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새생활교회 당회장 박주동 목사

예배/말 씀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가 되려면.... 고한율 목사 250720

예배하는 사람 2025. 7. 21. 21:27
고한율 목사

 

250720말씀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가 되려면 고한율 목사

예 우리 성경 말씀을 다 같이 보겠습니다. 신약 성경 에베소서 4장 15절 말씀을 우리가 다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 성경 에베소서 4장 15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 말씀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아멘 예 반갑습니다.
저는 은곡 교회를 섬기고 있는 고한율 목사라고 하고요.
하광영 목사님 연락 주셔가지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저희가 예배가 원래 이제 1, 2부로 돼 있어 가지고 이제 11시 반이 2부 예배예요.
그러면 한 12시 40분에 마칩니다. 그래서 도무지 이 시간이 안 맞아서 오늘은 저희가 11시에 1, 2부를 통합해 가지고 예배를 드렸어요.
예배를 드리고 그다음에 12시 10분 끝나고 달려왔습니다.
달려왔고 우리 권사님이 주먹밥을 싸주셔가지고 차에서 먹으면서 왔는데 기쁜 마음으로 왔습니다.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고자 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계신 곳에 와서 함께 예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기쁨과 감사함 가운데 왔고요.

주님께서 오늘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귀한 주님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 오늘 우리의 말씀을 볼 텐데요. 한국교회에서 보통 교회의 목표 교회의 비전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이제 우리 교회의 목표는 이렇습니다. 비전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보통은 외적인 외적인 부분 눈에 보이는 그런 목표와 비전일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성도 수를 그렇죠 우리 우리 교회는 뭐 얼마가 얼마 모일 때까지 막 그렇게 열심히 전도합시다 뭐 이렇게 한다든지 혹은 예배당을 이렇게 크게 지금보다 크게 합시다 뭐 이렇게 한다든지 한국교회 하는 사람이 많이 그렇게 하죠.
그래서 성도가 많아야 되고 예배당이 커야 되고 또 구제나 선교도 많이 해야 되고 이렇게 이제 가시적인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중요한 거죠. 그렇죠 정말 주님의 교회가 외적으로도 성장하는 거 굉장히 중요한 거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교회 교회가 이런 외적인 성장이라든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영적인 성장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여러분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그저 외적으로만 눈에 보이는 그런 모습으로만 성장한다면 이건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아이가 있는데 7살 아이예요.
그런데요. 하여튼 뭔가 하여튼 무슨 수를 써가지고 한 30살 건장한 어른처럼 보이게 됐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생각하는 거나 말이나 행동하는 것은 7살 아이에요.
근데 모습은 30살 건장한 청년들 이게 이제 어른 아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정상이 아니죠.
그렇죠 정상이 아니죠. 겉으로 볼 때는 참 건장하고 장성한 어른이구나 이렇게 하는데 생각하는 게 너무너무 유치하고 말하는 게 엉뚱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건 비정상적인 거예요.

그게 정말 정말 잘 성장했다. 정말 좋게 보여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요. 반드시 영적인 성장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외적인 부분만 관심을 가지고 거기만 힘쓴다면 이런 어른 아이와 같은 엉뚱한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런 점에서 이 교회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에베소서 이 에베소서 말씀은 우리 성경님들 아시겠지만 특별히 이 교회론에 대해서 교회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많은 그래서 1장부터 6장까지가 이 교회론에 어느 정도 초점이 맞춰진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교회가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뭐냐 교회라는 게 뭐냐라고 할 때 우리가 보통은 에베소서를 우리가 이제 보면 보게 되는데 이 에베소서의 강조점이 영적인 성장에 있다라는 것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영적인 성장이라는 것을 점에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4장 15절 1절만 읽었는데요.

그 앞에 앞에 있는 13절 말씀에 보면 사실 교회에 세 가지 목표가 나와요.
세 가지 목표 첫 번째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 이게 이제 첫 번째 목표고 두 번째는 온전한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는 건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숙한 신앙을 갖는 것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 이렇게 이제 세 가지로 제시를 하고 있어요.
이 세 가지 교회의 목표는 다 뭐에 맞춰져 있어요? 영적인 성장에 맞춰져 있어요.
그렇죠 이 세 가지가 다 영적인 성장에 맞춰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도의 숫자를 늘려가십시오.
이렇게 절대 말하지 않아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건설해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건 중요하죠.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거는 아닙니다.

이 교회의 근본적인 목표와 비전은 항상 영적인 성장에 맞춰져 있어야 돼요.
이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질 때 눈에 보이는 성장은 열매로서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힘써야 될 일은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루어 가는 거예요.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믿음을 가진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오늘 읽은 본문은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 될 일이 무엇인가 그래서 우리 세상을 교회 성도님들이 이제 교회를 이제 세워가는 이제 딱 세워가는 아 제일 처음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우리가 어떤 건물을 짓는다든지 또 교회를 세워간다 할 때 기초가 중요합니다.

그 기초 위에서 건물이 어떻게 지어져 가는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 기초가 중요한데 어떻게 보면 새 생활 교회는 우리가 이제 교회를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바른 교회를 세워가고자 해서 이렇게 우리가 성도님들이 귀한 뜻을 가지고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모여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힘써야 될 일이 뭐냐 제가 섬기는 은곡 교회는 제가 지금 이제 59년 8년째 되는 교회예요.
그래서 제가 10년 전에 부임을 했는데 10년은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와서 뭘 할 수가 별로 없어요 기초가 돼 있고 이미 다 세워져 있는 거예요.
그렇죠 와서 제가 열심히 적응을 해야 되는 교회였습니다.
근데 그러니까 그것도 너무 귀하죠. 너무 복되게 잘 우리 원로 목사님부터 우리 우리 후임 목사님들이 잘 세웠기 때문에 저는 너무 감사함으로 그 일에 봉사하고 있는데 어떨 때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야 이거는 처음에 교회가 세워질 때부터 이렇게 세워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으로는 그거 말했다가는 좀 그래요.

그래서 그냥 이거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도록 그렇게 하는데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조금 있거든요.
많지는 않지만 조금 있어요. 근데 우리 세상 교회는 어떻게 보면 지금 쫙 세워가는 거니까 정말 무엇에 본질적으로 힘써야 되는가 그것을 같이 기도하고 나누고 그래서 함께 서 간다면 너무나 너무나 복된 일이 될 이다.
그래서 우리가 뭘 힘써야 되는가 우리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같이 15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전할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자 이 말씀은 앞에 있는 14절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14절에 보면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영적인 어린 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그러면 영적인 어린 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 어떻게 어디까지 성장을 해야 되느냐 어린아이가 성장을 해야 되는데 그 성장이 어디까지 돼야 되는가 15절에서 그 답이 나와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잘할지니 그죠 범사의 그에게까지 잘할지니 그가 누구냐 그는 머리니 곧 누구요?
그리스도라 그렇죠 그리스도까지 자라나 교회는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교회의 머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돼 성장해 가야 된다는 거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15절에 보니까 뭐라고 하냐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참된 것을 하여라고 하니까 이게 조금 이게 무슨 뜻인가 생각이 드는데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라고 할 수 있어요.

14절에 보면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교회는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어린아이의 신앙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알지 못하여 거짓 교훈 속에 이리저리로 요동치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거짓말에 흔들리는 거예요. 이게 어린아이의 상태라는 거예요.
여러분 어린아이와 성숙한 어른의 차이는 진리를 따라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진리보다 뭐가 더 중요하냐 이게 내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게 더 중요합니다.
이게 이게 나한테 이익이 되느냐 나에게 좋으냐 나쁘냐 그게 기준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지.
물론 우리 아이들이 아기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니지만 당장 눈앞에 사탕이나 있거나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거짓말도 하거든요.
그게 아이예요. 눈에 보이는 이게 나한테 좋은 거면 거짓말도 해요.
이게 아이들의 특징이죠. 하지만 성숙한 어른은 다릅니다.
자기의 이익보다 진리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진리가 아니면 따르지 않습니다.
이게 어른이에요. 장성한 어른이에요. 제가 이제 어느 이제 교회 성도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제 실제로 있었던 얘기인데 이분이 지방에 설렁탕집을 하는 분이에요.
설렁탕집을 하시는데 좀 유명한 집이었던 사람이 많이 오는 집이래요.
근데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이 오냐 최고급 뼈를 뼈를 고아가지고 아주 사고를 아주 잘 우러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그리스도인인데 집사님인데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내가 이 가게를 하겠다 그래가지고 속이지 않는 정말 좋은 뼈 비싼 뼈를 가지고 골 이제 고아가지고 이제 내거든요.
그러니까 손님들이 와서 먹으니까 이게 진짜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근데 어느 날에는 어느 날 이제 고았는데 오랫동안 똑같이 고았는데 어제처럼 똑같이 했는데 이 국물
물 색이 조금 이전처럼 진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래서 뼈를 공급한 곳에 이제 연락을 했대요.
연락을 했더니 이제 그분 이제 그 뼈 판 부분이 이제 이실직고를 하는 거예요.
미안하다고 오늘 우리한테 좋은 게 안 들어와가지고 그냥 준 거라고 그러니까 사장님 이거 색깔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으니까 프림을 타시라고 프림을 타면 색깔이 뽀얘진대요.
그래서 프림을 좀 타시면 이게 똑같은 색깔이 나오니까 오늘만 그렇게 하시라고 내가 내일부터는 정말 좋은 뼈 이전처럼 똑같이 할 테니까 오늘만 좀 그렇게 하시고 이렇게 이제 말을 했다는 거야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는데 이 집사님이 이제 생각을 하는데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렇죠 고민이 되는 거예요. 이거 문 닫으면 하루 종일 이걸 하루 매출이 다 날아가는 거고 더욱이 그 집 찾으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허탕치게 하는 것이고 풀린 몇 스푼만 넣으면 똑같이 색깔이 나오고 맛도 그렇게 큰 차이는 안 나니까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결정을 내렸느냐 국물을 다 버렸대요.
다 버리고 문을 닫으면서 그 앞에 적어놨답니다. 오늘은 좋은 뼈로 국물을 내지 못해 가지고 장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내일 내일 다시 열겠습니다. 이렇게 했다라고 결단을 내린 거죠.
결단을 내린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근데 놀랍게도 그날 참 손해를 많이 당연히 많이 봤죠.
근데 놀랍게도 그 소문이 그 소문이 난 거예요. 야 저 집은 진짜다.
진짜 진짜 좋은 뼈로 해가지고 내는 집이다. 그거 아니면 장사 안 하는 집이다 이렇게 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 집이 아마 김천 쪽에 있다고 그러는데 그 고속도로를 일부러라도 벗어나 가지고 오는 집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 이야 이건 참 이게 진짜 성숙한 시간이구나 그 사사로운 자기 그 하루에 매출이 수백 수천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거 포기하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근데 이 장성한 성도는 이익이냐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되느냐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게 옳으냐 그르냐 옳지 않다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하였던 것이죠.
믿음이 성숙한 성도는 자기 이익이 아닌 진리를 따라요.
자기를 위해 거짓을 말하지 않고 손해가 되더라도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따라갑니다.
그렇게 진리 위에서 흔들리지가 않는 거예요. 거짓말하는 거짓말을 따라가는 아이들은 요동친다고 그랬잖아요.
거짓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짓된 것 진리가 아닌 것 그 위에 있으면요.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 내 이익을 따라 이리저리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말하고 진리 위에 서 있다면 진리는 변함이 없어요.
진리는 바뀌지 않아요. 진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위에 든든히 설 수가 있는 것이죠.

자 그런데 바울은 이 성숙한 성도가 이렇게 이제 진리를 말한다라고 할 때 반드시 사랑 안에서 해야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서 사랑 안에서 해야 된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진리와 사랑이 함께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보통은 생각을 해요.
그래서 사랑이 넘치는 곳에는 진리가 없고 진리가 많은 곳에는 사랑이 부족하다 그런 경우가 실제로도 많이 있죠.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되어서 회당에 들어가셨어요.
예수님 회당에 가셔서 설교 많이 하셨거든요. 갔는데 그 회당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어요.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이요.
그쪽의 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묻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이렇게 그러니까 이 손 마른 사람을 딱 앞에 두고 예수님이 딱 오시니까 딱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묻는 거예요.

이거는 바리새인들이 정말 몰라서 궁금해 가지고 물은 게 아니에요.
바리새인들은 어쨌든 예수님을 잡으려고 그랬거든요.
빌미를 가지고 꼬투리 잡아가지고 제거하고 싶어 했거든요.
그날이 안식일이었어요. 만약 예수님이 병자를 고친다면 예수님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이죠.
그러면 그걸로 안식일을 범하는 건 굉장히 큰 죄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 이고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 질문을 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그렇게 묻는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 박사들이에요. 바리새인들은 사실은 신학자는 아니에요.
그 제사장 성직자도 아닙니다. 성도들이에요. 성도들인데 굉장히 특별한 성도들이에요.
어릴 때부터 말씀 교육을 아주 철저하게 받은 바울이 바리새인이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율법의 정통한 성도 아주 뜨거운.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한 6천 명 정도가 바리새인들이 있었을 거라고 그 소수 정예들 아주 잘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성경 박사들이에요. 성경 말씀 진리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아는 사람들이 하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이 손 마른 사람을 앞에 두고 예수님에게 예수님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그 질문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의 모습에는 사랑이 전혀 보이지 않죠. 한쪽 손이 말라서 엄청난 고통과 아픔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그들에게 전혀 보이지 않아요.
그들은 수단이야 수단 손마른 그 사람은 예수님을 잡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거예요.
그물이에요. 그물 사람을 예수님을 잡기 위한 그물로 사용하는 거예요.
근데 그들은 진리를 아는 성경을 아는 박사들이었단 말이에요.
이게 어떻게 맞냐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들은 비록 진리의 사람이었을진 몰라도 전혀 사랑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냥 한쪽 편에 진리 쪽에만 있었던 거 반대로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요.
고린도 교회 안에 참 말하기가 민망한데 아버지의 첩과 아버지 첩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이건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일을 나누면 아주 이거 그렇죠.
천일 복용한 지신데 그런데요. 그게 고린도 교회 송도였어요.
송도 그 짓을 한 아들이 그런데 교회에서 어떻게 한 줄 압니까?
덮고 넘어가 버렸어요. 그냥 덮어버렸어요. 왜 그랬을까 아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정도 범죄 정도는 우리가 사랑으로 덮을 줄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니까 이 사람 덮자 그렇게 자신한 것 같아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으로 억울 흉악한 죄를 지은 그 죄인을 그냥 덮어버렸어요.
그들은 가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그들은 사랑의 사람들이었다고 혹시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리와는 전혀 먼 사람들이죠.
그래서 바울이 굉장히 야단을 쳐요.

세상에서도 없을 일들인데 그러면서 교회가 어떻게 그런 불의에 대해서 덮고 갈 수가 있냐 그게 사랑이냐 이 야단을 치거든요.
이처럼 진리와 사랑은요. 한쪽으로 어느 한쪽으로 쏠리기가 쉽고 사실 그 둘을 함께 붙잡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요.
하지만 이것은 만약에 한쪽으로만 기운다면 그건 성숙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진리와 사랑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붙잡아야 돼요.
그게 성숙한 성도예요. 오늘 본문 말씀처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거예요.
진리만 말하는 게 아니고 사랑만 하는 게 아니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바로 진리와 사랑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십자가를 여러분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 잘 보이십니까?
어떤 모습이 보여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 그렇죠 그게 보이는 분이 계실 거고 또 어떤 분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죄를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공로 공의 정의가 보일 거예요.
여러분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드러난 곳이죠.
우리 죄인들은 구원받을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를 가만히 놔두면 우리는 다 멸망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이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예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영적으로는 사망 자입니다.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별짓 다 해도 성경에서 보면 그들은 죽은 자예요.
왜냐하면 뻔하거든요. 더 스스로 구원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까요.

죄를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지옥밖에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사랑하여 주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무엇을 통해서입니까? 아무 죄 없는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줌을 통해서예요.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 죄인을 위해 스스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 그런 사랑을 요구할 만한 무슨 행동을 했거나 공로를 쌓았거나 뭐 그랬으면 그런 게 아닌데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거든요.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거든요. 근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저 사랑하여 주셔서 자신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내어주신 거예요.
십자가 아닙니까? 십자가 그 십자가는 하나님의 정말 놀라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예요.
그런데 이와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은 죄를 절대 용납하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거짓과 불의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마땅한 거예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진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절대 눈 감아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뭐냐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인데 한편으로는 정의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죄의 문제를 그냥 눈 감을 수가 없어요.
우리의 죄를 그저 눈 감고 죄 없다 이렇게 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죄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돼요. 죽음에는 피가 필요하고 생명이 필요하다고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방법이 뭐냐 우리 대신에 그의 아들 아무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어요.
그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의 심판이 이루어졌고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가 함께 하나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는 사랑과 정의가 하나 된 것을 보기가 어려워요.
한쪽으로 쏠려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 사람과 정의, 사랑과 공의가 진리가 함께하는 그 모습을 십자가를 통해 보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이제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요. 이 십자가는 진리와 사랑이 하나 되는 방법을 보여줘요.
우리가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아 그럼 우리도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해야 되는데 사랑과 진리를 함께 붙잡아야 되는데 그러면 십자가는 거의 이루어졌는데 중요한 건 우리거든요.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되거든요. 근데 십자가가 그 방법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어떤 방법이냐 뭐냐 바로 자기 희생이에요.

자기 희생입니다. 여러분 자기 희생 없이는요 진리와 사랑은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은 사랑 없이 진리만 내세울까요?
왜 진리만 진리 진리 사랑은 없고 진리만 외칠까요?
내가 옳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내가 옳다라는 것 그래서 진리를 주장하죠. 이게 진리 이게 법이다 하면서 그렇죠 이게 법이다 이러면서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는 거예요.
그러면 왜 사람들은 진리 없이 사랑만 내세울까요?
이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
결국 자기를 드러내는 거예요. 진리와 사랑이 하나 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은 자기 희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희생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진리와 사랑이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희생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독생자를 우리 죄인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신 것입니다.
자기 희생이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누구도 그렇게 요구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 아들을 내어줌으로써 자기를 희생하셨어.
그럴 때 이 십자가는 사랑과 진리가 하나가 되는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죠. 예수님도 자기를 희생하셨어요.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지만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사람들이 그러잖아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와라.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었거든요. 자기의 옳음을 만약에 증명하려고 했다면 내려오실 수 있었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은 없어요. 우리는 예수님은 우리의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정말 기막히죠.
그 더러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끝까지 자기를 증명한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는 죽었어요.
자기 희생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죄인을 사랑한다고 하여 죄를 눈 감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이 죄인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받아줄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인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심판의 자리인 십자가에 그렇게 오르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진리와 사랑은 자기 희생을 통해서 하나로 드러나게 돼 자기 희생이 필요해요.
자기 희생이 없으면 우리는 진리와 사랑 중에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숙한 신앙으로 신앙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 성숙한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서는요.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희생 없이는요. 진리와 사랑은 하나가 될 수가 없고, 그렇다면 우리도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까지 자라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희생을 통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희생하려는 성숙한 신앙을 가진 성도가 교회 안에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는 진리와 사랑이 하나 된 참으로 복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어떤 죄인이든지 받아주고 섬기는 그런 사랑의 교회가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거룩한 교회가 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죠 사랑의 교회가 된다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온갖 불법과 더러운 것이 막 판치면 그건 교회가 아니죠.
진리 그렇죠 말씀 이것만 있다고 해서 사랑은 없고 냉랭한 그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아니잖아요.
사랑과 진리가 함께 있는 근데 그럴 교회를 세워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결국 자기 희생이 없이는 되지가 않는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처럼 자기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사랑과 진리는 하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먼저 자기 희생을 실천한다면 얼마나 멋진 교회가 되겠습니까?
그렇죠 얼마나 멋진 교회가 돼서 제가 우리 성도님들한테 저희 교회는 이제 어르신들도 역사가 있다니까 어르신들도 많은데 제가 어르신들 우리 어르신 선배님들한테 그런 말을 해요.

교회 올 때 교회 오실 때 아이들을 보시면 이제 보통 우리 어르신들 불만 사항 중 하나가 애들이 요즘 애들이 인사를 안 한다고 장로님 봐도 권사님이 봐도 인사를 안 한다고 불만이 좀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설교를 그때 말씀드렸어요. 우리 장로님 권사님들 우리 교회 오래 다니신 성도님이 우리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 좀 해보면 어떨까 해요.
그럼 아이들이 와 이게 교회구나 세상에서는 당연히 혼내잖아요.
인사 버릇없는 녀석 싸가지 없는 녀석 이럴 거 아닙니까?
근데 교회에 왔더니 자기보다 나이가 3~4배 많으신 어르신이 장로님이 권사님이 어우 저 나한테 먼저 인사해 주시던데 얘야 반갑다 잘 왔다.
교회 오니까 얼마나 좋니 우리 먼저 좀 인사해 주십시오.
그러면 이 교회가 무엇인지를 아이들이 대화 거 희생이죠.
사실 그 말 듣고 속으로 좋으셨겠어요?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하시는 분이 있으면 정말 아이들이 우리 이제 연세든 장로님 중에 그런 분들이 있거든요.
진짜 아이들 먼저 인사하고 손 잡아주고 막 그렇게 하거든요.
아이들이 이 교회구나 그게 설교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먼저 인사해 주고 손 잡아주는 그러면 애들이 교회가 이런 곳이고요.
교회가 이런 곳이구나 자기 희생이 자기 희생이 그렇죠 우리가 정말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한다면 사랑과 진리 나의 희생을 통해서 사랑과 진리를 붙드는 성도고 그 성도들이 모여서 그런 교회를 이뤘다면 그 교회야말로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새생활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 희생을 통해 진리와 사랑이 정말 아름답게 하나 된 교회.
그래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는 결국 예수님이 그런 분이셨어요.
예수님이 자기 희생을 하셨어요. 하나의 밀알이 되셨어요.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안 죽으면 그냥 하나의 그대로 있느니라 우리 주님 말씀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전날 밤에 하신 말씀이에요.
내가 하늘의 미랄 땅에 썩어져 죽는 미랄이야. 근데 죽으면 살아요.
이게 기독교의 정말 역사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니까 그가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 놀라운 열매가 나타나잖아요.
진리와 사랑에 자기 희생하는 성도와 교회를 통해 하나가 될 때 하나가 되어 나타날 때 정말로 놀라운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기 희생으로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런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진리만은 아닙니다. 또 사랑만도 아닙니다.
이 둘이 같이 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먼저 희생해야 됩니다.
내 안을 먼저 내려놓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 생명이 일어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이 귀한 진리가 또한 이 귀한 사랑의 자기 희생을 통해 아름답게 열매를 맺어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복된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져 가는 우리 새생활교회, 우리 모든 성도님들, 또 우리 새생활교회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네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진리와 사랑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죽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죽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희생하고 내가 먼저 죽을 때에 하나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을 때에 많은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성도가 진리만 외치다가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또한 사랑만 외치다가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아버지 하나님 그런 현실 속에서 정말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우리 모든 새생활 교회 성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아름답고 복된 교회로 늘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께 감사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