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한 알의 밀이 죽으면(요한복음 12장 24절)... 박주동 목사

예배하는 사람 2026. 5. 1. 02:01

박주동 목사

 

260426말씀 한 알의 밀이 죽으면(요한복음 12장 24절)... 박주동 목사

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아멘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하늘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이렇게 접하게 되면은 대개는 이제 아 우리가 죽어야 되는가 보다 그걸 많이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부담스럽게 좀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거죠.
그래서 하나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죽을까?
아 또 죽어야 되겠다 그래서 열매를 많이 맺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말씀은 1차적으로는 뭐냐 하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말씀을 이제 하시는 그 이유는 뭐냐 하면요.
이제 주님께서 한 3년 정도 그렇죠 예수님의 공생애라고 하는데 그 3년 정도 사역을 하시고 지금 이 시점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이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십자가에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제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아주 임박한 그런 시점이죠.
그러니까 12장에 보면은 1절에 유월절 엿새 전 얼마 안 남았죠.
그렇죠 그리고 그 엿새 전 그다음 날 그때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타고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이제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영하는 호산나 하면서 예수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던 그날이죠.
이때만 해도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좀 아는 사람들은 드디어 우리 주님이 이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등극하시겠다 곧 왕으로 등극하셔서 어 이스라엘의 그 가장 번영했던 그 시절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인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이상적인 이상에 가까운 그런 왕의 통치 그러니까 하나님의 통치의 대리자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 대리자가 다시 등장해서 그 번영했던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거기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서 그것을 성취하러 오시는 분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메시아라고 생각한 거죠.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것이 성취될 것 같은 그렇죠 아주 어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임박한 그런 지금 상황 속에 사실 있는 겁니다.
근데 이제 예수님이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이 시간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나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이제 전혀 다른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뭐냐 하면 결국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되냐 하면은 예수님이 특히 3년간의 약 한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을 통해서 뭘 많이 보여줬냐 하면은 사람들이 이렇게 의술로서 고칠 수 없는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고 또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자연을 이렇게 통제하시는 그 어떤 그런 이적들까지 보여주셨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다시 이렇게 살아나게 하는 그런 이적들도 보여주셨고 또 예수님이 이렇게 설교를 하세요.
그러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의 현장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래서 정말 예수 그리스도는 뭐냐 하면 예수님이 지금까지 보여주신 그 군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 힘 그다음에 어떤 그 통치자에게 필요한 권위와 권능 그런 것들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그런 아주 이상적인 이제 왕이 될 사람인 거죠.
이상적인 그 왕의 어떤 면모를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보통 공생이 하면은 3년 이렇게 말하는데요.
실제로는 조금 이제 학자들마다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총 세 번의 유월절을 보내게 되는데 첫 번째 유월절은 이제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고 한 몇 개월 뒤에 이렇게 맞이하게 돼요.
그러고 나서 두 번째 유월절을 보내시고 그다음에 세 번째 유월절에 예수님이 돌아가시니까 그렇죠 두 유월절은 이제 전체적으로 합치면 2년이고요.
앞에까지 하면은 한 2년 3개월에서 4개월 뭐 몇 개월 이렇게 되는 그러니까 총 3년이 안 될 것 같아요.
학자들마다 조금은 차이가 있는데 예수님이 유월절을 네 번 보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은 5장에서 어떤 명절이 한 번 더 소개되는데 정확하게 그게 뭔지 이렇게 파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게 유월절이면 4번이 됩니다.

근데 이제 전통적으로는 세 번 그래서 한 2년 한 몇 개월 정도의 기간을 이렇게 보내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 됨 이스라엘이 기대한 통일 어떤 면에서는 사실 이제 독립된 그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는 그런 모든 자질을 갖춘 분이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드러냈다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했던 그런 어떤 강력한 리더십이죠.
세상에 보통 일반적인 왕들이 갖고 있는 그런 리더십 근데 그 능력이 예수님에게서 상당히 이상적인 모습이 나타난 거죠.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힘 그다음에 어떤 이적을 심지어는 보여줄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어떤 대리자로서 그 어떤 면에서는 선지자 같고 예언자 같고 그리고 과거에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나타났던 그런 어떤 왕적 권위가 예수님에게 사실은 충분히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이제 조금 더 가까이에서 봤던 제자들 같은 경우는 훨씬 더 그걸 많이 느끼고 있는 거죠.

이제 예수님은 과거에 엘리아나 엘리사나 다윗을 이렇게 합쳐놓은 사람 같아요.
그 정도가 아니고 심지어는 예레미야나 이사야 선지자도 합쳐놓은 사람 같아요.
예수님이 그러니까 정말 새로운 분이 나타나는 경우 많죠.
그러니까 엄청 그 제자들의 마음에도 큰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 상황에서 그 예수님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오늘 여기에서 이렇게 제자들한테 다시 한 번 더 말씀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그런 어떤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임금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게 나타나고 그 나라가 다시 이렇게 어떤 번영 해 가는 그런 것을 너희는 꿈꿀지 모르지만은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뭐냐 하면은 그것보다 사실 훨씬 더 강력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더 강력한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방식으로 드러내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이 세상의 어떤 권력으로 나타내는 게 아니고요.
죽음으로 나타내려고 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어떤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되냐면 예수님은 연약해서 힘이 없어서 이렇게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요.
정말 힘을 가진 분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세요.
그분이 뭘 정확하게 아냐면 어떻게 해야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걸 정확하게 아시고 그것을 실제로 도래하게 할 수 있는 현실이 되게 할 수 있는 그것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아시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아시는 거죠.
그리고 예수님이 사실은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모든 그 어떤 면에서는 왕적인 그런 위험과 그 능력을 어디에다가 예수님은 다 사용하시냐면은 이 자기 앞에 놓여져 있는 고난을 짊어지는 것에 사용하는 거죠.

그것에 순종하는 그 길에 순종하는 그래서 최종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사용해서 예수님은 그 자기 자신의 삶을 어디다 딱 맞추느냐 십자가에다 딱 맞추시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겉으로 볼 때는 이게 빌라도의 또 예수님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의 그 힘에 의해서 예수님이 무력화된 어떤 그런 모습이죠.
그런데 그것은 그게 아닌 거죠. 실제로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누구를 통해서 드러나고 성취되고 있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거죠.
이미 그 자리에서부터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볼 때는 연약한 모습인데 실제로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보다도 더 강력한 사실은 어떤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권위에 대한 표현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이제 고난을 바라보면서도 부활을 바라보면서는 당연히 이제 그것을 느끼는 고난을 바라보면서도 우리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그 영광과 권위와 그 권세를 우리가 한번 잘 들여다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중에 그 예수님의 고난의 뒤를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뒤를 우리도 이렇게 따라가야 되는 사람들인데요.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바라볼 때도 중에 우리는 항상 어떤 시야를 잃어버리면 안 되냐 하면은 그게 이렇게 애초로운 모습이 아니다 는 겁니다.
네 애초로운 모습 예수님 믿으니까 왜 이렇게 삶이 그렇죠 이렇게 좀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하기가 쉽단 말이에요.
지금 그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애처롭고 너무 이렇게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또 우리에게 삶이 뭔가 어떤 이 세상의 어떤 주류에서 이렇게 예외자인 것처럼 소외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나 자신을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이 뭐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가져오기 위해서 어 그 주님이 주님이 가지고 계신 그 권위와 권능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다시 이 말씀과 또 십자가를 통해서 잘 생각하면서 우리가 예수님 뒤를 따라가면서 감당해야 되는 그 고난의 삶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잘 감당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이러한 방식을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우리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큰 영광스러운 건가 영예로운 것인가 하는 것을 한번 같이 생각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히려 그 삶에서 이탈할 때 우리의 삶이 실질적으로 뭐냐 하면 보잘것없는 삶이 돼요.
그게 이제 우리가 사도 바울을 이렇게 보면은 그 사도 바울의 삶을 우리가 이제 은혜로운 눈으로 이렇게 보면요.
너무너무 부럽죠. 우리가 인간적으로 보면 사도 바울만큼 그렇죠.
예수님 다음으로 인생이 불쌍해 보이는 사람이 사도 바울이에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원래 잘 나갔던 사람이고 또 얼마든지 이렇게 그야말로 출세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거의 출세했어요. 사도바울이 잘 나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이 하루아침에 보면은요. 그냥 곤두박질 치고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어떤 면에서는 정말 형편없는 삶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알죠. 사도 바울이 그 삶에서 그가 곤두박질 쳐서 예수님과 함께 이제 살아가는 그 삶에서부터 그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바울이 일생 동안 이제 그 사는 삶이 사실은 뭐냐 우리가 볼 때는 너무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보여요.
그런데 본인은 계속 힘든 삶이죠. 네 이 간극이 있는데 우리가 결국은 그런 이제 삶을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인데요.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도 그런 어떤 관점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데 공관복음서하고 사복음서 전체적으로 보면은 대표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죽으심에 대해서 한 세 번 정도 말씀을 하십니다.
세 번 정도 아주 이렇게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시고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말씀은 명확하게 말씀하신 그 구절에 들어가지는 않는데 여기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어떤 지금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받으면서 이 말씀을 하느냐 하면은 20절에 보면은요.
이제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이 몇이 있었다 했습니다.
그래서 헬라인 그 사람들 헬라인 몇을 이제 예수님께 데리고 가서 소개해 주는 거죠.
그러니까 헬라인을 만나면서 예수님이 딱 뭐라고 얘기하냐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유대를 넘어서서 저 이방 땅까지 확장될 것이 임박했다는 거죠.
그것을 본 겁니다. 그러니까 관점이 완전히 이제 좀 다른 거죠.
그렇죠 예수님이 지금 어 십자가를 지러 가는 겁니다.
사실은 예수님은 그 의식을 갖고 있어요.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고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데 예수님께서 지금 머릿속에서 있잖아요.
뭘 생각하고 있냐 하면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그렇게 얘기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권한을 앞에 두고 네 이것도 우리가 좀 잘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삶이 이제 예수님처럼 딱 고난의 삶이에요. 그런데 항상 우리도 어떤 의식을 예수님처럼 갖고 있어야 되냐면요.
우리가 그 주님의 그 영광에 지금 참여하고 있다고 하는 거 그것을 우리도 이제 같이 이렇게 공유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영광에 참여할 때가 됐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그 영광에 이제는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걸 잘 알면요. 우리가 이렇게 살면서 인상 쓰고 살 일이 없어요.
고난 삶은 고난스러운데 그렇죠 고난이 있습니다.
몸은 힘들고 우리가 고난 속에서 사는데 우리의 내면에 항상 뭐냐 하면 그 영광에 참여한 사람의 그 감격과 기쁨이 같이 이제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가 이제 십자가 앞에서 그 영광을 이미 바라보고 있는 우리 주님이죠.
그 주님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놓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것도 이게 생각하게 해 주는데요. 예수님이 27절에 보면은 아버지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28절 한번 보세요.
아버지요.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소리가 이렇게 나는데요. 이미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요.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잠시 기도를 하시는데 그때 하늘에서 이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니까 무리들은 29절에 보면은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했다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에서 무언가 소리가 나서 하나님 예수님께 말씀하셨는데 실질적으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무슨 이야기 소리인지 정확하게 분간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씀을 하나 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냐 하면은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런 말씀이 선포됐다는 거죠.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 지시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이미 다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면서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내가 너를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렇게 그러니까 이 보면은요.
아버지요.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해요.

그런데 아버지는 뭐냐 하면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건 뭐냐 아들을 그렇게 내가 하겠다는 거거든요.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를 원하고 아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이미 영광스럽게 하고 또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렇게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뭐냐 하면 사위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되는 거죠.
실질적으로는 아버지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거고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아버지가 영광스럽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뭐냐 하면 그 삶이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되실 때 우리가 함께 계속해서 영광스럽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이 사실은 뭐냐 하면 이 십자가 앞에 십자가를 지는 이 사건 앞에서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오느냐 하면은 한편으로는 너무 반짝반짝하죠.

너무 아름다운 모습 지금 죽음을 앞두고 아주 심각한 상황을 사실 앞에 두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이 시점에서 예수님과 아버지의 그 이 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이 모습이 보면은요.
내가 너희를 이미 영광스럽게 했고 아버지 아들은 주님 나라를 통해서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다 보기에 너무너무 아름답고 영광 이 자체가 빛나는 모습이거든요.
실제로는 뭐냐 하면 이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십자가에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바라봐야 되는 그 광경은 이제 뭐냐 하면은 그 예수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시는 그 주님의 모든 이제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아버지와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그 순간들이고 그 시간들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십자가를 이렇게 볼 때마다 쫙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잖아요.

그러면 최종적으로는 뭐냐 하면 그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 정말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하는 것에 눈을 탁 뜨게 됩니다.
실제로는 그래서 십자가의 그 사랑을 깊이 가장 깊이 이제 경험하고 그 순간과 이렇게 마주한 사람들이 가장 그 순간에 하나님을 그 영광, 하나님의 그 영광 때문에 찬양을 하게 돼요.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일이 있게 돼요.
그러니까 이게 이제 우리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 믿게 돼요. 교회로 오게 돼요.
그리고 그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우리 주님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나가라 그래도 안 나가요 네 교회에서 나가라 그래도요.
안 나가요. 왜냐하면 우리 주님의 사랑을 다 보고 주님의 그 영광에 눈을 뜨면은 우리는 그 자리에서 참으로 그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시고 그렇죠.

우리 가운데 그 영광으로 충만히 거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에 이제 점점 눈을 뜨면서 그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 금방 바뀌어버립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탄생하는 거예요.
항상 그리스도인이 탄생하는 그 순간에는 그것을 중심으로 한 아주 놀라운 사건이 사실은 있어요.
어떤 분은 그것을 깊이 경험하는 분이 있고 이렇게 감각적으로 많이 경험하는 분이 있고 또 어떤 분들은 그것이 이제 조금 그 경험이 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뭐냐 하면 그 지점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보면은요.
다 거듭나는 일이 발생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요한복음에 이 두 면이 사실은 이렇게 잘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지금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있는 예수님인데요.

그 예수님이 아버지와 이렇게 대화하면서 내가 영광을 이미 받았고 내가 너를 또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시고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고 이렇게 기도하는 너무나 이렇게 사실은 아름다운 모습이 이 말씀 속에 있는데요.
그런데 그리고 이 이제 24절에 이 말씀이 실질적으로는 그런 부분을 나타내게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어떤 원리를 우리에게 동시에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 잘 아는 거 아닙니까? 이때가 언제냐 하면은요.
유월절이니까 이제 이스라엘은 이때 보리를 이렇게 추수하는 시점이에요.
오리를 밀은 한 5월 달 이 정도 추석 이게 이제 유월절이 한 우리로 말하면 한 3월 4월 이때고요.

보리 미를 추수하는 시점은 한 5월 4월 5월 그 시점에 이렇게 추수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나중에 이제 모든 수학이 끝나면은 저기 초막절에 초막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렇죠 이제 절기를 보내게 되는데 어쨌든 어 이때는 보리를 수확하는 시점인데 예수님 보리 얘기는 하지 않으시고요.
네 미를 일단 미를 가지고서 얘기합니다. 볼이나 밀이나 그 차이는 없는데요.
이 밀을 이제 이스라엘은 가을에 이렇게 파종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때 미를 수확하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이것이 땅에 떨어져서 이렇게 죽으면 거기에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에서 이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설명을 하죠.
그래서 죽으면 이것이 다시 다른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렇게 탁 살아난다고 하는 그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그와 같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완전히 어떤 존재의 소멸이 아닌 거죠.

실제로 미루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있는 생명은 죽지 않는 거죠.
사실은 그 생명은 그대로 있어서 그 생명이 어느 시점이 되면 이렇게 확 피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죽음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죠.
존재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남아 있는 그 생명 그래서 몸은 죽죠.
몸은 죽는데 여전히 그 죽지 않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죽어도 우리의 영혼 영은 소멸되는 성격이 아닙니다.
네 그것이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그 부활이 이렇게 딱 일어나는 것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렇게 딱 설명을 하는데 지금 이제 그것을 이 말씀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지금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십자가에 죽으면 그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의 미를 땅에 심는 것과 같은 거다 이렇게 지금 설명해 주는 거죠.

하나님의 밀을 땅에 심는 거다 이렇게 말해주고 그렇기 때문에 그 심어진 밀은 미랄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다시 싹이 틀 것을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후에 죽은 후에 때가 되면 다시 부활하실 살아날 거다 하는 것을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이 이제 이렇게 한 첫 열매로 그죠 첫 열매로 예수님의 부활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 첫 열매가 이렇게 나오면 그 이후에 이어서 다른 열매를 계속해서 맺혀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죠.
그래서 예수님 부활의 첫 열매 되셨다는 것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와 함께 부활할 것을 보여준다 하는 것까지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배우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이 사건은 뭐냐 하면 부활의 첫 열매 되기 위해서 지금 땅에 심겨지는 사건 그 사건이 어떤 사건입니까?
예수님이 고난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결국 죽으셔야지 되는데요.

죽지 않으면 생명 하나 그대로 있고 그 하늘을 땅에 심었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그 풍성한 열매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금 이 뭘 지금 말하려고 하냐면은 예수님의 이 십자가 죽으심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떤 나라입니까?
이 생명이 충만한 나라입니다. 그 생명이 충만한 이 하나님의 나라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그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의 그 원리를 지금 이렇게 적용하려고 하시냐 하면은 자기 생명을 심음으로 더 풍성한 생명을 거두는 이 어떤 이 생명 확장의 원리를 지금 가르쳐 주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이렇게 풍성해지는지 그 생명이 풍성해지고 확장되는지를 사실은 가르쳐 주려고 하는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제 이 말씀을 들려주면서 내가 곧 있으면은 죽는다고 하는 좀 그렇죠 치울한 얘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요.
지금 예수님이 얘기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는 이 생명의 역사 를 얘기해 주고요.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 생명의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제 이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이 확장이 되는데 그 확장의 원리를 그 생명의 원리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제 시대는 교회 시대죠. 교회 시대 예수님의 사역이 다 끝나고 그렇죠 승천하시었고 우리가 남아서 제자들을 과 함께 그 이제 사도와 사도의 그 터 위에서 이 교회가 세워지면서 그렇죠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그 어 우리 교회의 어떤 면에서는 이 생명의 확장 원리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이렇게 보면서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됐냐면은 언제든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나라고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 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를 일단은 우리가 이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가 사실은 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교회가 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건 아니죠.

그렇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고요.
어떤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지 않아 또 우리 속에 어떤 것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것들이 있고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것들이 막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이제 이 예수님의 이 말씀과 예수님의 그 삶이 보여주는 그것을 통해서 드러나는 이 하나님의 나라의 아주 중요한 그 하나님 나라를 형성하고 확장시키는 그 원리에 우리가 눈을 뜨지 못하면 우리가 이 교회 속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과 이 속하지 않은 것을 이렇게 잘 구분하지 못하면서 실질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나라답지 않은 것 속하지 않은 것들이 이 교회 속에 이렇게 침투하고 그것이 교회를 지배하고 교회를 정말 연약한 정말 연약한 교회 그야말로 엉망이 되는 그런 교회를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실제로는 그 부분이 대단히 중요한 거죠.

이 현재적으로는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실은 우리를 어떻게 어떻게 살리셨는가 하는 것을 예수님이 첫 사례로 정확하게 이렇게 보여주시면서 우리 그 뒤를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제 교회들이 늘 꿈꾸는 것은 이겁니다.
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런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의 원리가 우리 교회에서 잘 나타나서 그래서 실질적으로 우리 교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충만해서 충만해서 그것이 우리 교회 속에 잘 나타나기를 바라는 그 꿈을 우리가 기본적으로 딱 갖고 있죠.
갖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실제로 신앙생활을 해보면 그렇지 못한 요소와 그런 요소가 끊임없이 이렇게 충돌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적어도 뭐 우리 공동체만 놓고 이렇게 봤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진전됐다가 후퇴했다가 진전됐다가 후퇴했다가 이런 것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원리를 잘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 교회 속에 이게 잘 나타나 적용이 되고 또 기본적으로는 나 한 사람 속에 잘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이제 좀 더 많이 생각해야 되는 그런 과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잘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그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이 교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가 잘 못 보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것을 잘 보지 못한 상태로 살아갈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우리 교회 속에 이렇게 충만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또 그 이렇게 되어져 가는 데 있어서 기여하면서 그렇죠 나 자신의 어떤 역할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 후자의 모습이 우리 속에 나타나기를 바라고요.

또 우리 개인적으로도 뭐냐 하면 내가 그런 역할을 잘 하면서 살아가는 게 사실 하나님 그렇죠 우리 보실 때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고 또 기뻐할 칭찬할 만한 그런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우리 주도 우리 주님께서 이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고 또 예수님의 제자들 1차적으로는 사도들이죠.
사도들도 자신들의 이 말씀과 삶을 통해서 그것이 이 우리 교회 속에 그리고 너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드러나야 되는가에 대해서 정말 대단히 많이 가르쳐줬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우리 사도들이 쓴 모든 서신서들을 이렇게 읽어보면요.
이런 이 말씀이 실질적으로 우리 교회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되는지를 해석한 책이다 이렇게 말해도 돼요.
모든 서신들은 그러니까 우리 서신처들에서 뭐 이런 사건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 뭔가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요약적으로 사실은 이 말씀이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으심 문을 이렇게 예수님이 한번 해석해 준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에서 뭘 예수님이 말씀해 주냐면은 나의 이 죽음이 많은 열매를 남긴다 하는 생명이 그렇게 확장되어져 가는 거다 하는 것을 다 보여줬어요.
나중에 이제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라서 이렇게 살아간다고 할 때 그 우리는 어떤 의식 속에서 따라가야 되냐 하면은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있죠.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충만히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거의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오히려 그 하나님의 나라의 어떤 요소들보다 이 세상적인 어떤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얼마든지 가득 차서 그렇죠 교회가 정말 그야말로 이 세상에 이렇게 편성해서 둥둥 떠내려가는 것과 같은 그런 모습도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제 신앙생활 할 때요. 특히 이제 목회자들은 그것을 잘 생각을 또 더 해야 되는데요.
우리 교회가 어느 쪽으로 지금 가고 있는지를 이렇게 다 분별을 해야 됩니다.
이쪽으로 가고 있는지 세상 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항상 이렇게 그래서 그런 면에서 우리는 또 다 파수꾼이에요.
영적인 파수꾼 잘 보면서 우리에게 지금 어떤 위기가 닥치고 있는지를 늘 이렇게 다 보면서요.

우리가 늘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해서 다시 이렇게 생각하고 또 기준으로 돌아와야 되느냐 이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것과 같이 결국은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을 통해서 실질적으로는 가장 강력한 생명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 그래서 우리 교회를 우리가 섬기면서 하나님 나라의 그 생명력이 가장 충만히 나타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냐면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심지어는 믿게 되는 그런 아주 강력한 그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그 역사까지 오게 돼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 이렇게 막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면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속에 그 하나님의 나라의 그 충만함이 그 생명력이 부족하다고 인정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많이 부족하구나 그래서 그 생명은 뭐냐 하면 실제로 사망과 사망의 요소 죽음의 그 모든 영역들 있지 않습니까?
여서들을 다 이렇게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항상 뭐냐 하면은 승리할 수 있는 그 자원을 다 갖고 있어 그래서 우리 속에 그것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기본적인 거고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생명력이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주님이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그 충만함에 우리가 잘 거하지 못하기 때문 때문이다 하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미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지 않습니까?
주셨기 때문에 우리한테 주시고 나서 그다음에 하신 말씀이 그러니까 땅에 떨어져 죽으라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서 너희도 생명을 얻으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렇죠.

그 부활하시면서 하게 되신 그 부활 생명을 우리에게 이렇게 이미 주셔서 우리가 그 생명을 다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우리 주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렇게 명령하시는 거고 그렇게 명령하시는 것은 고생해라 이런 얘기 아닙니다.
그 길이야말로 참으로 영광스러운 길이에요. 그것을 그것을 영광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계속해서 볼 수 있어야 되는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당 감당하게 되는 그 십자가와 고난들 있지 않습니까?
그것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의 내면에 실질적으로는 뭐냐 하면 우리를 이미 영광스럽게 하고 또 영광스럽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 내면의 그 감격이 늘 충만히 살아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 모습이 우리 속에 이렇게 이렇게 나타 나으면요.

점점 더 뭐냐 하면 실질적으로 우리 교회 속에 이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력이 우리 교회 속에 충만히 이렇게 두려워지게 되고 그 생명력은 어느 시점이 되면요 이렇게 확장이 일어납니다.
생명력을 막을 수가 없어요. 누룩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처럼 막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다 초점을 항상 잘 둬야 되냐 하면은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내가 그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 길을 나도 가야 되겠다 하는 그 방향성 을 가지고서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되고요.
그래서 우리 개인적으로는 뭐냐 하면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나라 내가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십자가 없이 주님 없이 영광스럽게 되고 싶거든요.
그렇게 영광스럽게 되는 길은 없습니다. 네 그런데 우리는 그거 없이 내가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고자 하는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우리가 자기를 이제 사랑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나를 사랑하는 거 그 모습에서 이제 그것이 이제 잘 드러나게 되는데 실질적으로는 뭐냐 하면은 우리가 내가 내 어떤 자기 나를 주장하고 내 자신을 챙기면 챙길수록 실질적으로는 생명에서 멀어진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 때 실제적으로 내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나요.
그게 내가 아 이렇게 살면 실제로는 죽어가는구나 하는 것을 내 영혼이 죽어가는구나 하는 것을 이렇게 바라보면서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면서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서둘러서 뭐냐 하면 다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그 고난의 자리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 자리죠.
그 자리로 이렇게 돌아가 돌아가야 됩니다. 그 자리가 사는 자리다.
또 우리 교회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주님의 뜻에 이렇게 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항상 이렇게 분별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래요.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제일 좋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너무 좋아요.

근데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계속해서 요구하세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씀하시고 순종을 요구하시거든요.
그것도 하기가 싫어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그러면은 실제로는 우리 교회가 죽는 방향으로 간다는 거죠.
근데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거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이렇게 잘 이렇게 의지해서 그러면은 순종하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막 즐겁죠.
고난 받는 게 즐겁고 심지어는 막 재미있고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들 사랑하는 자녀들한테 이렇게 헌신할 때 만큼 즐거운 게 없잖아요.
그래요. 그러니까 이제 뭐죠? 뭐 자녀들이 몸이 좀 아프다 그러면은 부모님들이 그 자녀를 간호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데요.
그때 그 부모들이 안심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해서 회복되고 그 과정 속에서 자녀들이 이렇게 자라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은 행복하거든요.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 이렇게 동참하는 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면은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제일 즐겁고 행복해요.
우리가 그렇게 조금 헌신하고 희생해서 우리 주님을에 대한 사랑을 내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있잖아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사실 우리가 하는 건 조금밖에 안 돼요.
막 고난에 동참한다고 뛰어든다고 해도 실제로는 다 요만큼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고작 그 정도밖에 안 하는데 우리가 주님을 내가 그렇게 챙기고 섬기고 주님의 영광을 뭔가 추구하고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나 자신을 보면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실제로는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그 길을 나아가는 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이렇게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우리가 때때로 그것을 하찮게 생각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무의미하게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에 우리가 이제 정신이 조금 나가가지고요.

이 고난 없는 시대 영광을 소망하고 그 자리에서 내가 이렇게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빨리 그 자리에서 떠나서 정말 실질적으로는 우리 생명이 살아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서 우리를 그야말로 영광스럽게 하는 그 자리로 우리가 빨리 나아가야 되는구나 하는 것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 우리가 그것을 빨리 빨리 이렇게 감당하도록 훈련되어져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머물지 말고요.
그것이 잘못된 어떤 자리에 있는 거다 하는 것을 빨리 진단하고 빨리 이쪽으로 넘어와서 우리가 다시 그리스도에 가신 그 십자가와 고난을 짊어지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그 삶의 자리로 잘 돌아가게 되면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께서 회복시켜주시고 다시 베풀어주시는 그 은총들이 있습니다.

그 은충이 우리 속에 잘 머물러 있게 되면 우리는 그 속에서 실질적으로 우리의 개인적으로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우리 공동체 전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히 임하고 또 그 생명이 확장되는 그런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그런 요소들이 많이 낙타 하고 또 그 힘이 세력을 얻어서 확장되어져 가는 그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쭉 보면서 이제 기대감도 많아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조금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렇게 어떤 일을 베풀어 주실까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면서 사실 이렇게 교회를 섬겨 가고 있는데 우리가 그런 부분들도 좀 더 잘 생각하면서 우리 교회 속에 그런 모습도 내 개인적으로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나도록 애를 써 가면 좋겠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가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을 살피면서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이 나라의 원리, 생명이 확장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셨는데, 그 주님의 사역을 통해서 주님께서 이 교회 속에 어떻게 생명을 공급하시고 또 계속해서 그 생명을 제공하시고 그것이 확장되게 하시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운데도 그 주님의 부활 생명이 이미 임해 있어서 우리도 넉넉히 하나님의 일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산다고 하는 이 진리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우리 개인적으로 또 우리 공동체 전체적으로 우리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순종해 가는 그 모습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이것이 실질적으로는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그 영광에 저희가 눈을 뜨게 해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뜻들에 순종해 갈 때 우리의 심령에 감사함과 기쁨이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통하여서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경험해 가게 해 주시고, 그 충만한 주님과의 사임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그 모든 일들을 우리가 목도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또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바라보면서 우리 주님께 영광 돌려드리고 주를 찬양하는 모습이 우리 교회 가운데 충만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