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찬송 하리로다 (엡 1:1-6) ..... 주희재 목사 2025.08.03

예배하는 사람 2025. 8. 4. 00:29

 

찬송 하리로다 (엡 1:1-6) ..... 주희재 목사 2025.08.03

예 무더위 가운데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에베소서 1장 1절로 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1절 시작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아멘



찬송하리로다 이런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겠습니다.
에베소서는 바울 사도가 3년 가까이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에 있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이 에베소는 그 당시에 로마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드업과 함께 당시 큰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번영하는 상업의 중심지였고 그 로마 속재인 아시아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인구가 한 20만에서 25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그리고 다산의 여신 아데미 숭배의 본산지였습니다.
아데미 여신은 라틴어로는 다이애나 여신 우리가 아데미는 성경에서 보고 다이애나는 이렇게 이렇게 단어로 요새 많이 듣죠.
그래서 이 아데미 여신과 다이아나 여신이 같은 신이라는 거를 알아두면 좋겠고요.
이 아데미 신전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고 그래요.
길이가 한 130m, 폭이 69m, 그리고 지름이 2m가 되는 높이가 18m가 되는 그런 어마어마한 대리석 기둥이 127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에베소 도시의 중요 수입원 중에 하나가 이 아데미 신전이었다고 합니다.
아데미 축제 때 순례자들이 에베소로 몰려들어서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우상숭배 열기가 식어갔습니다.
아데미 신상의 모형을 만들어 파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장사꾼들이 에베소 시민들을 충동질해서 큰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 사도는 3년 가까이 사역하던 에베소를 떠나게 됩니다.
그 기록이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유대인 회당에서 3개월간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강론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배척하자 두란노 서원, 너무나 우리가 잘 아는 서원이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에베소에 바울이 에베소 선교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한번 사도행전 19장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17절로 20 19장, 17절로 20절 말씀 제가 읽습니다.

19장 17절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 즉 은 5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후원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이렇게 에베소 교회가 주의 말씀으로 흥왕해서 영적으로 강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19장 21절 이하에서 그 아데의 여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소동이 이어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를 쓸 당시에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보통 로마 감옥이라고 하는데 에베소서 6장 2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메인 사신이 된 것은 쇠사슬에 메인 사신이 되었다는 건 지금 감옥에 갇혔다는 거.
바울 사도는 감옥에서 자신이 목회하던 에베소 교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갈 수 없으니 편지를 써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합니까?
오늘 1절 상반전에 가서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사도는 보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보내 받은 자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색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께서 바울을 먼저 찾아오셔서 사도로 선택하셨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 뜻이 아니고 예수님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를 예수님 사도의 권위로 쓰고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예수님 말씀으로 읽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 전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설교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바울 사도는 편지 받는 에베소 교인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1절 하반절에 보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성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성도들은 성도라고 해도 그렇고, 성도들이라는 이거는 거룩한 무리.
사실은 한 사람을 가리켜서 성도라고 하는 것은 좀 어폐가 있지만 우리는 거의 그렇게 쓰고 있죠.
누구 성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뜻은 이 성도란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무리 하나님 나라 백성 시민이 된 것이죠. 에베소 시민들이 어떻게 거룩한 무리가 되었습니까?
이들이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거룩한 성도가 된 것입니까?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성도 거룩한 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와 성도가 되었다는 것이 예수님 대속의 죽음으로 죄 용서받아 거룩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보면 평범한 에베소 시민이고 죄가 있는 자들이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 또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신실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신실한 자들이나 믿을 만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신실한 자들로 되어 갈 것이란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자들입니까? 우리 모습도 그리스도 밖에서 보면 평범하고 보잘것없고 죄 많은 사람들이.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무리이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시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신실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예수님 안에서 성도들이고 신실한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또 에베소 교인들은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합니까?
2절에 보면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 편에 서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신 거예요.
우리는 은혜로 값없이 받았지만 구원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시는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주는 희생을 하셨습니다.
또 평강 평화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 원수 관계였던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을 여기서는 평강 평화라고 말하는 거죠.
하나님과의 평화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과의 평화도 가져옵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이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절대자 하나님과의 화목,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의 화목으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으면 처음 받는 것이 사실 이 평강과 기쁨이에요.
근데 이 평강과 기쁨의 근원을 은혜와 평강의 근원을 밝혀줍니다.
바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진정한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안에 있기에 이미 이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에베소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예수님의 아버지만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만 아버지이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양자 곧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해 주셨어요.
이제 하나님은 우리는 감히 아버지랑 불을 싣게 되면 이것보다 큰 특권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아버지이기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부양을 책임지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를 아버지께 아뢰고 또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 그리고 나 개인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믿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 아버지의 형제 자매로서 서로 증거하고 서로 도와야 되는 것이다.
또 에베소 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까?
예수님의 종입니다. 2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님은 주인이시다.
그런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종임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종이기에 주인이신 예수님께 순종해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도 거룩한 무리, 신실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종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정체성은 우리의 환경이나 행동으로 인해 변화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못해도 우리는 여전히 거룩한 무리 속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 신실하지 못해도 여전히 우리는 신실한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보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내 생각과 행동으로 정체성이 흔들릴 때 말씀에 기록된 정체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들로 인해 정체성이 흔들릴 때 말씀에 기록된 우리 정체성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우리 정체성을 붙잡는 순간 다시 정체성에 맞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정체성이 흔들리는 분들 말씀에 기록된 정체성,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 백성 시민임을 마음에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인사말에서 이 에베소 성도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제부터 에베소 성도들을 더 깊은 구원의 진리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구원 진리를 기록하면서 제일 먼저 터져 나온 말이 찬송하리로다.
구원의 진리를 쓰려고 보니까 너무 감격해서 찬송하리로다는 탄성이 먼저 터져 나온 겁니다.
그리고 3절로 14절까지 헬라어 원문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요.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단숨에 써 내려간 것입니다 누가 찬송 받기에 합당한 분입니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찬송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찬송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고 복 주기를 좋아하십니다.
어떤 종류의 복을 주셨습니까?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명예, 권세의 복도 주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복은 이러한 복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땅에 속한 일부 복이 아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신령한 복은 영적인 복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늘에 속한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여기 하늘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이 공간, 푸른 하늘이 아닙니다.
영적 실체들이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의미합니다.
신령한 복은 이 세상에 속한 복이 아니라 하나에 속한 하나님께 속한 복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은 누가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까?
3절 하반절에 보면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여기서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는 편지를 쓰는 바울 사도와 편지를 받는 에베소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시되는 부정, 과거 시대입니다.
부정 과거 시대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할 때 사용합니다.
성도들은 이미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3절 중반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속한 복은 일반 은총 영역이기에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 받을 수 있어요.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하나님은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고,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재물과 건강, 명예와 권세의 복, 자녀의 복 등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신자만이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3절에 보면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
그리고 일반적으로 3절과 절 3절에서 6절은 성부 하나님의 역사, 7절로, 12절은 성자 하나님의 역사, 13절로, 14절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말합니다.
다음 기회에 7절부터 14절을 살펴볼 텐데요. 그러나 이 전체에 있어서 주어가 거의 하나님 아버지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령한 복을 주시는 일을 주도하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주도하셨고 아들 하나님이 실행하셨고, 성령 하나님이 인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신령한 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주셨습니다.
사무엘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어요.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찬송 받기에 합당한 3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돌립시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이 무엇입니까?
이제 4절 5절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절에는 우리를 택하사 오절에는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 양자 자녀로 선택해 주신 것이 신령한 복이다.
우리를 아들로 선택해 주셨다는 복 속에 모든 신령한 복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죄 가운데 죽어 지옥에 가 마땅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선택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선택은 누가 했습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혹시 여기에 동의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하나님 믿기로 예수님 믿기로 예수님을 내가 선택했는데 예 맞습니다.
우리는 전도 받고 많은 고민 끝에 예수님을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멘, 선택의 시기는 언제입니까? 4절에 창세 전 창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자녀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선택했다고 해도 믿기 어렵습니다.
근데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우리를 선택했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죠.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신비가 있고 우리 구원의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가 의심을 위한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신비하심에 감탄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아멘 선택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4절에 사랑 안에서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우리를 자녀로 아들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동기 원인, 근거 기준은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의 장점이 선택의 동기 원인 기준이 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기뻐하시는 뜻만이 우리의 선택의 요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존심이 뭉개지는 것입니다, 우리 자존심이 뭉개짐이 없이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죄로 지옥에가 마땅한 존재로 완전히 우리는 뭉개져야 합니다.
이러한 뭉개짐이 없다면 아직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난 좀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선택하고, 나 예수 믿는다.
이런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죄인으로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절대 절망에 빠졌었습니다.
절대 절망에서 절대 소망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지옥에서 천국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입니다.
선택의 동기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선한 뜻에 있기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마땅합니다 선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아들로 만들어 가시려고 선택하셨습니다.
사절 하반절입니다.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의미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다는 거.
선택의 목적은 죄 많고 흠 많은 우리를 거룩하고 훈훈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아들로 선택해 주신 자녀로 선택해 주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점점 더 거룩하고 흠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예수님을 닮아 거룩하게 사는 삶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에 맞는 삶입니다.
또 선택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성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입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 자녀 양자 삼아 주신 것을 감사, 찬양,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사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고자 나름대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예배하며 거룩한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택 교리는 오용되고 오해되는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선택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선택 권리에 대한 오해와 오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선택 교리에 대한 오해는 전도와 선교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니 복음 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나 선교사가 필요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선택 교리를 주장한 바울 사도의 삶을 보면 해결된다.
선택 교류를 주장한 바울 사도가 누구보다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어요.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되 복음 전파를 통해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사도행전 18장 9절로 11절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8장 9절로 11절로 바울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음에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외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년 6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이게 성 중에 내 백성이 많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라.
많으니까 그냥 너는 아무 말 안 해도 돼. 이게 아니라 열심히 복음을 전하라고.
여기서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여 듣고 믿게 하심으로 구원하심을 보여줍니다.
또 선택 교리에 대한 잘못된 사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자신이 선택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알고자 애쓰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면 열심히 신앙생활해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고민하며 불안에 떨면서 세월을 허비한 사람들도 만나보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선택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선택받지 않았다면 복음을 전해봐야 소용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 때문에 전도하기를 꺼리는 사람도 만나보았습니다.
이것은 선택 교리를 잘못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선택 교리의 잘못된 사용은 선택 교리를 주신 목적에 정반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선택받았는지 알고자 고민하는 것. 다른 사람이 선택받았는지 알고자 고민하는 것은 선택 교리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정반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선택 교리를 선포한 문맥을 보기 바랍니다.
선택교리를 선포한 문맥이 누가 선택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파악한 후에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면 선택 문제로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택 교리를 왜 주셨습니까? 이미 구원받은 선택받은 신자에게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도록 알려주신 교리입니다.
선택 교리의 선포가 무엇으로 시작됩니까? 찬송하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임을 깨닫고 찬송하라는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시되 창세 전에 택하셨다는 비밀을 바울 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공개해 주셨습니다.
왜 공개해 주셨습니까? 이러한 신비한 구원 역사를 공개함으로 탄성을 지르며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또 선택 기회를 왜 주셨습니까?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기에 우리의 구원이 안전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 29절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로 29절입니다.

제가 읽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리니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오.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심에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가 선택해서 예수님께 주신 그들은 아무도 빼앗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가 구원받은 선택받은 증거가 무어냐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구원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선택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구원받고 선택받은 증거는 성경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고, 예수님이 구세주와 주인으로 믿어지는 것이 선택받고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사 의와 생명과 천국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구원해 주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삼위의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삼위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게 되고, 그리고 순종하게 됨으로 닮아가게 됩니다.
자녀는 부모의 좋은 점을 많이 닮을수록 부모를 영화롭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 아버지를 많이 닮아서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대로 하나님을 기뻐 예배하며 깨달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닮아갑시다.
하늘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 들은 말씀, 마음에 와닿은 말씀 붙잡고 잠시 기도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창세전에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녀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그시다 지도로 신신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영원토록 찬송하며 주님만이 피하소서 예배를 주는 하나님을 닮아 듣는 것도 얘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하여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신 것,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신실한 자로 삼아주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뻐 예배드리며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하나님 자녀다운 삶, 하나님 아버지 닮아가며 복음 전하는 삶을 살아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