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주님을 사모하는 신앙 -사무엘상 7장 1-2절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6. 23. 05:28

박주동 목사

 

 

260621말씀 주님을 사모하는 신앙 -사무엘상 7장 1-2절 ...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 상 7장 1절 2절 말씀입니다.
사무엘 상 7장 1절에 2절까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주님께서 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주님을 사모하는 신앙입니다. 말씀 사무엘 상 7장 1절 2절 말씀인데요.

7장 1절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하는 이런 신앙적 모습이 이스라엘 속에 잘 드러났어야 되는데 이전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게 되면은 이 신앙과 거리가 많이 멀었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를 여호수아 이후에 보내게 되는데 한 350년 정도 보내게 되죠.
그래서 우리가 사사기서를 이렇게 쭉 읽어보면요.
사사들이 활동하는 그 시간이 이렇게 조금씩 전체적으로 짧아지는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활동했던 사사들은 이스라엘 전체적으로 미쳤던 어떤 영적인 리더십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제 후대로 내려갈수록 사사들의 어떤 영적 리더십이 점점 더 이렇게 좀 약해져 가는 그들의 어떤 면에서는 사사로서 통치하는 기간이 짧아져 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결국 어떤 모습이 나타나냐면은 계속해서 영적으로 이렇게 전체적으로 쇠락해 가는 거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이렇게 쇠락해 가는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서 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속에 계속해서 갱신 회개의 역사를 이루셨고 그래서 한동안 이제 사 사사를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어느 정도 이렇게 신앙을 유지하다가 사사가 이제 돌아가시고 또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스라엘이 또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점점점 떠나가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요.

타락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또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서 그 영적 갱신을 이루시고 하는 그것이 사사에서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점점 세월이 가면서 지금 이 사무엘서에 말씀의 배경이 되는 이제 우리가 사람을 엘리 제사장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는데 엘리 제사장이 사사로서 한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데요.
그때는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사사기 전체를 볼 때도 가장 쇠악했던 그런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 대사장의 아들이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명의 이제 제사장이 있었는데 당시에 엘리 대제사장의 나이가 98세니까요.
아들들도 상당히 이제 나이가 있었겠죠. 상당히 이스라엘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제사장으로서 하지 말아야 되는 그런 하나님의 제사와 관련해서 범하는 악행들을 이렇게 우리가 사무엘서 앞부분에서 확인해 보면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신앙이 어떠했을까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냐면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투를 이렇게 벌이게 되는데 블레셋과 전투할 때 이들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언약궤를 가지고 전투하러 나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궤를 가지고 전투하러 나가는 그 모습은 그냥 겉으로만 딱 보면은요.
굉장히 신앙적인 모습이고 그들이 하나님을 잘 의지하고 있는 모습같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엘리 시대 때에 블레셋과 두 번의 큰 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이스라엘은 에벤에셀의 진을 치고 또 블레셋은 아백이라는 곳에 진을 쳤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보면 갈릴리 호수에서 저 사이까지 가운데 이렇게 요단강이 흘러가지 않습니까?
한 가운데 정도를 중심으로 해서 서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쪽 지중해 쪽에 조금 더 가까운 서쪽에서 전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 이스라엘이 전투에서 패해요.

그래서 4천 명이 사망하게 되는데 그때 이스라엘이 폐인을 조사하면서 나름대로 그들이 살피면서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느냐면은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의지해야 되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실로에 있는 언약교회를 가지고 와서 전투에 나가자 이렇게 전쟁의 어떤 전략을 그렇게 구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때의 이스라엘 모습을 보면은 겉으로 볼 때는 신앙적인 결단같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전쟁에서 패하면은 전략을 다시 어떻게 짤까 이런 부분들 그렇죠 군사를 다시 어떻게 운용할까 하는 쪽으로 이들이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신로에 있는 언약궤를 가지고 와서 과거에 우리 지난주에 살폈던 그렇죠 이스라엘이 레고 성을 공략할 때 언약교회를 앞에 세우고 이렇게 갔던 그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 역사적 교훈을 다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역사도 이렇게 돌아보게 되고 또 과거에 하나님께서 결국 이스라엘의 군대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을 나름대로 기억하면서 언약궤를 가지고 두 번째 전투에 나가게 되는데 겉으로 볼 때 그 신앙적인 모습 같은데 나중에 알게 돼요.
뭘 알게 되냐면 그 언약궤를 들고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대패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4천 명이 죽어요. 근데 두 번째 전투에서는 언약계까지 나아간 그 언약궤를 제사장 콤니와 비누아스가 언약궤를 또 지키면서 같이 전쟁에 참여하거든요.
대군이 참여해서 전쟁을 하게 되는데 패해서 이스라엘이면 얼마가 죽느냐 하면요.
3만 명이 죽어요. 그러니까 그 전쟁에서 패하면서 이제 그 전쟁에 있었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엘리에게 달려와서 그 보고하는 전쟁 상황을 보고하는 장면이 4장에 보면 나오거든요.

그거 보면은 이제 엘리가 이렇게 언약궤가 전쟁에 이렇게 나간 그 상황에서 뭔가 마음에서 편안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약간 걱정하는 어떤 면에서는 떨고 있는 그런 모습 저녁에서 혹시 지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우려했던 일이 이제 발생하는 거죠. 소식을 딱 들었을 때 그리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고 너희 아니 아이들도 죽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도 빼앗겠습니다.
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야기할 때 그때 그 엘리가 충격을 받고 이게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져서 죽어요.
그때 보면은 엘리가 연세도 많고 또 몸이 비대해서 그렇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를 이렇게 보면은 뭘 보게 되냐면은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아주 독특한 나라라고 이제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예요.

함께 하는 정도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것이 그냥 어떤 상징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왕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하시는 것을 우리는 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애굽으로부터 모세를 중심으로 해서 출애굽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왕이신 하나님이 그 왕적 권능을 권위와 권능을 행사하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내가 왕이다 내가 너희를 다스린다 하는 것을 보여주셨는데요.
이스라엘은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통치에 잘 반응하고 있는 때에는요.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전쟁의 주체가 될 때는요.
절대로 지질 않아요. 군사력하고 이런 거 하고 아무 상관없이 이스라엘은 승리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런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특히 블레셋은요.

사사 시대 때부터 또 그 이전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에게는 아주 그냥 철천지 원소 같아요.
철천지 원소 그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사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반드시 무찔러야 되는 그런 전쟁이어야 되는데 이스라엘이 심지어는 뭐냐 하면 과거처럼 언약 계획까지 가지고서 나아갔는데도 전쟁에서 패한다는 거죠.
그것은 뭘 말하냐면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싸우지 않았다는 거죠.
이스라엘이 뭔가 이렇게 전쟁하다가 잘못해서 아니면은 블레셋이 너무 강해서 실제로 이제 사무엘서 4장을 보면요.
이렇게 그 개가 쫙 이렇게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성을 질렀던 것 같아요.
우와 하면서 우리 이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승리자가 되어 주실 것이다.
그 어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걸 보고 마음이 확 위축돼요.
처음에는 떨어요.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 그냥 우리가 이렇게 싸우다가 그러면 죽자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싸움에서 대장부답게 전쟁하자 하면서 갑자기 이스라엘 블레셋이 더 용감해져가지고요.
전쟁 하게 되는데 이스라엘이 대패하게 되는 거죠.
그 겉으로 드러난 것은 그런 블레셋의 뛰어난 어떤 이제 전투죠.
그것 때문에 패한 것 같은데 이제 우리가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요.
하나님이 결코 약해서 전쟁에서 패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후에 잘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전쟁에서는 철저하게 이스라엘이 패했어요.
그래서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마치 철저하게 패하신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세요.
그것을 사실은 하나님이 뭐냐 그 수모이거든요. 블레셋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패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수모를 당하는 수치와 수모를 당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을 그대로 이렇게 사실 당하는 겁니다.

당하면서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패하기까지 그냥 내버려 두시고 기다리신 하나님이세요.
그 이제 모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게 되는데 어쨌든 엘리가 아니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형편없었는가 하는 것을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이 그 사건입니다.
언약계까지 들고 나갔는데도 전쟁에서 패한 그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뭔가 블레셋이 아니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뭔가 할 말이 있으신 거예요.
네 그 많은 장정이 죽으면요. 그 가족들 그렇죠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에 결국은 모든 지파에서 병사들이 소집되기 때문에 이제 이스라엘 전체가 사실 슬픔에 빠지거든요.

굉장히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그런 상황이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은 발생하게 되고 또 그 이후에 어떤 이어질 수 있는 전쟁도 예상하면서 그들은 정말 두려움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는 슬픔과 그런 상황에 떨어지게 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어져 가는 그 이스라엘을 그냥 내버려 두셨다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뭔가 할 말이 있으신 거고 하나님께서 연약해서 패하지 않고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도 만약에 패했다면 그렇죠.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고자 했다는 거죠.
그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역사를 조금 더 살펴보게 되면 그것이 정말 그런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있죠.
뭘 확인할 수 있냐 하면은 블레셋이 언약궤를 이제 전리품으로 삼고 그것을 아스도시라는 곳으로 가지고 가서 다원 신전의 그 앞에 다원 신전 그렇죠.
다원 신 앞에 은약계를 딱 갖다 넣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제 우리 애가 믿는 다원이 신이 이스라엘이 믿는 그 신을 이렇게 이겼습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의 신을 우리가 우리의 믿는 신에게 바칩니다 하고 탁 하는 그거예요.
이것도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거죠. 하나님이 다원시 그 이렇게 위에 웅장하게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 앞에 궤짝이 이렇게 놓여져 있는 그러면 정말 초라하거든요.
자기들 믿는 신은 대단하고 그 어떤 하나님 수치에 떨어지는 장면이거든요.
그때만 해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게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뒀는데 그다음 날 일어나 보니까 다온 신이 이렇게 쓰러져 있어요.
머리를 땅에 이렇게 대고 그게 무슨 모습과 비슷합니까?
언약궤에 이렇게 엎드려서 절하는 모습이에요. 그 신전의 신상이 그냥 넘어지지는 않았겠죠 그렇죠 네 사람이 보통은 이렇게 밀고 넘어뜨리려고 해도 넘어지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설치를 안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신상이 쓰러져서 언약교회에 이렇게 마치 저하고 있는 그 모습 사실 대단히 놀라운 모습이고 그 광경을 블레셋의 이제 사람들이 보게 됩니다.
방백들이 보게 됐겠죠. 그러면은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파악을 했으면 참 좋았겠죠.
이게 지금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언약궤가 자칫하면은 어 우리에게 큰 어떤 재앙이 될 수 있겠다 하고 만약에 빨리 눈치 챘으면요.
언약궤를 다시 돌려준다든지 했을 텐데 그렇게 상상하기 좀 어렵죠.
그래서 그냥 다시 어떻게 하다가 넘어졌는가 보다 해서 다시 세워놓는데 그다음 날 다시 보니까 이제는 다온이 목이 이렇게 동강 나고요.
손가락 손목이 동강 난 상태로 탁 쓰러져 있는 거예요.
몸둥이하고 이게 머리와 손이 다 분리되어 있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 머리와 손이 어디에 있었다고 이렇게 기록되고 있냐 하면요.
문지방에 이렇게 있었다 그게 문지방에 이렇게 모여 있었다고 표현이 되어 있어요.
그게 예사로운 표현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그들은 그 문지방에는요. 이렇게 여러 신들이 사는 곳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 문지방은 그러니까 다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면은 그 문지방에 마치 그 구원 목이 달리고 팔이 동강 타니까 구원을 요청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뒹굴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그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다고는 그냥 무력화된 상태로 그렇게 있는 거예요.
그리고 손과 이렇게 머리가 잘렸다고 하는 것은 그 다온의 어떤 지혜와 그 소문은 힘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그 괴에 의해서 무력화됐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하냐면 블레셋 지역에 독한 종기가 발생하면서 블레셋의 큰 말하자면 이제 애통함이 일어나게 돼요.
그 종기가 한 곳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막 이제 저녁에 일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가도에 있던 언약교회를 아스토스에 있는 언약교회를 여기 두면 안 되겠다 해서 가도로 옮겼다가 나중에 에그론이라는 곳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의 주요 도시 5개 중에 3개의 도시를 거쳐 가면서 언약궤를 옮기는데 그 해결이 안 되고 블레셋 전체의 독종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거든요.
그게 뭘 보여주냐 하면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안 도와주셔서 졌구나 그거 이제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다원신보다 약해서 패한 것은 아니다 하는 것도 확인해야 되죠.
그럼 하나님이 왜 우리를 안 도와주셨을까 왜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전쟁에서 패하게 하시고 그냥 혼자 가가지고 그렇죠 혼자니까 얼마나 연약해요 전력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하나님과 함께 싸울 군대도 없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혼자 가서 그 블레셋을 다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계시거든요.
그야말로 대승을 지금 하나님이 계속 그래서 거두고 계신 거예요.
전쟁에서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때는 왜 우리와 함께할 때는 안 하시고 혼자 가셔가지고 저렇게 하시나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 생각을 해야 되죠.

우리가 뭔가 하나님께 잘못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것을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보면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20년이 지난 후에 그 전쟁 이후에 20년이 지난 후에 정신을 차리는 그 모습을 나타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그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를 못하는 그 이스라엘의 모습을 우리가 이 사무엘서 앞부분에서 잘 확인할 수 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가 이런 모습이 나타날 때가 많아요.
빨리 빨리 깨달으면 너무 좋은데요. 생각보다 잘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어떤 여러 가지 이제 이슈들 그 환경들 이런 데 우리가 매몰되어져서 그곳에서 뭔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원인을 찾으려고 계속 하면서 많은 시간들을 낭비하는 경우가 우리가 많거든요.
근데 항상 뭐냐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건이 생길 때 문제가 발생하고 할 때 그렇죠.

항상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빨리 생각하는 그런 습관을 연습하고 숙련되어져야 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항상 생각하는 우리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고 우리 교회도 그렇고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실제 더 넓게는 우리 국가까지 그렇죠.
이 세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왜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가까지도 생각하는 어떤 그런 태도가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해 보면요. 항상 답이 있어요. 잘 모르면 이제 기도해야 되는데요.
기도하고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뜻이 무엇인지를 항상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머리털 하나도 다 세시는 분이세요.
우리의 삶에 이렇게 우리는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어쩌다 보니까 이런 말을 하고 싶거든요.
말을 안 해도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냥 살다 보니까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래요.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는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없습니다.
우연히 없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그 뜻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작정 안에 있는 거거든요.
작정과 그 섭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점점 더 선명하게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뭔지를 알면서 순종하는 어떤 대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이제 그런 길도 갖게 되는 건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특별한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지 우리가 이제 이 사건을 통해서 확인하냐면요.
하나님께서 전쟁에 패해서 이제 블레세로 간 것은 어떤 국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냐 하면요.
뺏기기는 이스라엘이 뺏겼는데 실제로 그 블레셋으로 가신 그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가기 싫으 가면 안 된다든지 가지 않으려고 하신다면 안 갈 수 있죠.
누가 하나님을 데리고 갈 수 있겠어요? 못 갑니다.

못 가요. 그런데 거기에 갔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냅두고요.
가신 거예요. 그냥 이스라엘한테 말하자면 이제 너 빠이빠이 하는 거예요.
난 더 이상 너희들하고 같이 살기 싫다 함께 하기 싫다.
너희들 다 살기도 싫다 그거예요. 그러면서 가시는 장면이 그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한 블레셋에 한 7개월 정도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7개월이면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요. 느낌은 어떤 느낌이냐면 이제 하나님은 안 돌아오시는가 보다 언약궤가 안 돌아오는 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 돌아오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긴 시간입니다.
우리 이제 여기서 예배드린 지 한 6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요.
한 6년은 지난 것 같아요. 막 막 오랫동안 제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7개월이고 그런 시간이거든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겠어요?
간절하게 기다리면 6개월이 6년 7년 10년 60년이 될 수도 있어요.
심리적으로는요.

그런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하나님이 안 돌아오 오시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계속해서 나는 너희들과 함께하기 싫다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장면이에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뭐가 없냐면요. 그 언약궤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하나님을 다시 모시고 올 수 있는 힘이 하나도 없어요.
이스라엘은 다시 그 블레셋을 전쟁에서 못 지르고 언약궤를 다시 빼앗아 와야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거죠.
특히나 그 이제 홉니와 비나와서 죽고 대제사장이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리더십이 붕괴된 거 아닙니까?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아마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 언약궤를 빼앗겼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그들이 뭔가 원인을 분석하면서 진단을 하려고 했겠죠.
제대로 진단을 못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잘못했다.
회개해야 된다 하고 막 거기서 회개했으면 하나님이 제가 볼 때는 금방 돌아오셨을 것 같아요.
그 하나님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를 했는데 막 뜸을 들인다든지 그런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이 우리가 잘못할 때는 대단히 오래 참으세요.
오래 참 오래오래 참다가 참는 분이신데 우리가 회개를 하면요.
오래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고 바로 오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참 자비로우신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회개했으면 바로 왔을 텐데 이스라엘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있어야 될 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20년이라는 세월이 걸리는데 20년 지났어도 아니죠.
20년 정도 지나서 이제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많이 돌아오시는데 실제로 이스라엘 있어야 될 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얼마나 걸리냐 하면요.
다윗 시대에 돌아오시기 때문에 다윗의 그 준비한 장막에 돌아올 때까지 그때 걸린 시간이 적게 잡아도 70년입니다.
좀 길게 잡으면 90년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언약에 빼앗기고 이스라엘이 아마 그 문제를 진단하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다투고 그랬을 것 같아요.
원인을 다른 데 탓하고 제사장에게 탓하고 막 그랬을 수 있습니다.
어 홉니와 비나와서 죽은 거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제사장들이 잘못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제사장들은 아론의 계열이잖아요.
아론의 계열에 탓하고 또 전쟁을 전쟁에 나갔던 장군들이나 군사들을 탓하기도 하고 그랬을 수 있는데 어쨌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보여야 될 어떤 바른 반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전체적인 정황 속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그 블레셋으로 가서 대승을 거두시고 그리고 거기에 계속 계시는 것이 아니고 딱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는데 하나님이 스스로 돌아오십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돌아오세요. 그래서 어떻게 돌아오시냐면은 그 개가 이제 동기가 나니까 저 에그론으로 옮기는데요.
그 에그론에서 방백들이 모여가지고 회의를 합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여기 두어서는 안 되겠다 해서 복수자들 이런 사람 제사장들 그들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을 불러가지고요.
문인 자문을 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냐 하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너희가 속건죄를 들여서 보상해야 된다는 거예요.
속건제는 주로 뭔가 피해를 보상할 때 또 죄를 죄 문제를 해결할 때와 피해를 보상하려고 할 때 속건제를 드리게 되는데 우리가 속근죄를 들여서 그들에게 보상을 해야 된다.
이것은 해서 보상의 내용물이 뭐냐 하면 금지 이렇게 금으로 만든 형상 그다음에 독종의 형상을 띠는 금괴죠.
그러니까 그렇게 만들어서 그 금괴들을 어떤 상자에 실어서 이스라엘로 이렇게 보내주는 거예요.
보낼 때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언약궤를 새 수로에 실어서 이스라엘로 보내게 되는데 어디로 보내느냐 하면은 베스메스라는 곳으로 딱 보내게 되죠.
그래서 이제 그렇게 하자고 결의를 하고 그들이 보내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하게 되냐 하면요.

이것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일어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일어난 일인지 우리가 한번 점검해 보자 한번 따져보자 해서 머리를 써요.
무슨 머리를 씁니까? 그새 수레를 만들고 그 수레를 소가 끌게 하는데 그 소를 어떤 소가 끌게 합니까?
갓 새끼를 낳은 그렇죠 새끼를 낳아서 아기 소에게 계속해서 젖을 먹이면서 아기 소를 이렇게 키워야 되는 엄마 소 그 두 마리를 수레를 끌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이제 왜 그렇게 하냐면은 아기 송아지를 젖을 먹여야 되는 엄마 소가 그 아기를 소를 떠나서 이렇게 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만약에 수레를 끌게 하더라도 그 생각이 나가지고 그렇죠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든지 만약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가 있는데 어 한 마리를 하지 않고 두 마리를 한다는 거죠.
한 마리만 해도 끊는 데는 제가 볼 때 충분해요. 뭐 개가 얼마나 큰 개가 아니고 교회가 아니거든요.

사람이 이렇게 4명 정도가 다 될 수 있는 그 정도의 크기인데 그 금게하고 해서 그냥 한 마리 정도 끌고 가면 되는데 두 마리를 사용하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블레 두 마리가 이렇게 딴 데로 가지 않고 갈 확률은 한 마리보다 훨씬 더 적은 거죠.
제대로 갈 확률이 낮은 거 아닙니까? 그래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한 거예요.
그 암소가 소주를 끌고 자기들이 가려고 하는 베스메스라는 이스라엘 땅으로 가게 되는데 그 땅으로 갈 가능성이 거의 없게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가는지를 지켜보면서 만약에 그대로 간다면 그것은 이 자기들이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한 게 맞다 이렇게 자기들 나름대로 결론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이제 최종적으로 이 너희를 진멸한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선포하는 어떤 과정 속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만든 그 틀 속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 반응해 주심으로써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땅을 진멸한 자는 사람 누는 나다 하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해서 선포하시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암소가 좌로 우르로 치우치지 않고 곧장 베스메스로 가거든요.
그것을 통해서 명확하게 이제 확인이 되고 그곳에서 이게 말하자면 베스메스로 온 사건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다가 이제 하나님이 당당하게 승리하시고 나서 돌아오시는 장면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볼 때는 그런 거죠. 그곳에 가서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스스로 다시 이렇게 돌아오는 사건이고 이스라엘 편에서는 뭐냐 하면 그 사건을 통해서 이제 다시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오시는 분이구나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그냥 사실 그래요.
블레셋에 계시나 이스라엘에 계시나 그렇죠.

하나님이 그곳에 그들을 하나님 되어 주시는 데는 아무런 사실 문제가 없습니다.
블레셋에 가서 거기서 하나님 노릇 하시면 돼요.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 삼으셔도 돼요.
그것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세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고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래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세요. 그 들과 약속 맺은 하나님 그래서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약속을 여전히 진행 지키신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스스로 돌아오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더 보여주시는 거예요.
나는 너희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돌아오고 돌아와서는 너희의 내가 계속해서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 하는 것이 그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의미거든요.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사실은 잘 확인하고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그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베풀어주신 그 큰 구원과 은혜를 다시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감격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어야 되는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못 돌아오는 거 이제 그것은 어떤 측면이 있냐면은 회계라고 하는 것이 회계라고 하는 것이 어 이렇게 쉬운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러니까 그렇게 은혜를 받아도 회개가 제대로 일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고요.
그리고 어떤 것을 우리가 역사 속에서 알게 되냐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조금 멀어지면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힘이 있어서 금방금방 또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과 같은 사람이 우리 아브라함과 같은 잘못하잖아요.
그런데도 금방 에게 돌아오세요.

왜 돌아오냐 하면 아직까지 그 하나님의 은혜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이제 밑천 삼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인데요.
그거를 다 쓸 때까지 이렇게 멀리 떠나면 안 돼요. 그게 막 다 쓸 때까지 그렇죠.
소진될 때까지 이렇게 떠나면 떠난 사람들이 지금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 등 돌리고 살았던 세월이 너무 길어서 그 영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그 상황을 파악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영적 미친이 없는 겁니다.
말씀이 있었으면 금방 또 돌아올 수 있는데 말씀이오 말씀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하나님의 은혜가 다시 이렇게 회복되고 반복되는 일이 있었으면 돌아오기 좀 더 쉬웠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이렇게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떠나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 자기가 얼마 정도 지금 도망가고 있는지 대충 파악이 되지 않습니까?
파악이 돼요. 네 한 주 지나면 원래는 이번 주는 너무 도망갔구나 파악이 저도 파악이 딱 되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내가 더 가면 죽는다. 여기서 더 가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 긴장 딱 하고 다시 이제 막 억지로라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고 또 기도하려고 하고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회복이 일어나고 하나님께로 좀 더 이렇게 가까이 나아가게 되면 그때 우리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냐면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고 하나님께로 점점 더 가까이 가게 되면 갈수록 점점 더 이제 깊이 회개하게 되죠.
처음에는 조금 이만큼 잘못한 줄 알고 돌아와요. 이만큼 잘못한 줄 알아.
근데 조금 더 가까이 오면 아 내가 잘못이 한 이만큼이구나 더 가까이 오면 내가 잘못이 막 이만큼 죽을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요.
그래서 실제로는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실제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힘도 약하고 가능성도 대단히 희박해진다라고 하는 것도 생각하셔야 되고요.
또 어떤 점이 있냐면 우리 하나님은요. 이렇게 멀리 달아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냥 두시지 않아요. 그래서 보면 어떤 분이냐면요.
이렇게 저 정도 가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그때가 있어요.
우리가 볼 때도 내가 이 정도까지 가서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게 쉽지 않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를 성경에서는 뭐냐 하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이제 광팍하다고 그러죠.
완고하다 그러고 완악하다고 그럽니다. 그런 표현을 써서 그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있는 상태가 되게 되면은 이게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이제 어려운지 우리 스스로도 아는데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두시지 않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찾아서 또 오세요.

하나님이 가만히 계실 때도 있는 것 계시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가만히 계시지 않는데 우리가 볼 때는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 같을 때도 있고 또 때로는 하나님이 본인은 사실은 도망가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면 자기가 이렇게 도망가면서 왜 하나님이 자꾸 나를 떠나서 가실까 이렇게 생각해요.
반대로 자기가 도망가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고 자꾸 떠나시는 것 같이 느껴져요.
그리고 어떤 때는 보면 하나님이 막 나를 쫓아오셔가지고 막 붙드는 것 같을 때가 또 있습니다.
그때 그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를 우리가 느끼게 되는데 우리 성령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면 강권하시는 하나님이세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 이런 말을 쓰지 않습니까?
그 인도하는 말을 왜 쓰냐 하면 원래 쓸 필요가 없죠.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실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성령이 가실 때 우리는 따라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성령이 인도하실 때 아니 성령이 왜 우리 인도하신다고 하는 말을 자꾸 쓰냐 하면요.
우리가 안 따라가서 그래요. 양떼들이 안 따라오니까 양을 인도하기 위해서 목자가 이렇게 속도도 조절하고 그러는 거거든요.
속도도 조절하고 불러요. 이렇게 뒤에서 막 등 떠밀고 막 목을 잡고 당기고 그렇게 하지는 않으세요?
하나님 물론 그렇게 하실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안 오면 기다렸다가 그렇게 불러요.
이름을 탁 부르죠. 그것이 뭐냐 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은혜를 베푸시는 일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그렇게 은혜를 계속해서 불러주시면서 우리가 주님의 뒤를 따라가도록 한다 하는 그런 점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말을 써놓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도하심이라는 말 속에는 어떤 뜻이 있냐면은 이 사람을 여기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이렇게 옮긴다 하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성령의 관건적 역사가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그 말 속에 포함돼 있는데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그런 이제 하나님이신 이기까 이제 우리가 이 사무엘서에서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제 조금 더 뭘 알 수 있냐면은 이제 방백들이 베세메스라는 곳에 와서 제사를 제 이제 지내요.
그러니까 뭐 석권제를 지내는 건 아니고 그 당시 그곳에 있던 제사장들이 속죄제와 화목제를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됩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데 그들이 가지고 온 그 수레를 이제 분해해서 그것을 땔감으로 쓰고 재단을 급히 아마 만들어서 그 두 암소를 이제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소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이거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요. 이게 저는 이제 시골에서 이렇게 닭도 키워보고 이렇게 염소 토끼도 키워보고 그랬고 어릴 때 이제 개도 키우고 그랬는데요.

어릴 때 우리 집에 이제 그때 복실인가 기억났는데 어느 날 왔는데 한참 이제 이제 컸어요.
컸는데 없는 거예요. 아 그래 없는데 없어 가지고 막 찾아보니까 우리 얘가 이게 화목제물처럼 돼 있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이제 우리 어머님이 그거를 맛있게 있잖아 걔를 해체를 해가지고 아주 맛있게 이렇게 국을 끓였어요.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근데 그거를 안 먹었어요.
제가 그 의리가 있어가지고 우리 이제 의리가 있어 가지고 내가 이걸 먹을 수는 없다 해가지고 국이 다 없어질 때까지 안 먹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우리 가족에서 제가 그렇게 의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근데 그 가슴이 그렇게 아프거든요. 그래 엄마 소 두 마리가 이게 죽은 닭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아픈데 이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그 마음을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 두 손은 어떤 역할을 하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는가 하는 것을 너희가 느껴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못했을 때 자기가 키우던 짐승을 데리고 가 가지고 제사장 앞에 가서 거기 개들 머리에 안수하고 그 개들이 이렇게 죽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되거든요.
자기가 키우던 동물이 이렇게 자기 눈앞에서 죽어가는 피 흘리면서 죽어가는 그 모습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마음 아플까 하는 것을 우리가 이제 공감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마음 아픈 그 현장에 그들을 세우는 이유는 너희의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시게 했는가 하는 것을 너희도 느끼라고 그렇게 그렇게 하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두 이제 소를 잡고 하나님께 번제 드린 것까지는 너무나 잘했는데 거기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받으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블레셋 방백들이 자기 고향으로 다 돌아간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하냐면 베스메스에서 주민들이 언약교회를 이렇게 들여다보는 일이 발생하게 돼요.

그래서 언약궤를 들여다보면서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베세메스 사람들이 한 성경에 보면은 5만 70 이래 돼 있는데 그 5만 갈로 돼 있죠.
그게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갈로를 쳐놨는데 아마 잘못 기록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마을이 그렇게 큰 마을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한 70명 정도 죽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 70명도 대단히 큰 수거든요.
동네에서 그 시골 마을에 한 70명 죽어 봐요. 하루아침에 큰일이잖아요.
엄청난 큰일이에죠. 근데 그 베세메스라는 것이 어떤 말이냐 하면은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이 사는 제사장 마을이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땅 이렇게 분배할 때 레위인들은 그렇죠.
레위 지파 사람들은 땅을 분배하지 않고 여러 지파에 흩어져서 살도록 그렇게 하거든요.
그때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서 13개의 성읍을 줘요.
그 13개의 성읍 중에 하나가 베스메스입니다.

그러니까 베세메스는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이 사는 마을이기 때문에 그 마을이 아마 그렇게 특별하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되기 때문에 아마 베스엠에스로 그 수레를 보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까 에거론에서 베스엠에스가 가장 가깝거든요.
가까운데 아마 에그룸으로 옮길 때도 그것을 고려해서 갔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어쨌든 그 베세메스라는 동네가 그런 동네이기 때문에 언약궤가 왔을 때 제사장들에 의해서 잘 관리되었어야 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통제돼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들여다봤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지금 뭘 모르고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은 대부분 압니다. 심지어는 제사장들조차도 하나님의 교회를 막 성서에서 그 성물들을 옮길 때는요.
그 성물들을 만지면 안 돼요. 성물들을 이렇게 제사장들도 이렇게 그거를 천으로 덮어서 싸고요.

그리고 그 성물을 만지지 않고 그 석물을 이제 이동하는 때 또 담당하는 그 자손들이 있거든요.
고화 자손들이 그것을 이제 옮기게 돼요. 그러니까 제사장들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냐면 그 성물을 보지 말고 만지지도 마라 물론 이제 제사장들은 볼 수 있는 거죠.
근데 일반인들은 그 성물을 보게 되면 죽습니다. 그리고 만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어 그래서 아마 옮길 때 반드시 덮개를 덮어서 보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는데 어 언약궤 같은 경우에는 이제 더 그래야 되죠.
그렇죠 언약회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에 더 그래야 되는데 그리고 실제로 음악회 언약회 같은 경우는 그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가기 때문에 더 거룩하게 다루어져야 되는 게 당연한데 그들이 그 언약궤는 이렇게 뚜껑으로 이렇게 덮여져 있고 그 뚜껑을 시연자라고 그럽니다.
피 뿌리는 곳 그 뚜껑을 열어서 그걸 봤다는 거죠.

궁금해서 그게 그러면서 거기에서 이렇게 죽게 되는데 그 사건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 대제사장들조차도 그 하나님의 성물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다뤄야 되는지에 대해서 지식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하나 모세의 그 계명에서 말씀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그 사건이고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면이 또 있냐면 너희에게 내가 돌아오긴 돌아왔는데 돌아오면 하나님을 너희가 이제 막 대해도 되는가 아니다는 거죠.
블레셋도 하나님을 막 대해서는 안 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하나님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할 때는 항상 그 거룩함을 유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 예가 요구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그리고 그 사건 때문에 하나님이 그 괴를 기라야림이라는 곳에 그래서 아비 나답을 불러서 그 아비 나답이 교회를 자기 집에 가지고 가고요.
그곳에서 안치되고 엘리아사를 여기 보면은 엘리 아살이죠.
7장 1절에 보면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여호와의 괴를 지키게 했다 이렇게 표현돼 있습니다.
그 후로부터 20년 동안 그곳에 계속해서 계시게 되는데 어 그 사건은 이제 우연히 일어난 사건 같은데 어떤 또 측면이 있냐 하면은 그 사건은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갔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마땅히 다시 돌아왔어야 할 그 장소였던 곳이 실로였어요.
실로에서 언약교회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아마 전쟁하면서 신로가 파괴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실로 근처나 그렇죠 나중에 이제 노 땅에 제사장들이 사무엘 사무엘 시대 때에 그렇죠 이렇게 학살당하는 그런 사건도 있고 하는데 그런 어떤 다른 곳에 언약교회를 안치할 수도 있었는데 변방에 머물면서 아비나답의 한 개인의 집에 하나님이 머물렀다고 하는 것은 그 사건은 뭘 보여주냐 하면은 하나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돌아갈 마음은 없다는 거예요.
이스라엘로 오기는 왔는데 이스라엘의 품속으로 이렇게 가지는 않는 거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집에 나가셨다가요 집으로 들어오기 오셨어요?
오셨는데 가족들하고 말을 안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밥도 같이 안 먹고요.
말도 안 하고 그냥 조용하게 이렇게 그냥 자기 방에만 계시는 그런 모습하고 비슷합니다.
대화와 소통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아직까지 상해 있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해서 다 드러내 주게 됩니다.

그래서 그 세월이 20년이 지나게 되고 20년 세월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어떤 일이 발생했냐면은 세월이 흐르면서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는 그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이

잠깐만요. 미스바죠 미스바 7장 5절에 보면은 이제 미스바로 다 모여서 거기에서 사무엘을 중심으로 해서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니까 엘리 대제사장이 죽고 그 이후에 사무엘이 이제 그때는 어린 아이였었습니다.
한 5살이나 그랬을 텐데 그 어린 아이 사무엘이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크고 한 10살쯤 됐겠네요.
왜냐하면 20년 정도 지나 면서 나이가 한 30 정도 됐을 때 그 정도 됐을 때 이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도록 그렇게 하는데 어렸던 사무엘이 이제 성장하는 그 과정 속에서 아마 사무엘이 조금씩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말씀의 어떤 부흥이 같이 일어나고 신앙의 회복이 있었겠다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시대 때부터 사무엘이 본격적으로 이제 이 전쟁 이후에 그가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아 사무엘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많이 하나 되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을 중심으로 해서 이 미스바에서 큰 회개의 역사가 있게 되고 하나님이 이 때의 블레셋을 큰 우려를 사용해서 대파시키는 그런 장면이 뒤에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집회하고 있을 때 블레셋 군대가 사무엘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이 영적으로 하나 되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사전에 무력화시키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군을 파견해서 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큰 우레 그래서 큰 승리를 주시는 그 장면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하실 수 있는가 하는 그 한 예가 이 7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서 이제 한 번 살펴봤는데요.
이 사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교훈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이제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는 세월은 한 70년에서 80년 걸립니다.

80년 걸리는데 그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생각을 갖기 쉽냐 하면은 왜 하나님은 오셨는데 우리의 품속으로 우리와 교제하는 그 자리로 그렇죠.
함께 식사하는 그 식탁으로 오시지 않는가 왜 오시지 않을까 이렇게만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그 세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은 세월이 그렇게 길었고 그 오랜 세월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것을 얼마나 이렇게 주저했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얼마나 완고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 돌아가면 그 즉시로 그 관계를 회복하고 교제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그 관점이 이렇게 다시 바뀌는데 그리고 그 회복이 되는데 그 오랜 세월이 걸린다고 하는 것을 잘 보면서 우리가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항상 뭐냐 하면 하나님께 따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따질 건 하나도 없어요. 항상 없습니다.
항상 뭐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 이제 그것이 이제 회개죠.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된다고 하는 것이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는 최대한 빠르게 서둘러서 미루지 말고 돌아가야 된다고 하는, 그래서 우리가 돌아가면 하나님이 바로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요.
우리 삶 속에서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더 잘 회복하고자 한다면은 그 그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원인을 하나님께 찾지 않고요.

내가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서 서둘러 돌아가는 것에 있구나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나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실질적으로는 함께하시면서 손짓하시고 부르시고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도와가고 계시는 하나님이셨구나 하는 것도 잊어버리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사무엘서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엘리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해서 그들이 영적으로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도와가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저희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맺어 가실 때도 이와 같은 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신 줄 저희가 잘 아오니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탓하는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나곤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불신앙적인 모습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 주시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선하신 분이심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서둘러 돌아가는 그 회개의 모습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시고 우리가 그 큰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여서 우리 주님 앞으로 더 힘 있게 나아가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잘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