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성령의 새롭게 하심...... 최영민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6. 22. 23:20

최영민 목사

 

20250622말씀 최영민 목사

하나님 말씀 디도서 3장 4절부터 8절까지

한 절씩 번갈아 읽겠습니다. 지도서 3장 4절 제가 먼저 읽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들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시니라.

같이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던데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아멘 우리가 예장 예수교 장로교죠. 예수님 믿는 종교고 예수 중심의 삶을 목표로 하는 종교입니다.
오늘 성령에 대한 말씀을 골랐는데요. 성령께서도 예수님 중심으로 사역하셨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에 주는 도전이 크죠. 우리는 늘 주님 중심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 친밀한 사임, 동행, 충성, 순종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라는 것을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도 알게 된다.
성령께서도 예수님 중심이셨다. 4절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에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났다.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우리가 하나님 크신 사랑을 알게 되는데, 또 심지어 나조차도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에서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데 5절 보면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신 것이고, 6절 보면 예수님 통해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심으로 하신 것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성령도 예수님 중심이셨다.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성령님의 최고 어떻게 보면 유일한 사역이셨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겸손한 성령님의 사역이셨다.
기도서에서도 알게 되죠. 로마서에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성령을 표현한 여러 표현이 있는데 진리의 영이 오시면 아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구나.
그 말씀 자체도 진리이신 예수께로 인도하신다는 뜻이잖아요.
로마서 갈라디아에서 그리스도의 영이다.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이 충만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이제 임재하신다는 것이죠.
성령의 기름 부으심 내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싶다.
그 말 뜻을 잘 이해해야 돼요. 그러니까 이단이나 어떤 잘못된 신학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이것을 이제 신비주의 쪽으로 해석을 하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이제 그런 것을 추구하는데 우리 예장 예수교 예수님 중심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내 안에 가득하시면 좋겠다.
예수님의 사랑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 나도 사랑하며 살고 용서하며 살고 복음 전하며 살고 싶다.
그것이 충만한 게 기름 부으심이자 성령 충만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우리 우리 장로교 신앙인 것이죠.
요절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가 아니다.
여기에 모든 이단이 연관되어 있어요. 선행을 해야 구원 받는다.
방언을 해야 구원 받는다. 어떤 입신을 해야 구원 받는다.
이 모든 이단들이 이 의로운 행위에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그 신앙의 목표 신학의 부조죠.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종교 활동을 하다 보면 목표가 불분명해질 수 있어요.
나의 행위 나의 의 거 다 부질없는 것이다. 중생 성령의 새롭게 하심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다.
이게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목표를 분명히 하고 나는 예수 중심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친밀한 사기 동행, 그것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 이게 베이직이지만 이게 생명이잖아요.
뭔가 새로운 거 없습니다. 신앙에 뭔가 새로운 게 없다.
예배 가운데 주님 임자하여 주옵소서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게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해달라. 우리가 영적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요.
영이라는 것은 첫째 보이지 않는 것 둘째 지정이 인격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다.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목석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지정애를 가지신 분명한 인격체시다.
그런 의미잖아요. 우리 영혼이 영적이다. 그러니까 우리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육체 안에 있는 어떤 지정이 인격체가 있다 이런 뜻인 겁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너의 지정이와 나의 지정이는 너무 다르다. 세상의 영과 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은 너무 다르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느끼는 게 다르고 의지 자체가 다르다.
어떤 결혼 생활에 영적으로 다르다. 힘듭니다. 왜 생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영을 바로 분별하자.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 영 저 사람의 주장이 예수님 생각이냐 아니냐 늘 우리는 예수님 중심이죠.
그런데 이런 우리 성경적 신앙에 이제 가까이 오지 못한 사람들은 영적이다.

그러면은 신비한 거 어 방언 신비 어떤 나도 모르는 어떤 그 중압감 어떤 신적인 존재 앞에서 뭔가 이렇게 초라한 존재가 되는 중압감 뭐 그런 정도의 수준을 추구하는 거예요.
우리랑 너무 다르죠.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 나의 지정이가 너무 참 하 부끄럽구나.
한 주간 생각할 때 너무 나 중심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그랬는데 예수님 생각과 전혀 다른 내 생각으로 살았구나.
그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나에게 임하는 거예요.
회개의 순간. 그러니까 여기 보면 중생의 씻음이죠.
거듭남의 씻음 다시 태어나는 순간 우리가 예수님 처음 믿을 때 그 중생의 기쁨을 경험했지만 이것은 계속 지속되는 것입니다.
언어인 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서 주님 저는 주님과 다른 지정이를 갖고 살았습니다.
세상의 지정이 세상의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회개하고 주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거죠.
주님의 그 그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결단, 주님의 의지로 가득 채워가지고 단단히 무장된 채로 세상에 나가는 거죠.
또 다른 주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이게 이 신앙의 회식이다.
디도서 3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 성령조차도 예수님의 사랑 사랑하심 예수님 중심으로 사역하셨다.
우리도 그 복음 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겠다.
주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런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감동되는 인물들이 많이 있잖아요.
자신의 신학 신앙에 따라서 이제 감동받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요셉 우리 아이들 요셉과 같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 기도하는데 이제 우리 전통 신앙에서 벗어난 그런 사람들은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받느냐 야 꿈을 해석했어 어떻게 이렇게 꿈을 해석할 수 있지?
야 진짜 나에게도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그걸 통해서 성공하면 좋겠다.
이제 이런 데 포인트를 맞추는 거예요.

신비한 기적을 통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거 그게 요셉에게 맞는 이 포인트입니다.
전혀 예수 중심적이라고 할 수가 없죠. 근데 우리는 요셉에서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습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손을 뿌리치면서 나는 그럴 수 없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을 범할 수 없나이다. 그렇게 결정하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내 인생에 어떤 피해가 올지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주님의 지정 위로 가득 채워 이 제악의 길을 걷지 않겠다.
이제 여기에 감동을 받는 분들은 아주 바른 신앙인인 거예요.
그것 또 어떻습니까? 형들이 왔을 때 놀라지 마소서 하나님이 형님들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이곳에 보내셨나이다.
위로하잖아요. 그게 예수님의 마음 아닙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복수하고 싶고 그 원한을 잊지 못하고 항상 인생의 그 그 원동력 그 정렬은 그 분노와 원한에서 오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내가 반드시 이 복수를 갚겠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러지 않았죠. 용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섭리 앞에 고개를 숙였죠. 그 자식들을 형제 형님들을 구원하는 죽을 때 내가 죽으면 나의 해고를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달라.
죽음의 순간조차도 복음 안에서 유언을 남긴 거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데에서 감동을 받는 거예요.
이게 이런 게 중요하다. 신비한 것 이런 게 중요하다.
뭐 수도 없습니다. 엘리야 어떤 사람들은 이야 불을 내려오는 기적 나의 기도를 통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그런 능력을 주세요.
이렇게 하지만 우리는 그걸 추구하지 않죠. 그 세미한 음성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그것이 엘리아의 힘의 원천이었구나.
응 하나님께서 새를 까마귀를 보내서 먹여주시는 일령한 양식 아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시는 우리를 이끄시는 힘이구나.
그런 부분에서 이제 감동을 받죠. 세상을 택할 것이냐 하나님을 택할 것이냐 그런 선포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에스겔이라는 인물이 있죠.

젊은이들이 찬송 가운데 에스겔 먹구름 속에서 어 저 뒤에 오는 거 환상 에스겔의 환상 환상을 보고 이런 데 꽂혀가지고 환상을 보여주옵소서.
이 먹구름 끝에 근데 그 환상이라는 비전이라는 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뜻 아니에요 이 아브라함 소개 속에 속에도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예수님의 뜻을 알려달라는 이제 그런 내용인데 그 예수님 중심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성공의 에 길로 인도하는 환상을 보여주옵소서 이제 그렇게 기도하죠.
그러나 에스겔의 감동 포인트는 어떤 부분입니까?
동영대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에서 성공했다.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자기는 제사장 신분이었다. 나라가 망하지 않았으면 고국에서 대자장 자리에 올릴 오를 수 있는 나는 어떻게 보면은 귀족의 아들이었다.
나는 여기 그발관가에 끌려왔다. 지금 노예 수준의 백성들과 함께 있다.

그럼 나의 길은 무엇이냐 라는 이 그 발강가에서 슬퍼하는 백성들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정 그것이 나의 역할인 것 같아 그것까지 거기서 감당하잖아요.
저는 그 부분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아까 소수의 인원이라고 그랬는데 우리 교회보다 더 많은 인원입니다.
군대와도 같은 인원 같다. 이 찬양 소리에 압도되고 야 부럽다.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에스겔과 같이 그 배강가 무언가 척박하지만 내가 그곳에서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을 섬길 수가 있다면 그것이 나의 영광이 아닌가 이런 믿음은요.
모든 성도들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이자 소망인 것입니다.
막 비전을 보는 사람 막 불을 내리는 사람, 어 막 꿈을 해석하는 사람 이런 특정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아니라 예수 중심 화 내 안에 예수님의 지렁이가 가득 찼다.
난 오늘도 주님과 연합한다. 내 것은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야지.

하늘에 주님의 육체가 계시지만 주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임재하셨으니 나는 하늘에 계신 주님 바라보며 주님을 따라간다.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은요. 누구나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질 수 있고 주님의 칭찬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 보면 우리의 목표는 중생과 새롭게 함이다.
환상 예언 이런 신비적인 요소가 아니라 중생 오늘도 내가 다시 태어나야 되는데 새롭게 되 아 내 마음 아이 새롭게 되어야 되는데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고 성령이 내 안에 오시는 목표다.
이 신학 신앙을 바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이 부어짐 되셨다.
그러니까 성령이 단독으로 우리를 언어인틴 기름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그 십자가 부활 승천 복음 진리 안에서 우리 안에 오는 거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 성령께서도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단독 행동을 하지 않으시는구나.
늘 주님의 그 복음 진리 안에서 행동하시는구나 알게 되죠.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신다.
이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영생의 소망 저희 어머님이 순복음 교회 권사님이신데 지금 요양원에 계시거든요.
94살 이제 곧 천국을 눈앞에 두고 계십니다. 저 목회할 때 막 야 너 방언해야 된다 목사가 방언 안 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저를 계속 막 시달릴 정도로 그랬어요.
어떤 때는 이렇게 신학적인 논쟁도 좀 해보려고 그랬지만 단순하신 분이라 몰라요.
그래서 제가 그 이후로 아 순복음의 장점을 알게 되었어요.
그쪽은 어떤 의도냐면 노인이 있다 성경 암송도 못하고 뭐 성경의 내용도 모르고 흐름도 모르고 아는 거는 그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세요.
요한복음 3장 16절 하고 그리고 찬송가 요 정돈데 그러니까 이런 할머니들은 교회에 오면 늘 주눅이 되는 거예요.
어 저는 글자도 못 읽고 성경도 못 읽고 아는 거는 찬성 밖에 없는데 뭔가 자부심을 줘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방언을 이게 보급한 겁니다.

우리 어머니는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살았어요. 나는 능력 받은 사람이다.
나는 예수님의 예수님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전도사 강도사 때는 막 뭐라고 그랬는데 좀 목사가 되고 조금 원숙해지면서 이제 어머니를 이렇게 인정하고 또 위로하고 이런 쪽으로 갔죠.
근데 요양원에 계시면서 초창기에도 막 다다다다다 해가지고 거기 이제 기독교 요양원에 보내드렸는데도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했어요.
막 이제 그 약간 괴성 같은 이제 그런 소리를 내시니까 근데 최근에는 이제 이렇게 코에다 비관을 이렇게 해서 음식물을 섭취해 드리고 많은 시간 수면 상태시고 기력이 없고 손발도 이제 말려가 말라가시고 이제 진짜 하늘나라를 코앞에 두고 계세요.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 자기는 이제 방언도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지막 자부심이었는데 그것도 이제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게 된 거죠.
제가 많은 걸 느꼈습니다.

우리가 뭔가 이 세상의 것을 나의 자부심으로 살고 어떤 교단에서 그것을 목회적 차원으로 도입했을지라도 그것조차 마지막 순간이면 소용이 없구나 난 이제 방언도 안 되고 기도도 안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굉장히 자신이 초라한 존재가 되었다는 이런 낙침 속에 있었어요.
뭐 위로할 수 있는 게 뭡니까? 어머니 어머니는 평생 응 예수님 중심으로 사셨잖아요.
늘 예수님만 붙들고 예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셨잖아요.
아버님 이제 목사님이고 이제 뭐 작은 교회 하나 이제 하죠.
우리가 응 뭐 아버지랑 목회했지만 목회도 제대로 못하고 하나님 앞에 남은 것도 없고 부끄럽고 지금은 내가 기도도 못하고 뭐 하냐 막 낙심이 됐어요.
어머니 평생을 주님을 위해서 하셨잖아요. 늘 저보고 예수님 생각하며 살라고 그렇게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한 평생 예수님 하고 동행했던 것 그것이 어머니의 재산이고 천국 들어갈 천국으로 가져갈 보물입니다.
그랬더니 이 위로를 받으시는 거예요.

위로할 죄목이 있고 위로받을 내용이 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 예수님과 동행하고 순간순간 살았던 그 기쁨 그것 외에는 우리가 천국에 가지고 갈 것이 없다.
영생의 소망 누구 누가 가질 수 있느냐 이 땅에서 주님 중심으로 살고자 노력했던 그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거예요.
혹시 여러 가지 죄악 속에서 막 그냥 나의 혈기로 나의 욕심으로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에 그 중생의 씻음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다 부질 없었습니다.
정말 저는 사람들 상처 주고 살았습니다. 정말 몹쓸 인간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마지막 순간에도 저는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영생의 소망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상속자다.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 나 부끄럽다.
하늘나라에 주님 앞에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주님 저는 순간순간 주님 뜻대로 살려고 그 주님의 그 고귀한 지정이 세상의 악한 영을 거부하고 나는 이 큰 죄악을 하나님께 범할 수 없습니다.
그걸 뿌리치고 걱정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앞서 보낸 것입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살려고 내 있는 자리에서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완전하진 못하지만 부족하지만 나름 애를 썼습니다.
흉내라도 냈습니다. 이러면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니가 상속자다 이런 위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녹이 있죠 성경에 다른 디테일한 기록이 생략되었어요.
그것도 창세기 앞부분 우리 어머니같이 뒤에 출애굽기 레위기로 못 넘어가시는 분들을 위해서 창세기 앞에다 탁 그냥 못을 박아 놓으셨어요.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데려가셨다. 하나님 에녹 보세요.

뭐 없잖아요. 동행한 거 외에 없잖아요. 하나님 데려가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 어머니 데려가십니다.
아 그런 작은 말에 위가 위로 풍성한 말하는 저도 뭔가 힘 있게 위로할 수 있고 어머니 지금 방언 못하시면 좀 예수님이 좀 좀 싫어하실 것 같은데요.
만약에 내가 이런 신학 이 이 뿌리 깊다면 뭐라고 위로가 안 나오잖아요.
근데 정말 그런 것은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 순간순간 주님하고 동행하려고 했던 순간 어머니 애녹을 보세요.
그냥 동행했더니 하나님 데려가셨다. 그거밖에 없잖아요.
하나님 어머니 데려가십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거의 대화가 불가능해요.
가면 할머니 끝까지 승리하게 하소서 주님 떠나지 마시고 교제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인 거죠.
마지막까지 우리의 소원은 주님과의 연합이다. 8절 이 말이 미쁘다 이 말이 무엇이냐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은 새롭게 하심이다 이런 내용이죠.

영생의 소망 상속자에 대한 그 소망을 이제 성령께서 주신다 이런 내용인데 이 말이 밉보다 기도야 디도 목사야 이 여러 것에 대해 국세에게 말해라.
세상에 유행에 쫓아가지 말고 아 우리가 여기서 좀 뭐 넘어져야 됩니다.
뭔가 압도돼야 됩니다. 뭐 이런 거 하지 말고 성령의 새롭게 되심 내 생각을 버리고 주님 생각으로 가득 차서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을 굳세게 말하라고 그랬어요.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하게 살아야지 선한 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래 주님 말씀대로 살아야지 주님 말씀대로 살아야지 조금씩 주님의 의지를 닮아가는 사람들 이것이야말로 아름답고 유익하다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또 한 주간 살아갈 테요. 저는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야 찬양 소리가 맑은 물소리 우리하고도 같구나 우렁차다.

저는 이제 조금 이런 새로운 찬양은 또 좀 익숙하지 않은데 야 앞서 간다.
새로운 찬양 또 부르고 부르고 정말 좋은 교회다. 우리 노회 목사님들이 다 기도하고 있거든요.
여러분들 아름다운 공동체로 성장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도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가 헤어지잖아요.
그래서 성령의 새롭게 하심 주님과의 교제, 내 안에 계신 주님 나를 통해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베이직한 신앙을 다시 부여잡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시는 우리 세상을 교회 훌륭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찬양 속의 말씀 속에 우리 속에 내주하시고 우리 생각을 주님 생각으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드리옵나이다.
주님 말씀 마음에 새기고 한 주간 살아갈 때에 이제껏 해왔던 것 같이 주님의 사랑을 목표로 주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귀한 한 주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