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412말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빌립보서 4장 6-7절)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7절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께서 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유명한 말씀이어서 성경에 많은 유명한 말씀들이 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 중에 하나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데서로니가전서 5장 16절, 17절, 18절 말씀 그죠?
우리 주보에 보면 여기 앞에 그렇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렇게 우리 표처럼 이렇게 여기다가 기재해두었는데요.
이 말씀하고 그냥 똑같은 말씀입니다. 사실은 오늘 이 보려고 하는 말씀이 우리 본문을 다시 보면요.
4절에 먼저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그랬죠.
그다음에 이제 또 뭐라고 합니까? 기도하라고 하죠.
그렇죠 6절에서 기도하라 그러는데 우리 이제 빌립보서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바울이 보낼 때보다 빌립보서를 보낼 때가 훨씬 이제 뒤에 보낸 편지인데요.
아마 그래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는가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렇게 이제 표현하고 있는데, 데살로니가서에서는 여기서는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리라 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해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이제 감사가 충만한 모습 그렇죠 평강이 충만한 모습 다 이제 사실은 같은 건데요.
그래서 이 글씨 바울의 마음속에 얼마나 이렇게 선명하게 늘 간직하고 있었던 아주 중요한 기도의 제목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거죠.
그러니까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이 빌립보서에서도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렇게 살아가려고 할 때에 우리에게 어떤 신앙적 어떤 면에서는 투쟁 그렇죠 신앙적인 자태가 잘 드러나야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그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실천적으로 감당해 가야 되는가 하는 부분까지도 이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고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앙적 정서 속에서 늘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데 테살로니가서도 마찬가지고 여기 빌립보서 말씀도 마찬가지인데요.
둘 다 명령으로 이렇게 주어져 있습니다. 명령을 할 때는 거기에 맞는 또 약속이 있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 너희가 이렇게 항상 치지 말고 기도해라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고 이렇게 명령하는 것은 너희가 항상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그러니까 이제 말하자면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우리가 희망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 여기에 동시에 주어져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기뻐하라 하고 명령할 때는 항상 기뻐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시는 것이 전제돼 있는 겁니다.
이것이 약속으로 주어져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기도하라 그러면 기도 항상 기도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약속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죠 범사에 감사하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함과 평강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또 주어져 있다는 것도 잘 생각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사도는 조금 강력한 표현을 써서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고 우리는 그 명령에 1차적으로는 순종해야 되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 정도 이렇게 명령할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히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전제가 우리에게 확고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래요. 네 그러니까 이게 우리한테 감당하기 어려운 그런 명령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난주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을 얘기를 좀 했었지 않습니까?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같으면은 그 사람들 마음속에 이런 어떤 신앙적 의식과 어떤 감정의 상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그게 도리어 이상한 거 그게 안 나타나는 것이 불가능한 겁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것이 우리의 심령에 계속해서 나타나게 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기본적으로는 주도적으로 역사하셔서 그것을 감당해 가세요.
그러니까 지난주에도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가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 가고 또 이런 신앙적 어떤 정서 속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항상 생각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실 이렇게 잘 생각하게 되면은 사실 이런 어떤 신앙적인 모습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가능성이 또 더 높아지는 것도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우리를 이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해 가시는 그 주체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때때로 이렇게 중간중간에 우리는 실수도 하고 막 그렇죠 허물도 남기고 그러는데 그런 것들을 다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궁극적으로 그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보고 싶어 하시는 그 아름다운 모습이 있으세요?
그거 우리한테 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그 모습이 나타나도록 우리를 인도해 가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잘 생각하고 그렇죠 그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붙들면서 이 명령 앞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림없이 또 세우는 우리 우리에게 주어진 그 의무의 측면을 이제 우리도 한 번씩 생각하면서 이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애를 써 나가야 되겠다 하는 것도 계속해서 생각을 해 봐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빌립보에서서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이 빌립보 우리가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개척한 교회죠.
그렇죠 원래 아시아를 이렇게 중심으로 해서 소아시아 중심으로 해서 선교를 하려고 하다가 바울이 방향을 바꿔서 바로 그렇죠 드로와에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빌립보 첫 성에 도착해서 이제 개척을 하는데 잠깐 개척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사도행전 16장에 나오죠. 처음에 개척할 때 만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여성분이세요. 되게 부유하신 분 같아요. 자주 옷감을 이렇게 파는 분이세요.
자주색 옷을 판다고 하니까 굉장히 고위층들한테 아마 장사하시는 분 같아요.
여성 경영 CEO 같은데요. 그런 분을 만나는데 바울이 이제 그곳은 해당이 없으니까 그 유대인들이 많이 살지 않았어요.
해당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도처를 이렇게 찾아다니다가 사람들 이렇게 모아놓고 설교를 이렇게 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 그곳에 있었던 리디아가 말씀을 듣고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을 자기 집에 데리고 가고 가족들이 다 예수님 믿게 되고 그 루디아를 중심으로 해서 빌립보 교회가 개척이 되죠.
그리고 이제 바울이 또 기도하러 나갔다가 그 누구를 발견하냐면은 뭐죠?
그 귀신 들린 사람 귀신 들린 사람 그 사람 이용해서 이렇게 점도 치고 했던 그러면서 돈 벌고 했던 그런 이제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근데 바울이 그 귀신 들린 사람이 계속 괴롭히니까 그렇죠 그냥 쫓아버리는 거예요.
쫓아내니까 그 사람과 함께 그걸로 먹고 살던 사람들 손해가 이제 생기게 되니까 바울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 해서 바울을 고소하면서 결국 바울이 목에까지 갇히게 되잖아요.
그때 보면은 뭐 바울이 매로 바울의 옷을 다 벗겨서 아마 채찍으로 때렸던 것 같아요.
바울이 고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할 때 아마 이 사건도 그 속에 포함될 텐데요.
아마 첫 번째로 바울이 매지를 당했던 사건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옥에 갇혔는데 바울이 신라와 같이 있잖아요.
이렇게 착고를 세웠다 이러는데 아마 그냥 감옥에다가 이렇게 넣은 것이 아니고 발목을 그 새사살 같은 걸로 이렇게 딱 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굉장히 좀 가혹하게 대한 것 같아요.
그냥 가두는 정도가 아니고 바울이 그러고 있을 때 밤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옥문이 열리고 그 차고가 다 풀어지고 그것을 그 간수가 지키던 간수가 보면서 아 죄수들이 도망갔는가 보다 해서 자기를 하려고 그러면 죄수가 도망간 거 보면서 근데 바울리과 신라가 죽지 마라 우리 도망 안 간다 하고 얼른 이제 막잖아요.
그래서 그 간수가 그 전체적인 상황을 다 이제 경험하면서 큰 어떤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가지고 깨끗하게 씻고 음식을 대접하고 나서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데요.
다시 감옥으로 데리고 온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성경 뒷부분에 보면은 바울과 신라가 이제 그 일 이후에 옥에서 나간다 이렇게 표현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돌아왔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간수가 데리고 도망간 게 아니고요.
간수가 잠깐 음식 대접하고 잘 이렇게 섬긴 후에 그리고 특히 아마 이 바울과 실라를 통해서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것이 뭔지에 대해서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데리고 와서 그렇게 대접하면서 도대체 당신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당신들이 하려고 하는 게 뭔가를 아마 질문했을 거고 그때 복음을 영접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이 빌립보 사역을 하면서 루디아와 그다음에 관수 공무원이 구원받는 일이 있고 그 이후로 얼마 있다가 바울은 급히 이제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래요.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는 잠깐 개척한 편입니다. 그런데 그때 있었던 그 개척의 열매들이 잘 이렇게 남았어요.
그 이후로 바울이 이 편지를 전할 때 바울이 로마 새집에서 그러니까 그냥 쉽게 표현하면 이제 감옥인데 감옥이라기보다는 가택 연금 상태 바울이 1차 연금 2차 뚝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1차적으로는 연금 상태로 좀 있다가 자유롭게 2차에 죽기 전에 그러니까 디모데후서를 이제 마지막으로 쓸 때는 오기에 갇히면서 죽기를 기다리는 어떤 그런 상태가 되게 되는데요.
어쨌든 1차 감옥에서 죄수로 있으면서 이 편지가 주어져서 우리가 이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4개의 옥중 서신 정확하게 말하면 5개죠.
디모데후서까지 근데 이제 1차 연금 상태에서 썼다 해서 이 4개를 묶어요.
왜냐하면 빌립보서나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렇게 4개를 묶는데요.
이 편지를 전할 때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이후에 한 10년에서 12년이 지난 상태예요.
10년에서 한 12년 그러니까 10에서 12년을 지나면서 이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됐냐 하면은 빌립보서 1장에 보면은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그러죠.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 속에 장로가 있고 집사님들이 계셨던 거죠.
그러니까 이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조직적인 교회가 된 거예요.
루디아하고 그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됐던 이 교회가 한 10년 12년 정도 지나면서 감독과 집사가 계시는 그런 조직적인 교회가로까지 성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근데 이 빌립보에게 교회에 편지할 때 바울의 마음속에 과거에 자기가 빌립보에 있다가 데살로니가로 이렇게 가거든요.
갈 때 바울이 상당히 많은 물질적 도움을 받게 됩니다.
경제적인 도움을 받게 돼요. 그것에 대한 그 감사함이 바울의 마음이 늘 있고 빌립보서 뒷부분에 보면은 빌립보 교회가 4장 16절에 나오는데요.
데살로니가 있을 때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연보를 빌립보 교회인들이 힘 있게 이렇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고 그렇게 섬길 수 있는 그런 교회인 것에 대해서 바울 마음에 바울의 마음에 그 교회를 이렇게 칭찬해 주고 싶은 그렇죠 그런 마음이 있는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회 그런데 이 빌립보 교회 안에 두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하나는 보면은 33장 3절에 나오는데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레파라 이 말이 있다는 것은 뭐예요?
그 속에 우리가 할레파다 하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있는 거 아닙니까?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그 속에 있었던 거예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이 할례를 중요시하면서 그 교회를 시끄럽게 했다는 거죠.
율법을 하나님 앞에서 준수해야 되지 않는가 하고 그러니까 이 율법의 문제가 서신처 전체적으로 보면 많이 등장합니다.
이 빌립보 교회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어떤 문제가 있냐 하면은 이 빌립보 교회에 두 분의 상당히 영향력이 있었던 자매님이 소개됩니다.
두 분의 자매님 유오디아와 순도계가 소개되는데 이 두 분이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바울이 2장 3절에 보면은 이런 말까지 씁니다.
이 교회 그 교회를 바라보면서 2절에는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이 되십시오 하고 이렇게 건면해요.
2절 3절 보면은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지 마십시오 하고 권면합니다.
그러니까 그 특히 리더 여성 리더십을 가진 두 분 어떻게 빌립보교회는 여성들이 이렇게 굉장히 두각을 나타내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그 자체는 대단히 인상적이고 좋은 모습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얼마나 균형이 잡힌 교회인가 하는 거 사실 보여주는 거예요.
네 그래서 아마 초기에 그 누구 누구입니까?
루디아 루디아를 중심으로 해서 교회가 개척이 되면서 루디아라고 하는 이 여성 중심의 어떤 상당한 리더십이 형성이 좀 됐던 것 같습니다.
그냥 추측을 해봅니다. 그래서 이 요오디아와 순두계 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그 좀 내용을 들여다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그 속에 어떤 허형의 어떤 문제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너희의 마음이 높아져 있다고 하는 것을 이제 전제하면서 바울이 뭐라고 권면하냐면은 그리스도처럼 너희를 낮추라는 거죠.
낮추라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 보면은 7절에 그렇죠 2장 7절에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낮추신 것처럼 너희도 낮추라 서로 겸손히 행하면서 한 마음이 돼라 사랑하는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라 하고 권면하는 걸 보면은 이제 그런 이 두 분 사이에 갈등이 그런 성격이었겠구나 하는 것을 한번 추측을 해보는 거죠.
그래서 이 교회 속에 어떤 문제냐 이런 갈등을 통해서 그 빌립보 교회가 자칫하면은 분열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유대 율법주의가 들어오면서 바울이 그 교회에 전한 그 복음을 훼손하는 문제 이 문제 이 두 개의 큰 문제가 교회 안에 있었고요.
그다음에 그 당시도 어떤 시대냐 지난번에 우리가 고린도 교회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고린도 교회가 약간 상업화돼 있고 또 우상숭배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은 지난주에 제가 아데미 신전이라고 표현했는데 아데미 신전이 아니고요.
그 아프로디테 신전입니다. 아데네미 신전은 에베소에 있는 거죠.
크도다 데미하면서 했던 그거고요. 아프로디테 신전 을 중심으로 해서 그 도시가 상당히 우상에 물든 그런 도시였다면은 그런 것이 고린도 교회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어떤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근데 빌립보 교회는 어떤 교회냐 하면 빌립보라고 하는 지역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큰 도시가 아니고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 중요한 도시냐 하면은 로마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군사 거점 도시예요.
그러니까 위쪽이잖아요. 이쪽으로 해서 로마로부터 해서 저기 아시아로 그 위쪽으로 우리 이스탄불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안 가봤는데요. 이스탄불로 해서 굉장히 중요한 그 길목에 있는 도시예요.
그러니까 거기를 딱 지켜야지만이 이 아시아 쪽에서 오는 이쪽 위협들 있잖아요.
그것을 미리 방비할 수 있는 대단히 군사적으로 중요한 중지 그래서 주로는 군인들이 거기에 많이 거주했고 또 퇴역 군인들도 많이 거주했던 로마의 군인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 실질적인 권세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런 도시가 빌립보인데요.
그런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당했을 어떤 그런 위협적인 부분들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고 우리가 바울이 다른 데서보다도 특히 빌립보라고 하는 곳에서 투옥이 딱 되고 그렇죠 즉각적으로 그 권력이 강하게 이렇게 사용되는 거를 본단 말입니다.
나중에 이제 바울이 물론 밝히긴 밝혀요. 너희가 내가 로마 사람인데 시민권을 가졌는데 우리가 신라와 내가 그래요.
그 표현이 이제 바울만 로마 시민권을 가졌는지 신라도 가졌는지 그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우리가 로마 시민권자인데 너희가 우리를 이렇게 대해서도 야 되겠느냐 하고 따질 정도로 그들이 바울과 신라를 막 대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그만큼 그 어떤 빌립보라고 하는 지역이 로마 중심의 로마의 어떤 권력 특히 군인들이 가졌던 힘이 강력했기 때문에 그런 말하자면 로마가 경계하는 그런 어떤 사상을 만약에 전한다고 할 때 얼마든지 핍박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되게 높은 도시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외부적인 핍박의 요소도 항상 열려 있는 그런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 또 아마 경제적으로도 빌립보 교회가 어느 정도 어려움 속에 있었겠다 하는 것도 이 빌립보서를 이렇게 보다 보면 어느 정도 추측도 해 볼 수가 있는데 그런 문제 때문에 빌립보 교회 속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염려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들이 있었고 바울이 그렇게 두려워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는 그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다 바라보면서 지금 이 말씀을 주고 있는 겁니다.
뭐라고 말씀하냐면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리라 그럽니다.
이렇게 말씀하기 전에 바울이 4절에서 먼저 말씀을 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해라 저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고 두 번을 아주 힘을 줘서 강조하고 이 구절에서뿐만 아니라 빌립보서 전체 속에서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기뻐하라 기뻐하라 기뻐하라 그렇게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실은 뭐냐 하면 그 기쁨이 있는 신앙 기쁨 가운데 거하는 그 신앙의 모습이죠.
그 모습이 실제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되는가 하는 것을 6절 7절이 아주 중요한 한 예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쁨을 앗아가게 하는 그 어떤 문제 있는 거죠.
그 문제 앞에 너희가 딱 섰을 때 너희는 그때 어떻게 해야 되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거죠.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할 때 너희는 기도해라 그럽니다.
염려를 이렇게 붙들지 말고 기도하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두려워하고 염려하게 할 만한 어떤 문제가 우리 삶 속에 딱 이렇게 오게 되면 우리가 그것을 이제 꽉 붙들거든요.
꽉 붙들어요. 안 나아요 고 놓아야 되는데 우리가 그걸 안 낳아요.
왜 안 넣느냐 하면요. 이걸 놔야지 살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꽉 잡아야지 살 것 같고 꽉 잡아야지 편안하거든요.
내가 내가 느끼기에는 그걸 찾고 있어야지 안심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찾고 있어야지 해결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래서 우리가 어떤 두려워하고 염려하게 할 만한 어떤 요소가 탁 올 때 우리는 그 문제에 우리의 눈이 주목 이제 쏠리게 되고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에 그것을 확 잡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근원적으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 가야 되겠다 그 문제 해결의 주체를 나 자신으로 딱 세우는 거거든요.
그런 형태로 우리가 사실 늘 나타나죠. 그게 죽을 때까지 아마 한다 합니다.
저도 그래요. 맨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지 우리 인간은 연약하니까 뭐 그럴 수밖에 없다 하고 이렇게 나태한 마음 그 그것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면 안 된다는 거지 그것을 우리는 어떤 문제로 봐야 되냐 하면 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앞에서 불순종하는 모습으로 일단은 딱 나 자신을 평가를 먼저 해야 됩니다.
너는 지금 불순종하고 있는 거다. 죄를 짓고 있는 거고 잘못하고 있는 거다 하고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우리 자신에게 먼저 이렇게 답을 딱 제시하는 겁니다.
재판장의 이 판결을 먼저는 딱 제시하면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고민을 해야 되는 거죠.
다시 이제 생각을 하면서 내가 이 염려를 붙들고 있는 이것이 근원적으로 어떤 문제인가 하는 것을 조금 더 생각을 깊이 하면서 서둘러서 주님께서 주시는 이 명령에 순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데요.
우리가 이제 이 염려하지 말라 하는 이 말씀은 성경에 예수님께서도 말씀 강조해서 말씀하셨던 것이고 아까 우리가 찬양을 부르면서도 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마라 그것도 염려의 한 모습 형태죠.
염려가 대부분은 뭐냐 하면 두려워하는 것과 놀라는 어떤 그런 모습과 함께 이렇게 나타난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마태복음 같으면은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진단하냐면요.
너희가 근원적으로 그렇게 계속해서 염려하는 것은 너희를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네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죠.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시고 늘 먹이시고 해결해 주시는데 너희는 왜 끊임없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로 염려하느냐 들에 이렇게 배 아파도 보라는 거 공중에 이렇게 나는 새도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이거죠.
성경에 보면 하물며라는 이 말이 나오면요. 다 주목해서 봐야 됩니다.
굉장히 이제 우리한테 책망하면서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사용할 때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죠.
믿음이 없는 문제다고 이렇게 얘기하면서 마태복음 같으면은 우리에게 어떤 처방을 내리느냐 하면요.
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마태복음에서는 구하라 이렇게 표현하고 사도 바울이 이 빌립보서에서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너희 이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되느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기도하라 하는 겁니다.
기도와 간구로 그러죠. 이게 기도와 간구라는 말이 그 말이 그 말이거든요.
기도가 구고 간구가 기도고 그래요. 이게 이제 조금 차이가 있긴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 속으로 들어가라 하는 그런 표현에 좀 그 포인트가 있다면 강구하라고 하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너희 지금 현재 두려워하고 염려하게 하는 어떤 그 기도의 제목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서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기가 기도와 간구로 이렇게 얘기할 때는 바울이 제가 느낄 때는 그렇습니다.
제발 기도하라는 거예요. 제발 기도하라 그러니까 너희가 그런 문제가 찾아올 때 염려하지 말고 기도에 기도로 이렇게 즉각적으로 나아가고 그 기도에 너희 자신을 기도하는 그 삶의 자리에 너희 자신을 묶으라는 거죠.
그렇게 하라 그 염려를 염려의 나를 묶지 말고요. 기도하는 그 자리에서 내가 떠나지 않도록 그 자리에 나를 단단히 묶으라는 겁니다.
그런 것을 한번 생각을 해보게 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주에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부활의 능력에 대해서 얘기했지 않습니까?
부활의 능력 이 부활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이 기도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나타내야 되느냐 이 부활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이렇게 약하면요.
이 염려나 두려워하는 것 우리 불안하게 하는 것 어떤 이런 문제가 우리가 딱 왔을 때 우리 내면이 이 불안에 즉각적으로 염려하는 그 요소에 즉각적으로 사로잡히게 됩니다.
딱 붙들려버려요. 이것도 엄청난 능력을 갖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가 사실은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살아가면서 이 염려하는 문제에 끊임없이 붙들린다는 것은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걸 보여주는데 근원적으로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죽음의 권세에 영향을 받는 거죠.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딱 파고들어가 보면 아 내가 이러다가 죽겠다는 것과 그렇죠.
나중에는 같은 뿌리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우리 스스로 이렇게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 문제에 이렇게 딱 부딪혔을 때 실제로 우리는 어떤 반응까지 보이냐 하면 내 목숨을 이렇게 던져서 희생해 가면서까지 이 염려하는 문제를 붙잡으려고 해요.
그만큼 사실은 그 이 죽음의 권세라고 하는 것이 강력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들이 일생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그렇죠 그것을 우리가 잘 돌아보게 되면은 이해가 딱 되는 거죠.
그 사망 권세 죽음의 권세 사실은 그것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그 염려에 하는 문제에 묶어두려고 하는 또 이 사탄의 그 역사까지 그 안에 포함돼 있었어요.
그것이 실질적으로는 끊어내기가 그렇죠. 우리가 그것을 뛰어넘기가 참으로 힘이 드는데 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은 이 부활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해서 새로운 존재가 된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안에 계신 부활의 주님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사위 하나님이시죠.
그 죽음의 과 사망의 권세 이 죄의 권세를 일거에 이렇게 다시 탁 이렇게 들리시고 우리를 그 속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그 구원해내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사실은 다 드러난 거죠.
그래서 그 부활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사실은 머물러 있고 그래서 우리는 실제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냐면 어느 시점이 되면 사실은요 이 염려하게 하는 문제 불안하게 하는 이 문제에서 다 벗어나요.
계속 우리가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다가도요.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그 자리에 두시지 않고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 마음에 다시 평강을 이렇게 드리워지게 해 주시는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 정도로 강력하세요. 우리가 실제로 아무것도 안 해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렇게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고 이 교회 공동체를 형성해서 두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때때로 내가 이렇게 충분하게 이렇게 투쟁하지 않아도 우리 공동체에 많은 지체들이 있어서요.
이게 이제 성경에 보면 삼격줄은 꺼내지지 않는다고 그랬는데 우리는 그렇게 삼격 줄이 이렇게 쫙 엮여져 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함께 이렇게 쫙 엮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중에 하나가 나인데요. 그게 줄이 탁 끊어져도 나머지 줄이 쫙 연결돼 있었기 때문에 그거를 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좀 이렇게 부족하게 살아도 때로는 우리 다른 지체들의 섬김과 기도나 이런 것들 있고 근본적으로 뭐냐 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중복자로 계시는 분이세요.
기도하는 중보자로 계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세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에과 다르게 그 부활의 권능에 의해서 삶이 다시 회복되고 우리 마음의 기쁨과 감사함과 평강이 다시 드리워지는 것을 실제로는 볼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그냥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제자들이 풍랑에 이렇게 의해서 배가 갈릴리 호수를 이렇게 지나가다가 이렇게 전복될까 봐 그렇죠 파도가 치고 하니까 물이 배에 차고 하니까 그것을 퍼내기 위해서 막 제자들이 살려고 몸부림 치거든요.
그래요. 우리는 늘 그렇게 행동하거든요.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겨서 또 그런다는 거죠.
예수님은 그물에 누워서 이렇게 주무시고 계시는데 그리고 또 한 번은 뭐요?
예수님은 아예 타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막 노셔서 가요.
그런데 예수님이 고물에 누워 계시는 주님께서 저 파도와 바다를 파도와 바람을 잠잠케 하시고 심지어는 그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이렇게 찾아오잖아요.
그 시간이 좀 걸리는데 어느 시점이 되면 제자들이 다시 평안해지는데 우리가 그런 장면 딱 보면요.
제자들이 평안해지는 게 자기들 믿음으로 편안해지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와서 와서 편안케 하세요. 그래서 믿음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어요.
제자들이 믿음이 그냥 예수님을 보면요. 믿음이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하와 함께하시면서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 우리 주님이셔서 우리가 이 신앙적 상태에 결국은 이제 제자들처럼 돌아가게 되는데 우리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한 번 더 어떤 것을 그러므로 이렇게 너희는 어때 해야 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긴장 풀고 쭉 살아가는 게 아니고요.
우리 마음에 늘 평강 속에서 그냥 이렇게 평강을 누리면서만 어떤 사는 것이 아니고 그 은혜가 너희에게 주어졌을 때 너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 그 기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너희 자신 끊임없이 주님께 드리고 그 기도에 훈련된 사람들로 너희를 연단해 가라 하는 이 명령도 이 말씀에서 주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속에 결국은 살아갈 사람들인데,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부분에서 숙련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냐면은 염려와 불안과 이렇게 두려움이 왔을 때 그것을 이렇게 확 접지 말고 오랫동안 그거 잡고 버티는 그런 모습으로 해서 이제 벗어났어요.
딱 잡았다가도 얼른 놔야 돼요. 얼른 놓고 눈을 주님께로 바로 이렇게 돌리면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내 마음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불안이 사라질 때까지 염려가 사라질 때까지 주님 앞에 있으면서 주님에 의해서 내 마음에 이 염려가 사라지고 그 속에 평강이 탁 들려지기까지 우리가 그 자리에 나를 이렇게 세우는 그 순종 그렇게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우리가 훈련해야 된다는 거죠.
그것은 우리에게 이제 숙제로 주어져 있고 이제 우리가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정도의 어떤 믿음의 꿋꿋한 꿋꿋하게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주님 앞에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 어떤 모습이 되기까지 우리 주님께서 훈련하시면서 계속해서 우리의 그런 신앙적 자태를 또 요구하시고 기대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신앙이 이제 성장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요.
다 연약합니다. 우리는 성장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내가 정말 연약하다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성장하신 분이에요.
내가 신앙생활을 해서 믿음이 점점점 좋아지는구나 하면서 그렇죠.
내가 이제는 좀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아니고요.
실제로 강한 사람들은 아 정말 우리가 연약한 사람이고 정말 끊임없이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그 연약함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너무 이제 깊이 깨달아서 자신에게 더는 이제 기대하지 않고 소망을 안 주는 거예요.
그 두는 양이 조금씩 조금씩 줄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래 내가 너가 해가지고는 또 옛날처럼 그렇게 할 게 뻔하잖아요.
우리가 반응하는 게 그러니까 그런 이제 나를 때로는 좀 책망하면서 즉각적으로 눈을 주님께로 돌려서 나아가게 되면요.
주님은 반드시 우리 마음에 이 평강이 충만하게 두려워지게 하는 분입니다.
이것만큼은 뭐냐 하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기대해야 되는 기도의 응답입니다.
이걸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말 이것은 약속되어 있는 것 우리가 그렇게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이 평강을 딱 주셔가지고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 너의 그 모든 기도를 듣고 내가 너와 너에게 지금 말씀하고 있다고 하는 내가 너를 붙들고 있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로 이렇게 나타내시냐 하면 평강을 주시는 그래서 우리가 이 평강의 상태를 향해서 우리 기도자들은 먼저 나아가야 됩니다.
그다음은 이제 그다음에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구체적으로 기도 제목들이 있고 그것이 응답받고 이렇게 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근데 그것은 어떻게 정확하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지 우리가 잘 몰라요.
분명한 건 거기서도 어떤 하나님의 약속이 있냐 하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은 분명히 그러면 됐지 않습니까?
우리는 항상 어디를 향해서 먼저 가야 되냐 하면 기도하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이 평안이 충만히 드러워지는 그 자리에까지 계속해서 나아가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가 그 자리에 있다가도 다시 이렇게 어떤 파도와 같은 인생의 문제를 탁 보면은 다시 마음이 흔들립니다.
금방금방 흔들려요. 다시 우리가 거기서 눈을 떼고 우리 주님 바라보고 있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도와주시는 분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이 모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으로 우리가 시선을 돌리고 그 말씀에 그렇죠.
우리가 이제 말씀에 우리 자신을 딱 붙들어 매는 그런 모습이 우리 속에 잘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이들인데 이런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이 약속되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늘 그 속에 거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말씀이 그렇게 되라고 우리에게 명령으로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고, 주님 우리가 두려워하고 염려하면서 참으로 하나님 믿는 사람답지 못한 그 부끄러운 모습에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그 순간에 도리어 하나님을 붙들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께로 나아감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 가운데 그 부활의 권능을 경험하게 하시고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는 그 주님을 만나게 해 주시고 그것을 통하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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