려면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 나아가고 그 말씀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신앙 속에 우리가 잘 붙들려 있어야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아멘 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여호수아 말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이 말씀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들려주는 말씀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도 영적 전투가 우리 삶 속에 놓여져 있고 우리가 이 땅의 악의 구조 속에 또 우리의 부패성을 날마다 쳐서 복종시키고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그 삶이 우리 가운데도 동일하게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영적 전투 가운데서 승리코자 할 때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승리주신 하나님이시고 그 승리 가운데로 우리를 참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로 나아갈 때 주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고 그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담대한 마음으로 또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기를 원하시고, 그 믿음에 순종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약속하셨던 그 복에 참여케 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 저희가 우리 주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또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모든 은혜와 복들 가운데 우리가 나아가고자 할 때 주님 우리에게도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게 해 주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