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합니다… 잠 10:6-14… 임형택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5. 10. 20. 19:23
임형택 목사

 

251019말씀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합니다… 잠 10:6-14… 임형택 목사

하나님 말씀 잠언을 보겠습니다. 잠언 10장 6절부터 14절까지
잠언입니다. 잠언 10장 6절 6절부터 14절까지입니다.

교독하실까요? 교독하겠습니다. 6절.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을 기념할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바른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눈짓 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같이 보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아멘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 새생활 교회에 함께하시고 또 이렇게 한몸이 돼서 한 뜻이 돼서 예배하는 우리에게 그 은혜가 늘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저는 제가 섬기는 숭신 교회에서 욥기를 설교하고 전도서를 설교합니다.
잠언도 잠언은 비슷한 말이 반복되니까 1년에 한 다섯번, 여섯번 이렇게 설교를 합니다.
왜 이걸 해야 되는가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예수 믿고 금방 천국 갈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예수 믿고 이 땅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몇십 년 동안 살아야 되거든요.
그 사는 삶을 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믿음으로 의롭게 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걸 가르치는 것이 잠언이고 전도서입니다.  잠언이나 전도서 같은 성경은요.
종말의 시대 나라가 망하기 직전의 시대 이런 시대는 가르칠 수 없는 말씀이에요.
나라가 내일 모레 망할 판인데 잠언을 가르치겠습니까?
전도서를 가르치겠습니까? 실제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의 유다에 망하는 것을 내다보면서 설교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늘 선지자들은 종말을 바라보며 설교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 늘 뭐가 많았습니까?

회개하라 회개하라 이런 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던 것이지 근데 잠언과 천도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누가 썼는가 누구 시대에 썼는가 누굽니까?
솔로몬 시대 잠언은 중간에 히스기야 왕 때에 이르러서 이렇게 다시 한 번 재편집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성경이 여러 번 이렇게 인쇄되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까 성경을 돌려서 읽었거든요.
자꾸 낡아지는 거예요. 자꾸 잊혀지고 그래서 잠언을 다시 정립을 한 거예요.
그러면 솔로몬과 히스기야의 공통점이 뭘까요? 나라가 평안하고 나라가 부강했고 그리고 멸망이 내다보고 있는 시대가 아니라 백년대계를 꿈꿀 수 있는 시대에요 백년대계를 꿈꾼다.
그러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잘 살 거예요.
지금 잘 살고 있으니 넉넉하고 문제는 다음 세대지 우리 자녀 세대도 이렇게 잘 살 것인가 잘 살아야 되는데 잘해야 되는데 그와 같이 백년대계를 꿈꾸던 시대에 그때에 나온 성경이 잠언이고 전도서입니다.

그러니까 잠언의 전도서를 보면 항상 부모가 자녀에게 말하는 형식이든지 어른이 젊은 사람에게 말하는 형식이든지 지혜 선생이 제자들에게 말하는 형식이든지 항상 이처럼 스승이 제자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그런 문장이 반복됩니다.
이런 것을 봐도 우리가 잠언이나 전도서를 잘 가르쳐야 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몇 달 전에 기독교 잡지사 목회학 신학이 아니고 그 잡지사에서 원고 요청이 와서 제게 뭐를 써주세요 그러길래 제가 아니면 내가 이걸 쓰겠다 그랬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왜 전도사를 설교해야 되는가 그걸 쓰겠다고 그래서 그걸 실은 적이 있어요.
이제 오늘은 같은 연결선상에서 잠언에 대해서 제가 지난 6월 초에 우리 교회 설교했던 내용으로 하겠습니다.
인생은 낡아지기가 쉽지요. 안 낡아집니까? 저는 좀 안 낡아지려고 운동도 많이 했고요.
젊어서부터 식사 조절 이런 것도 많이 했고

어 저녁 여섯시가 되면 넘으면은 일절 간식도 안 먹고 물만 마시는 그런 습관 한 지가 십 년도 넘었습니다.
그렇게 조심해도 낡아지더라고요. 저도 많이 낡아지는 걸 참 느낍니다.
참 건강으로도 그렇지만 삶도 마찬가지 같아요. 삶이 잘살때가 있지만 잘못살 때 순탄할 때가 있지만 뒤집어져서 그냥 풍파를 겪는시대가 있고 삶도 낡아지기가 쉽지 그렇게 낡아지기 쉬운 삶은 어떻게 됩니까?
확 버려버릴까요? 아니죠 잘 꿰매서 옷을 입어야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삶도 잘 꿰매가며 살아야죠 잠언이라고 하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잠자가 제가 일부러 한자도 잘 못하면서 여러분 나눠드린 거 잠자 써놨지요 잠언 그렇죠 예 이게 무슨 잠자인지 아십니까?
저도 한문 세대가 아니에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만 해도 한자하고 한글하고 혼용돼 있었어요.
문장의 한자 단어는 쉬운 것은 한자로 나왔습니다.
4학년 5학년 때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5학년 6학년 되면서부터 가로 넣기로 한자가 나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한글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한글은 우리 또래 중에서는 조금 제가 아는 편인데 저도 한자 세대가 아니에요.
잘 모릅니다. 근데 이 한자가 뭐냐 하면 바늘 잠자예요.
바늘 잠 자인데 바늘은 쇠 침 자를 써야 되잖아요. 근데 이 잠 자는요 대나무 바늘 잠 자입니다.
옛날에는 바늘을 대나무로 만들었었다는 거예요.
왜 잠언의 말씀을 왜 바늘 잠 자로 썼을까요?

제가 힌트를 드렸죠. 삶은 낡아지기가 쉬워서 옷을 잘 꿰매 입으면 입어야 되는 것처럼 삶도 잘 꿰며가면서 살아야 된다.
그런 의미에 요즘에 캄보디아 사태 때문에 상당히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갑니까? 다 젊은이들이에요. 그렇죠 젊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갑니까?
대한민국이 임금이 셉니까? 캄보디아가 셉니까?
비교가 안 돼요. 비교가 안 돼 압도적으로 그러니까 훨씬 더 임금이 더 셉니다.
근데 왜 갑니까? 돈 쉽게 벌려고 고생을 싫고 뭐 하면 돈을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다고 그러니까 고생하나 싫고 돈을 쉽게 벌려고 간 거예요.
생각이 낡아진 것이지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잠언입니다.
하나님이 다 고생하며 살겠다. 인생은 다 고생하며 사는 거야.
수고해야 돼. 고생하며 살아야 나중에 좋은 일도 있는 거야.
이렇게 가르쳐요. 근데 우리는 다 고생을 싫어하잖아요.
고생을 싫어하지 하면서 뭐가 잘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는 젊은 세대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고 다시 꿰매도록 가르치는 것이 잠언이고 전도서에요 그래서 제가 전도서 여러분 선물로 드렸잖아요.
한번 읽어보셨습니까? 안 읽어보신 분들은 다 반품하세요.
거기에 부제를 뭐라고 달았냐면은 젊은이를 위한 복음 어떻습니까?
읽어보니까 누구한테 해당하는 얘기예요? 다 젊은 사람들한테 해당하는 거예요.
잠언도 마찬가지예요. 다 젊은 사람들한테 해당하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젊지가 않은데 왜 잠언 설교를 합니까?
우리도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배워야 되는 거예요.
잠언도 이처럼 잠언이라고 하는 것은요. 삶을 잘 살게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잠언의 전체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의롭게 살아라 그리고 잘 살아라.
잘 살아야 된다. 그래서 잘 산다는 말이 뭔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뭘 보고 잘 산다고 합니까?

이거죠. 돈이잖아요. 돈도 좀 있어야 잘 산단 말 하잖아요.
아닙니까? 맞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잠언도 그런 것을 가르쳐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재물을 주시는가 가르쳐요.
잠언이 근데 그런 것을 알고 젊어서부터 이렇게 훈련하고 이렇게 키워야 되거든요.
삶을 잘 살아왔어요. 우리 잘 살아왔습니다. 그렇죠.
여기까지 잘 살아왔는데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살까요?
보장됐습니까? 아니요. 몰라요. 우리 교회 어른들이 많잖아요.
저희 교회 어른들을 보면서 관찰을 많이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참 삶을 잘 살아봤는데 60대도 잘 살아요.
70대에 가서 자식 때문에 엎어지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어떤 부모는 자기들은 잘 살아왔어요. 그런데 자식들 때문에 부모의 노년기가 다 뒤집어져버려요.
잠언은 크게 훈계와 금언이에요.

훈계와 훈계에는 잠언의 훈계에는 금지와 명령이 있는데 금지는 뭐냐 하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해서는 안 될 것들 금지해야
할것 같은 것들 안하고 하지 말고.
이러 언언 1장부터 9장까지가 훈계입니다. 이 훈계의에서 제일 많이 말하는 것 제일 많이 말하는 것이 뭐냐 하면 여자 조심해라 남자 조심해라 이거에요 이제 고대니까 다 여자 조심해라 이렇게 말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결혼한 자녀에게 다 케이스 케이스에 따라서 말을 해요.
이런 것들이 얼마나 빈도수가 많냐 하면 거의 열번 중에 한 네번 다섯 번은 이런 문제를 다뤄요.
왜 그런 문제를 다룰까요? 왜 그렇습니까? 그런 문제로 인생을 엎어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삶을 돌이켜 볼 때 그런 사람들이 잘 엎어집니까?
안 엎어집니까? 저는 엎어진 거 많이 봐요. 오늘 아침에 뉴스 하나 재밌는 거 봤네요.

뭐냐 하면은 왜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가 뭐 이유가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왜 남자는 오래 못 사는가 한 여자만 사랑하는 남자가 더 오래 산답니다.
바람 피운 남자들은 오래 못 산대요. 근데 그게 유전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인데 이번에 발표가 난 게 그런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런 것을 보면서도 짐언의 말씀이 옳구나 이런 게 하나하나 검증이 되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훈계는 금지한 명령인데 삶을 잘 살다가 엎어 먹지 않으려면 하지 말아야 되고 명령은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꼭 해야 되는 거 꼭 그렇게 살아야 돼요.
그게 명령이에요. 잠언 오늘 10장이잖아요. 10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요.
금언이에요. 금언은 뭐냐 하면 짧은 경고예요. 긴 설교가 아니고 짧은 경고 우리 같으면 속담 같은 거 수수께기 같은 거 이런 것들이에요.
이 금언들 이 금언에서 이 금언을 시작하면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말하는 첫 번째 주제가 뭔지 아십니까?

첫 번째가 뭐냐 하면 금전 문제 금전 문제 한마디로 돈 조심해라 이거에요 그런가 하면 1장부터 9장까지 1장부터 9장까지는 훈계입니다.
긴 설교예요. 부모가 자녀들에게 조심해라 하면서 첫 번째로 말하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가 가끔 가끔씩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친구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 이게 첫 번째 유대인의 문학적인 사고에서 첫 번째로 말한다는 것은 제일로 중요한 겁니다.
인생을 잘 살다가 엎어 먹지 않으려면 친구 조심해야 됩니다.
사람들 보세요. 사기당하면 누구한테 당합니까?
다 아는 사람한테 살인 피의자의 3분의 2는 지인이에요.
모르는 사람에게 길 가다가 재수가 나빠서 왠지 죽었다 이런 사람은요.
30%도 안 돼요.

나머지는 다 아는 사람한테 목숨 빼앗겨요 통계가 나와 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사람 조심해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얘긴지 알 수 있는데 근데 이 훈계에서 사람 조심하라고 하면서 첫 번째 그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뭐와 관련 됐냐 하면 돈 문제입니다.
돈 문제와 관련되어. 그러니까 야 이거 하면 한 탕 벌 수 있어.
야 이거 투자해봐. 이거 투자하면 일억만 투자하면 한 달에 삼백이다.
얼마나 이자가 셉니까? 여러분 같으면 야 1억만 하면 한 달에 300이 돼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대답 안 하십니다. 하고 싶으세요?
그거 한다는 사람은요. 돈을 거저 먹으려는 사람들이에요.
누가 1억 냈는데 300을 주겠어요? 그렇죠 속여먹기 위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자를 그렇게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줘요. 속이기 시작하는 거지 이제 부모가 그런 얘기하는 거예요.

적용을 하자면은 그래서 사람 조심해라 하면서 첫 번째 얘기하는 거 그 내용을 보면 이 재정 문제 금전 문제 경제 문제 돈 버는 문제 이런 문제 저는 이런 걸 이렇게 가르쳐도 우리 교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누가 제가 그런 얘기 하거든요. 목사가 돈을 꿔달라 해도 돈 거래하지 마라.
이자 이자 받아먹으려고 하지 마라 그래 우리 또 줄이게 합니다.
근데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저 사람은 누구한테 돈 빌려줄 사람이 아니에요 저도 그 사람이 밥 먹자 그러면 아이고 밥 안 먹고 싶어요.
꼬장 부린 거 보면은 근데 그런 사람이 당하더라고 당하더라고요.
당하고 나중에 시험 드니까 당하고 나니까 나를 원망해요.
내가 가르친 말은 안 듣고 왜 거기에다가 돈을 줘서 당해놓고 왜 저를 원망합니까?
아이 참 목사가 이런 거 보면 참 좋은 직업이 아니에요.
가르쳐주고 당하니 말이에요 이렇게 원망하더라. 부모 세대가 자녀들에게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이만큼 잘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될것이라 보장되겠습니까?
없어요. 어떤 순간에는 어떤 사람은 건강으로 무너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식 때문에 무너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재앙 때문에 무너질 걸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전도서는요. 알 수 없는 미래를 잘 대비하라고 그래요.
전도서가 의외로 험하다 그러면서 대비해라 미래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근데 미래에 대비하는 방책으로 첫 번째가 오늘을 의롭게 살아라.
오늘을 잘 살아라 이게 제일 중요해요. 두 번째는 어려운 이웃들을 많이 돕고 살아라.
세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은혜를 구하고 살아라.
세 번째 그게 그게 미래를 대비하라는 거에요. 근데 저는 이 말씀 묵상해 볼 때 딱이 맞아요.
그 말이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맞게 돼 있지 돼 있는데 제가 그 말씀을 묵상을 해봐도 그 말이 맞는 말인 거예요.
오늘을 잘 살아야 됩니다. 의롭게 그 의롭게 잘 살아라고 말하는 것이 잠언이라는 거죠.

자문의 두 번째 주제는 뭔가 언어 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것인데 사람이 인생을 잘 살려면은 금전 관계도 잘 알아야 되지만은 뭐가 더 중요할까요?
말이 중요합니다. 말 조심하고 말을 덕스럽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말 속담에 말 한마디로 얼마나 갚아요 천냥이면 얼마나 될까요?
조선시대에 한양의 기와집 한 채가 500냥이었답니다.
한양의 기와집 한양의 기와집 엄청 많았을 것 같으지요.
옛날 사진 보니까 한양에도 초갓집 많았더라고요. 근데 한양의 기와집을 두 채를 가지고 있어 어마어마한 부자에요 그게 천냥이에요
말 한마디로 기와집 두 채 값이야. 요즘 말로 하면은 말 한마디에 서울에 있는 아파트 두 채다 그런 말과 같은 거예요.
그렇게 뭐가 중요합니까? 말이 중요하다면 잠언의 부모는요.
자녀들에게 그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첫마디로 6절 같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악인은 왜 하는 일이 안 되는가 왜 잘 되다가도 엎어 먹게 되는가 뭐 때문일까요?
말 때문에 엎어 먹게 되어있다. 왜 의인은 잘 되는가 왜 의인은 복을 받을 것인가 라고 말했을 때 의인은 뭐가 좋았어요?
말이 좋았다는 거에요 그만큼 뭐가 중요합니까? 말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잠언 12장 14절 보세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13장 2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예. 어떤 사람에게 복록이 많다 이 말은 뭐예요? 복받을 일이 많다라고 말했을 때에 뭘 가지고 얘기하는 겁니까?
입의 열매 입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말이죠. 말 말 내용도 중요하고 말씨도 중요한 거에요  말이 문제입니다.
잠언은요. 그처럼 말을 복스럽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지혜자다.
명철한 자다 이렇게도 말합니다. 반대로 언어 생활에 잘못된 사람들은 화를 당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그런 경우에 화는 뭐예요?
하나님의 심판이지 제가 6절부터 14절까지 같이 보자고 해서 읽었는데요.
모두 아홉절입니다. 아홉절 안에 모두 말 때문에 망할 것이다.
이 말이 몇 번 나오냐면 네 번 나와요. 8절에 입이 미련한 자가 멸망할 것이다.
10절에 입이 미련한 자가 멸망할 것이다 13절에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해서는 채찍이 있다 이렇게 말해요.
14절에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그러니까 입이 미련한 사람은 말이 잘못된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고, 입이 미련한 사람은 멸망에 가깝다.
망할 것이다 이렇게 경고하고 있죠.

왜 이렇게 여러 번 얘기했을까요? 왜 이렇게 여러 번 얘기하겠어요?
중요하기 때문에도 그래요. 근데 또 하나는 말 때문에 잘못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윗이 사울왕 때 도망 다녔습니다.
그 무렵에 나발이라는 사람 봤는데 그는 부자였어요.
양이 삼천 염소가 천 마리였는데 그 목동들이 다 돌보지를 못해요.
근데 다윗과 그의 동료들이 가까이 있으면서 지켜줬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양털을 깎을 때 양털을 깎을 때 그때에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좀 도와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근데 나발이 매몰차게 거절하지요. 뭐라고 얘기하냐면 요즘에 자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들이 있다 이런 말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하니 주변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다니는 그런 종들이 있다.
누구를 조롱하는 것입니까? 다윗을 조롱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요. 다윗이 화가 나서 자기 부하 사백 명을 데리고 나발을 죽이러 갑니다.

근데 그때 짠 하고 중간에 나타난 사람이 나발의 아내가 나타나 그가 말을 얼마나 지혜롭게 합니까?
그래서 나중에 다윗이 나발에게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그 분노를 탁 가라앉히죠 누가 가라앉힌 거예요?
나발의 아내죠 나발 나발 그 뜻이 뭐냐 하면 어리석은 자 그런 뜻이잖아요.
미련한 자 그런 뜻이에요. 유대에는요. 그 이름을 누가 지어줬을까요?
부모가 부모가 왜 이렇게 지었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자식이 태어나면 이 미련한 놈 이렇게 지어주실랍니까?
유대인들은 그렇게 지어요. 그게 유대인의 관습입니다.
유대인들은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역사적인 사건이나 아기가 태어났을 때 성장기에 아기가 보여주는 어떤 특징 이미지 그런 것을 가지고 이름을 붙였어요.
우리는 안 그렇죠 미래적으로 짓잖아요. 앞으로 이런 사람이 되라.
근데 유대인들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발이라고 하는 이름을 누가 붙여주게 됐다고요?
부모가 그런데 부모 눈에 어떻게 보였다는 얘기예요 내 자식이지만 좀 덜 떨어진 놈 같아.

좀 미련하게 보이는 거에요 부모 눈에 이렇게 이 자식 니 나발해라 이렇게 이름 붙였어요 제 말이 거짓말 같으세요?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니까 우리도요. 근대에 들어와서 이름을 이렇게 폼나게 붙였지 옛날에는 마당쇠야 이름 다 그렇게 붙였어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도 네덜란드 가면은요. 지금도 이름이 성이 니 궁뎅이 이런 성들이 있어요.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이름이 성이 없었답니다. 근데 독일이 점령해가지고 호적 영을 하면서 성 니성이 뭐냐 없다고 그러니까 이 자식아 니 성도 없어 그래 네 성은 니 궁뎅이다 이렇게 했어 그게 그냥 성이 돼 버렸어요.

그러니까 나발도 마찬가지예요. 나발 나발이 어렸을 때에 부모가 보고 이름 붙여졌는데 다윗이 만났을 때 이때는 나이가 상당히 했을 때란 말이에요.
근데 이때도 나발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때도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무엘 상 25장 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아내는 총명한데,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족속 이었더라 아내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는데,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했다.
미련했다는 거죠 금언에는요. 어리석은 자를 말할 때 어리석은 자의 단계를 네단계로 말합니다.
그것을 세밀하게 구분하기는 쉽지가 않은데, 단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 패역한 자 그다음에 말이 조급한자.
이 중에 제일 나쁜 게 뭘까요? 말이 조급한자 말이 조급한 게 뭘까요?
말을 홧김에 쉽게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난다고 화난 말투로 말을 쉽게 쉽게 뱉어버린다.
말이 조급하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잠언 19장 20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다. 네가 말이 조급한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누가 났다는 거예요?
미련한 것은 좋은 겁니까? 나쁜 거잖아요. 근데 미련한 건 나쁜 건데,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 뭐라고요?
말이 조급한 게 뭐예요? 마음이 끓는 대로 말을 쉽게 쉽게 화가 난다고 말을 허투해버리고, 또 질투가 난다고 해서 질투의 말을 쉽게 해버리고 이런 것이 말이 조급합니다.
얼마나 나빴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니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뭐가 있어요? 희망이있다. 그만큼 말이 조급한 것을 뽑을 수 있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조심해야죠.
다윗이 그렇게 요청했으면 좀 넉넉히 가진 자로 좀 도와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사람이 그런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하든 들어주든 그것은요.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의 지혜가 있는 사람은 도와줄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나발처럼 조롱하면서 거절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말이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것은 어디서 나옵니까?
마음에서 말이 지혜로운 것도 마음에서 나오고 말이 어리석은 것도 마음에서 나오고 잠언이 그렇게 가르쳐요.
마음과 말을 잘 구분하지 않습니다. 서로 교차하면서 사용해요.
같은 동격으로 쓴다 이 말입니다. 나발이 그런 것이죠.
마음이 미련해서 말을 해도 미련한 것이죠

그래서 사무엘상 25장 38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심에 그가 죽었다 이렇게 말해요.
누가 치셨다고요? 하나님이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고 하나님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예요?
맡겨버리는 거지 그래서 히브리어 구약을 쓴 히브리어 에는요 믿는다는 단어가 없습니다.
아예 헬라어는 있어요. 믿는다는 단어가 있어요.
그래서 히브리말에서 믿는다는 뜻으로 쓰는 대부분의 단어는 뭐냐 하면 안다.
야다 동사에요 그래서 호세아가 그렇게 말하잖아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렇게 말하잖아요.
이런 경우에 안다는 말은 여호와를 믿자 그런 말이에요.
그다음에 많이 쓰는 거 빈도수는요. 한 구약 전체 해봤자 한 마흔 번 안 돼요.
그다음 많이 쓰는 것이 뭐냐 하면 맡긴다. 그러니까 맡길 줄 아는 것이 뭐예요?
믿음이지요. 기도하고 걱정하고 기도하고 염려하는 게 믿음이 아니고 기도했으면 뭐 해야 됩니까?

맡겨야되요. 맡길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맡겼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됐어요.
그러면요. 그러면요. 그런 줄 알고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라고 한국 사람들이 잘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받아들이고 사는 거예요.
내 삶은요. 잘 살려면은 잘 받아들이고 살아야 되요 전도서를 읽어보셨으면 아실 겁니다.
전도서의 메시지를 세 가지로 말해요. 첫 번째는 삶이 허무하지만 잘 받아들이고 살아라.
거부하지 말고 비관하지 말고 니 삶을 싫어하지 말고 자기의 삶이 어떠하든 간에 그 삶을 존중하고 자기를 존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살아라.
이게 첫 번째예요. 두 번째는 삶이 그럴지라도 기쁘게 살아야 된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전도서는 허무라는 말이 38번 나오지만은 기쁘게 살아야 된다는 말이 한 13번 정도 나옵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천년의 갑절을 산다고 해도 기쁨이 부족하다면 나는 그것도 헛되다고 하겠다 이렇게 말해 그만큼 뭐예요?
뭐가 중요해요? 뭐가 중요합니까? 기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나중에 집에 돌아가시거든 찾아보십시오.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은 저는 주례 하면은 항상 주례사 본문이 전도서 9장 9절이에요.
이 헛되고 헛된 날 이 이 모든 헛된 날에 하나님이 네게 주신 이 헛된 날에 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어떻게 살아라 재밌게 살아라.
재밌게 살아라 이게 전도서가 주는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삶이 허망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해라 뭐가 잘돼서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허망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삶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된다.
이게 전도서의 최종적인 메시지입니다. 경외 이런 것을 볼 때 삶을 잘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 하나님의 주권 인정합니까?
그러면 맡길 줄 알아야 돼요. 그게 믿음이에요.

걱정하고 분을 끓고 이게 믿음이 아니라 맡겨버리고 평화를 누리고 살고 기쁘게 사는 거 그게 믿음이에요.
목사님 맡겼다가 내 뜻대로 안 되면 어떡합니까? 안 될 수도 있어요.
안 되는데 그 삶도 받아들고 살아야 되는 거예요. 삶을 보세요.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살지만 기도하고 나니까 전부 내 뜻대로 됐습니까?
아닌 것도 있잖아요. 아닌 게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막 끓습니까? 또 하나님이 인도하시리라 하고 맡기지 않습니까?
맡길 줄 아는 거지요.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도 우리에게 말했죠. 오직 의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좋을 때만 믿음으로 산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다고 해도 무화과 나무 열매가 없다고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그게 믿음이에요 다시 본문에 돌아가서 말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뭐가 중요한가 먼저는 마음을 고치는 게 중요하죠.
마음을 잠언 16장 32절을 보세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뭐를 다스리라는 뜻입니까? 마음을 고대에서는요.
성이라고 하는 말은 국가예요. 국가 그냥 우리 뭐 진주성 남한산성 이런 성이 아닙니다.
도시 국가에 우리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성은 도시 국가입니다.
그러니까 한 나라를 정복한 자보다 낫다. 누가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되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화가 날 때 마음을 잘 다스리십니까? 그러세요? 화가 나지만 마음을 이렇게 잘 수그리고 하십니까?
아 저도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실패하고 또 하고 실패하고 또 하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자꾸 우리가 좋아져 가는 것이지요.
자꾸 나아지는 것이지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뭐예요?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심으로 다스림으로 인해서 우리는 말을 덕스럽게 할 수 있고 따뜻하게 할 수 있고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중요합니다.
말씨도 중요해요. 말씨는요. 마음의 변화와 더불어 써야 되는데 마음은 안 그러는데 말이 죠명스러운 사람이 있죠.
아 있어요. 절대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꼭 말투가 이상하게 좀 차가운 사람들이 있어요.
말을 잘못 배운 사람들이 그러니까 같은 말을 해도 따뜻하게 말을 해야 되고 같은 말을 해도 정중하게 말해야 되는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말투.
이런 내용물은 좋은데 그릇이 나쁜 것이죠 음식은요.
내용물도 잘 맛있어야 되겠지만 그릇도 폼나면 더 맛있죠 더 좋죠 아 그렇습니다.
저도 그래요. 저 혼자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에 그라인딩 해서 혼자 드립해서 마셔도 저는 꼭 잔 받쳐서 제가 좋아하는 컵 이렇게 해가지고 돌아가면서 한 한 달은 이거 다음 달은 이거 그래 안 하면 안 쓰잖아요.
안 쓰면 나중에 누구 줍니까? 누구 줍니까? 며느리 줄까요?
며느리가 좋아할까요? 안 좋아 안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우리 제 아내 보고 지금 이제 저만 마시지만 제 아내 여보 좋은 것은 진열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써야 되는 거야.
애들 줘봤자 애들 좋아하지도 않아 다 내버릴 거야.
이거 우리가 쓰자 이렇게 말하면 저는 그게 뭐냐 하면 저가 저를 대접하는 거예요.
야 니가 아무리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마셔도 야 머그잔에 니가 니를 그렇게 대접하지 마라 정중하게 받치고 이렇게 되지 저는 어디 가서 아 뭐 밖에 나가면 종이컵도 먹지요.
근데 심방 갔는데 종이컵에 준다 그런 예가 없지만 저 기분 나쁠 것 같아요 정중하게 주잖아요.
뭐가 그렇다는 거예요. 말투가 그렇다 그게 중요합니다.

잠언 15장 28절을 볼까요? 의인은 어떻게 말하는가 같이 보겠습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하는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왜 웃으세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악인들은 왜 말을 막 쏟아내는가 왜 막 쏟아낼까요?
할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요 그래서요. 좀 화가 끓을 때는 말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어 좀 얼굴이 냉 하더라도 어 저 화난 투가 좀 비쳐져서 어쩔 수 없을지라도 화가 났을 때는 좀 말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좀 마음이 누그러지면 그때 말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저한테 주례 부탁하면 1시간 반짜리 이제 90분짜리 교육을 세 번 받아야 주례 해줍니다.
주례 교육을 처음 오라고 그러면 안 오려고 해요. 아 이래요 근데 한 번만 오면 아이고 목사님 이런 것도 모르고 장가 갈 뻔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교환 좀 줘요. 교환 없어요. 제 타이틀만 적어놓고 그 내용은 전부 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교육하다 보면 제가 그런 얘기하죠.

부부 싸움에 대해서 부부싸움을 잘하는 비결 이런 것도 가르쳐줘요 부부 싸움 잘해야 되잖아요.
어떻게 해야 부부 싸움을 잘하는가 그렇죠. 부부 싸움 잘하려면 평소에 자잘한 대화를 잘해야 됩니다.
평소에 남자들은 이거 못해요. 자잘한 대화를 남자는 결론을 원합니다.
결론만 들으려고 해요. 여자들은 결론이 중요하지 않아요.
장로님 아셨죠? 여자는 자잘한 내용이 중요한 거예요.
이제 그거 들어줄 줄 알아야 되고 거기에 맞장구 쳐주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남자들은 대개 잘 못하는데 그거 잘해야 부부싸움이 적습니다.
그다음에 결론을 쉽게 보지 마라. 아니라고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라.
근데 넘어가다 보면 나중에 생각이 변합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담임 목사 부임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다음에 이제 담임 목사님 오시면 장로님도 그렇게 하십시오.
제가 뭐 제안하면 오케이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예요.
팔 년 동안 제가 오죽했으면 그렇겠어요.

예배 때 숭신교회는 임명택 목사가 하자고 해서 되는 게 없습니다.
지나놓고 보니까 안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결론이에요.
근데 왜 제가 말하면 다 왜 거절했을까 두 달 후 두 달 후면 꼭 장로님들이 자기 입으로 목사님 그거 합시다 꼭 그렇게 얘기했어요.
딱 한 가지만 6개월 걸렸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담장 담장이 빨간 벽돌로 한 2미터 20 됐거든요.
제가 이게 형무소 담장이지 이게 교회 담장이냐고 그랬었습니다.
옛날에 담장 헐자고 그거 반대 많이 당했어요. 반대하면 전 안 합니다.
본래 아 반대하면 하지 말자고 않했어요. 그게 6개월 걸렸어요 6개월 지나니까  담장 고칩시다.
아 그래요? 저 그때는 여쭙습니다. 장로님 왜 제가 하자면 안 하고 왜 꼭 몇 달 지나서 하자고 하십니까?
대답을 못해요. 왜 그랬을까요? 제 결론은 고정관념이에요.

그러니까 듣고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일리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중에 와서는 자존심 내놓고 아 목사님 그거 합시다.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근데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때문에 부부 간의 대화에도 여보 그거 아니야 이겨먹지 말고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교육할 때 뭐 얘기해서 거부당하면 하지 마라. 근데 나중에 도 봐 나중에 시간 지나고 보면 다 하자 그럴 것이다.
그 생각을 이제 부부싸움을 잘해야 되는데 잘하는 비결 뭐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조심할 것들이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이제 이런 것을 봐도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사람이 할 말을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렇게 어 교인들에게 지금도 어떤 분을 기도하고 있는데 누구한테 권면하거나 충고해야 될 일 있잖아요.
그럼 저는 두 주 동안 기도합니다

새벽마다 하나님 아무개에게 제가 권면을 해야겠는데 하나님 그 아무개가 거절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오.
두 주 동안 기도합니다. 왜 마태복음 보세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걸어주지 마라 그랬잖아요.
여기서 거룩한 것과 진주가 뭐겠어요? 그 앞에 말하는 비판의 말 훈계의 말을 말하는 거에요.
훈계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뭐가 됩니까? 개한테 거룩한 것을 주는 꼴이 돼버리고 돼지한테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꼴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기는 해야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기도해야지 두 주간 기도하고 있다.
이제 부부 싸움할 때도 제가 싸울 일이 있으면 한 번씩 기도해요.
하나님 이 얘기는 한마디 해야겠는데 하고 기도합니다.
어떨 때는 제 아내가 막 잔소리 하잖아요. 그러면 대응 안 하고 그냥 기도해 버립니다.
그러면 딱 멈추기도 해요. 항상 멈추는 건 아니지만 기도가 중요합니다.

근데 두 주를 해도 마음에 확신이 없습니다. 평안하지가 않아요.
그럼 한 주를 더 기도합니다. 그래도 마음에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한 달까지 기도해요. 한 달 기도한 뒤에는 얘기를 하든지 안 하든지 확신이 안 서면 안 해버려요.
하나님 저 사람은 제가 감당할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맡겨버립니다. 어떤  대개는 한 두 주 지나면 해요.
근데 잘 받아들여요. 근데 지금도 어떤 분을 위해서 두 주째 기도하고 있어요.
사람이 그래요. 사람이 이처럼 지혜자로 산다는 게 쉽지가 않은데,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므로 지혜가 있다는 것이거든요.
특히 말을 깊이 생각해도 기도 가운데 깊이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하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새생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가운데 굳건히 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새생활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여 이처럼 진리를 따르고 하나님 교회를 새롭게 하고자 이렇게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의 새생홯교회를 축복하시고 하나님 그 기초가 잘 다져지도록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잠언의 말씀, 전도서의 말씀, 이 지혜로운 말씀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 말씀을 하나하나 깨닫고 배워가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삶을 잘 살아내게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