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08말씀
하광영 목사
하나님의 말씀 우리 보겠습니다. 시편 42편입니다.
시편 42편 10절 11절
자 우리 성경 찾으셨으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해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원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더하라 하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아멘
지난주에 속초에 잘 다녀오셨죠? 네 뭐 사진 보니까 막 화색이 만년 강원도가 다 환해진 것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제 천국의 지부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아 여기서 천국을 맛보고 뭐 그건 이제 찬양뿐만 아니라 서로의 섬김을 통해서도 아 천국은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것들을 맛보고 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함께 나누고 그 하나님도 높히고 찬양하고 이제 그것이 이제 천국에 가면 완전하게 성취가 될 건데 여기서부터 우리가 그 기쁨을 조금 맛보며 사는 거죠.
아멘 그런 시간 어 저는 가지지 못해서 아쉽고 다음에는 저도 한번 참석하면 좋겠습니다.
어 우리 시편 42편 10절 십일절 제가 우리 교회에서 가끔 설교합니다.
요 부분뿐만 아니라 또 이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도 가끔 설교하는데 그만큼 우리 신앙생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시편은 여러분 이 42편 표제에 보면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이렇게 이제 되어 있어요.
이제 고라 자손이라고 하는 이 사람이 쓴 시편인데 이 사람은 괴로운 일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전에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도하는 이 사람은 레빈이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하면서 그것이 그의 즐거움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것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전에 성의를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
여기 9절에 보면 그는 아마 원수의 악재 때문에 이렇게 성전에 가지 못하 어 여기저기 방황하는 처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구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악재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이로다.
원수의 악재 때문에 그는 성전에도 가지 못하고 유다 땅을 여기저기 다녔는지 혹은 더 멀리 뭐 타국에까지 끌려가서 여러 곳을 방황하고 다녔는지 모르지만 원수의 악재 때문에 방황하고 있었고요.
그것이 그의 슬픔이었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자기를 보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비아냥 소리가 들렸습니다.
42장 여기 3절에 보면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사람들이 늘 그랬어요. 니 하나님 어디 있어? 니 하나님 너를 사랑하신다면 너를 이대로 그냥 유리방황하도록 내버려 두시냐?
네 하나님 어디 있는 거야? 이렇게 하면서 말할 때 그것이 그에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고요.
또 10절에 보면 그것이 자기의 마음을 후벼파는 그런 뼈를 찌르는 칼같이 고통스러운 말이었어요.
내 뼈를 찌르는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비난 조롱, 비아냥 소리 듣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은 그의 마음 속에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켰죠.
상한 마음, 슬픔, 눈물 아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더 안 좋은 감정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낙심했어요. 불안했습니다. 여기 뭐라고 그러냐면 이 5절에 보면 낙심 불안해하는가 이렇게 말하고 11절에도 그러죠.
낙심 불안해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영영 하나님의 성전에 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정말 잊어버리신 것 아닌가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나 이런 낙심과 불안이 그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었고 그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이 고라 자손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교훈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첫 번째 말이죠. 오늘 네 가지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첫 번째는 말이죠.
부정적인 이런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우리 이 세상 살아갈 때 다양한 문제를 만납니다. 다양한 문제를 만나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켜요 뭐 자녀가 잘 된다든지 사업이 막 잘 풀린다고 하면 기쁘죠.
기쁜 감정이 일어납니다. 또 사업이 안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자녀가 아프거나 힘이 들고 그러면 마음에 슬픈 감정이 일어나죠.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근심과 염려가 잦아듭니다.
커다란 문제에 맞닥뜨리면 위기감이 생깁니다. 시험이나 큰 면접을 앞두고 있으면 불안한 감정이 일어나지 저같이 이제 은퇴를 은퇴를 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면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큰 실수를 하거나 실패하면 좌절감이 찾아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그러면서 자기를 학대하기도 합니다.
내 인생은 하나도 되는 것이 없어 하고 속상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지속되면 세상이 전부 원망스러워집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면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일어납니다.
또 하나님은 왜 저런 사람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으시나 하고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도 생겨납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으면 우리의 감정을 소모하게 되고 인간관계에 소극적이 되거나 혹은 부정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그런 감정이 안 찾아오면 좋지만 우리가 뭐 이 지상에 살 때 부정적인 문제를 안 만날 수 없고 그런 문제를 만나면 반드시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냐 우선은 말이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필요해요. 대개 사람들은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모른 채 하거나 묵살합니다.
아이고 괜찮아 어 이렇게 묵살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부정적인 감정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나를 끌고 다닙니다. 염려가 생기면 말이죠.
에이 괜찮아 한다고 사라지지 않잖아요. 그 염려가 계속 나로 하여금 염려를 묵상하게 만듭니다.
그렇죠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그 두려움이 이 나를 이끌어서 어쩔 줄 모르게 하게 합니다.
미움이 일어나면 이를 갈게 되고 복수하려고 하는 마음 생겨나게 되고 혹은 말이죠.
어떤 사람은 극단적인 사람은 아예 그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 고라자선이 말이죠. 낙심 불안 찾아올 때 그는 그것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5절에 말하는 것처럼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십일절에도 똑같이 말하죠.
내 안에 있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즉시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거죠.
나는 낙심하구나 낙심해 하는구나 나는 지금 불안해 하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이죠.
믿음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경건함 속에 감추려고 하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우리 이제 작년엔가요.
얼마 전에 우리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낸 이제 권사님 가정에 신방을 갔는데 그 신방을 여기 그 우리 저 장례식에 갔는데 그 권사님이 아주 옷을 아주 예쁘게 차려 입고 화장도 하시고 그러고 그냥 생글생글 웃으시면서 아 우리 아들 보석처럼 살다가 하나님 품에 갔어요.
이렇게 말하시는데 한편으로는 안도도 되면서요.
한편으로는 아 저게 가능한 일인가 저게 맞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그렇지 않잖아요. 사랑하는 아들 몇십 년 동안 잘 키워서 예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 충격을 받죠.
마음이 아프잖아요. 슬픔이 일어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래서 말이죠. 아브라함이 사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성경에 보면 말이죠.
이렇게 말하거든요. 창세기에서 23장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일어나서 나가서 아내를 위해서 장지를 구입하잖아요.
그러니까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뭐 아브라함이 천국 소망 없었겠어요 우리 아내가 지금 하나님의 도성에 가서 여기 살아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 살고 있는 것 알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더 이상 여기에서는 만나지 못하는 것 때문에 혹은 내가 더 잘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아쉽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슬프고 그렇죠 그거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니에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할렐루야 순교의 제물이 되어서 우리 하나님이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노래하지 않고요.
사도행전 8장 2절에 보면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이렇게 말하고 있어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 살아가면서 혹 오해하는 것이 우리가 슬픔을 보이면 약해지는 것 혹은 믿음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슬픔도 잠재우고 감추고 그러면서 겉으로 기뻐하고 좋아하는 그런 외적인 그런 어떤 형태만 보인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혹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렇죠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염려가 찾아오고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그래야 거기서부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결책이 나오기 때문이죠.
이 고라의 자손은 자신의 마음속에 낙심 불안이 찾아올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했던 거예요.
그럼 그러면 첫 번째는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요.
두 번째는 뭐 했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했겠죠.
성도니까 그렇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19절에 그는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해야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구절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앞뒤로 슬프게 사니나이까 하리로다.
그는 아 내가 이런 낙심과 불안 휩싸일 때 어떤 생각을 가졌냐면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뭐라고 그래요?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습니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악재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고 기도하기 전에 어 그렇게 하리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야지 하고 다짐을 한 거예요.
결정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뭐 해야 되냐면 내가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서 기도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잖아요.
그렇죠 이 사람은 이걸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지 하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이 상할 때 슬플 때 낙심할 때 불안할 때 그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답해 주실 거야 너 뭐 그까짓 거 가지고 뭐 울고 불고 난리냐 그렇게 타박하지 않으시고 그 감정 그대로 이해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받아주시는 것이죠.
세 번째는 말이죠. 그가 어떻게 했냐 하면 자기 영혼을 향해서 충고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어 4절 5절 11절 그렇게 충고하는데 11절에 보면 뭐라고 어 자기 영혼을 향해서 말하려면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면서 자기 영혼을 향해서 타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게 이제 우리가 그러잖아요. 여러분도 뭐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 거 하잖아요.
독백이라고 하는 거 우리가 이렇게 하루를 이렇게 살아가다가 너무 큰 실수를 하거나 아 왜 그렇게 했을까 이 바보 같은 놈 너 왜 그래 왜 그렇게 하잖아요 그렇죠 그게 이제 자기를 향해서 자기가 말하는 거거든요.
근데 이 여기 이 성도도 자기를 향해서 말하는 거예요.
이거요 매우 중요해요. 그래서 성경에는 내 영혼아 하고 자기 영혼을 향해서 말하는 시편들이 많아요.
시편 103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성축하라. 내여 내 속에 있는 것들아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하고 말하잖아요.
자기 자꾸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그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자기 영혼을 향해서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그거 잊어버렸어? 하나님께서 너를 사망에서 건지시고 모든 병에서 고치시고 너를 아름다운 관으로 씌우신 거 너 기억 못해 왜 그거 자꾸 잊어버리는 거야?
하면서 자기 영혼을 향해서 말하잖아요. 이런 자기 영혼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 매우 필요해요.
그런데 그가 어떻게 말하냐면 이렇게 말해요.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야 너 왜 낙심하는 거야?
왜 내 속에서 자꾸 불안해하는 거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하고 말하고 있어요.
근데 이제 우리 개혁 개정판 성경이잖아요. 근데 전에 우리가 쓰던 성경은 개혁 한글판 성경이 있어요.
거기에는 이제 뭐라고 표현되어 있냐 하면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이렇게 표현이 돼 있어.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한 표현 번역이라고 생각이 돼요.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둬라 이렇게 말하면 약간 이런 기분이 나요.
저는 아이 하나님께 한번 소망을 두어야지 하는 어떤 정적인 느낌이 조금 있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면 지금도 계속 봐라라고 하는 지속적인 어떤 동적인 느낌이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는 번역이 훨씬 더 잘 된 번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믿음 있는 자기가 믿음 없이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자기 영혼을 향해서 너 왜 낙심하는 거야?
너 왜 계속 불안해 하는 거야? 너 하나님을 바라면 돼 하고 자기 영혼을 향해서 충고 혹은 명령 혹은 꾸짖고 있는 거죠.
우리가 이런 거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두 인격은 아니지만 우리 예수 믿는 성도에게는 두 가지 소욕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그냥 세상 이렇게 바라보면서 거기 흔들려가서 믿음 없이 그냥 살아가는 자기의 어떤 성향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이끌림 받는 성향이 있어요.
그럴 때 믿음이 있는 내가 믿음 없는 자기 영혼을 향해서 이렇게 권면하고 충고하고 다 이르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면서 이 고라 자손은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나는 그가 나타나 하나님이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 뭐 낙심해 왜 불안해 하는 거야? 너 하나님을 봐라 나는 나를 도우시는 그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면서 갈 거야 이렇게 말하는 거죠.
이것도 말이죠. 이 한글 개혁 한글판 성경에는 뭐라고 번역이 되어 있었냐면 이렇게 번역이 되었어요.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고 번역이 돼 있어요.
근데 그게 훨씬 더 어 더 좋은 번역인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말이죠.
이런 거예요.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이라는 말은 내 얼굴은 지금 낙심과 불안에 일그러져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 얼굴을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거예요.
내 얼굴 화색을 돌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내 얼굴 환하게 해 주실 그 하나님 나는 믿어.
그래서 지금 상황은 막 이렇게 좋지 않고 사람들은 나를 조롱하고 내 마음 속에서도 낙심과 불안이 점령하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거기 굴복하지 않을 거야.
내 얼굴을 환하게 바꾸어 주실 내 하나님 나는 찬송하면서 갈 거야 하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말이죠. 어떤 시물에 있는 내 친구를 향해서 찾아와서 너 왜 그렇게 낙심하냐 너 왜 불안해?
너 하나님을 바라보면 돼 나는 내 얼굴을 환하게 바꾸어 주실 내 하나님 찬송하면서 가 마치 그렇게 권면하고 설득하는 것처럼 자기 영혼을 향해서 그렇게 한다는 거죠.
그러면 말이죠. 그러면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내 마음이 바뀌어요.
아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면 미적미적대던 내 영혼도 거기에 영향을 받고 따라가게 됐어.
네 번째로 이 사람이 하는 것이 그 일을 반복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2편 5절에 말이죠. 그는 이렇게 말하잖아요.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라.
제가 하는 것대로 한글 번역으로 한번 제가 한번 말씀드릴 테니까 한번 따라 해보실래요.
내용 하나 거기에서부터 쭉 하고 하나님을 바라라 것까지도 한번 해보.
시작.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을 봐라.
또 그 다음에는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네 안녕하세요. 오히려 찬성을 합니다. 한번 이어서 해볼까요?
나는 시작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자기 영혼을 권면하면서 나아갔어요.
그런데 십일절에 보면 똑같은 표현을 하고 있어요.
왜 똑같은 표현을 하고 있을까요?
계속 낙망하고 있어.
그렇죠 사람이라는 게 말이죠. 야 뭐 하러 낚시해 왜 불안해?
하나님을 바라면 되잖아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면서 갈 거야.
그렇게 해 가지고 자 달래가지고 마음이 바뀌어서 아 그래 하나님 의지하면 되지 뭐 낙심하고 불안할 게 뭐 있어?
이렇게 가다가도 말이죠. 또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낙심과 불안이 쑥 올라오는 것이 사람이에요.
한 번 설득해 가지고 싹 마음이 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인간이 안 그렇잖아요.
부정적인 감정은 얼마나 집요한지 몰라요. 그렇죠 전에 산불 났는데 불 다 껐는데 그 풀숲에 숨어있는 불이 또 바람이 싹 불면 와가지고 또 산을 태우는 것처럼 말이죠.
부정적인 감정은 한 번 사그러든다고 해서 아예 없어지지 안 읽는 적이 많아요.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요. 그래서 이 성도처럼 또 자기 영혼을 향해서 책망하는 거야.
왜 그래? 너 왜 낙심하고 왜 불안해? 너와 하나님을 바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 오히려 찬송하면서 갈 거야.
그렇게 가 하면서 또 권면하는 거죠. 그런데 말이죠.
사십삼편 마지막 절에도 또 나와요. 또 한 또 나와요.
그렇죠 한번 보세요. 뭐가 다른가요? 전혀 다르지 않아요.
그죠? 사십삼편 5절에도 똑같이 말하고 있어요.
마 이것은 인간의 연약함, 부정적인 감정에 늘 휘둘리며 사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어 또 권면하고 또 충고하고 또 꾸짖고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염려가 가득하십니까? 그러면 내 영혼아 너 왜 염려하니?
너는 하나님을 봐라. 나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시고 앞으로도 나와 함께하실 그 하나님을 바라면서 가련다 하고 가는 거예요.
미움이 가득하십니까? 용서가 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괴롭습니까?
그럴 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마음속에 미움과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니 너 하나님을 봐라.
원수 같은 나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 받은 나 나는 그 하나님 바라보면서 갈 거야 하고 가는 거죠.
기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길 때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평 불만만 하고 있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 나는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내 기도를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응답해 주실 주신, 그리고 주실 그 하나님 바라보면서 갈 거야 하면서 기도의 자리로 가면 기도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마음을 바꿔요.
이렇게 이 고라 자손의 시를 보면서 말이죠.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이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였다 네 가지 말씀드렸어요.
하나는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두 번째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부르짖고 기도했다.
세 번째는 믿음 없는 자기 영혼을 향해서 꾸짖고 권면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라고 했고, 그리고 믿음 있는 그가 하나님을 주목하면서 갔다.
그리고 네 번째는 그 일을 반복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믿음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 처리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우리 합신 처음 우리 학장이셨던 박윤선 목사님은 성경 대가거든요.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성경을 안 믿어도 나는 믿는다.
성경을 안 믿으려는 생각이 나에게 있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내가 안 믿어도 나는 믿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내 안에 그런 생각이 있어. 이거 하나님 말씀이지 이 말씀 그대로 믿고 사는 것이 복이지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는 반면에 그분조차도 말이죠.
성경을 대할 때 이게 진짜 하나님 말씀인가 하는 의구심이 안 일어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런 부정적인 회의감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하냐면 내가 성경을 안 믿어도 나는 성경을 믿는다 하고 가는 거죠.
그런 확신을 가지고 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 거야 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만고 이례로 자기를 계시하신 생활 믿음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인 거 나 믿어 하고 딱 가면 말이죠.
그렇게 회의감이 잦아드는 그러한 의구심들이요.
사라져버
로이드 존스 목사님 쓴 영적 침체라고 하는 책 여러분 한번 나중에 좀 사서 읽어보시면 좋겠는데, 그 유명한 책에서 이분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제 말씀드린 거 그런 내용들인데 자신을 다룰 줄 아는 것은 영적인 삶을 사는 데 중요한 기술입니다.
자신을 장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설교하고 질문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향해서 왜 그렇게 낙심하지 뭐 때문에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하고 물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달려들어 야단치고 책망해야 합니다. 그렇게 침체하고 불행한 마음으로 불평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팔아야지 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무엇을 하기로 맹세하셨는지 자기에게 일깨워야 합니다.
이것이 치료법의 핵심입니다. 자아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자아에게 덤벼드십시오. 자에게 말하십시오. 자아를 책망하십시오.
야단치십시오. 권면하십시오.
자아의 말을 맥없이 듣고 있다가 기운을 잃고 주저앉지 말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실들을 자아에게 상기시키십시오.
자아가 여러분을 멋대로 휘두르게 내버려 두면 앞으로도 계속 휘두르려 들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침체시키기 위해 자아를 장악하고 활용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벌떡 일어나 말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더 이상 그러지 말라고 하십시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그 얼굴에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찬송하리라.
내 얼굴에 화색을 주시는 내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십시오.
이렇게 설교했는데 여러분 그 이야기 귀기울여 들으시면서 여러분의 하루의 삶 속에서 여러분 마음속에 찾아드는 부정적인 감정이 여러분 마음속에서 스물스물스물 올라올 때마다,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을 지배하려고 할 때마다 여러분의 영혼을 향해서 야단치고 책망하고 설득하고 건면하면서 믿음 있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주목하면서 가시는 거예요.
아멘 두 하달 전에 저희가 이제 양평에 집을 구하려고 갔다가 야 가다가 보니까 어 저는 뭐 아 아 이게 양평 큰 강이 내려다보면 좀 뷰가 좋은 곳에 가서 조금 살면 좋겠다 해가지고 왔더니 뭐 이게 뭐 우리 재정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갔다 와가지고 풀이 죽어가지고 와서 이제 잠을 자려고 하는데 잠이 잘 안 오는 거예요.
야 우리 어디 가서 사냐 어 그런 이제 하나의 생각이 쑥 올라오면 말이죠.
뒤따라서 꾸러미처럼 다른 생각들이 다 같이 연달아서 울잖아요.
내가 은퇴한 후에 내가 괜히 일찍 은퇴했나 뭐 그런 생각 아이 뭐 이거 은퇴한 후에 나 뭐 하고 사나 아 우리 잘 살기나 할 건가 벼라의 생각이 다 이렇게 물고 올라와요.
그죠? 그래서 그때 제가 이제 이런 설교도 하고 저런 설교 이런 설교 이제 생각이 나서 그렇게 진짜 말했어요.
내 영혼은 내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냐 너 하나님을 바라 나 지금까지 우리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하시고 사용하시고 필요한 거 넉넉히 채워주신 그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거 너 왜 못 믿어?
나 그 하나님 믿고 그 하나님 찬송하면서 갈 거야 하니까 말이죠.
장로들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내 안에 들어오는 이번 주간에 살면서도 여러분 안에 들어오는 부정적인 감정 그거 그냥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냥 내버려 두면 그게 활기를 얻고요. 힘을 얻어가지고 그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끌어가요.
그리고요. 거기 끌려 다니면 인상 찌푸리고 염려하고 늘 움츠러드는 그런 인생 살아갈 수밖에 없고요.
그런 이 감정의 지배를 받으면 불행하거든요. 그러면 자기만 불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찔러요.
불행하게 만들어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라고요? 여러분의 그 감정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내어 놓으시고요.
하나님께 기도로 나와가지고요. 믿음 있는 여러분이 믿음 없는 여러분의 자아를 향해서 책망하고 설득하고 꾸짖고 고변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봐 그러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바라보시는 것이에요.
제가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그런 그냥 아마 그냥 무슨 공모전에 나온 시였던 것 같아요.
거기 시가 이런 시가 있었어요.
너는 아니 가을이 오면 여름이 밀려 간다는 것을 사랑이 오면 미움이 밀려간다는 것을 제가 글씨 읽으면서 아 이 영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생각했어요.
믿음 있는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가면 그러면 의심은 어느 데 어느새 밀려가게 되어 있어요.
아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가다 보면 의구심은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아멘 하나님 베풀어주신 은혜 감사하면서 나 사랑하면서 갈 거야 하고 사랑하며 가다 보면 미움은 어느샌가 쓰러지게 되어 있어요.
이번 한 주간도 이 고라 자손이 사용했던 부정적인 감정을 치료하는 이 해결책 마음에 잘 간직하면서 여러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께 아뢰시고, 믿음 있는 여러분이 믿음 없는 여러분의 영혼을 꾸짖고 번면하고 설득하면서 하나님을 주목하면서 나아가심으로 여러분 마음속에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과 확신과 담대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복된 한 주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 이런저런 문제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상할 때 슬플 때, 분노할 때, 두려울 때, 염려할 때 많지만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고라의 자손처럼 그것을 감추지 않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토로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서 어찌하여 저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원수의 악재로 이렇게 슬프게 다니게 하십니까?
하고 기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 있는 저희들이 믿음 없는 우리 아내 영혼을 향해서 권면하고 꾸짖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는 내가 내 얼굴을 환하게 해 주실 하나님을 주목하고 찬송하면서 가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낙심과 불안은 어느새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과 찬양 가운데 주를 높이며 가는 성도들 되도록 이번 한 주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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