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15말씀 임형택 목사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마태복음 11장 2절부터 10절까지 마태복음 11장 2절입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들으십시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리니까 우리가 다른 일을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그들이 떠남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니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녀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너희 앞에 보내리니 그가 내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멘 아멘
여러분께서 우리 예배당 한 켠을 빌려서 예배드리게 된 것을 여러분들은 무지하게 고맙게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막 무지하게 고맙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저희는 교회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편적 교회가 뭡니까?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 신앙 고백이 나오잖아요.
거룩한 공회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지교회만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공회 개신교는 이게 가르쳐지지가 않아요.
이게 안 가르쳐지니까 개개주의 성향이 너무 강한 거예요.
우리 교회 우리 교회 아니도는 라이벌이 우리가 라이벌입니까?
아니에요. 저 교회는 무지막지하게 크고 우리는 너무 적을지라도 다 하나님이 하는 교회예요.
이게 거룩한 공회란 뜻이고 또 공교회라는 뜻이에요.
카톨릭은요 이름 그 자체가 거룩한 공회란 뜻이에요.
카톨릭 이 말이 이 말이 공회 거룩한 공회 가도 같은 이런 말을 쓰는데 우리는 신앙고백에서만 쓸 뿐 실제적으로 보면은 다 개별주이죠.
어 제가 이것을 좀 바꿔보려고 탈피하려고 애를 쓰는데 잘 되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이게 어디까지 발전해야 되냐 하면 큰 교회 목사라고 해서 사례비를 많이 받고 작은 교회라고 적은 교회 목사라고 해서 적게 받아야 되는가 그렇습니까?
그게 이제 개별주의의 문제 이게 어디 큰 교회 가서 목회하든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든 기본적으로 목사가 받는 사례나 동등해야 됩니다.
같아야 돼요. 그리고 큰 교회는 일이 많은 것만큼 그만큼 또 수당이 더 지출할 수 있어요.
근데 우리 개신교회는 이런 게 꿈 같은 얘기죠. 앞으로 그게 되겠습니까?
잘 안 될 것 같아요. 왜 안 될까요? 우리 건데 우리가 헌금했는데 우리 교회인데 이래서 안 된다고 생각이 들 그러면 성공회 어떤가 성공회는 돼요 성공회는 계층교입니다.
분류상 하면 계층교지만 그게 돼요. 어디 가서 사역하든 간에 다 똑같아요.
그리고 교회 크기나 사역에 따라 수당이 조금씩 더 주어지지 그러니까 굳이 큰 교회 역량도 안 되는데 그 교회 맡아야 될 이유도 없고 또 작은 교회라고 해서 가기 싫어하거나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지 이게 이제 거룩한 공회는 이렇게까지 발전해 나가야 되는데 개신교는 이렇게 잘 안 되지 또 적어도 우리가 거룩한 공회 공교회로서 서로 지체 의식이 있어야 되는 그런 마음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이니까 아 우리가 새생활교회 성도들을
환영하고 쓰겠다고 하는 것을 빌려드리자 했을 때 아 우리 장로님들이 기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처음에 지하실을 생각해 아 귀향 본당 빌려드립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서 제 마음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도 하나님께는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숭신 교회에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저한테도 너무 고마워하지 마시고 여러분 다 고마워하는 걸 충분히 한 것을 압니다.
제가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우리 새생활 교회가 주일마다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또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주신 은혜로 채워지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잠시 어려운 때가 있지만 그 어려운 때를 잘 견디고 이기게 도와주시고 마침내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은혜가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생활하려면 꼭 교회에 다녀야 될까요?
꼭 교회에 다녀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요.
요즘만 아니라 제가 20대였을 때도 들었던 질문이에요.
꼭 교회 다녀야 구원 받습니까? 이런 질문도 대개 이런 말은 교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신앙생활에도 교회 나가기를 싫어하는 분들 그런 분들이 주로 하는 말입니다.
한국 교회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을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꼭 교회 나가야 되는가 영상 예배도 있고 인터넷 주도 있는데 그렇게 해서 믿음 생활해도 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붙여준 이름이 있죠.
별명 가나안 성도들 안나가 성도님 저도 한동안은 몰랐어요.
그게 무슨 말이고 왜 가나왔냐 저보고 목사님 가난안 거꾸로 해갖고 해봐요.
목사님 안 나가 그래서 나중에서야 이제 그걸 알았는데 이런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집에서 영상을 보면서 대비해도 되지 않느냐 그래도 구원받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지요.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여쭙겠어요.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 여쭙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요한의 제자들은 돌아갔습니다.
이제 뭐가 남았습니까?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오는 예수님보다도 먼저 사역을 시작하신 분이 있지요.
누굽니까? 세례 요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요.
요한에게 갔다가 예수님에게 온 제자도 있었어요.
그리고 요한에 대해서는 이미 예수님 만나기 전부터 소문을 많이 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이 질문은 무엇을 바라고 요한에게 찾아갔었는지를 묻는 질문이에요.
당시 사람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 참 하나님의 종이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럼 참 선지자 아닌 자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랬을까요?
있었어요. 처음 선지자가 아닌 거짓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거짓 선지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왕이나 사람들은 누구 말이 듣기 좋았을까요? 여름미야의 말이 듣기 좋았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듣기 좋았습니까? 거짓 선자들 왜 그랬을까요?
우리 욕심을 부추기는 말들이 있거든 가짜 신앙 그것이 우리 욕심 욕망과 이렇게 교묘하게 어울려져 있는데 그거는 막 부추기는 말들 그게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망하겠습니까?
예루살렘 안 망합니다. 여기 성전이 있습니다. 그 말이 믿음이 있는 말 같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행복하세요. 빨리 바벨론에 끌려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70년 동안 거기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너질 겁니다. 누구 말이 믿음이 좋은 말 같아요.
예림이의 말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말입니까?
누구 말이 듣기 좋습니까? 그렇지도 이렇다는 거 이런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우리 욕심이 부풀려지면 그게 진짜 같이 생각이 좋은데 아니 그래서 속는 거야.
예수님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었느냐 라고 물으셨는데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꼭 교회에 나가야 되는가 또 이렇게 물어볼 수 있어요.
교회 다니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가 그럴까요?
꼭 교회 나가야 됩니까? 교회 안 다니면 구원을 못 받습니까?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교회 안 나가도 된다.
교회 안 나가도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시지요.
대답은 아닙니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의 생각을 해버리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사기를 보세요.
사사기 끝부분에 가면 반복되는 말이 나오죠. 그때에는 왕이 없으므로 백성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잘했다는 말일까요? 못 했다는 말일까요? 잘못했다는 실은요.
뒤에 나오는 그 나머지 사상의 3장은 연대의 순으로 따지면 제일 앞으로 가야 됩니다.
1장 2장 서론 다음에 3장에 가야 되는 거. 근데 사사기를 기록하면서 누가 기록했을까요?
사무엘이 하지 않았을까 보고 있어요. 근데 사무엘은 기록하면서 그거를 제일 뒤에 갖다 놨어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글을 쓰며 끝에 뭐를 씁니까?
결론을 쓰지 사사기 결론을 사사기가 끝나고 나면 뭐가 나옵니까?
육기는 사사시대 안에 들어가는 거야. 그다음에 뭐가 나와요?
열왕기 상가가 나와 왕자에서 들어 다시 말해서 왜 왕정 시대가 도래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사사기의 마지막 결론 그때는 왕이 없어서 백성들이 다 자기 생각이 옳은 대로 행동했다 잘못했다는 것이죠.
우리에게 뭐가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왕이 필요하다.
그 그래서 11개가 나오는 거예요. 물론 11기에도 징계가 있습니다.
근데 그런 배경 속에서 나오게 된 것이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법칙으로 삼아 그것은 성경 말씀이지 우리의 사리가 밝은 판단력 이런 것이 돼선 안 된다는 거야.
그거 조심해야 돼. 저는 이것을 교회에서 많이 가르칩니다.
근데도 교인들은 뭘 판단할 때 하나님 말씀보다도 자기 생각에 옳은가를 먼저 판단해야 그러니까 믿음이 자라지 않는 거예요.
항상 제자리 걸음이 내 생각이 옳은가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볼 때 뭐가 옳은가 이게 중요한 거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과 삶의 유일한 법칙은 무엇입니까?
무엇이라고요? 성경 말씀입니다라고 대답하.
그러면 왜 꼭 교회에 다녀야 되는가 다니지 않으면 왜 구원을 못 받는가 그 이유는요.
하나님이 선택하신 영혼을 구원하실 때는 선택하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부르시거든요.
부르시고 그런 다음에 중생 거듭남이 있어요. 그다음에 회개와 믿음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게 구원의 서정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르실 때 예수 믿으라고 부르실 때 뭘로 부르실까요?
복음으로 부르십니다. 복음으로 부어줘요. 복음을 듣기 위해서 우리가 왜 죄인인지도 알게 하시고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도 알게 하시고 예수가 왜 하나님이시고 왜 구세주이신가를 알게 하시는 거예요.
이게 소명 가운데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 부르심을 통해서 우리가 어느 시점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자 할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들을 거듭나게 하시는 거예요.
죽은 생이 그때 일어나게. 따라서 하나님이 죄인을 부르실 때는 반드시 뭘 통해서 부르시느냐 복음을 통해서 부르신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 당한 후에 교회 다니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난 병에 걸린 뒤에서야 예수 믿기를 시작하지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저는 듣기 싫어요.
그건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을 해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병에 걸리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교통사고도 나게 하셨다.
말이 됩니까? 안 됩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왜 이런 말을 쓰냐면 교통사고가 나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교회에 나오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게 부르심은 아니에요.
부르심은 반드시 뭘 통해서 한다고요?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부르시는 거예요.
병에 걸려서 교회 나오는 것 이것은요.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는 동기 제기는 될 수 있어도 그게 구원받으라고 부르지는 부르심의 내용은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도 그런 것을 부르심이라고 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구원하실 때 선택하신 자를 구원하실 때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시는가 부르심 그 부르심 뭘 통해서 부르신다고요?
복음 복음을 듣기 위해서 내가 왜 죄인인가를 알게 하시고 또 내가 왜 구원을 받아야 되는가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예수가 누군가 이런 사실을 다 알게 하시는 거예요.
예전에 그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친절하게 하지 마시고 그냥 한 대씩 쥐어 박아서 다 너도 믿어 너도 믿어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거 그래서 부르심에서는요.
하나님이 사역을 하실 때 선유적 방법을 아신다 이런 말을 써요.
그 말은 하나님이 이해를 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기다려 주시고 하나님이 충분히 깨닫게 해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 복음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복음은 어디서 듣겠어요?
교회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이고요. 교회를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구원하실 때 반드시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성경을 배우게 하셔서 예수가 누군지 알게 하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만드시지요.
그런 순간에 거듭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부르신 다음에는 뭐가 있어요?
중생 또 거듭남이 있는 것이지 물론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 누구한테 복음을 듣기도 해요.
누구한테 전도를 받기도 해요. 그러나 지속적으로 복음을 듣지는 못합니다.
그런 것은 충분한 부르심을 되지가 않아요. 한 번 들었다고 거듭나는 것도 아니거든요.
가끔 복음을 전하면서 영접하라 하고 영접했다 그러면 영접 기도를 시킵니다.
따라 하세요. 그리고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의 주로 영접합니다. 따라 하잖아요.
이렇게 영접 기도를 시킨다고 시키고 나면 우리는 그 사람은 구원받았다고 단정을 해버리죠.
구원 받았을까요? 그랬을까요?
이게 너무 섣부른 결론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 금방 사람이 변한 줄로 알아요.
교회 다닌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뭐 좀 실수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래?
당신 교회 다닌다면서 이런 말로 꼭 비아냥거리는 것을 들어볼 수 있잖아요.
그렇지가 않잖아요. 우리가 다녀봤지만 교회를 나오기 시작해서 복음을 듣기 시작했을 뿐이지 아직 거듭난 것이 아니야.
그것은요. 교회 다닌 지 10년 됐다 20년 됐다.
다 마찬가지예요. 집사다 권사다 장로다 목사다 다 같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은요. 목사가 된 뒤에서야 거듭났다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는 거듭난 줄 알았어요. 거듭난 줄 알고 세례도 받았고 신학교도 갔고 목사님도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가 거듭난 사람이 아닌 거예요.
제가 여러분에게 나눠드린 유인물의 온전한 회심의 저자 고든 스미스 목사 그런 분이 있어요.
자기는 목사가 된 뒤에서야 거듭났다 이런 거. 그러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10년 됐다 20년 됐다.
그건 자랑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10년 되고 20년 됐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채 다닐 수가 우리 개혁주의 전도학에서는요.
이런 것도 말합니다. 전도할 때 예수 믿었어요. 안 믿어요?
당신 지옥 가요 지옥 가면 좋겠어요. 지옥이 어떤 것인지 아세요?
이렇게 겁을 줘서 예수 믿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렇게 겁을 잔뜩 줘서 전도를 하게 되면 자기가 왜 죄인인 것도 모르고 예수가 누구 것도 모르고 우선 지옥 가기 싫어서 날 예수 믿어요 라고 대답해버리면 그 사람은 거듭나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거듭난 사람으로 스스로 인정하고 살게 된다는 거예요.
실은 거듭나지 못한 거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실 때 반드시 교회를 인도하세요.
교회에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복음을 통해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따라서 신앙생활하고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교회 다니면서 뭐가 제일로 중요할까요?
말씀 듣고 배우는 게 좋아 저는요. 고등부 졸업하고 청년부 가도 봉사 시키지 말라고 합니다.
1년 동안에는 성경 공부 열심히 배우게 합니다. 1년 성경 공부 열심히 시킨 다음에 그때서야 봉사를 해도 된다 이렇게 가르쳐 그렇지 않으면 청년부가 돼 가지고 봉사에 익숙해져 가지고 자기가 거듭나지 않았는데 봉사에 익숙해지면 거듭난 줄로 착각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이런 잘못을 보면
그런 의미 그런 의미에서 교부 교부는 교회 아버지들이에요.
교회 아버지는 누군가 하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잖아요.
사도들이 목회했잖아요. 그분들의 제자를 속사도라고 합니다.
사도의 직도 제자라 그런 뜻이고 그분들의 제자들 그분들의 제자들이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는데 그분들을 교부라고 합니다.
교회의 아버지 어거스틴 많이 들어보셨죠?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아버지예요.
그분들이나 종교 기업가 칼빈 이런 사람들은 그런 이유 때문에 교회는 뭐냐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다 이렇게 가르쳐 아기는 어머니 품에서 태어나고 어머니 품에서 자라잖아요.
마찬가지야 성도는 교회 품에서 태어나고 교회 품에서 잘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한 거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 전도를 받고 거듭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도 일정 부분은 인정해요.
그러나 그것은 매우 드문 예입니다. 드문 예 어쩌다 한 번 있는 그런 경우를 보편화시키면 안 돼요.
우리가 잘못을 범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거예요. 기적은요.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늘 일어나면 기적이 아니죠.
그건 자연 법칙이죠. 근데 어쩌다가 한 번 일어난 기적을 보편화시켜서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되는 것처럼 가르치면 안 된다는 거지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맹세에 빠지기가 조심해야 또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했을지라도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데 왜냐하면은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몸을 이루기 때문에 세상아 교회가 이렇게 모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냥 각 개체로 우리는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전부를 가르쳐서 너희는 내 몸이다. 우리는 한몸이다 하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게 교회고 그게 예배예요. 요즘에 영상 예배가 예배 한 형태가 되고 있고 영상 교회 인터넷 교회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 예배하고 기도하고 헌금 돼요. 그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신종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교회가 모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했는데 교회로서의 충분한 기능을 바랄 수가 없었던 거예요.
왜 그것을 교회라고 하지 않는가 예배의 요소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가 예배로 예배라고 말해지려면은 예배 요소가 있어요.
예배 요소에는 찬양,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고 말씀이 있고 헌금이 있고 또 뭐가 있을까요?
예 성도의 교재가 있죠 성도의 교재가 뭡니까? 밥 먹고 차 마시고 커피 마시면서 서로 얘기도 하고 이런 게 성도의 교제일까요?
그것은요. 성대 교재라고 말했을 때 그거는 아주 아주 넓은 의미에서 그것도 성도의 교재다 이렇게 말해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예배에서 성도의 교재를 말할 때는 그걸 보고 성도의 교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배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재는 우리가 예배로 함께 모였을 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고 또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한몸이 됐습니다.
그런 뜻으로 성도의 교재라고 합니다.
성도의 교재는 누구와 하나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또 누구와 하나가 됩니까?
성도들과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게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 각각의 내가 나만 예배 잘하면 되는 걸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우리는 예배로 모인다는 그 자체가 한 몸이 되는 거예요.
한 몸이 돼서 하나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예요.
그게 예배입니다. 때문에 성도의 교재라고 했을 때는 예수님과 한몸이 되는 것이고 또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한몸이 되었을 때 이걸 보고 성도의 교재라고 하는 거야.
그런 이유로 함께 모여 감사, 찬양 종지 영광을 돌려야 되는데, 그렇게 모여서 감사와 찬양과 종교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예배라고 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주의 몸을 이루는 겁니다.
한 몸이 되는 거 또 우리가 정말 그렇다는 의미에서 예식을 거행합니다.
그게 뭘까요? 성찬식기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기도 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에요.
성찬은 우리가 한 몸이라고 하는 것은 한 떡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너무 편리하게 신학적인 고민 없이 너무 편리하게 가는 것도 참 문제인데 저도 그렇게 합니다.
떡을 성찬식에 떡을 다 쪼개놓잖아요. 다 잘라놨잖아요.
다 잘라진 떡이지 이게 한 떡입니까? 예수님은 한 떡 예수님 떡은 몸을 잘알아 예수님 몸 한 몸을 몸을 찢어서 나눠주시면서 너희끼리 나누라 그러셨다고 잔 떡 다 찢어놓고 너희끼리 나눠 먹어라 이러지 않으신 거예요.
그 떡이 찢어지는 것은 뭘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몸이 찢겨지는 것을 의미하는 그래서 저도 고민을 많이 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성도들에 나눠줄 떡은 다 쪼개놓지만 떡 하나는 온전한 빵을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께서 떡을 찢어서 나눠주시면서 너희끼리 나누라고 했습니다.
저는 편리상 여러분들에게 쪼개진 떡을 나눠 드리지만 우리는 한 떡에 참여합니다.
이게 성찬이에요. 한 몸에 참여한다는 거예요. 성찬의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가 그겁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 한 떡입니다. 한몸입니다 하는 거예요.
그게 교회고 그게 예배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혼자 예배드리면서 나도 교회다 이럴 수 있겠어요?
다른 성도들과 단절돼 있으면서 그런 것을 교회라고 할 수가 없죠.
저도 신경에 거룩한 공해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 그랬는데 다른 성도들과 교통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를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나홀로 영상 예배하고 영상 보면서 헌금했다고 해서 그것을 공립을 할 수 있는가 성대 교재가 빠져 있는데 어떻게 그게 예배가 되겠어?
지금 우리 시대는요. 복음과 교회관에 대해서 심각한 도전을 받습니다.
복음이 자꾸 세속화되지 사람들이 듣기 좋은 성공주의, 번영, 신학 이런 것들을 듣기 좋았지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기 좋아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천국 복음도 좋아하지 않고 교회는 모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위기다라고 말하고 우리 새생활 교회 성도들이 주의 이름으로 힘써 모여야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주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한 몸이거든 한 덩이 집니다.
함께 공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사람들이 요한을 찾아갔을까요?
제사장을 찾아가고 왜 사람들이 요한에게 갔을까요?
성경 가르치는 서기관들한테 안 가고 왜 그렇겠습니까?
이 질문도 왜 교회에 다녀야 되는가를 묻는 질문과도 같은 거예요.
왜 제사장들에게 안 갔을까요? 왜 서기관에게 안 갔을까요?
그들이 하나님 말씀, 천국 복음을 선포했다면 그들에게 같이 안 갔겠어요 제사장에게도 가고 서기관에게도 갔겠죠 그들에게 갔으나 천국 복음을 듣지를 못한 거예요.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산상 부근입니다. 산상 부근을 마무리하면서 예수님이 세 가지로 경고하세요.
결론을 첫 번째는 첫 번째는 세 가지 조심하라. 집을 모래 위에 짓지 마라.
또 거짓 선자들을 조심해라. 또 넓은 길로 가지 마라.
예수님이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보세요. 넓은 길 사람들이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 좋아하지요.
거짓 선지자들 그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고 귀신도 쫓아냈다고 말했습니다.
병든 자도 고쳤다고 했어요. 근데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예수님의 그 천상 복음을 듣고 난 뒤에 마지막에 사람들이 예수님의 그 복음을 듣고 어땠다고 했습니까?
놀랍다 그랬어요. 왜 자기들의 서기관들과 달랐다는 것이죠 자기들의 서기관들에게 들어야 될 말씀들을 듣지를 못했던 거예요.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예수님께 듣고 배운 거예요.
그래서 자기 서기관들과 같이 아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말해요.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서기관들 쫓아다녔지만 천국 복음을 듣지 못했던 거예요.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삼상복음 6장에서 말하실 때는 너희는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런 말을 꼭꼭 하시죠.
맹세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가늠하지 말라는 말은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연구하.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일어났다.
누구한테 들었을까요? 그동안에 제사장들 수교관들에게 들 근데 예수님은 그들처럼 가르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그들이 천국 복음을 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요한이 나타났을 때 이 요한이야말로 진짜 선지자들 다 몰려갔던 겁니다.
그것은 이제 오늘도 마찬가지야. 왜 교회 다녀야 되는가 천국 복음을 듣기 위해서 그렇다면 교회는 복음을 외쳐야지 천국 복음을 외쳐야지.
사람들이 듣기만 좋은 말로 해서 홀릴 것이 아니라 천국 복음을 듣기 위해서 죄를 회개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그리고 자랑하셨으니까 이렇게 만들어야 되는 거죠.
긍정의 힘 조엘 오스틴 여러분들 사보셨어요? 보면 기분이 좋습니까?
저희 교회 집사님 내외분 한 분 젊은 분들인데 그분들이 인도, 포철, 포항제철 인도로 출장 파견을 가서 5년을 근무했습니다.
언어에 들어와 가지고 하는 말이 목사님 우리를 그때 제가 전도사 강령을 했대요.
이런 소리를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항상 여러분 잘 된 겁니다.
여러분 진급할 거예요.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 번영할 겁니다.
하나님 축복하십니다. 뭘 가르친 겁니까? 긍정의 힘을 가르친 거예요.
처음에는 듣기 좋더랍니다. 기분이 좋더래요. 뭔가 될 것만 같더랍니다.
뭐가 될까요? 그대로 될까요? 그런 걸 보고 번영 신학이라고 합니다.
조엘 오스틴 이 신 나온 신학교가 번영신학을 가르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는 믿음이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요.
고급차를 타는 것은 믿음이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럴까요? 아니죠. 긍정의 힘은 환상적인 얘기지요.
꿈 같은 얘기지요.
그런 것을 우리는 가짜 유토피아라고 합니다. 환상적인 얘기예요.
사실이 아니 근데 성도들은 특히 좋아하잖아요. 그런 것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가 열심히 살고 성실히 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게 하면 하나님 다 축복하세요.
기뻐하십니다. 복음이 아닌 것으로 그것이 복음인 것처럼 성도들을 홀리는 것이죠.
그게 문제라 저는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은 참 그래도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린 분들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그랬어요. 저분들은 끼어 있는 분들이라 분별력이 끼어 있는 분들이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것을 분별해 내고 이게 아니다 하고 뛰쳐나오겠어요.
여러분이 세상을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예요.
건물이 있고 건물이 그게 교회가 아니에요. 건물이 없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된다면 그게 교회예요.
건물이 있다고 해도 그게 천국 복음이 전파되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에요.
이단들의 예배당을 합니까? 하나님의 교회 부처님 그게 교회입니까?
아니잖아요. 잠시 힘든 시간이 있을지라도 잘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로서 주의 몸을 지르고 또 하나가 돼서 하나님이 견고하게 하시는 은혜가 우리 새생활교회에게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세상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든든히 들어가게 하시고 요 왜 우리가 교회로 모여야 되는지, 우리가 왜 모여서 예배해야 되는지 알게 깨닫게 하지, 믿음과 진리 위에 경고하게 서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능하신 주님 우리의 사정과 형편이 있습니다. 그 사정과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위로하시고 힘 주셔서 그 삶을 잘 사람에게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모여 저 앞에 예배하며 또 예물을 드립니다.
주여 받아주시고 하나님 우리의 삶의 터전이 복되기를 원합니다.
하는 일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멘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 하나님이 이 하시니 우리 모든 교회의 권리 위에 항상 함께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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