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좋은 교회란?(디모데전서 3장 14절부터 4장 8절)..... 조호영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5. 26. 19:01

 

 

20250525말씀

반갑습니다.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도 계실거 같아요 아 제가 처음 뵙는 분들이 계시니까 당연한 거죠.
사실은 이렇게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너무너무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잠깐 제가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 바로 이곳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순교자의 삶을 살기를 바라며 그 길을 걸어가고자 다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볼 때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정말로 의의 길을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 믿음의 길을 이 십자가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이 길을 걸어가는데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이 큰 능력이 되게 하시고 힘이 되게 하시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이는 그 길을 따라서 감사하며 기도하며 또 찬양하며 그렇게 잘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 시간에 우리가 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세웁니다.

우리의 부족한 것들, 어 우리의 잘못된 것들을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셔서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바로잡게 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삶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충성되게 성실하게 정직하게 잘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시고 주의 말씀을 잘 귀담아듣고 또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 밭에 깊이 심겨져서 우리의 삶의 영혼의 양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4절부터 4장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4절부터 신약 성경 339번입니다.

자 찾으셨나요? 예 그러면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을 13장 14절부터 4장 8절까지 같이 하나님의 말씀 읽겠습니다.
내가 속히 내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내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요 그렇지 않다. 하는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주셨느니라.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일 맞아서 외시감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함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내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내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형사의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의 약속이 은혜이다.
아멘 아멘 오늘 설교 제목이 좋은 교회라 입니다. 아마 이미 주보들을 미리 받아보셨었죠.
네 그래서 설교 제목을 알고 계셨을 거예요. 혹시 이 설교 제목 처음 보시고 어떤 생각이 혹시 드신 분이 계신가요?
아 오늘 목사님이 좋은 소 아니 좋은 교회란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시는데 좋은 교회는 이런 교회가 아닌가 이렇게 혹시 생각을 해보신 분이 있으신가 하는 거예요.

음 가끔 전도를 하시는 분들 보면 또 열심히 어떤 교회 봉사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우리 교회 오세요 우리 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이렇게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말을 하는 걸까요?
대개는 대개는 아마 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성도들의 교재가 충만한 교회 성도들이 사이 좋게 잘 모이기에 힘쓰고 또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또 서로 어려우면 잘 도와주고 뭐 이렇게 하면서 지내는 교회 또는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많은 교회 선교도 열심히 하는 교회 또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많이 받는 교회 뭐 대략 뭐 이런 의미를 담아서 우리 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당연히 좋은 교회에는 이런 모습들이 있어야 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오늘 이제 함께 나누려고 하는 좋은 교회의 모습은 어 물론 이제 그런 모습들도 포함을 하겠지만 오늘 저희가 성경을 읽었잖아요.

이 디모데전서 3장 14절부터 4장 8절 요 테두리 안에서 말하는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바울 사도께서 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쓰는 목적에 대해서 설명을 하세요.
그 목적이 뭐라고 그러죠? 3장 15절을 보시면 제가 나눠드린 프린트물 있죠.
그걸 보시면서 같이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이 뭐라고요?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너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쓴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다음에 하나님의 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보충 설명합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다란 거예요. 그리고 그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다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그러니까 바울 사도께서 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쓰는 목적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교회는 지금 에베소 교회를 가리키는 거겠죠.
왜냐하면 디모데가 지금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거니까 에베소 교회라고 하는 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역자로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한 거라는 거죠.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울 사도께서 디모데에게 요구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그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행동 그게 뭘까 하는 거예요.
사실 그게 이제 중요하겠죠. 4장 6절 말씀이 그 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데 같이 읽습니다.
내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리라 우리 말로는 어떻게 돼 있냐면 좋은 일꾼이 되어 이렇게 돼 있죠.
이제 원래 원문은 그게 아니라 끊어지는 거예요.

좋은 일꾼이 되리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리라 그게 바울 사도께서 디모데에게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거란 거예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 근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요?
그 앞에 보니까 내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 먼저 여기서 깨우친다는 말은 헬라어로 슈퍼 티데이에요.
가르친다는 뜻이에요. 그냥 쉽게 말하면 이것으로 형제를 가르치면 그런 뜻이에요.
중요한 건 이것이 뭐냐 그거겠죠. 우리 말 성경에서는 이것으로 이렇게 단수 이것 단수로 돼 있는데 원래는 이거 들 복수예요.
근데 우리 말에서는 사실 당수 복수를 잘 구별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굳이 구별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안 되거든요.
근데 영어나 이런 데는 이제 단복수가 아주 명확하게 구분이 되잖아요.
우리 말에서는 별로 잘 구분이 안 되는데 그래서 뭐 문제가 안 될 때도 있지만 사실은 구분을 해주는 게 좋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바로 이런 경우인데 왜냐하면 이것으로라고 우리가 읽을 때와 이것 들로라고 읽을 때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죠.
이것 그러면 단수 뭐 하나를 가리키나 보다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들 그러면 아 복수의 가르침을 가리키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것들이에요. 이것들 그러니까 여러 가지를 언급을 하고 있다는 거죠.
제가 시간이 없으니까 일일이 다 설명드릴 수는 없고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3장 16절 말씀의 내용이에요.
3장 16절을 보시면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요. 그렇지 않다 느니 없도다라고 감탄 감탄을 하신 후에 바울 사도께서는 이 경건의 비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프린트몰 보시면 크게 6가지가 나와 있어요. 겸건의 비밀 하나님이 교위에게 주신 경건의 비밀 첫째가 뭐예요?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거예요. 둘째는요.
영 성령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셋째는요. 천사들에게 보이셨다.

넷째는요. 만국에서 전파되셨다. 다섯 번째는요.
세상에서 믿는 바 되셨다. 여섯 번째는요. 영광 가운데 하늘로 올리오셨다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이 6가지 경건의 비밀 바로 이것이 이것들 중 하나라는 거예요.
근데 사실 이것들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겠죠.
왜요? 이제는 다 드러난 거예요. 구약에서는 이것이 이것들이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한테는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한테는 이게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에요.
왜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비밀들이 다 다 드러났잖아요.
여기 보시면 그가 누구겠어요? 딱 읽어봐도 우리 예수님을 가리키는구나라고 하는 걸 알 수 있잖아요.
쉽게 말하면 예수님과 관련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입을 모아서 함께 고백해야 될 아주 핵심적인 핵심적인 믿음의 내용 그게 여섯 가지를 지금 말한다는 거예요.

바로 이 믿음의 내용들 이것들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되고 반드시 자기의 입술로 고백 해야 되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바로 이 믿음의 내용들, 예수님과 관련된 이 믿음의 내용들을 반드시 바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가르쳐야 어떤 일꾼이라는 거예요.
좋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거예요.
물론 이 6가지 유에도 사실은 디모데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 더 있을 겁니다.
그것들을 배제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6가지 핵심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은 이것들만 가르쳐야 된다는 게 아니라 이것들을 반드시 포함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도들이 알아야 될 가르침들은 목회자로서 사역자로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네가 잘 반드시 가르쳐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목회자에게는 기독교회 복음 진리와 관련해서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진리의 말씀들, 바울 사도의 표현을 빌리면 뭐예요?
경건의 비밀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 사도께서는 좋은 일꾼으로서 디모데가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예수님에 대한 6가지 가르침을 먼저 언급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6가지 바른 가르침과 대비해서 잘못된 가르침을 이제 그다음에 언급을 해요.
그게 4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먼저 1절을 보시면 바울 사도께서는 이 잘못된 가르침이 어디서 오는 건지를 이야기를 합니다.
4장 1절을 같이 읽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워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그러니까 잘못된 가르침은 그 출처가 어디예요?
귀신이라는 거예요. 미혹하는 연 그리고 그다음에 3절에 보시면 구체적으로 그럼 잘못된 가르침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합니다.
첫째가 뭐예요?

혼인은 하지 말랍니다. 혼인하면 안 돼 이렇게 말한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요. 어떤 음식들은 먹으면 안 돼. 이 두 가지 잘못된 가르침이 미혹하는 영의 가르침, 귀신의 가르침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이제 마찬가지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지금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르쳐줘서는 안 되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이 두 가지를 언급하는 것은 이 안에 이 안에 다른 모든 잘못된 가르침을 포함해서 언급을 하는 거죠.
딱 두 가지만 그러면 따르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는 게 아니고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언급을 하는 거니까 다른 잘못된 가르침이 있다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그런 가르침들이 가르쳐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 사도에서는 디모데에게 네가 좋은 일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를 하라는 거예요.
첫째 그게 뭐예요? 바른 가르침을 가르치라는 거죠.
그 대표적인 것으로 예수님과 관련돼서 여섯 가지 바른 가르침을 언급을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요.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걸로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공동체 안에 존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그 잘못된 가르침이 무엇인지도 성도들에게 가르쳐 줘야 되겠죠.
아 그러면 이게 잘못된 가르침이구나라고 하는 것을 성도들이 알고 그 가르침을 멀리하게 되겠죠.
그러니까 목회자는 반드시 바른 가르침이 무엇이고 잘못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두 가지는 하나다 이렇게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면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께서 디모데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그거예요.
바른 가르침을 가르쳐라 그리고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지 않도록 해라 그래서 하나님의 집인 이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이 진리의 공동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도록 충만하도록 해라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일꾼이 어떤 일꾼이에요? 좋은 일꾼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거예요.
너가 바로 그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 그리고 이 핵심 메시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단어가 하나 있어요.
경건이라는 단어입니다. 경건 경건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잖아요.
자 경건 그러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우리가 보통 어떤 사람을 향해서 아 저 권사님은 참 경건하신 분이야 저 장로님은 경건하고 저 목사님은 참 경건하신 목사님이야.
만약에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를 한다면 대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의미로 우리가 그렇게 경건하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대개는 아마 기도를 좀 많이 많이 하시고 또 인상도 좀 좋으시고 풍기는 이미지도 조금 나하고는 뭔가 좀 다르게 느껴지고 대개 이런 것들을 아마 떠올릴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경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대개는 뭘 보고서 사용하냐면 외적인 모습을 보고서 경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께서는 그런 의미로 이 경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조금 전에 보았던 3장 16절 말씀에서 뭐라고 제일 앞에 말하죠?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요 여기서 경건의 비밀 경건의 비밀이 뭐라고 그랬죠?
여섯 가지 예수님과 관련된 바른 가르침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경건의 비밀 이퀄 뭐냐 하면 여섯 가지 바른 가르침이에요.
무슨 뜻이겠어요?

적어도 바울 사도께서 지금 이 본문에서 말하는 경건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런 경건의 의미 어떤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서 거기서 느껴지는 이미지를 외적 행위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이 6가지의 바른 가르침을 아는 것 그걸 가르쳐서 뭐라고 그래요?
경건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것을 아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에요?
경건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는 적어도 이 본문에서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된 경건이란 바른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른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면서 경건하다 이렇게 말할 수 없어요.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열심히 봉사한다 해도 아무리 많은 사랑을 베푼다 해도 바른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경건한 사람 이렇게 우리가 어떤 말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의 기본 바탕에는 복음에 대한 바른 진리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전제하에 여러 가지 봉사들이 거기에 더해질 수 있는 거겠죠.
정말 그럴까요? 7절 말씀을 우리 다시 한 번 같이 보겠습니다.
4장 7절을 보시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연단하라 이렇게 말씀해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걸 그냥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거예요.
망령되고 허탈한 신화는 아까 앞에 말씀으로 하면 그게 뭐겠어요?
잘못된 가르침이죠.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그렇죠 그 구체적으로 뭘 가르치든 포인트는 뭐냐면 그게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거예요.
그 잘못된 가르침을 버리고 그럼 잘못된 가르침과 대비해서 경건은 뭐겠어요?
바른 가르침인 거죠. 그러니까 여기 경건은 앞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의 잘못된 가르침과 대비해서 사용하는 거기 때문에 이건 바른 가르침인 거예요.

이 바른 가르침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어떻게 해라 염단해라 훈련해라 그 말씀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훈련하라 그 말은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해라 그런 뜻으로 말씀하시는 게 아니에요.
물론 기도해야지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러나 여기서 경건 늘 훈련하라는 말은 사실은 기도와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에요.
바른 가르침을 알아가는 일에 힘써라 애써라. 최선을 다해서 바른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라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께서는 8절에서 뭐라고 말하냐면 경건이 범사에 유일하다는 거예요.
바른 가르침이 범사에 유익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다음에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안타깝게도 이 왜냐하면이 빠져 있어요.
그런데 원문에 이게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유익한 이유를 설명한다는 거예요.
8절을 같이 읽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바른 가르침을 통해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여기 말하는 내 생은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서 우리가 영원한 영원한 생명을 얻고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른 가르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라는 거예요.
역으로 말하면 경건 바른 가르침이 없으면 단순하게 말하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조금 정리를 해드리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은 어떤 사람일까요?
예배당 청소를 열심히 잘하는 사람일까요? 성가대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까요?
식당 공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까요? 물론 뭐 이런 분들도 다 좋은 일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걸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바울 사도께서 의미하는 그 좋은 일꾼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는 어떤 열심히 있는 활동들 활동들 이걸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좋은 일꾼은 말씀을 바르게 잘 가르치는 일꾼이에요.
그게 좋은 목사입니다. 그러면 성도들 편에서는요.
성도들 편에서 좋은 성도 좋은 일꾼은 어떤 성도겠어요?
말씀을 바르게 잘 태우는 성도가 좋은 일꾼인 거죠.
그게 좋은 성도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늘 설교 제목으로 돌아가셔서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잘 가르치는 좋은 일꾼으로서의 목사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잘 잘 배우려고 열심을 내는 좋은 일꾼인 성도들이 있는 교회 그 교회가 좋은 일꾼 아니겠어요 사실 바른 가르침은 단순히 좋은 교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가르침은 어떤 교회가 진짜 교회냐 참된 교회냐가 달려 있는 문제예요.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교회의 참된 표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첫 번째로 뭘 얘기했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것 그게 없으면 교회가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다음에 바르게 성려를 행하는 것이에요. 이 순서가 중요해요.
앞에 제일 먼저 뭐가 나오냐면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해야 된다.
그게 바르게 선포되지 않으면 아무리 매주 성례를 행한다 할지라도 그래서 사실 의미가 없는 거예요.

우리 성도님들은 설교가 뭐라고 생각을 하세요? 설교는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글로써 남겨주신 이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이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목사가 설교 시간에 해야 되는 일 그건 뭐겠어요?
성경을 잘 가르치는 것, 성경의 본문이 뭘 말하고 있고 그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는 반드시 두 가지가 들어가 있어야 돼요.
첫째 주혜입니다. 주혜 주혜는 성경 본문의 내용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성경이 오래전에 기록됐잖아요. 그리고 성경은 그냥 음 아무 역사적 배경도 없이 기록된 게 아니라 각각의 그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삶의 현장 속에서 성경이 기록되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성도들에게 그 본문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그 역사적 배경 속에서 맥락 속에서 설명해 줘야 되고 성경의 저자가 그 본문을 통해서 어떤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설명을 통해서 성도들이 성경의 내용 그 본문의 의미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거예요.
오늘 제 설교를 예로 든다면 예를 들면 아까 이것들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고 제가 설명을 드렸잖아요.
그럼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뭔지 또 좋은 일꾼이라는 어떤 의미인지 바울 사도가 왜 이 서신을 쓰고 있는 건지 경건의 의미가 본문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 등등을 사실 설명을 하는 거죠.
그래서 설교는 반드시 이런 주혜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둘째 그다음에 이제 본문의 말씀을 오늘의 오늘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지금 이제 그 적용의 과정들을 지금 설명을 하고 있는데 바른 가르침을 가르치는 목사가 좋은 일꾼이고 바른 가르침을 잘 배우는 성도가 좋은 일꾼이라면 그래서 좋은 목사와 좋은 성도로 이루어진 교회가 정말로 좋은 좋은 교회라면 우리가 매주 전하고 듣는 설교 이 설교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느냐라는 겁니다.
설교는 이 두 가지 주혜와 적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성경 본문에 따라서 어떤 때는 주예가 조금 길 수도 있고요.
또 어떤 때는 적용이 좀 더 길 수도 있겠죠. 그러나 반드시 이 두 가지가 설교에는 같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 주혜와 적용이 잘 이루어진 조화된 설교를 전하고 듣는 것을 통해서 성도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날로 축적이 되어서 그 말씀에 대한 지식이 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설교를 듣고 나면 아 이 단어가 이런 의미였구나 내가 전에는 전혀 이런 뜻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단어가 이런 뜻이었구나 이 단락의 목적이 이것이었구나 이 말씀을 바울 사도께서 하려고 하는 거구나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매주 설교를 들을 때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쌓여서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우리 성도님들의 성경에 대한 지식이 상당 수준의 올라가야 되겠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 지금 성경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많이 나에게 정말 쌓여져 있는가

제가 말하는 건 성경의 내용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의 내용은요. 여기에 뭔 내용이 들어 있는지는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성경을 읽으면 알 수 있어요.
그렇죠 어떤 이야기들이 여기에 담겨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건 성경을 많이 읽기만 하면 돼요. 그런데 성경의 내용 성경에 어떤 내용의 이야기들이 있고 어떤 말씀들이 있는지를 아는 것과 그러니까 성경의 내용을 아는 것과 성경을 아는 건 달라요.
한국교회 성도들이 열심히 성경을 읽습니다. 열심히 읽잖아요.
그러니까 뭐는 알아요? 성경에 내용은 잘 알아요.
적어도 열심히 읽는 분들은 물론 당연히 열심히 읽지 않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읽는 분들은 성경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를 잘 알아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건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

성경을 아는 것은 단순히 어떤 말씀을 아는 것 어떤 성경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성경 이야기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가지고 있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 걸 말하는 거예요.
성경에 있는 어떤 말씀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말씀을 내가 줄줄줄줄 이렇게 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그 맥락 안에서 그 성경의 그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내용을 아는 것과 성경을 아는 건 사실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국교회 성도들은 성경의 내용을 많이 알지만 성경에 대해서는 좀 잘 모르지 않나 죄송합니다.
제가 많은 분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면 거의 뭐 보통 20년 30년 다니신 분들이거든요.
근데 잘 모르세요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예 그럼 이제 이게 중요하잖아요.
왜 왜 왜 그럴까요?

왜 한국교회 성도들은 20년 30년 이렇게 매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나가서 설교를 듣고 하는데도 왜 성경을 잘 모를까요?
제가 사실은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설교 이야기를 꺼낸 거예요.
저는 제가 진단하는 그 진단은 아주 간단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실제로는 설교가 행해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신앙 강연이 아니에요. 설교는 신앙 간증이 아닙니다.
근데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설교하고 행해지는 많은 것들이요.
잘 들어보면 대개는 뭔지 아세요? 신앙 강연이에요.
신앙 강연 성경을 읽어 놓고 그 성경의 말씀을 무슨 의미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을 잘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신앙 강연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는 신앙 강연을 해주는 거예요.
좋은 교훈적인 가르침들을 쭉 설명을 합니다. 다 맞는 이야기예요.
다 맞는 이야기인데 틀린 건 아닌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게 설교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설교는 아무리 많이 들어도요. 성경에 대한 지식을 늘려줄까요?
안 늘려줄까요? 안 늘려줍니다. 그런 설교는 아무리 많이 들어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축적이 안 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신다고 하면서 자기의 신앙 간증이나 또 다른 사람의 신앙 간증, 심지어 위대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신앙 간증을 해줍니다.
성도들은 그게 은혜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그것은 설교가 아니에요.
설교 안에 아주 잠깐 그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신앙 간증이 예로서 들어갈 수는 있겠죠.
그러나 설교의 대부분을 신앙 간증으로 채우는 것은 그건 설교가 사실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국교회 강단에서 행해지는 설교라고 하는 것들을 잘 들어보시면 대부분의 신앙 간증 아니면 예화들 많은 예화들 아니면 신앙 강연 이렇게 사는 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다라고 하는 신앙 강연들이라는 겁니다.

그런 신앙 강연 신앙 간증 예화들은 성경을 몰라도 그냥 편안하게 다 들을 수 있어요.
여기에 참 제가 보면 아이러니가 있는 것 같아요. 한번 잘 생각을 해 보세요.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처음 예배당에 나왔어요.
목사님 설교를 듣습니다. 근데 다 이해가 돼요. 어려운 게 없어요.
그러면 그것은 뭘 의미하겠는 걸까요? 아마 둘 중에 하나일 거예요.
목사님이 정말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성경 본문을 잘 설명을 해서 다 이해를 시킨 것이든지 아니면 성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 강연이나 다른 것들을 하니까 그건 성경을 몰라도 다 이해가 되잖아요.
은혜도 받을 수 있고

저는 오늘 이곳에 모이신 우리 모든 분들에게 우리 장로님들 권사님들 또 집사님들에게 정말로 정말로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여기에 이제 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왜냐하면 이곳에 계신 분들이야말로 성경 강연이 아니라 예화가 아니라 신앙 간증이 아니라 뭘 듣고 싶어서요.
진짜 설교를 듣고 싶어서 아멘 진짜 하나님 말씀을 알고 싶어서 성경이 뭘 말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참된 복음 바른 가르침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이곳에 모이셨잖아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 사도의 표현대로 하면 뭐겠어요?
경건을 훈련하기 위해서 경건을 훈련하고 싶어서 고난을 감수하고 고통을 감수하고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오늘 이곳에 모이신 줄로 압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여기 계신 우리 성도님들이 지금은 잠시 고난을 당하시지만 어려움을 겪지만 여러분이 원하는 그 경건의 훈련 바른 가르침을 잘 배우는 것을 통해서 여러분은 오늘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는 대로 금생과 내 생애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생의 약속을 반드시 누리실 것입니다.
아멘 아멘 저들이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아멘 아멘 바른 가르침을 통해서 범사의 유익을 얻듯이 그 약속을 누리실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고 하는 성도들에게는 항상 고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께서도 말씀을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아니 우리가 이렇게 옳은 일을 하고 우리가 정말로 정말로 하나님 보실 때 올바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우리와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적은 거지 우리가 이렇게 올바른 주장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와야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일도 그렇고요. 세상 일도 그래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말해요? 의는 항상 고난을 받는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소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이상하게 여길 게 없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예요. 그러나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성경의 약속은 저 많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앉아 계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잘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시면서 잘 이겨나가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 해도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성도님들이 지향하는 그 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합당한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거 하면 되지 않나요?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가요 사람의 칭찬이 필요한가요 많은 사람들이 따라주는 게 필요한가요?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이 칭찬해 주시고 그래 네가 가는 길이 맞아라고 말씀해 주시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바른 가르침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훈련하라.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실 것이고 이 교회를 정말로 좋은 교회 공동체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꼭 그런 좋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 사모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귀한 믿음의 백성들에게 주셔서 바른 진리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하시고 바른 말씀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하셔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또 좋은 일꾼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지금은 잠깐 고난을 당하지만 바울 사도께서 약속하시는 그 약속 금생과 내 생애 이 땅에서 그리고 우리 주님 다시 오시면 받게 될 그 영원한 영생의 약속 그 약속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음을 믿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바라며 오늘의 이 어려움들을 이 고난들을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좋은 교회 공동체를 세울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