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더 넘치게 하시는 주님 (에베소서 3장 20-21절) ...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4. 20. 20:46

박주동 목사

 

 

260419말씀 더 넘치게 하시는 주님 (에베소서 3장 20-21절) ... 박주동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3장 20절 21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 21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이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 오늘은 공부하게 되는데요.
우리가 요즘은 서신서를 한 개씩 배우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서신서 공부하면서 사도행전도 벌써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리도 배우고 서신서도 공부하고 또 특별히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런 선교의 역사를 같이 이렇게 살펴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에베소서는 사울이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송령이죠.
송령 보통은 이제 에베소서를 가르치는 목사님들이 에베소서 이렇게 쭉 이렇게 가르쳐 가면서 이 부분은 그냥 가볍게 이렇게 지나가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 말씀에서 사도바울의 어떤 감격이죠.
에베소서 이 편지를 이렇게 쭉 써 내려가면서 바울이 바울의 서신스에 나타나는 어떤 특징이 하나가 있는데 바울이 대단히 논리적인 사람이거든요.
대단히 뛰어난 석학입니다. 당대의 최고의 석학이라고 할 만한 그런 분이신데 글을 이렇게 써 내려가다가 딱 멈추고 막 기도하고 그래요.
네 하다가 말을 하다가 멈추고 기도하고 또 쭉쭉 하다가 이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럽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사실은 어떤 부분도 우리가 살펴보게 되냐 하면 하나님의 우리 말씀을 이렇게 우리도 공부해 가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게 해주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제 쭉 공부해 갈 때 그 말씀의 앞에서 우리가 때때로 이제 딱 멈춰가지고 묵상하고 또 기도하고 또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모습이 우리 속에 이제 나타나고 또 찬양한 후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배우고 또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이런 모습이 우리가 성경을 읽는 그런 일상생활 속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할 때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이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의 새 집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서 쓴 그래서 옥중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1차 투 1차 연금 상태에서 쓴 4개의 옥중 서신 중에 하나인 거죠.

에베소서 골로세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그런데 에베소서를 그러니까 바울이 보낼 때는 에베소 교회를 개척한 후에 상당한 시간이 지난 그 시점입니다.
그래서 짧게 보면은 에베소 교회 개척 이후 5년 좀 길게 보면 한 10년 정도까지도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에서 에베소 교회를 개척했고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1차부터 3차까지 선교하는 그 과정 속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체류하면서 체계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를 이렇게 조직화 해 가는 그런 교회인 것을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데요.
사도행전 19장에 그것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에베소 이 지역을 대단히 중요한 어떤 선교적 거점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것은 에베소라고 하는 그 도시가 어떤 곳인지를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2차 전도 여행에서 우리 바울이 상당히 힘을 쏟았던 지역이 고린도라고 했지 않습니까?

고린도도 항구 도시고 상당히 경제적으로 번영했던 곳이고 로마에서 아주 중요한 어떤 아가보 지역의 하나의 도시 큰 도시인데 그 고린도가 한 그 당시 인구가 15만에서 20만 정도의 도시였다면 에베소는 한 20에서 25만 정도 되는 도시고 우리가 고린도에 있던 신전 그리고 에베소에 있는 이 아데미 신전하고 비교를 하면 이 아데미 신전은 훨씬 더 웅장하고 그리고 고린도는 물론 그 신전을 중심으로 해서 성적인 어떤 방탕함이 나타났다면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을 아르테미스 그렇죠 신전을 중심으로 해서 종교가 하나의 그들의 어떤 삶에 이렇게 한 어떤 형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그러니까 그들의 어떤 경제 활동과 종교 활동과 그 이런 삶의 모든 활동이 마치 이렇게 하나처럼 이렇게 되어 있어서 그 종교적인 영향력이 그들 이 도시 전체를 어떤 면에서 조직화시켰던 그런 측면까지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이고 에베소도 고린도마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 지역에 이렇게 해변 쪽에 완전히 서쪽이죠.
그렇죠 서쪽에 붙어서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같은 경우는 로마가 아시아 전체를 이렇게 통치하려고 할 때 그 도시를 아시아 지역의 수도로 삼고 아주 이렇게 정책적으로 힘을 많이 기울였던 그런 도시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는 군사적인 어떤 부분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도시 그러니까 빌립보 같은 경우는 조그마한 도시인데 주로는 군사적인 어떤 목적 때문에 많이 이렇게 중요하게 다뤘던 도시였다면은 에베소는 군사뿐만 아니라 그 당시 행정과 관련해서 또 로마의 경제와 관련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그런 도시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전체 선교 여행 중에서 바울이 에베소를 가장 이렇게 주목하고 힘써서 선교했던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보게 되는 거죠.

바울이 나중에 로마에서 최종적으로 마지막 선교지를 삼게 되는데 그 로마를 제외하고 그렇죠 바울이 사역했던 그 사역지 중에서 에베소는 어떤 면에서 세계 선교에 굉장히 전략적인 요충지였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우리가 바울의 1차 2차 3차 여행 속에서 바울이 가장 많은 이적을 행했던 곳이 3차 선교 여행 때인데 그 장소가 에베소였습니다.
그러니까 에베소는 이렇게 바울이 선교를 딱 할 때 그 도시 어떤 면은 전체가 바울의 이 선교를 말하자면 대항하는 그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그 선교의 해방꾼 노릇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반대로 또 어떤 면이 있냐면은 에베소는 바울이 이 선교 전략 속에서 선교 사역 속에서 말하자면 도시 전체가 결국은 말하자면 도시와 바울이 사역이 이렇게 한 판 붙은 거예요.

그냥 단순하게 고티 선교하는 그 어떤 몇몇 가정 그 몇몇 사람들 어떤 유대인과 이방인들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붙은 어떤 그런 차원이 아니고 그 도시 전체와 바울의 사역이 충돌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이 사탄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하게 이 바울의 사역을 어떻게 해서 위협적으로 보고 도전해 왔는지를 딱 보여주는 그런 곳이 에베소입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에서 바울이 이렇게 딱 사역하면서 어떤 일이 발생하면 거기에 마술이 굉장히 어떤 하나의 문화적으로 그렇죠.
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거를 알 수가 있잖아요.
바울의 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귀신이 떠나가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그렇죠.
그들이 깜짝 놀라면서 우리가 하는 이거는 다 가짜인데 마술은 가짜잖아요.
근데 바울은 진짜를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 능력이 막 나타나는 그러니까 그 에베소를 하나님께서 개척하기 위해서 바울에게 그런 놀라운 이제 사도적 이적이죠.

을 나타내셔가지고 그 선교 역사를 이제 힘 있게 이렇게 진전시켜 나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결과 5만 아마 정확하게 우리가 그거를 우리 시대 돈으로 환산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대단히 많은 마술 관련 서적들이 한꺼번에 다 불태워지는 그런 일이 있고요.
또 거기 보면은 19장에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라고 그래 그게 하나의 직업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우상을 이렇게 은으로 이렇게 만드는 사람 뭘 이렇게 공예품으로 이렇게 만드는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 많이 보잖아요. 조각 같은 거 근데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 그 데메드리오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그 데메도리오가 자기하고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 다 모아가지고 그죠 크게 막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거든요.
말하자면 바울 때 너 때문에 우리 이렇게 됐다는 거죠.
못 먹고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 막 모여가지고 군중들이 엄청나게 이렇게 시끄럽게 되는데 그 19장에 보면은 자기들이 지금 왜 여기에 모여서 이렇게 막 난리를 피우고 있는지를 몰라요.
정신이 없어 그만큼 어떤 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자기들이 갖고 있는 바울에 대한 어떤 불만이죠.
그것을 그렇게 표현을 이렇게 하는데 그것이 이제 거기를 다스리는 서기장에 의해서 이렇게 이제 정리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쨌든 그 정도로 그 도시 전체가 말하자면 이 바울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 막 몸살을 앓는 자기들 편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줄 그러니까 바울의 이 에베소 사역이 얼마나 힘 있게 나타났는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바울이 그 초기에 이제 한 3개월 정도 해당을 중심으로 이렇게 사역을 해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복음을 많이 거부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안 되겠다 해서 전략적으로 도란나 소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서 그걸 중심으로 해서 2년 동안 뭘 하냐면 성경을 아주 체계적으로 가르쳐요.

그러니까 바울의 1차 2차 3차 전도 여행 전체 속에서 바울이 가장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교회를 섬긴 모습이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에베소 사역의 어떤 결과들을 보면은 에베소 지역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시아 전체가 말하자면 바울의 복음으로 인해서 들썩했다고 하는 거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주께 돌아오고 그래서 에베소 사도행전 거기 보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흥왕하여져 가더라 하고 사도행전에서 두 번째로 그렇게 표현을 사용하죠.
그래서 에베소 지역이 그렇게 사도바울에 의해서 이렇게 개척이 되는데 우리가 이제 이 에베소서 말씀과 관련해서 에베소 교회와 그 사역에 대해서 조금 어떤 부분을 생각해 봐야 되냐 하면은 이 에베소는 어떤 교회냐 상당히 다른 지역에 비해서 체계적으로 이렇게 성경을 공부했던 곳이고 그래서 그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바울의 그 가르침을 잘 알고 가장 어떤 면에서는 깊이 있게 소화한 사람들이었겠다 하는 걸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 같은 경우는 바울이 볼 때는 좀 이렇게 약간 미성숙한 면이 많아요.
왜냐하면은 더 이렇게 우리 이제 교회의 성장의 어떤 과정들을 우리가 쭉 생각해 보면 고린도 교회 같은 경우는 약간 좀 어린 아이 같은 교회 거기에 누가 우리는 누구 편이냐 이런 거 가지고 막 싸우고 그러니까요.
약간 이제 어린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막 은사를 자랑하는 그런 모습 또 성찬 떡을 떼는 그런 어떤 문제 가지고도 이 먹는 문제가 이렇게 좀 덕스럽게 잘 진행되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고린도 교회는 좀 고린도 지역의 그런 특징이 약간 나타나고 이 어떤 신분에 있어서 이렇게 어떤 차별성도 많이 나타나는 그러니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어떤 그런 갭이 컸던 어떤 그런 도시적 특징이 교회 속에도 이렇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에베소는 종교 자체가 그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어떤 구조였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종교와 관련돼서 철학과 관련돼서 상당히 지성적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어떤 면에서는 기본적인 토대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베소 지역에서 바울이 선교를 어떻게 펼쳐 나가냐면 열심히 공부하는 거예요.
물론 거기에서 많은 이적들도 일어나는데 핵심적인 사역은 체계적으로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하나 복음을 가르쳐서 그들이 신앙적으로 탄탄하게 이제 기초를 세워가는 어떤 그런 모습을 보게 되고 그런 면에서 에베소 교회가 고린도 교회보다 훨씬 더 어떤 면에서 기초가 잘 돼 있고 성숙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그런데 이 에베소 교회는 나중에 어떤 모습을 나타내냐면은 이제 이때는 아니에요.
바울이 에베소서를 보낼 때는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가 요한계시록에 사도 요한도 에베소 교회를 할 동안 상당히 오랫동안 섬겼던 분이고 에베소 교회를 잘 아는데 그 에베소를 어떻게 평가하냐면 너희가 다 좋은데 사랑이 식었다고 딱 얘기해요.
그렇죠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 같은 경우는 그런 어떤 면에서는 분열의 문제 분열의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 이 에베소 교회 같은 경우는 나중에 후대에 어떤 부분으로 문제가 드러나게 되냐면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정통 신앙의 신학의 그렇죠 체계화된 어떤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사랑이 식어지는 어떤 문제를 드러낸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이제 에베소서를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은 일단은 어떤 것을 먼저 느끼냐면은 바울이 이 에베소 성도들을 대단히 하나님의 대한 지식에서 기초가 잘 돼 있어서 이제 기본적인 어떤 그 진리를 이미 이렇게 전제하고 기본적인 것은 다 소화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들에게 이 복음의 더 심오한 차원을 딱 얘기를 해 줍니다.

그래서 이제 그래서 이런 어떤 이제 신앙적 교육을 받으면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중에 문제가 사람이 심해지는 문제로 나타나는 이제 그 문제가 있긴 있는데 어쨌든 우리가 바울이 이 편지를 할 때 에베소 교회는 개척한 이후에 대단히 건강하고 또 복음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그런 교회여서 에베소 지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어떤 영적으로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교회로 바울은 딱 바라보고 있습니다.
평가하고 그렇게 보고 있어 그래서 그 교회에 바울이 이 편지를 딱 보내면서 그들에게 복음에 대해서 말하자면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이렇게 아는 것들을 넘어서서 우리가 이 복음에 대해서 알아야 되는 어떤 면에서는요 최대치를 최대치 가장 이 복음에 대해서 심오한 이 내용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는 특별히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거를 소화하지 못하는 어떤 교회였다면은 이렇게 하지 않죠.

교회의 성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딱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제 어떤 것을 잘 가르쳐 주면 이들이 신앙이 이 단계에서 더 성숙한 단계로 갈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하고 그걸 이렇게 이제 가르쳐 주는 거 아닙니까?
기본적으로 그래서 바울이 이 에베소 교회에는 지금 이 에베소에 나타난 이런 내용까지 가르쳐 줬다는 것은 바울이 이 에베소 교회를 얼마나 이렇게 바라보면서 그러면서는 진리의 터 위에 잘 세워져 있는 이들의 이 모습 때문에 덕대하면서 그리고 이제 바울이 개척한 이 에베소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이제 이 에베소 이외에 편지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이 에베소를 중심으로 해서 이 복음이 이제 어떤 면에서는 한 이 정도 되는 그 정도 되는 이외의 모든 교회들이 이제 머물러 있었을 거 아닙니까?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 모든 교회들이 이 복음에 대해서 훨씬 더 깊은 이해 속에서 영적인 눈이 더욱 확 떠지기를 바라면서 그 교회에 이 편지를 주고 있다고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거죠.
그것까지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이제 우리에게 주어져 있고 우리가 에베소서를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읽게 되면요.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그 진리를 담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면서 우리가 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그 모든 하나님의 작전 그렇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까지 눈 뜨기를 바란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에베소서를 읽어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울이 이제 에베소서를 쓰면서 가르쳐 주는 어떤 진리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 복음이죠. 복음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어떤 기도 제목까지 그가 믿음까지 그가 갖고 있느냐 하면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것입니다 하는 이 믿음까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이 말씀을 좀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도 더 많이 응답해 주신다 하는 식으로 이 말씀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내용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들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제 바울이 지금 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는 이 복음에 관한 겁니다.
이 복음에 대해서 먼저 가르쳐 주고 그것을 들은 그들이 기도할 거 아닙니까?
우리가 바울이 가르쳐준 저 복음에 대해서 더 깨닫게 해 주십시오.
그것을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여기 보면은 18절에 보면은 능이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의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이렇게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지식의 넘치는 이 말은 뭐냐 하면 지식을 초월하는 이런 뜻입니다.

지식이 충만한 어떤 더 충만한 이런 어떤 차원이 아니고 지식으로서 다 담을 수조차 없는 그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랑까지 알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넘치도록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너희의 것이 되게 해 주신다고 하는 그것에 대한 믿음까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에베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이 복음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잠깐 생각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면요.
보통 우리가 복음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한 복음에 대해서 생각을 이렇게 하게 됩니다.
그것은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게 빠지면 복음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을 생각하는데 바울은 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의 이 복음은 이제 그 어떤 큰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주어졌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아주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이들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는 어떤 표현이 나타나냐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셨다 이런 말까지 나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그러니까 여기서는 나오지 않지만은 작정에 의해서 이 세계와 그렇죠 모든 일이 나타났다 하는 것을 바울이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소율이 문답 공부하면서 이 부분을 이제 곧 조국이 있으면 공부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과거의 믿음의 선배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 예정과 작정에 대해서 얘기를 할까 쉽게 얘기하면 될 텐데 근데 이것을 사실은 특별히 에베소서 같은 이런 데서는 바울이 얘기를 해 주면서 우리가 아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복음에 대해서 그렇죠 더 이렇게 눈 뜨도록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이 갖고 있는 그 복음을 통해서 드러나고 드러나야 하는 그 하나님의 경륜 그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그 놀라운 것인지에 대해서 너희가 더 눈 떠야 된다 하면서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하는 이 일을 이루기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이 뭐냐 먼저 이 세상을 창조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아시고 예정하셨다고 하는 것, 그 역사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확인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을 바울이 이 교회에 딱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그 한 사람 구원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전체 창조의 역사와 구속의 그 전체 경륜 속에서 나 한 사람의 구원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을 얘기해 주고, 하나님의 그 예정이 예정에 의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느 때에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딱 된 이것은 어떤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냐 하면은 너희가 받은 이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다가 이렇게 딱 된 어쩌다 같은 면서는 운이 좋아서 너희가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 자녀 된 그런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미 이 세계가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이미 택정하시고 때가 돼서 우리를 부른 그 사건이다 하는 걸 딱 가르쳐줍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그 관점에서 우리의 구원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어떤 계획과 소망 가운데 이루어진 구원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의 이 구원이 정말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성질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그 예정을 통해서 바울이 곧 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하나님께 지원받은 인간이 타락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는데 그래서 이 에베소서에서 그 전체적인 구조를 쭉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하나님 앞에 범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는데 결국은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너희가 다시 그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화목하게 되었다 이렇게 얘기해 주고요.
그런데 너 한 사람만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 구원의 목표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어떤 그림 속에서 우리의 구원을 진행시켰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다시 뭐냐 하면은 이 만물을 사람을 다 포함해서요.

만물을 통일하기 위해서 통일하기 위해서 그 모든 구석에 관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각 사람 구원하는 것만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는 일이 아니고 우리를 이렇게 다시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려고 했던 그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드러나는 그런 세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상실됐단 말이에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고 백성을 찾고 그다음에 그 백성들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이 이 만물을 다시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회복시키겠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뭔가 완성하려고 하는 큰 그림이 있는 거예요.

근데 그 그림에 대해서 우리가 이제 예수님이 이제 다시 오시고 또 하나님 나라가 궁극적으로 완성될 때에 그 이미지들에 대해서 계시록이나 이런 데서 우리가 어느 정도는 살펴볼 수 있지만 그 하나님을 그 하나님의 그 통치가 최종적으로 우리 가운데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목표를 향해서 지금 이 모든 것들을 행위하셨다고 하는 것을 이 에베소서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이제 머리로 해서 주님이 먼저 무엇을 만들고자 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교회를 다시 창조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셔서 주님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그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 한 몸인 교회 한 몸인 교회 그것을 완성하고자 하는 그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거죠.

그것을 그것이 이제 마지막 때가 되어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 교회의 한 일원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하는 것을 얘기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개인적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은혜와 감격이 있고요.
그다음에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이 교회를 이렇게 우리 가운데 드러내시면서 보여주시는 그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요.
우리는 이제 그거는 잘 안 보이거든요. 내가 은혜받은 건 잘 좀 보이는데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더 우리를 가슴 뛰게 하고 있잖아.
감격스럽게 만드는 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머리로 해서 만들어진 이 교회의 영광이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눈 떠야 되고 그 눈을 뜬 사람이 데 우리가 그 교회의 한 일원으로 이렇게 참가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에 우리가 눈을 떠야 됩니다.
이게 이제 그렇게 돼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보면 바울이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가 볼 때는 열심히 사시잖아요.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치려 하면 나의 생명을 조금 더 귀한 곳으로 여기지 않겠다 이러면서 사신 분이에요.
실제로 근데 그대로 사셨어요. 근데 왜 그렇게 살았냐면요.
자기가 예수님 믿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격이 커서 그런 것도 있는데 그것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바울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만들어지게 되는 그 교회의 영광을 바라봤어요.
그걸 바라보면서 그 교회가 완성되어져 가는데 그 일에 자기가 쓰임 받고 있는 부르심 받고 쓰임 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감격하신다.
그러니까 자기같이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을 우리 주님께서 완성하고자 하는 그 교회의 영광에 자기의 모든 삶을 바울이 나를 나는 주께 나를 전제로 드린다 그래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이렇게 녹여서 주님 앞에 재물로 바치겠다 하면서 살았는데 그렇게 한 그 이유가 어디 있냐 하면은 그 교회에 대한 영광에 바울이 눈을 떠서 그렇습니다.

이것을 말로 표현해가지고 다 이렇게 깨닫지를 못하면 그런데 우리가 세월이 가면서 했지 않습니까?
결국 어디에 계속해서 더 눈 떠 가야 되냐 하면 이 주님께서 완성시켜가는 이 교회의 욕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점점 더 눈 떠 가야 되고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면은 영광스러운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뭐냐 하면 막 완성하고자 하는 주님의 영광과 너무나 반대되는 그런 모습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나중에 이 에베소 교회 같은 경우도 사랑이 식어지는 어떤 문제가 막 드러나 고린도 교회 같은 경우는 바당 서로 싸우고 서로 차별하고 막 이런 문제도 보이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교회를 보면서도 뭘 봐야 되냐 하면은 그 교회를 그 가운데서 완성시켜 가시고 그런 교회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이 교회를 이렇게 붙들시고 통치해 가시는 그 주님의 능력과 그 지혜는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우리 이 교회들이 다 보여주는 거예요.

교회가 전부 다 멋지고 잘 더 이상 있잖아요. 뭐 가르칠 것도 그랬으면 우리가 그만큼 몰랐을 텐데 교회 가 보면 2천 년 동안 항상 엉망이었거든요.
우리 교회가 제대로 정말 괜찮다 하는 그런 시절이 지속적으로 이렇게 쭉 간 그런 역사가 그 우리 뭘 보냐 하면은 그 바울이 개척했던 소아시아의 그 모든 교회들이 지금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런 역사를 우리가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연약한 가운데 있었던 교회들을 주님께서 사용하셔가지고 지금 주님의 이 교회를 완성해 가시는 이 손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세요.
정말 놀라 하나님이 완성하고자 하는 이 교회를 다 계속해서 완성해 가고 계시는 것을 딱 보고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그때는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아쉬워하거나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모든 그 예정함 하나님의 그 작정 속에서 하나님의 이 완성의 역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금 완성되어져 가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이렇게 해 나가시는 그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그 청량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눈을 이제 떠가면서 그 주님께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영광스러운 교회로 교회를 완성해 가고 우리를 그 교회의 일꾼들로 그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로 부르셨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점점점 이렇게 세월이 갈수록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연약함에 이렇게 떨어질 때 많지 않습니까?
그 연약함에 이렇게 늘 시달리는 어떤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빛나게 해 드러나요.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 감격적인 거죠. 안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이제 열심히 전도도 하고 열심히 우리 또 주님을 배워가고 기도하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물론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주님 앞에 이렇게 나타내는 어떤 모습들은 허물을 남길 때가 많고 연약함이 떨어질 때가 훨씬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우리를 사용하셔가지고 주님이 꿈꾸시는 그 영광스러운 교회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성해 가는 그 하나님을 딱 생각하면은 우리는 정말 감격할 수밖에 없고 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바울도 이렇게 편지를 쓰다가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감격이 되죠.
그리고 막 기도를 해요. 여기서 지금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하다가 성령 이게 이제 찬양을 하는 거거든요.
우리 하나님은 정말 찬양받으실 분이다 하고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이 예배소서를 통해서는 얼마나 이렇게 깊고 높고 또 넓게 그렇죠.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 사도 바울도 19절에서 그렇죠 3장 19절에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렇게 합니다.
구하고요.

그리고 바울이 뭘 이렇게 금방 큰 어떤 확신 가운데 젖어졌냐 하면은 하나님께서는 능이 그렇게 해 주시는데 그것 이상으로 넘치도록 그렇게 하실 것이다.
너희들이 구하는 것 그것은 사실은 뭐냐 하면은 항상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것보다는 작은 것들이죠.
항상 그래요. 우리가 구해야 되는 게 이 위에 이렇게 구해야 되는데요.
우리는 그렇게 구할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요만큼이거든요.
항상 이만큼 고기만 구해 이렇게 구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고 구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탁 베풀어 주실 때는 뭐냐 하면 항상 이걸 이렇게 넘어가요.
그러면은 이것까지 구해야 되는구나 알게 되죠.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여기까지 이렇게 구해요. 우리는 또 그러면 그다음에 뭐냐 하면 그 위에 가르쳐 주세요.
하나님 그러니까 항상 우리는 부족한 기도를 드리는데 항상 보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가지고 넘치게 하세요.

그러니까 이 바울의 이 기도가 정확한 기도인 거죠.
기도고 믿음의 어떤 그 확신 속에서 드리고 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송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 역사하셔가지고 우리를 이제 우리도 끌어 가시는데 우리도 점점 더 이렇게 복음에 대해서 배워가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그런 모든 연약함 가운데서도 우리가 점점 더 그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점점 더 이렇게 눈 떠가는 사람들로 우리도 인도해 가시겠구나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이제 보면서는요.
믿음을 한 번 더 탁 가지면 좋겠습니다. 믿음을 가져도 되겠구나 하는 것을 이제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믿음을 가져도 되겠구나 믿고 우리 교회를 바라볼 때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바라보는 그 이제 눈을 내가 가져야 되겠다를 좀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해 가실 것인가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주님은 반드시 받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로 인해서 이렇게 기뻐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것까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계속해서 잘 섬겨갔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 에베소서 말씀 살피면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그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감격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었던 이 사도 바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도 주께서는 이 교회를 여전히 붙드시고 또 우리의 교회를 주님이 뜻하신 최종적 완성을 향해서 인도해 가시는 분이시니, 주님 우리 또한 그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에 경륜 속에 부르심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점점 더 눈 떠가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 속에서도 계속해서 주님의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게 해 주시고, 또 그 복음이 지니고 있는 더 크고 놀라운 그 영광의 눈 뜬 사람들로 성장해 가게 해 주시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섬겨가면서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저희가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점점 더 깨달아가는 사람들로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