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817 말씀 마라와 엘림(출 15:22~27)..... 하광영 목사
하나님의 말씀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27절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27절입니다. 찾으셨으면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오늘 우리 예배에 새로운 얼굴이 한 분 오셨네요. 아이고 반갑습니다.
윤경희 원사님 옆에 계시는 혹시 소개하실 수 있나요?
윤경희 권사님이 소개하시겠어요. 이전에 생활 교회 같이 다녔던 안산에서 사는 자매예요.
아 그러셨군요. 예 예 권사님이세요 아 그러시구나.
이여진 집사 이여진 집사님이시구나. 아 반갑습니다.
박수 한번 하겠습니다.
한 분이 오시는 게 얼마나 우리한테 큰 기쁨인지 몰라요.
그렇죠 아 그렇습니다. 요새 우리 이제 성경 읽기 하고 있는데 출애굽기 지났죠.
그래서 이번 주에는 지난주에는 이제 레위기 읽었고 이번 주까지도 레위기 읽는데 아 레위기 참 우리 성경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참 그런 책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러 성도들이 아 다 이렇게 완독을 하시고 읽으면서 묵상도 나눠주시고 그래서 너무 참 감사하고 좋습니다.
이제 제가 이제 이번 주에 오면서 출애굽기 지난 이제 지지난주까지 읽었는데 그중에서 한 복음을 가지고 이제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제 출애굽을 하게 되었습니다.
홍해까지 왔는데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혹은 다시 잡아 가두려고 바로와 애굽 군대가 추격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가르시고 그걸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시고 반면에 그들을 잡으려고 하는 애굽의 군대는 홍해 바다에 전부 수장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죠.
그런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그리고 자비하신 손길 이거 이제 경험한 후에 그 홍해 바다를 건넌 다음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찬양을 했죠.
그리고 나서 이제 거기 뭐 홍해를 바다 건넌 후에 거기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리로 데려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나안을 향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게 하십니다.
광야에 들어와서 첫 번째 진친 두 곳 그곳이 이제 마라와 엘림이라고 하는 곳인데 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걸어가기 시작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진친 이 두 장소야말로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다 이 생각이 들어요.
우리 보통 이제 우리 인생길을 뭐 고해 혹은 광야 길 이렇게 말하잖아요.
우리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 인생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지쳤던 것처럼 마라와 엘림과 같은 것을 만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만나 거기에서 이제 진친 곳은 마라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홍해 바다를 건넌 후에 사흘 동안 걸어갔고요.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서 야 물이 있어요.
그래서 물을 마셨더니 그 물이 써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지명을 마라 쓰다 쓴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하는 거는 그건 뭐 어떤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이잖아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은 뭐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은 해보셨을 거예요.
물을 마셔야 되는데 물을 마실 수 없는 환경에 있다고 하는 것은 뭐 밥을 먹지 못해서 배고픈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모세에게 원망했다 이렇게 2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뭐 마실 게 있어야지 하면서 모세를 원망한 것이죠.
그럴 때 모세는 뭐 했냐 하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5절이죠.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에게 한 가지 방책을 허락하셨는데 한 나무를 지정하셔서 저거다 하고 하나님이 나무를 가리키시자 모세가 그 나무를 가져다가 물에 던졌더니 그 물이 달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단물을 마음껏 마셨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 나무가 무슨 어떤 효능을 가진 나무였다.
그렇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여러분 그건 자꾸 이제 성경을 이렇게 과학적으로 이렇게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는데 뭐 어떤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만 이건 과학적으로 설명 안 되는 일이죠.
왜냐하면 아무리 뭐 그 나무가 효력이 있어도 큰 물에다가 나뭇가지 하나 던졌는데 그 물이 다 변화가 되겠어요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걸 통해서 물을 달게 변화시키신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물을 마음껏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거기서 말씀하셨냐 하면 25절 뒤에 보면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세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걸 통해서 너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라 그럴 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실 것이고 너희를 치료하실 것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라에서 이제 떠납니다. 그래서 떠난 곳이 엘림이라고 하는 곳인데 엘림이라는 말은 큰 나무란 말입니다.
거기 갔더니 종료 나무 그러니까 매우 큰 나무가 70그루가 있었고요.
그리고 거기에 물 샘 12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게 되었습니다.
이 하필 어떻게 숫자적으로 이렇게 딱 맞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죠.
12 그러면 이스라엘 뭐가 생각나요? 12지파가 생각나잖아요.
그렇죠 12지파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보통 몇 명이라고 그러죠?
70명이라고 그래요 70명 아 그런데 어떻게 우연인지 몰라도 이 딱 들어맞아요.
물샘이 12개가 있었고요. 그리고 거기 종려나무 큰 종려나무가 70그루가 있었어요.
아마 우리가 생각할 때 이건 짐작이지만 그 물 샘 12 12지파 한 지파씩 그 물에서 물을 받아서 먹지 않았을까 또 70그루 종려나무 아래에 70명 장로들이 앉아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문답을 시행하지 않았을까 이런 짐작을 하게 됩니다.
여하간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정말 꼭 필요한 곳, 정말 적합한 곳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이죠.
여러분 광야는 가끔 길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어디가 뭐가 있는지 잘 몰라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40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바로 그 엘림이라는 곳으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이 가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그리로 인도하신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라는 곳에도 도착하지만 쓴 것 쓴 물이 있는 곳에도 도착하지만 엘림 종묘나무도 있고 물샘도 있는 그곳으로도 가서 장막을 치고 또 지나갔습니다.
이건 이제 우리에게 말이죠.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참 의미가 있는 그런 장소들이다 라고 생각 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죠 우리 인생 살아가다 보면 마라와 같은 또 만나고요.
또 엘림과 같은 곳도 만납니다. 물이 써서 먹지 못했던 마라처럼 괴로운 시기 눈물 날 일도 만나고요.
또 엘림처럼 모든 것이 잘 되는 시기 성공한 시기 웃음이 떠나지 않는 시기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마라만 있지는 않아요. 그렇죠 마라와 같이 정말 괴로운 때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은 그런 눈물 날 일 괴로운 일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럴 때에도 우리에게 웃음도 주시고 또 기쁨도 허락시고 위로하는 사람도 만나게 하세요.
엘림과 같이 좋은 것을 누리고 쉼을 누리는 때가 있지만 또 엘림과 같은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것이 풍성하고 일이 잘 되는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라와 같은 때도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저도 이제 지난주에 지난주인가요?
우리 저희 교회 성도들이 태안 쪽에 이제 수련을 해가지고 마지막 날 제가 갔는데 우리 소그룹 이렇게 모이면서 아 이런 이제 질문을 하나 하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냐 그래서 이제 제가 그런 얘기를 쭉 했어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랬더니 이제 또 우리 그때 이제 아이들도 같이 가가지고 조별로 얘기를 나누는데 초등 중학생 1학년 아이가 낳아가지고 우리 목사님이 교회하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얘기만 딱 하고 그냥 들어가니까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이 되게 힘들었나 보다.
그래서 제가 가서 부연 설명을 해서 제가 이제 지난번에 제가 이제 우리 대봉 교회 설교도 하고 우리 여기 합신새생활교회 성도들하고 예배도 드리고 그러니까 헷갈리는데 홍수환 씨 제가 했나요?
안 했어요. 제가 목회하다가 진짜 이번에는 그만둬야 되겠다 하고 그 마음을 탁 잡은 적이 있었어요.
너무 힘들고 내가 이 교회에 유익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이제 한 한두 달 계속 이제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죠.
언제 내려놓나 그 생각만 하고 내가 진짜 이번엔 그만둬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말이죠.
홍수환 씨 아시죠? 그 권투 선수 그 사람이 이제 굉장히 큰 면에 이렇게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인터뷰를 하는데 여러분들 잘 아는 것처럼 사전 오기 아프리카죠.
그쪽에 가가지고 이제 가레스키아라고 하는 사람하고 이제 권투를 하는데 한 라운드에 네 번 다운을 당했어요.
본래 네 번 다운 당하면은 티케이오 패예요. 원래 세 번 다운당하면 끝이거든요.
근데 그 경기를 하기 전에 이 홍수환 씨하고 카렌스키아하고 협약을 맺은 거예요.
아무리 많이 다운돼도 하여튼 넘어져서 못 일어날 때까지 그냥 경기 진행한다.
그래가지고 한 라운드에 네 번 다운을 당하는 거야.
그래가지고 이제 딱 다운 당하고 이제 중립 코너로 가잖아요.
그러면 이제 쉬는 시간에 코치가 막 이렇게 수건으로 막 땀 닦아주고 막 부채질을 해주면서 한마디로 이렇게 하는 한 라운드만 더 해.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 난 모르겠어. 다음엔 모르겠는데 난 한 라운드만 더 한다 그래가지고 나갔는데 이 홍수환 씨가 카레아스키아를 막 때려가지고 쓰러지는데요.
보통은 이제 쓰러질 때는 이제 심판이 와가지고 말려야 되는데 말리지 않은 거예요.
근데 거의 쓰러지는데 한 방울 또 때린 거야. 그래도 완전히 케이오승을 이제 한 거죠.
제가 이제 홍수환 씨 그 기사를 읽으면서 마치 말이죠.
하나님께서 나한테 한 라운드만 더 버텨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하나님이 귀에다 대고 하시는 말씀은 아닌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 그래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 하나님이 이 교회에 가라고 인도해 주셨고 지금까지 내가 왔는데 내가 무슨 불미스러운 일을 행하거나 혹은 교회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는 한 내가 더 해야 되겠다 한 라운드만 더 버티자.
그리고 이제 버티다가 보니까 은퇴까지 왔어요. 그 얘기를 제가 이제 수련회 할 때 그 아이가 목사님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데요.
막 그런 얘기만 해가지고 제가 이제 이번에 성도들에게도 그런 얘기 이제 하면서 아 그래 눈물 날 일 많고 억울한 일 당해도 한라운 드만 버텨 그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니가 버티자 그렇게 하다 보면 하나님이 마라를 지나서 엘림과 같은 시기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겁니다.
그게 사실이에요. 그렇죠
마라와 같은 시간 지나고 저희는 이제 은퇴하고 지금은 엘림과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홍성에 내려와가지고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우리한테 꼭 알맞은 그런 장소를 허락하셔서 거기서 이제 이제 은퇴 후에 여유와 쉼을 누리고 있는데 가끔 가다가 이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가지고요. 옛날 같으면은 뭐 제가 이사하는 날까지 새벽 기도하고 가거든요.
근데 새벽 기도는 안 하죠. 그리고 뭐 주일날 설교 준비도 안 하지 여러분들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설교 준비 하고 이제 설교하러 오지 그리고 정말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이제 가지고 있는 거 비교해서는 정말 좋은 집으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지 이런 거 생각하니까요.
제가 이제 전에 그런 말씀드렸잖아요.
저희 요즘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생각할 때 하나는 세밀한 섭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게 우리 삶을 인도해 가시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또 하나는 과분한 은총 내가 행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면서 그래 하나님이 주신 거 잘 누리자 하고 있습니다.
엘림과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게 또 언제 마라가 될지는 몰라요.
그죠 우리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마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엘리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쓰디슨 눈물 나는 시기를 보낼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도 주시고 또 우리를 위로하는 사람도 옆에 붙여주세요.
전에 우리 우리 교회 권사님이었던 분은 그 아들이요.
이제 그 권사님이 아들이 누구 결혼할 처자를 데리고 왔는데 하지 말라고 그랬대.
그랬더니 이 아들이 막 화가 나 가지고 집을 나가버렸어.
그러면 10년 20년 아예 그냥 부모하고 연을 끊고 사는 늘 가슴 아리를 하는 거죠.
아 내가 그때 잘못했나 봐.
근데 그렇게 뭐 만날 때마다 참 아파하시고 힘들어 하시고 그러셨는데 어느 날 이렇게 설교를 듣다가 그런 생각이 드셨데요.
그분에게 동생이 있었어요. 이제 이제 작은 아들이 있었어요.
근데 그 작은 아들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찬양 인도도 하고 자기를 헌신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아들이 있다고 하는 거 갑자기 깨달았데요 아 그래 그 큰아들 때문에 내가 속알이 하는 거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하나님이 너무 힘들지 아니하도록 그런 작은 아들 내 옆에 두셨구나 그래서 위로해 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한편으로는 잘 감당하면서 가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엘림만 있지는 안아요 우리 힘들게 하는 사람, 억울하게 하는 사람 있지만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또 아니예요.
우리 옆에서 힘과 위로해 주는 사람 그리고 같이 기도해주는 사람, 함께 등 두드려주는 사람 있어서요.
감당하고 가는 것입니다. 또 엘림만 있지도 않아요.
우리 인생이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그렇죠 가다 보면 힘들고 괴롭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실수하는 일도 만나잖아요.
그런 마라를 만날 때 엘림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라를 만날 때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마라 만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했어요? 모세를 찾아와서 뭘 마셔야 돼 당신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잖아 하고 모세를 원망했는데 모세는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뭐 했다고 그랬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부르짖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물을 달게 변화시켜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 마라를 만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는 거죠.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면 힘만 들죠. 괴롭기만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 자비가 한 없으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여호와 라파가 되시기 때문에 그 상황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또 그 상황도 변화시켜 주시는 것이죠.
엘림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감사하고 찬송해야 하죠.
사람들은 그러나 대게 거꾸로 하잖아요. 고난을 만나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신세타령하죠. 엘림을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아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하고 가슴을 내밀고 자기 자랑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고난을 만날 때 성도는 여호와께 기도하고 형통한 거 즐거운 거 감사한 일 만날 때 성도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죠.
그래서 야고보서 5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하는데 한 번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야고보서 5장 찾아보세요. 그 말씀과 연관해서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야고보서 5장 13절입니다.
찾으셨으면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고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라 아멘 너희 중에 말은 이 말은 뭐예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하고 묻는 거는 이 전제가 있어요.
예수 믿는 사람도 고난을 당한다는 거예요. 안 당한다는 거예요.
고난 당한다는 거죠.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된다고 이야기를 해 눈물 날 일 없다고 말합니다.
꽃길만 걸어간다고 그래요. 그러나 그거는 성경적인 말은 아니에요.
이 성도가 말하잖아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요.
고난을 당해요. 그런데 고난을 당하는 자는 뭐 하라고 그러시냐 하면 그는 기도할 것이오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리고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하고 말씀하세요.
여러분 이제 이 성경을요.
특히 이제 시편 잠언 같은 데 보면 굉장히 이렇게 축약해 가지고 아주 짧은 그런 단어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어떨 때는요. 이걸 조금 풀어서 써보는 게 되게 좋아요.
제가 이렇게 써보니까 이건 이런 말이에요.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이렇게 말씀하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는 생략된 게 있어요. 고난당하는 자는 괴로워요.
힘들어요. 그렇죠 고난당해서 괴로울 때 힘들 때 그는 기도하라는 거고 또 형통하고 성공하고 일이 잘 되는 사람은 즐겁잖아요.
그런 즐거운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이게 뭐라 그럴까요? 이렇게 병행인데 한쪽은 생략하고 또 한쪽은 생략해 가지고 이렇게 이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런 구절들을 보면 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 야고보 사도가 우리 인생에는요.
크게 말하면 고난 혹은 형통의 때가 번갈아 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괴로운 때 즐거운 때가 그냥 교차적으로 와요.
뭐지 인생 다 그렇잖아요. 그런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이죠.
고난당할 때 마음이 괴로울 때 그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라.
다른 말로 하면 고난이라고 하는 것을 만날 때 그걸 재료 삼아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형통 성공 또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 이런 거 할 때 마음이 즐겁잖아요.
그럴 때 아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가슴을 내밀지 말고 이런 좋은 것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찬송하면서 가라는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는 거예요.
요리사가 말이죠. 여러분도 요리 많이 하시지만 맨날 단 거 맛있는 거만 가지고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는 없어요.
그렇죠 짠 거 쓴 거 매운 거 이거 다 넣어가지고 버무려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내주고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최고의 요리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좋은 것만 주시면 우리는 오만방자해지고 하나님 어딨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 손흥민이 이제 토트넘을 떠나서 미국으로 이적했잖아요.
손흥민이 말이죠. 경기할 때마다 골을 넣는다고 그러면 그는 하나님 의지 안 할 겁니다.
근데 어떤 때는요 헛발질도 하고 절호의 찬스를 놓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몸이 너무 찌푸둥해가지고 도무지 경기에 보탬이 안 될 때도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 의지하는 거죠. 우리 인생에 말이죠.
좋은 일 기쁜 일 잘 되는 일 성공 합격 이런 것만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까요?
안 할 거야 할 거 여러분 할 것 같아요. 참 안 할 거야.
어려움만 닥치고 죽을 일만 생기고 고난만 하던 지긋지긋하게 우리 인생에 찾아온다면 우리 너무 힘들어서 죽을지 몰라.
근데 하나님께서 말이죠. 우리에게 마라도 주시지만 엘림도 주세요.
엘림도 주시지만 마라도 주세요.
그래 가지고 고난을 만날 때 마음이 힘들 때 그걸 재료 삼아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면서 아 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하나님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까 장로님하고 권사님 찬양하셨지만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도록 억울한 일 많아도 주를 위해 참 나의 작은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행복이라 그런 찬송 부르셨잖아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는 찬송도 우리 함께 불렀잖아요.
그래서 고난을 통해서는 이걸 재료 삼아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부르짖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감으로 앞으로 내게 닥치는 또 다른 고난을 힘 있게 능히 감당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죠 고난은 여러분들을 괴롭게 하고 여러분들의 인생을 막아서고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주저앉기 위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에요.
그걸 재료 삼아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붙들고 은혜를 구함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딱 맞습니다. 형통을 왜 주세요 성공을 왜 주십니까?
우리가 잘해서도 형통이 오고 성공이 오고 기쁜 일이 오지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왜 우리에게 허락하세요?
그걸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경험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찬양하며 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시는 것이죠.
고난은 기도할 재료로, 형통과 성공은 찬양의 재료로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인생에 어떤 일 만날지 모르지만 여러분 눈물 날 일 많고 억울한 일 당해도 그거 가지고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 좋은 거 주실 때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좋은 선하신 사랑 깨닫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인생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것처럼 마라도 만나고 엘림도 만납니다.
하나님 그래서 우리는 마라를 만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하고 불평하고 근본적으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신세 타령하지 말게 하시고, 모세처럼 여호와께 기도하고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엘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참 세밀하시고 참 우리에게 선하신 분인가 깨닫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즐거워하는 저희 모두 되도록 주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한 주간도 하나님이 이런 우리 세상살이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신 거 감사합니다.
이번 주간에도 우리가 어떤 일 만날지 모르지만 고난당할 때 기도하고 형통하고 즐거울 때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살아가는 전천후적인 믿음을 가진 성도들 되도록 주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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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 하리로다(2) 엡1:7-14 .... 주희재 목사 (2) | 2025.08.25 |
|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예레미야 14:7-9)..... 류성민 목사 250810 (10) | 2025.08.15 |
| 찬송 하리로다 (엡 1:1-6) ..... 주희재 목사 2025.08.03 (5) | 2025.08.04 |
| 땅의 사람, 하늘의 사람 .... 하광영 목사 2025.07.27 (5) | 2025.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